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3)
절대회귀-23화(23/424)
제23회 잘만 살아가더라.
‘분명 아버지는 대성을 이루셨을 텐데, 왜 천마호신공이 발동하지 않은 겁니까? 혹시 천마호신공이 발동하고도 당하신 겁니까? 아니면 천마호신공이 발동할 내공조차 남지 않을 격렬한 싸움을 하신 겁니까?’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무위를 지녔는지 알면 알수록, 아버지의 죽음에 의문이 간다. 정말 화무기는 이런 아버지를 이겼단 말인가?
나는 아버지께 묻고 싶다.
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하지만 여쭤볼 수 없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난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그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내가 싱긋 웃으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와 저 사이에 비밀이 하나 생겼네요. 천마호신공을 익힌 것 보다 그 점이 더 기쁩니다.”
비밀이란 단어가 거슬렸는지 아버지가 표정을 찌푸렸다. 내가 재빨리 덧붙이고 돌아섰다.
“짜증 나셔도 절 어쩌지 못할 겁니다. 아직 풍신사보는 제가 더 익숙하거든요.”
쾌속보를 발휘해서 순식간에 그곳을 달려 나왔다.
내 신형이 붉은 융단의 끝부분까지 도착했을 바로 그때였다.
쉬이이잉!
시원한 바람 소리와 함께 무엇인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다음 순간, 나는 쾌속보를 멈췄다.
어느새 아버지가 내 앞을 막고 계셨다.
딱!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사정없이 튕겼다. 피할 상황도 아니었고, 피하려고 했어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아버지의 움직임은 빨랐다.
“아얏!”
나는 이마를 감싸 쥐었다. 엄살이 아니었다. 어찌나 아픈지 눈앞에 별이 몇 개 스쳐 지나갔다.
“잘난 척하길래 나보다 빠른 줄 알았지.”
다음 순간, 아버지가 사라졌다.
암영보를 이용해서 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곧이어 쾌속보를 이용해서 앉아 계시던 태사의로 돌아갔다. 그 움직임을 볼 때 확실히 무공에 대한 해석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얄미워 이마를 때리기 위해 온 것이 아님을.
아버지는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계신다. 내가 해석한 풍신사보는 이런 것이라고.
“돌아가신 보법은 풍신사보인데. 처음에 날아오신 그 경공술은 대체 뭡니까?”
“천마비행술(天魔飛行術)이다.”
천마비행술은 아버지의 독문 경공술.
“쾌속보보다 빠른 겁니까?”
“지금은 당연히 빠르지. 풍신사보가 대성을 이루면 어찌 될지는 모르겠다.”
“제가 대성을 이루는 날, 결판을 짓죠.”
“내가 먼저 대성을 이룰 테니, 이미 난 결과를 알고 있겠지.”
“그건 모를 일입니다. 제가 더 빨리 대성을 이룰 수도 있죠. 아무래도 젊은 머리가 팽팽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그 똑똑한 머리에서 피난다.”
딱밤을 맞은 내 이마에서 피가 찔끔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아아! 차라리 금강불괴신공(金剛不壞神功)을 가르쳐달라고 할 걸 그랬습니다.”
영광의 상처를 이마에 매단 채 천마전을 나섰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상처다.
아버지와 다시 한 걸음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런 생각이 들 때, 조심해야 한다.
인간관계에서 실수는 언제나 친하다고 방심할 때 저지르는 법이니까.
어쨌든 이번 무공 교환으로 아버지도 나도 한 걸음 나아갔다. 화무기가 온다는 미래는 정해져 있지만, 현재는 계속 바뀌고 있었다.
* * *
“대체 어떤 놈입니까? 어떤 건방진 놈이 도련님 몸에 손을 댄 겁니까?”
이안은 피멍이 든 내 이마를 보고 흥분했다. 지금의 그녀는 친동생이 맞고 들어온 열혈 누나였다.
“알면? 복수해 주게?”
“해야죠. 말씀만 하십시오! 누굽니까? 내 당장 가서…….”
“아버지께 맞았어.”
“…….”
“왜 안 가?”
갑자기 차분해진 이안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저는 지키는 사람이지 공격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딱 잘라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내가 웃었다. 예전에는 못했던 농담과 장난을 이렇게 주고받는 것이 즐겁다. 살에 눈이 파묻히듯 사라지는 눈웃음을 보는 것도 즐겁고.
“참, 그리고 나 황천각주 됐다. 조만간 정식 발령 나면 황천각으로 들어갈 거다.”
이안은 놀라다 못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황천각주가 되신 경사를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신다고요?”
“그게 뭐 별일이라고?”
“맙소사! 황천각이 얼마나 권위 있는 조직인지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자그마치 황천각주라고요. 죄를 지으면 마존들조차 황천각에 끌려가서 벌을 받는 그런 곳이라고요.”
왜 모르겠는가? 아버지가 날 보내는 이유도 그 때문인데.
아마 내가 황천각주가 된 일은 또다시 교내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축하드려요, 정말 축하드려요.”
“고마워.”
“한데 교주님은 왜 갑자기 도련님을 황천각주에 임명하신 거죠?”
“때려놓고 미안했나 보지.”
“농담 마시고요!”
“내가 말씀드렸어. 본교는 바뀌어야 한다고.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몸을 망치는 무공을 배우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
이안이 흠칫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죠?”
“전신석화공의 부작용으로 평생 뚱뚱한 몸으로 살지 않아도 되는 본교로 만들 거다.”
이안은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얼마나 그렇게 멍하게 있었을까?
“설마…… 알고 계셨나요?”
“그래.”
이내 그녀가 씩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제가 선택한 길이에요.”
“어려서 강제로 선택된 일일 뿐이다.”
“아뇨.”
이안은 단호했다.
“저는 분명히 기억해요. 그날 제게 말해줬어요. 전신석화공을 익히면 이러한 부작용이 있다고. 그러니 선택은 네가 하라고. 그래서 제가 선택했어요.”
그 선택은 정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소녀에게 이렇게 물었을 테니까.
도련님을 지키기 위해 이 무공을 익혀야 하는데, 부작용을 감수할 수 있겠느냐?
그러니까 선택은 강요된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 말을 하진 않았다. 자신의 선택이었다는 그녀의 자부심을 깎아내리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 부작용 내가 고쳐줄게. 지금은 안 되지만 나중에.”
이안이 웃으며 대답했다.
“못 고쳐요.”
“나는 고칠 수 있어. 믿어라.”
“네, 믿을게요.”
그녀는 내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아마 무공을 전수한 이가 말했을 것이다. 절대 부작용은 없앨 수 없다고.
더는 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는지 이안이 화제를 돌렸다.
“근데 도련님이 황천각주가 되시면 기존 황천각주가 반발하지 않을까요?”
“어쩌겠어? 교주가 내린 명령인데.”
사실 기존 황천각주는 그다지 걱정되지 않았다. 예전 마군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으로 볼 때, 그는 마군에게 포섭되었거나 협박을 받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어차피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아버지는 나를 임명한 걸 테고. 그의 사임 처리는 사마명이 알아서 잘 처리할 것이다.
“난 오히려 실무를 보는 무인들의 반발이 걱정이다. 난데없이 천마 아들이 각주로 획 떨어지면, 고깝지 않겠어?”
“획 하고 떨어진 사람이 너무 멋지고 훌륭한 분이니, 아무도 언짢아하지 않을 거예요.”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고맙다.”
“월봉 주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정해져 있으니까요.”
매번 날리는 그녀의 고정 농담에 미소지으며 미뤄뒀던 이야기를 꺼냈다.
“월봉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이안, 이번 기회에 처리할 일이 있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네, 뭐든 말씀하세요.”
“수신호위 이안, 그대를 이 순간부터 내 수신호위에서 해고한다.”
이안의 그 큰 덩치가 펄쩍 뛰었다가 쿵 하고 내려왔다.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그녀는 놀랐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수신호위에서 해고라고.”
“진심이세요?”
“응.”
그녀는 세상을 다 잃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다시 한번 여쭙겠습니다. 진심이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애처롭게 떨렸지만 나는 단호히 대답했다.
“진심이야.”
“이유를 여쭤봐도 됩니까?”
“아버지에게 복수를 안 해줘서.”
농담에도 그녀는 웃지 않았다.
스르릉.
그녀가 검을 뽑아서 자신의 목을 겨눴다.
“차라리 죽겠습니다. 저는 도련님의 수신호위로 죽을 겁니다.”
이안아, 죽는 건 한 번이면 족하다.
내가 재빨리 그녀에게 말했다.
“나와 이별하자는 뜻은 아니야. 내 소속 무인으로 남아야지.”
“어휴! 진작 말씀하셨어야죠. 죽을 뻔했잖아요! 목 좀 봐주세요, 상처 안 났나.”
그제야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걱정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한데 저는 수신호위가 천직입니다. 다른 일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대체 어떤 일을 시키시려고요?”
“무인, 이안! 이제 그대에게 새로운 직위를 내린다.”
“네!”
“그대를 귀영대(鬼影隊) 대주로 임명한다.”
앞서 수신호위에서 해임한다는 말만큼이나 그녀는 놀랐다.
“귀영대요? 본교에 그런 조직이 있었나요?”
“없다.”
“없는 조직의 대주를 맡기신다고요?”
“앞으로 내가 만들 거다. 내 직속 조직으로 월봉도 교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내게 받을 거야.”
“귀영대…… 귀신의 그림자란 뜻인가요?”
“응. 굳이 의미를 붙이자면 내가 귀신이 될 테니 너희는 내 그림자가 되라는 거다.”
일부러 그림자 영(影)자를 넣어서 이름을 지었다. 평생 내 그림자로 살아온 그녀였으니, 좀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이름이 될 것이다.
“이름은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교주님께 허락은 받으신 건가요?”
“아직.”
본교에서 사조직을 만드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허락은 꼭 받아낼 거다.”
“도련님은 해내실 거예요. 문제는 저죠.”
“네가 왜?”
“왜라니요? 우선 제가 그런 대단한 조직을 맡을 실력이 안 되잖아요?”
“그건 걱정 마. 그 자리에 걸맞은 무공을 전수해 줄 거야.”
“설사 제가 강해진다 해도…… 제가 그런 자리에 어울리겠어요? 아무도 저를 따르지 않을 거예요.”
따를 거다.
너란 사람의 인품에 반해서 다들 따를 거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들이 따르던 대주가 천하제일미란 사실도 알게 되겠지. 그래, 이 무림은 천하제일미가 이끄는 사상 최강의 조직을 보게 될 거다.
“이안, 넌 날 위해 귀영대주가 되어 줄 수 있느냐?”
그녀와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자신감은 바닥이었지만 ‘날 위해’라는 말이 들어간 이상, 그녀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네, 명을 받들겠습니다.”
“좋아. 지금은 나 홀로 대주지만 나중에는 무림에서 가장 강한 조직이 될 거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네 기존 무공은 버리고 무조건 내공연마와 체력을 키우는 수련을 해라. 때가 되면 새 무공을 전수하마.”
“알겠습니다.”
씩씩하게 대답하긴 했지만, 이안은 기뻐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몰라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그럼 앞으로 도련님은 누가 지켜줍니까?”
“애냐? 지켜주게. 무인이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지.”
살에 파묻혀 작아진 그녀의 두 눈에는 오로지 걱정뿐이었다.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고맙습니다, 하면 돼. 월봉도 본교 대주들 중에서 최고로 많이 줄 거다.”
“돈 없으시잖아요?”
“벌 거야.”
“뭘 해서요?”
“돈 벌 방법이 다 있단다. 정 안 되면 천마전 마당이라도 쓸어야지.”
“도련님, 저 돈 필요 없습니다. 지금까지 번 돈 다 모아뒀어요.”
“돈은 항상 필요해. 그게 몸값이고, 자기 가치니까. 줄 만하니까 주는 거다. 그러니 부담 갖지 마.”
“……네.”
“그리고 돈은 쓰기 시작하면 금방이다. 악착같이 더 모아. 인생 길어. 재수 없음 백 살까지 산다. 아니 반로환동(返老還童)까지 해서 다시 백 살 더 살아야 할 수도 있어.”
내 농담 섞인 말에 이안이 웃었다.
예전의 나라면 그녀를 걱정했을 것이다.
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혹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그런데 한평생을 살아보니 그건 다 헛된 걱정임을 알 수 있었다.
걱정 안 해도 되더라. 다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똑똑하고, 더 자기를 위하고, 잘만 살아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