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32)
절대회귀-232화(232/424)
제232회 나중에 또 후회하시려고요?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불어온 모래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예전 그에게 했던 질문은 내겐 아주 중요했다.
“제가 시공이환술 내에서 시간을 느리게 갈 수 있게 할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하셨죠. 에끼 이놈아,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나는 정확히 그가 했던 말을 기억했다.
“실제로 교주님이나 전대 교주님들이 시도해 보셨지만 불가능하다고 하셨고요.”
“기억력도 좋군.”
잠시 사이를 두고 풍천교주가 말했다.
“그 말은 사실이기도 하고, 거짓이기도 하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실제로 아무리 연구하고 수련해도 불가능했지. 여전히 같은 마음이네. 에끼 이놈아,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그럼 거짓은 무엇입니까?”
“자네에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지만, 사실 교주들에게 은밀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법이 있었다네. 시천비술(時天祕術)이라 하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이 격동했다. 내 감정을 읽은 풍천교주가 재빨리 말했다.
“너무 기대하지 말게. 시천비술을 실제로 익혀 낸 교주는 아무도 없으니까. 아무리 연구하고 수련해도 시간 낭비에 불과했어. 이게 제대로 된 비법인지도 회의적이라네.”
그럼에도 나는 격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만큼 이 일은 내게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풍천교주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남겨진 기록에 따르면 시천비술은 이백 년 전 당시 교주였던 연명덕(燕銘德)이 자리에서 물러나 은거 생활을 하던 중 시공이환술의 내부와 외부의 시간을 다르게 가게 하는 데 성공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하네. 내부의 시간은 한 시진이 흘렀는데, 나왔을 때는 채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았다고 했지.”
풍천교주가 다시 한번 이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연 교주 이후로는 아무도 이루지 못했지.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당시 연 교주는 풍천교 역사상 가장 내공이 심후했고, 천무지체를 타고 태어나 무학의 경지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높았거든. 그러니 보통 사람은 그가 남긴 비법을 이해할 수가 없었지. 아니면 그가 남긴 비법이 엉터리이거나.”
“한데 왜 이런 말씀을 제게 해주시는 겁니까?”
그와 나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그전에 내가 먼저 물어보세. 자넨 왜 이 불가능한 일에 관심을 가지나? 아, 물론 누구나 그런 공간을 꿈꾸겠지만, 자넨 막연한 바람 말고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아서.”
이유는 있었다. 구화마공 때문이었다.
구화마공을 전수받으면 나는 반드시 대성을 이뤄야 한다. 게다가 내 목표는 십성 대성이 아니라 십이성 대성.
하지만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다른 무공이라면 모를까, 구화마공의 십이성 대성.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원 없이 수련해서 두들겨 패주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요.”
“지금 자네 실력에 수련까지 더해서 패겠다고? 누군지 몰라도 잘못 걸렸군.”
그래, 교주 말처럼 잘못 걸렸다. 화무기든, 나든. 우리 둘 중 하나는 제대로 잘못 걸렸다.
“처음 자네가 그걸 물었을 때만 해도, 이런 순간이 오리라곤 상상도 못 했네.”
곧이어 그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흘러나왔다.
“시천비술을 자네에게 전수해 주겠네.”
우리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비록 아무도 이루지 못한 비기라고는 하지만, 절대 남에게 내주고 싶은 비기는 아닐진대.
“나는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자네라면 성공할지도 모르지.”
왜 이런 호의를 베푸냐는 떨리는 내 눈빛에 풍천교주가 호탕하게 자신의 마음을 밝혔다.
“자네가 그러지 않았나? 이 안에서는 나를 사부로 삼겠다고.”
“!”
“사부가 제자에게 비법을 전수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나는 진심으로 감동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는 안다. 인간적인 만큼 욕심도 많고, 지금까지 내게 준 것도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한데 그는 또 주려 한다. 자신이 가진 비기를 또 내어주려 한다.
“나중에 또 후회하시려고요?”
“후회하면 하지 뭐. 내가 또 후회라면 일가견이 있는 사람 아닌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그는 진정으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있었다. 서대룡이 날 보고 말했다. 한 개를 주면 열 개로 되돌려주는 사람이라고. 그건 내가 풍천교주에게 할 말이었다. 한 개를 줬는데, 그는 열 개로 갚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넙죽 절을 올렸다.
“심술도 부리고 생색도 내십시오. 제가 평생 다 받아주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히려 풍천교주가 눈시울이 뜨거워진 채 나를 일으켜 세웠다.
“이게 감사받을 일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르겠네. 오히려 성공도 못 한 비기를 전수해 자네의 심력과 시간을 뺏을까 걱정돼.”
“이후 일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자, 지금부터 잘 듣게.”
풍천교주가 시천비술의 구결을 전수해 주었다. 내가 잘 외웠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사람에 따라 느리게 하는 시간도 차이가 나겠지요?”
“그렇겠지?”
“그럼 언젠가 시천비술의 경지가 극에 다다르면 그곳의 시간이 멈춰버리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르겠군요.”
“아직 걸음마도 못 하면서 날아다닐 꿈을 꾸는가?”
“제가 무공 욕심은 많아서요.”
우린 마주 보며 웃었다.
“그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일이겠지.”
“제가 한번 넘어서 보겠습니다.”
“안 되겠거니 싶으면서도 자네라서 한편으론 기대되기도 해. 자네가 이걸로 나를 얼마나 놀라게 할지.”
그는 모를 것이다. 이 순간 내가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 반드시 시천비술을 갈고 닦아 그를 경악하게 만들 것이다.
* * *
나는 홀로 시공이환술로 공간을 열고 그곳에서 다시 시천비술을 발휘했다.
휘이이이이익.
주위를 휘도는 바람 소리가 신묘하게 들렸다. 아직은 구결의 초입 단계를 넘어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벌써부터 요구하는 내공이 엄청났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왜 다들 이것을 이루지 못하고 포기했는지.
비술이 난해한 것도 문제지만, 요구하는 내공의 양이 너무 많았다. 이렇게 되면 비법에 성공하더라도, 이곳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극히 짧아져서 비법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느껴졌을 것이다.
게다가 심지어 이곳에서 무공수련을 한다고 치면 추가로 내공이 들어갈 테니 더욱 엄두가 나지 않았을 테고.
하지만 내겐 의미가 있다.
나의 내공은 이 무림의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순하고 웅혼했으니까.
더불어 확실한 믿음도 있었다. 다른 최상급의 무공이 그러하듯, 시천비술 역시 경지가 오르면 오를수록 내공의 효율성이 급속하게 좋아질 것이다. 당장 풍신사보만 해도 그랬다. 경지가 올라가면 갈수록 속도는 더 빨라지고 요구되는 내공은 적어졌으니까.
나는 반드시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시천비술을 익혔다. 나를 믿었다. 나 역시 천무지체였고, 연명덕이 이 비법을 만들 당시의 무공 수준보다 지금의 내 무공 수준이 더 높을 거라 자신했기 때문이다.
* * *
다음날 고월과 마당에서 마주쳤다.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고월의 물음에 내 시선이 옆에 서 있던 풍천교주를 향했다.
“좋은 일이 있었다.”
눈치 빠른 고월은 그것이 풍천교주와 관련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만날 이공자 싫다 싫다 하시면서, 또 뭘 가져다주신 겁니까?”
고월의 물음에 풍천교주는 저 멀리 쳐다보며 딴청을 부렸다.
내가 웃으며 고월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떤가?”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머리를 쓸 때가 아니라 눈을 쓸 때라서요.”
상대를 감시하고 관찰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야율한의 일상에서 허점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그는 종일 바빴다. 전서를 받고 보내고, 정보를 전하는 이들을 만났다 돌아오고. 물론 풍천교주가 함께 하니 걱정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시간은 걸려도 좋아. 신중하게 처리하게.”
“네!”
“맛난 거 사 올 테니, 저녁은 같이 먹자고.”
오늘 저녁은 정말 특별한 것을 먹일 작정이다.
* * *
그날 전장에 맡겨둔 야명주 일부를 팔아서 천년설삼(千年雪蔘) 네 뿌리를 샀다.
회귀 전 중원 곳곳 다 돌아다니며 온갖 일들을 다 겪은 나는 사도맹 본단 인근에서 영약을 파는 암상을 잘 알고 있었다.
쉽게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취급하는 만큼 값이 매우 비쌌지만, 나는 그것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천년설삼을 사서 안가로 돌아온 나는 극악소마와 고월, 풍천교주를 모두 불렀다. 그들 앞에 천년설삼을 내려놓고 못을 박듯 단호히 말했다.
“자, 지금부터 한 뿌리씩 합니다. 사양은 사양합니다. 무조건 지금 내 앞에서 복용해야 합니다.”
나는 극악소마와 영약을 나눠 먹을 때 말했듯, 누군가와 영약을 나눠 먹는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이들과 영약을 나눠 먹고 싶었다.
싸움을 앞둔 극악소마를 위한 응원이었고, 마지막 비기까지 내준 풍천교주를 위한 선물이기도 했으며, 지금까지 고생한 고월을 위한 보약이기도 했다.
풍천교주가 너스레를 떨었다.
“이 좋은 것을 왜 사양하나? 사양할 사람은 내게 하게!”
고월이야말로 ‘전 필요 없으니 공자님 드십시오’란 마음이 얼굴에 드러났지만, 그는 알았다. 사양하지 말라는 말을 자신에게 했다는 것을.
고월이 꾸벅 고개를 숙였고 극악소마는 눈빛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그렇게 우린 넷이서 함께 천년설삼을 복용했다.
나는 워낙 내공이 심후해서 이제 천년설삼으론 간에 기별이 안 간다는 표현을 써도 될 만큼의 경지였지만 다른 세 사람에게는 그래도 나름 꽤 도움이 될 영약이었다. 특히 내공이 가장 적은 고월에겐 내공뿐만 아니라 지친 몸의 기력 회복에 최고의 효과를 낼 것이다.
-건강 잘 챙겨라, 고 군사.
특별히 그에게는 전음까지 보냈다.
고월은 깊어진 눈빛으로 내게 고마움을 전했다.
* * *
드디어 고월이 방법을 찾아냈다.
“그간 저는 야율한에 대해 많은 조사를 했습니다. 그의 거처는 사도맹 내원에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수련하고 식사하고, 극도병단의 단주로 일과를 보내고, 그러다 맹주전에서 부르면 들어가고. 그는 모든 시간을 사도맹 내부에서 보냈습니다. 지생과 애차의 죽음 이후에 일절 외부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사도맹주가 자신을 노린다고 오해한 야율한은 철저히 몸을 사리고 있었고, 그 덕분에 그를 칠 기회를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쉽지 않겠군.”
“네. 맹에 있는 그를 치는 것은 몇 배는 더 어려운 일입니다.”
설령 어렵지 않더라도, 사도맹 내부에서 그를 죽이는 것만큼은 피해야 할 일이었다. 비사인이 이번 일을 허락해 주었으니 사도맹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겠지.
“저는 궁금했습니다. 과연 오뢰신검과 혈륜겁도 야율한과 같이 사도맹 내부에서 살고 있을까.”
고월이 나를 쳐다보며 의견을 물었다.
“없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는요?”
“둘 다 무림공적에 오른 자들이기 때문이다. 무림맹과 사도맹 사이에 맺은 협약이 있다. 무림공적에 오른 자는 절대 숨겨줘선 안 된다는 협약이지.”
풍천교주가 끼어들며 말했다.
“사파 놈들이 그런 협약을 지키겠나?”
“이 협약을 지키려는 사람은 야율한일 겁니다.”
“그놈이 왜?”
“사도맹주에게 약점이 잡히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만약 사도맹주가 자신을 치고 들어올 때, 이보다 더 좋은 구실은 없을 겁니다.”
풍천교주는 거기까진 생각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월이 다시 나섰다.
“정확하게 파악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오뢰신검과 혈륜겁은 사도맹 내부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 두 사람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알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분명 본단 근처에 거처가 있겠지?”
“네. 한데 어찌나 꽁꽁 숨겨 두었는지 쉽게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꿨죠. 그곳을 찾아갈 만한 사람을 감시했습니다.”
“누구? 야율한?”
“아뇨. 차환입니다.”
사인방 중 마지막 생존자 차환.
“놈은 야율한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 오뢰신검 같은 노고수를 누군가 대접하고 보필해야 할 텐데, 아무에게나 맡기진 않았겠지요.”
나는 제대로 된 접근이라 판단했다. 역시 고월은 똑똑하게 잘 판단했다.
“그렇게 차환을 감시하던 중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꼭 산서분주(山西汾酒)를 산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고월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덧붙여 말했다.
“오뢰신검의 고향이 산서입니다. 통천각에서 보내온 정보에 의하면 그가 가장 좋아했던 술이 분주였고요.”
“그 술을 오뢰신검에게 가져가는 것이구나.”
“그렇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차환을 미행한 결과 오뢰신검의 거처를 파악했습니다.”
“잘했다!”
“문제는 야율한입니다. 이번 일로 일절 외부출입을 삼가는 동시에 오뢰신검과도 만나지 않고 있으니까요. 한데 통천각에서 보내온 자료를 보다가 이걸 발견했습니다. 보십시오.”
그가 건넨 자료를 보다가 나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고월을 쳐다보았다.
“곧 오뢰신검의 생일이구나!”
“그것도 아흔 살 생일입니다. 다른 날은 몰라도 이날만큼은 야율한과 혈륜겁이 그를 축하해 주러 갈 겁니다.”
고월이 눈빛을 반짝였다.
“이날 해치우는 겁니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놈들을 한꺼번에 처리할 필요는 없겠지요. 시차를 두고 하나씩 해치우는 겁니다. 먼저 오뢰신검부터 죽이고, 차례차례 그곳을 방문하는 자들을 모두 없애는 겁니다. 차례대로 하나씩.”
나는 고월의 어깨를 힘차게 한 번 두드려 주었다.
“알아내느라 정말 고생했다.”
“천년설삼 덕분입니다.”
미소를 지었지만, 여전히 고월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나는 극악소마를 쳐다보며 말했다.
“늙은이 생일이라는데 우리도 축하해 주러 가야겠지요?”
극악소마의 눈구멍 속 두 눈이 시퍼런 불꽃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우리에게 맡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