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31)
절대회귀-231화(231/424)
제231회 잘못된 인생보다 더 나쁜 건.
“야율한을 죽일 계획은 있소?”
비사인의 물음에 검무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은 없소.”
어이없어하는 비사인을 보며 검무극이 말했다.
“당신 허락이 떨어져야 본격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지 않겠소?”
“내 허락이 떨어지면 없던 계획이 생기기라도 한단 말이오?”
“생길 거요.”
“정말 당신은 대책 없는 사람이오.”
말은 그렇게 해도 비사인의 기분은 나빠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결정을 내리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이것만은 지켜주시오.”
비사인이 한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이미 허락을 하고 말하는 것이니 조건보다는 부탁에 가까웠다.
“오뢰신검이나 혈륜겁은 죽여도 되지만, 극도병단은 건들면 안 되오. 그들은 야율한의 개인 수족이 아니오. 본맹의 최정예들이지.”
천마신교로 따지면 마군들은 그냥 두고 마군주만 죽여달라는 말이다. 야율한을 잃는 것만으로도 큰 손실이지만, 그래도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었다.
“알겠소.”
검무극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비사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겠소. 이번 일이 잘못되면 야율한에게 죽는 건 둘째치고, 당장 후계자 자리에서 쫓겨날 수도 있소.”
“쫓겨나면 내게 오시오. 내가 받아주겠소.”
“죽으면 죽었지, 거기로는 안 갈 거요.”
비사인의 흉측한 얼굴이 일그러졌다. 검무극은 알 수 있었다. 그가 기분 좋게 웃었다는 것을. 그를 정말 유심히 보지 않는다면, 결코 알 수 없는 그의 감정이었다.
“내가 도울 일 있으면 연락하시오. 당분간은 그 객잔에서 점심을 먹을 테니까.”
“고맙소.”
그렇게 비사인이 먼저 그곳을 떠났다.
검무극은 그곳에 머무르며 사도맹의 밤 전경과 밤하늘을 한참 동안 올려다본 후에야 그곳을 떠났다.
* * *
안가로 돌아온 나는 곧장 고월과 극악소마, 풍천교주를 한자리에 모았다.
“사도맹 후계자 비사인이 뒷마무리를 책임져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이제 우린 야율한을 죽이기만 하면 됩니다.”
내 말에 모두 깜짝 놀랐다.
“대체 어떻게 그 사람의 마음을 바꾼 건가?”
질문을 던진 풍천교주는 물론이고 극악소마와 고월마저 놀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설득하더라도 시간이 걸릴 거로 생각했는데, 너무 빨리 설득에 성공한 것이다.
“젊은 후계자들끼리 통하는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정말 자네는…….”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풍천교주는 고개를 가로젓고 말았다.
“비사인이 부탁을 들어준 것은 희소식이지만, 나쁜 소식도 있습니다. 야율한의 수하를 추가로 알게 되었습니다.”
혈륜겁이 야율한의 수하란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새로 알게 된 사람은 바로 오뢰신검입니다.”
오뢰신검이란 말에 모두 깜짝 놀랐다.
새외의 풍천교주도 그에 대해 기억하고 있었다.
“한때 무림에 피바람을 일으켰던 자 아닌가? 무림공적으로까지 몰렸고.”
“맞습니다. 바로 그자입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야율한의 그늘에 숨어 있었군.”
혈륜겁도 상대하기 쉽지 않은 자인데, 오뢰신검은 그보다 한 수 위의 실력을 지닌 자였다.
그때 풍천교주가 불쑥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럼 그들은 두고 야율한이 오직 혼자 있을 때 죽이면 되지 않나? 그들도 사람인데 언제나 붙어 다니지는 않을 테니까.”
모두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세 사람 모두 같은 마음이었는데,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말씀드렸다시피 야율한이 죽고 나면 그를 죽인 것은 비사인이 될 겁니다.”
가장 먼저 고월이 내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들이 비사인에게 복수할 것을 걱정하시는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어떤 사이인지는 알 수 없어. 복수해줄 관계인지, 그냥 떠나버릴 관계인지도. 다만 만에 하나라도 복수를 마음먹는다면, 비사인은 반드시 죽고 말 거네.”
“비사인이 공자님을 돕겠다고 나선 이유를 확실히 알겠습니다.”
그를 생각해주는 마음을 비사인도 알아차렸을 거란 말이었다.
다시 풍천교주가 나섰다.
“이번 일 나도 돕겠네.”
그가 이번 일을 돕겠다고 나설지는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정말이십니까?”
“부끄러워서라도 도와줘야겠네.”
비사인이 복수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지 못하고 야율한만 죽이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던 것이 부끄럽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건 핑계고 나를 돕기 위해 나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둘이서 상대하기에 너무 벅찬 상대 아닌가? 왜? 내 실력이 못 미덥나?”
“교주님의 실력을 못 믿으면 누굴 믿겠습니까? 다만 교주께서는 더 중요한 일을 해주셔야 해서요.”
“무슨 일?”
“지금까지처럼 고 군사를 지켜주십시오.”
내 시선이 고월을 향했다.
“만에 하나라도 우리 쪽이 노출되면 고 군사가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교주님이 지켜주셔야지요. 지금까지 교주님이 계셔서 고 군사에 대해서는 한 번도 걱정한 적이 없습니다.”
“자네는 괜찮겠나?”
“저는 소마님이 계시니까요.”
내 시선이 지금껏 조용히 듣고만 있던 극악소마를 향했다. 이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극악소마가 웃으며 말했다.
“저만 믿으십시오.”
“네. 소마님만 믿겠습니다.”
이 순간 진짜 내 마음은 이것이었다.
소마야, 나만 믿어라. 어떤 상황에서도 널 죽이는 일은 없을 거다.
이것이 그가 내게 베푼 호의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 * *
총군사 사마명은 작전지휘실에 있었다.
천마전보다 더 안전하다고 알려진 이곳에서 검무극과 관련한 극비 작전이 진행 중이었다.
사마명은 검무극이 출교한 후 내내 긴장하고 있었다. 만에 하나 사건이 터지면 재빨리 검무극을 지원해야 했고, 사도맹과의 관계가 전쟁으로 치닫지 않게 조종해야 했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을 사도맹 측에 들키지 않아야 했다.
지금까지 검무극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었다.
지생을 없애고 애차를 없애고 여불개까지 이쪽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없앴을 때, 통천각의 수석 군사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야율한의 군사였다면…… 저도 꼼짝없이 당했을 겁니다.”
사마명은 아닐 거라고 말해주지 못했다. 자신이라도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고월의 능력이 보통이 아닙니다. 중원에 구축한 정보망도 우리 통천각과 겹치지 않고 상호보완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공자가 천마가 된 후까지 생각하고 있는 거지.”
“그는 정말 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검무극이 새로운 마도를 밀어붙이듯, 고월이 자신의 자리에 앉으면 통천각 역시 새로운 통천각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새로운 보고가 날아들었다.
수석 군사가 심각한 얼굴로 사마명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이공자 쪽에서 한 사람에 관한 정보를 요청해왔습니다.”
“누구인가?”
수석 군사가 심호흡을 크게 한 후에 보고했다. 자신이 얼마나 놀랐는지를 미리 표현한 것이다.
“오뢰신검입니다.”
사마명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율한이 오뢰신검까지 데리고 있답니다.”
혈륜겁이 야율한의 수하로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정보였다. 한데 오뢰신검까지 있었다고?
“야율한에 혈륜겁에, 오뢰신검까지. 두 사람이 그들 전부를 상대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작전의 성공 확률이 어떻게 되나?”
“오뢰신검의 존재를 몰랐을 때 사 할로 예상했습니다.”
통천각에서 분석한 확률이었다. 정확한 검무극의 무공수위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껏 그가 해낸 여러 일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였다.
“한데 오뢰신검이 야율한을 돕는다고 가정하면 이 할대로 떨어질 거로 예상합니다. 자세한 분석은 마치는 대로 보고드리겠습니다.”
“이 할이라.”
통천각의 작전 성공률 분석은 거의 정확했다. 이 할이라는 수치는 실패로 봐야 한다.
“만에 하나 오뢰신검 말고 다른 고수가 등장한다면, 일 할도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과장이 아니었다. 사마명은 새삼 이번 일이 보통 일이 아님을 다시금 실감했다.
“오뢰신검과 관련해서 우리가 가진 모든 정보를 다 보내게.”
“알겠습니다.”
사마명이 돌아서 나가려는 수석 군사에게 물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네?”
“자네는 성공 확률을 얼마로 생각하냐는 말이네.”
“저는…….”
그는 수하 군사들 중 검무극에 대해서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군사였다. 대답을 한참이나 망설이던 그가 생각지도 못한 수치를 내놓았다.
“저는 반반으로 봅니다.”
사마명은 깜짝 놀랐다.
“이 할과 오 할, 차이가 너무 나는군.”
“제 감정적인 분석입니다.”
“본 각의 분석력이 엉망이란 뜻 아니고?”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제 감입니다.”
당황한 수석 군사를 사마명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왜 오 할인가?”
수석 군사가 말했다.
“세상에는 분석이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공자가 그런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또 다른 질문 공세가 있기 전에 수석 군사는 재빨리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사마명은 천마에게 보고하기 위해 보고서를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 봐 온 검무극은 수치로 설명되지 않는 사람이다.
이번 일을 허락한 천마 검우진도 마찬가지고. 어쩌면 분석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 점이 두 사람의 가장 닮은 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사마명은 천마전으로 향했다.
* * *
고월은 작전을 세우기 위해 머리를 싸맸다.
이번에는 그에게 이 상황을 즐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계획을 세워야 했고, 확실하게 그 계획을 따라야 했으니까.
고월이 작전을 세우는 동안 우린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극악소마는 방에 하얀 벽지를 바른 후, 그것을 바라보며 수련에 들어갔고, 나는 뒷마당에서 무공수련에 빠져들었다.
이번 싸움에서 나는 가진 실력을 다 발휘해야 할 것이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지만, 반드시 야율한을 없앨 것이다. 죽어가는 그의 귓가에 해줄 말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오랜 세월 복수에 붙잡혀 한 번도 자기 인생을 살지 못한 사람에게, 남은 생이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해줘야 했으니까.
뒷마당에서 무공수련 중이었는데,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자네가 이렇게 열심히 하니, 내가 농땡이를 칠 수가 없지 않는가?”
돌아보니 풍천교주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고월이 하도 잔소리를 해서 쫓겨나왔네. 공자님은 지금도 땀을 흘리고 계신데, 뭐하냐고.”
“기왕 나오신 것, 같이 수련하시죠. 요즘 살이 빠지니 교주님 인물이 훤칠해지고 있으십니다.”
“그래?”
풍천교주가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내친김에 한마디 더 기분 좋은 말을 해주었다.
“젊어서 여인들이 꽤 따라다녔을 것 같은데. 아닙니까?”
“그야 뭐, 나 따라다니는 줄이 좀 길었지.”
풍천교주가 으스대는 표정으로 턱을 치켰다. 턱 아래 두툼한 살을 보니 아직 멀었다.
“그때의 인기를 되찾으셔야지요.”
“나이 먹고 그게 어디 쉽겠나?”
“수련하셔서 육체 나이를 십 년 젊게 하시면, 십 년 전으로 돌아가시는 거죠. 이십 년 젊게 하면 이십 년 전으로 가는 거고요.”
풍천교주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자넨 아무것도 아닌 말로 괜히 사람 설레게 한단 말이지.”
“젊음을 되찾는 일인데 어찌 아무것도 아닌 말이겠습니까? 꼭 보여주십시오! 앞날을 어찌 압니까? 교주님이 이십 년쯤 젊어진 모습으로 변신하실지요. 처음 교주님을 만났을 때, 우리가 이곳에서 이런 대화를 할 줄 알았겠습니까?”
“하긴 그렇지. 자네가 내 단조로웠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꾸었지.”
“그래서 후회하십니까?”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풍천교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조금만 더 젊었어도 후회했을지도 모르겠네. 한데 이젠 알지. 잘못된 인생보다 더 나쁜 건 후회하면서 사는 인생이라는 걸.”
항상 나와는 너스레를 주로 떨었기에 그와 이런 진지한 대화는 오랜만이었다.
“내가 교주일 때는 그 자리가 어마어마한 자리라고 생각했었다네.”
휘이이이이잉.
모래바람이 불어왔다. 풍천교주가 시공이환술을 열어서 새외의 풍경 속으로 나를 데려갔다. 저 멀리 풍천교의 웅장한 모습이 보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곳의 꼭대기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했다네. 내가 새외의 왕이다. 수많은 사람이 나를 부러워할 거다. 그땐 입에 씹히는 모래조차 당과처럼 달콤했었지.”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다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나는 더는 후회하지 않는다네.”
“멋지십니다.”
“멋지긴.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그때보다 더 나은 것도 아닌데.”
“낫습니다.”
“낫다고? 어떤 점에서?”
“교주님을 똑바로 봐주는 사람들이 생겼잖습니까?”
허공에서 풍천교주와 시선이 얽혔다.
그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이 눈빛과 저걸 바꾸다니! 난 무림 역사상 가장 바보로 남을 거야.”
“무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택을 한 사람으로 남을 겁니다.”
풍천교주가 웃었다. 나는 자꾸 말해줄 생각이다. 그의 결정이 값진 것이었음을.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그 결정을 위해 희생한 것이 아니다. 그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이지. 적어도 나와의 관계에선 그런 상실감을 느끼게 하진 않을 것이다.
풍천교주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를 따라서 모래바람이 부는 황무지를 걸었다.
“예전에 그걸 물어본 적 있지?”
오늘 풍천교주가 굳이 시공이환술을 연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풍천교주가 그간 잊고 있었던 말을 다시 꺼냈다.
“시공이환술에서 흐르는 시간과 현실의 시간을 다르게 할 수 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