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26)
절대회귀-226화(226/424)
제226회 기녀를 구하러 오는 남자는.
천화루주의 눈에 오직 극악소마만 보였다.
주위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하얀 배경에 극악소마가 걸어오는 모습만 보였다.
“오셨어요, 오라버니?”
천화루 무인들이 기쁨의 탄성을 터뜨렸다. 그들은 극악소마의 진정한 신분을 알지 못했지만, 천화루주가 오라버니라는 호칭을 쓰는 유일한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그때 백도가 벼락처럼 빠르게 움직여 천화루주 뒤로 숨었다. 그가 재빨리 도를 뽑아서 천화루주의 목을 겨눴다.
“멈춰! 더 다가오면 이 년은 죽는다!”
극악소마는 발걸음을 멈췄다.
백도가 천화루주를 방패 삼아 살짝 고개를 내밀고 극악소마를 노려보았다. 가면 속 두 눈은 웃고 있었다.
천화루주의 목을 겨누고 있는 백도의 도가 파르르 떨렸다. 지금까지 여불개의 명령으로 수많은 납치와 살인을 자행했지만, 그 과정에서 한 번도 두려움을 느낀 적은 없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살인병기로 자란 그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도 이 감정이 낯설었다.
“당신 누구지?”
그러자 극악소마가 대답 대신 천화루주를 바라보았다. 괜찮냐는 눈빛에 그녀는 더욱 환한 미소를 지었다.
“기녀를 구하러 오는 남자가 누구겠어요? 제 기둥서방님이시죠.”
기둥서방 소리를 들었지만, 극악소마의 눈은 웃고 있었다.
반면 백도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기루의 기둥서방 따위에게 흑도가 죽었다고? 자신이 인질극까지 벌여야 한다고? 태어나 처음으로 공포를 느낀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극악소마가 나직이 말했다.
“눈 감게.”
천화루주가 눈을 감았다.
그녀가 눈을 감는 순간!
피잉!
노출되어 있던 백도의 귀가 퍽하면서 날아갔다.
백도가 망설이지 않고 천화루주의 목을 베려던 바로 그 순간.
퍽!
그의 팔꿈치가 뚫렸다. 지풍은 그의 몸을 관통해도 그녀를 다치게 하지 않을 곳을 향해 정확히 날아들었다.
이를 악물고 그녀의 목을 베려 했지만.
퍼억!
이번에는 도를 든 손의 손등이 뚫렸다. 손등을 뚫은 지풍은 도의 손잡이에 적중했기에 그녀를 다치게 하지 않았다.
이렇게 정확하고 정교하게 공격을 가해올 줄은 정말 몰랐다.
백도가 손에서 떨어지는 도를 다른 손으로 받아쥐려고 하던 그 찰나의 순간 그의 몸이 노출되었고.
피이잉! 퍼어억!
그의 왼쪽 눈이 뚫렸다. 휘청거리면서 뒤로 물러나던 그 순간 이번에는 오른쪽 눈이 뚫렸다.
“으아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그가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났다.
피잉! 퍼억!
이번에는 입이 뚫렸다.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천화루주에게 도를 겨눈 그 손을, 그녀에게 이년을 죽이겠다고 협박한 그 입을 응징하고 있음을.
죽어가는 이 순간에도 백도는 믿을 수 없었다. 인질이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과감하게 공격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공격이 어떻게 이렇게 정확하고 정교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지풍을 저렇게 연속해서 쏠 수 있는지.
피이잉! 퍼억!
백도의 이마가 꿰뚫리면서 그대로 쓰러졌다. 그는 온갖 의구심을 가진 채 숨을 거뒀다. 정말 기둥서방이라고?
천화루주의 얼굴에 감격이 스쳤다. 무뚝뚝한 극악소마는 자신의 분노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자신의 분노를 보여주었다. 언제나 그랬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남자였다.
천화루주가 흑백쌍도의 시체와 주위를 흐르는 피를 내려다보며 아쉽게 말했다.
“오실 것 같아서 깨끗이 치웠었는데.”
“괜찮네. 피 냄새 좋아해서.”
천화루주가 성큼성큼 걸어가서 극악소마의 품에 안겼다. 극악소마는 함께 안아주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지만 천화루주는 전혀 섭섭해하지 않았다.
극악소마의 성격과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가만히 있어 주는 것은 자신을 꽉 껴안아 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뒤에 서 있던 천화루의 무인들도 일제히 절을 올리며 주인을 구해준 고마움을 전했다.
극악소마가 천화루주에게 말했다.
“함께 온 손님들이 있네.”
그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린 천화루주가 장내를 정리했다.
다친 무인들은 의원에게 보냈고, 흑백쌍도의 시체를 치우게 했다. 그리고 나머지 무인들은 모두 외원으로 내보내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그곳으로 검무극을 비롯한 일행들이 들어섰다.
천화루주는 가장 먼저 검무극과 인사를 나눴다.
“이공자님, 그간 잘 지내셨어요?”
“저는 잘 지냈습니다.”
“이 무인은 함께 안 왔네요?”
“우리 예쁜 심장은 누가 데려갈까 겁나서 본교에 꼭꼭 숨겨뒀습니다.”
천화루주가 웃으며 말했다.
“귀하게 될 분이에요. 세상에 내보내도 잘 헤쳐 나갈 거예요.”
검무극은 그녀가 비범한 여인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뚱뚱했을 시절 이안의 아름다움을 꿰뚫어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보통 사람이 아님을 증명했었다.
“제 말은 안 믿어도, 이 무인은 믿으세요.”
“아뇨, 루주님 말씀 믿고 내보낼 겁니다.”
귀영대 때문에라도 그녀는 세상에 나가게 될 것이다. 비천검법이 구 성에 이르렀으니, 내보내도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이젠 청면도 함께 있었고.
검무극은 다음으로 독왕을 그녀에게 소개했다.
“여긴 본교 독왕님이십니다.”
한낱 기루 주인에게 자신을 소개해?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독왕은 전혀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다. 극악소마에게 오라버니라 칭하는 여인이라면, 단순한 기루 주인이 아니었으니까.
천화루주는 독왕에게 정중한 예를 갖췄다. 그 자리에서 절을 올리려는 것을 독왕이 부드러운 내력을 발출해서 말렸다.
“그렇게 과한 예를 차리실 필요 없소.”
그러면서 오히려 독왕이 정중히 포권하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소.”
극악소마를 배려한 마음이었다.
“귀하신 분께 인사드립니다. 천화루주 여정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독왕이 이렇게 동안이었다는 사실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안의 겉모습 속에 감춰진 진짜 모습을 보았듯, 어쩌면 그녀는 독왕의 저 외모 속에 감춰진 진짜 모습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대하는 모습에 독왕을 향한 극악소마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아직도 서먹한 관계지만, 처음 출교했을 때는 며칠 동안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죽마고우다.
다음으로는 서대룡을 소개했다.
“여긴 제 오른팔입니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서대룡입니다.”
천화루주가 서대룡을 빤히 응시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영혼이 맑으신 분은 참 오랜만에 뵙네요.”
천화루주는 서대룡의 착함을 한눈에 알아본 모양이다. 서대룡은 감격했다. 영혼이 맑아 보인다는 말은 태어나서 처음 들었을 거다.
서대룡이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 하는 표정으로 검무극에게 어깨를 으쓱했다.
“절 소개하는 말에 맑은 영혼, 이건 꼭 넣어주십시오! 다른 건 다 빼시더라도요.”
“어디 가서 손해 잘 보고, 여자에게 잘 속고, 사기당하기 좋게 생겼다를 저렇게 말해주신 것 아닐까?”
서대룡은 에이, 설마하는 마음으로 천화루주를 쳐다보았다. 아니라고 말해주셔야죠, 하는 간절한 눈빛을 보냈지만, 그녀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다음으로 고월을 소개했다.
“저기가 오른팔이라면 여긴 제 머리인 사람입니다.”
천화루주가 고월을 보는 눈빛은 이안을 볼 때와 비슷했다. 큰일을 하게 될 사람을 보는 경외와 응원의 눈빛, 하지만 그걸 드러내서 말하지는 않았다.
풍천교주는 검무극이 자기를 뭐로 소개할까 눈을 반짝였다.
“제 든든한 후원자이십니다.”
풍천교주가 말했다.
“더 가져갈 게 있어야 후원자지.”
“가져갈 게 많이 남았죠.”
“남았다고?”
“부자 망하고 아직 삼 년 안 지났잖아요?”
검무극이 숨겨둔 것들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짓자, 풍천교주는 괜히 고월에게 한마디 했다.
“나에 대해서 말하고 다니면 안 돼!”
더 챙겨갈 거라는 말에도 풍천교주는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검무극이 농담으로 말했다는 것을 알았을 뿐 아니라, 이보다 더 슬픈 건 누군가에게 불필요한 존재가 되는 순간일 테니까.
그렇게 검무극은 자기 사람을 모두 소개했다.
극악소마와 독왕, 서대룡, 고월과 풍천교주가 검무극의 좌우에 있는 모습을 천화루주는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과연 그녀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천화루주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천화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검무극 일행도 모두 정중히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다.
천화루주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머무실 방부터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극악소마가 그녀에게 말했다.
“자네 방 옆으로 주게.”
“네.”
그 말에 천화루주는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우리의 방문이 천화루의 안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녀는 우리가 먼저 말하기 전에 묻지 않았다. 그녀는 차분하면서도 신중했다.
각자 여장을 푸는 사이, 나는 극악소마와 함께 천화루주를 먼저 만나서 상황을 설명했다.
“이번에 찾아뵌 것은 저와 소마님이 상대하고 있는 적이 기루를 운영하는 자인데 귀주를 목표로 했다는 정보를 들어서입니다.”
“혹 그 사람이 여불개인가요?”
과연 그녀는 이미 여불개에 관해 알고 있었다. 천화루는 극악소마를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곳이기도 했으니, 밤의 제왕이라 불리는 그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여불개가 중원 곳곳으로 기루를 넓혀가고 있는 것은 알고 있어요. 그는 소문이 매우 좋지 못하죠.”
“그 소문의 대가를 치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천화루주의 눈빛에 기쁨이 스쳤다. 기루 사업을 하는 그녀였으니, 여불개와 관련한 악행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여불개가 귀주로 진출한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소마님이 어떤 눈빛이었는지 루주님은 모르실 겁니다.”
천화루주가 극악소마를 쳐다보았다.
“저는 알 것 같은데요?”
그녀는 깊은 신뢰에서만 나올 수 있는 눈빛으로 극악소마를 쳐다보았다.
한편 극악소마는 흑백쌍도를 죽였지만 여전히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다. 만약 자신이 늦게 도착했더라면? 그랬기에 여불개에 대한 분노는 한층 더 깊어져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여불개에게 달려가고 싶은 분노가 느껴졌다.
반면 천화루주는 죽을 위기를 겪었음에도 너무나 밝고 차분했다.
검무극은 이 차분함에서 이런 느낌을 받았다. 적어도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는 여인이라 생각했기에, 우리가 제시간에 오지 못했다면 애초에 다른 선택을 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부럽습니다!”
괜히 극악소마 쑥스러워하라고 한 말이지만, 그는 말없이 천화루주를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고월이 이후 일에 대한 계획을 밝혔다.
“오늘 사건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천천히 놈을 상대하려 했는데, 여불개가 생각보다 빨리 천화루를 친 것이다.
“흑백쌍도가 죽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놈이 천화루를 본격적으로 칠 수도 있습니다. 이곳을 비우지 않으면 부상자가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막아내더라도 문제는 발생하겠지요. 여불개가 천화루를 치다가 당했다는 사실을 사도맹이 확실히 알게 될 테니까요.”
더는 이곳이 극악소마의 안식처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자네 생각은?”
내 물음에 고월은 극악소마와 천화루주의 눈치를 살폈다.
“제가 세운 계획은 소마님과 루주님이 허락을 해주셔야 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말한 후, 고월이 자신이 세운 계획을 밝혔다.
“놈이 루주님을 원하니, 가셔야죠. 공자님과 소마님이 흑백쌍도 역할을 해서 루주님을 놈의 거처로 데려가십시오. 평소 특색 있는 옷을 입는 자들이니까, 두 분이서 흑백의 옷을 입으시고 죽립까지 눌러 쓰시면, 최대한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실 수 있을 겁니다.”
놀랍고도 파격적인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번 계획의 핵심은 은밀함이었다.
“놈의 죽음이 최대한 늦게 알려져야 합니다.”
놈의 죽음이 알려지기 전에 야율한까지 치고 들어갈 계획이었으니까.
물론, 고월은 이번 계획에서 가장 신경 쓰고 조심스러웠던 부분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였다.
“만약 함께 가시는 분이 공자님과 소마님이 아니었다면, 절대 그 위험한 곳에 루주님을 보내는 계획을 세우진 않았을 겁니다.”
검무극이 극악소마를 쳐다보았다. 천화루주가 함께 가야 하는 일이니, 극악소마의 결정에 따를 작정이었다.
천화루주가 먼저 담담하게 말했다.
“제가 갈게요.”
극악소마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 일을 허락했다.
고월이 고개를 숙여 이번 계획을 받아준 것에 대해 두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난 후 그는 독왕에게 말했다.
“독왕님께도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여불개를 제거한 이후,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 루주님을 지켜주십시오.”
내키지 않는 부탁일 수도 있었는데, 독왕은 흔쾌히 대답했다.
“그러겠네.”
촤르륵!
독왕이 부채를 펼치며 살랑살랑 부쳤다. 그가 허락한 이상, 세상에 누가 있어 천화루주를 죽일 수 있겠는가?
극악소마와 독왕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두 사람은 부탁한다, 걱정마라, 이 순간에 할법한 말을 하지 않았다. 생색내는 사람도 아니었고, 신세를 말로 갚는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마지막으로 고월이 검무극에게 말했다.
“저는 먼저 가서 야율한을 상대할 준비 하고 있겠습니다.”
둘이 성공하고 오리라는 확신이 깃든 말이었다.
천화루주가 극악소마와 검무극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이런 멋있는 흑백쌍도가 왔었다면 제가 먼저 따라갔을 거예요.”
그녀의 농담에 모두들 함께 웃었다.
검무극이 극악소마에게 물었다.
“백도 하시겠습니까? 흑도 하시겠습니까?”
극악소마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나는 흰색이 잘 어울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