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37)
절대회귀-237화(237/424)
제237회 날 보낸 사람은.
야율한은 자신의 모든 기도를 개방했다.
휘이이이이잉!
실제로 차디찬 바람이 불었다. 숨을 들이켜면 폐가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운 기운이었다. 그리고 그 기운에 깃든 것은 사악하기 그지없는 사기였다. 이 거대한 사기는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감히 나에게 덤비려 드는가?
하지만 검무극은 야율한의 두 눈을 응시한 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모두에게 통했겠지만, 내겐 안 통한다.”
검무극 역시 기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며 개방했다.
두 사람의 기도가 맞부딪쳤다.
검무극의 기도에 야율한은 충격을 받았다.
기도란 단지 내공이 많다고 강력한 것은 아니었다. 기도란 그 무인이 지닌 본성과 자질, 성격과 가치관, 배운 무공. 그 모든 것의 집합체와 관련이 있다. 그렇기에 기도는 그 무인의 본질과도 닿아있다.
그리고 지금 야율한이 느끼는 검무극의 기도는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처음 느낀 검무극의 기도는 부드럽고 상쾌했다. 끝없이 넓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느낌.
실제로 야율한은 푸르름 속에 홀로 서 있었다. 주위가 온통 푸른 하늘이었다. 하늘도, 벽도, 바닥도.
그가 손을 내밀었다. 첨벙. 그 순간 깨달았다. 그것은 하늘이 아니라 너무나도 맑은 물이었다는 것을.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은 물에 비친 하늘이었다.
보이지 않는 기운이 야율한을 물속으로 끌어당겼다.
그는 계속 가라앉았다. 야율한이 아래를 내려다보자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심해의 공포가 야율한의 심장을 움켜쥐는 것만 같았다.
‘저렇게 젊은 놈이 이런 기도를 가졌다고?’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검무극이 거인처럼 느껴졌다.
검무극은 검무극대로 엄청난 기도에 맞서고 있었다.
그는 세찬 눈보라가 치는 눈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고, 끝도 보이지 않았다. 극심한 추위 속에서 설원을 홀로 걸어가고 있는 느낌.
하지만 검무극은 두려워하지 않았고 외로워하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걸어본 길이었다. 이 지독하게 외로운 길은 자신이 평생을 걸었던 길이다.
세찬 눈바람을 지나자 맑은 하늘 아래 야율한이 서 있었다.
야율한 역시 끝도 없는 심해에서 간신히 헤엄쳐 올라와서 검무극 앞에 섰다.
야율한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누구냐?”
“나는…….”
검무극이 속삭이듯 덧붙였다.
“네가 죽을 때 말해준다고 했잖아?”
쇄애애애액!
검무극의 검이 기습적으로 허공을 갈랐다.
카아앙!
야율한이 가까스로 막았다. 검무극의 기도에 심취한 나머지 하마터면 목이 떨어질 뻔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야율한은 흥분했다. 분노보다 기쁨이 앞섰다. 이런 미칠 것 같은 싸움은 처음이었으니까.
카카카카캉!
두 사람의 검이 다시 검광을 일으키며 격돌하기 시작했다.
앞서보다 더 강력한 공격이었지만 두 사람은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검무극은 그의 강함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사인방을 내세워 악착같이 긁어모은 돈으로 사들인 영약,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온갖 악행의 결과물이 그의 단전에 쌓여 있는 것이다.
카아아앙!
검과 검이 맞부딪쳤다.
검 너머에서 야율한이 죽일 듯 노려보며 소리쳤다.
“대체 누가 너 같은 괴물을 키워낸 것이냐!”
“너다!”
“뭐?”
“난 너 같은 놈을 잡아먹으려고 태어났거든.”
검무극의 눈빛에 살의가 깃들었다.
야율한은 순간 환상을 보았다. 그림자처럼 시커먼 형체 속에서 오직 시뻘건 눈만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검을 쥔 야율한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잡아먹을 수 있으면 먹어봐라!”
이제 야율한의 얼굴에는 감정이 드러나고 있었다.
분노, 두려움, 흥분…….
막아두었던 감정의 둑이 무너지자 온갖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 그는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콰콰콰콰르르릉!
야율한의 거대한 살기가 눈사태가 되어 검무극을 덮쳐왔다.
검무극의 천마호신공이 발동되며 날아든 살기에 몸이 움츠러들지 않게 막아주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날아드는 이 공격은 너무나도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쇄애애애애애액!
야율한의 검기였다. 지금까지 검기와는 달랐다. 마치 얼음으로 만들어진 악귀가 검을 들고 날아오는 것 같은 환영이 느껴지는 일격이었다.
검무극은 피하지 않고 비천검법 제사식 염천식을 발휘했다.
야율한의 공격이 살아 있는 것처럼 역동적인 검기였기에 섣불리 피하면 끝까지 따라와서 적중할 것 같아서였다.
거칠고 패도적인 두 검기가 허공을 찢어발기며 날아와 충돌했다.
콰아아앙!
그 충격에 두 사람이 주르륵 뒤로 밀렸다.
야율한은 표정에 놀람이 담겼다. 이 공격조차 막아낸다고?
검무극 역시 표정으로 답했다. 안 통한다고 했잖아!
휘류류류류류류!
피잉!
잠시 멀어진 두 사람 사이로 혈륜과 지풍이 교차해서 지나갔다. 극악소마와 혈륜겁과의 대결도 계속되고 있었다.
혈륜의 위력이 현저히 떨어진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검무극은 기뻐할 수 없었다. 혈륜에 피가 묻은 것을 본 것이다.
검무극은 극악소마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를 의식하고 걱정하는 걸 들키는 순간, 치명적인 약점이 잡힐 테니까.
그랬기에 싸움을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그들의 싸움을 쳐다보지 않았다. 쳐다보고 있을 여유도 없었지만 말이다.
차환이 뛰어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검무극과 야율한이 큰 공격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뒤로 주르륵 밀린 이 순간, 공격의 기회는 이때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지켜보던 내내 이 한순간만을 기다렸다.
쉬이이익!
그가 검무극을 향해 검을 내지르며 기습하던 바로 그 순간.
푸아아악!
차환의 가슴이 갈라지며 무엇인가 빛처럼 날아들었다. 마치 가슴에 품었던 암기를 발출하는 것만 같았다.
검무극의 팔에서 피가 튀었다. 점멸보로 가까스로 피하지 못했다면 하마터면 가슴이 꿰뚫릴 뻔한 무시무시한 공격이었다.
차환이 멍하니 자신의 뻥 뚫린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뒤에서 야율한이 발출한 검기가 자신의 가슴을 뚫고 검무극에게 날아갔던 것이다.
야율한은 비정했다. 순간 차환으로 시야가 가려졌던 그 순간을 기회로 삼은 것이다.
차환은 상상도 못 했다. 자신이 그토록 충성을 바쳤던 사람이, 자신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고 버릴 줄은.
‘이게 뭐야?’
차환은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남들은 가슴에 작게 한 문신을 자신은 온몸에 했는데. 하루도 쉬지 않고 그를 모셨는데. 하다못해 전음으로 네가 희생해라, 한마디라도 해줬다면 기꺼이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칠 마음도 있었는데.
‘이건 아니잖아?’
그래, 이용해 먹는 자들은 항상 이런 식이지.
그래도 이렇게 비참하게 죽으면 몸에 새긴 용에게 쪽팔리잖아? 정말이지 구석에 세워둔 빗자루를 이용해도 이렇게 하찮게 이용하진 않았을 거란 생각을 끝으로 차환의 숨이 끊어졌다.
차환의 숨이 끊어지던 그 순간, 또 다른 승부가 나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극악소마와 혈륜겁은 전력으로 싸우고 있었다.
처음에 혈륜겁은 장기전을 선택했다. 내공도 우세했고, 상대는 부상까지 당한 상태였으니까.
‘버티면 이긴다!’
혈륜을 마구잡이로 날리지 않고, 혈앙지를 막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싸움이 진행되면 될수록 자신도 모르게 싸움에 빠져들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알 수 없는 열기 때문이었다.
가면 속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퍼런 눈빛을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내공이 솟구쳤고, 피가 빨리 흘렀다.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극악소마를 향해 혈륜을 날리고 있었다.
두 번째는 명백한 실력 차 때문이었다.
극악소마는 결코 상대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장기전? 누구 마음대로?
극악소마가 내상을 입지 않았다면 벌써 끝났을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의 내력 운영이 원활하지 못했다.
혈륜겁은 분명 싸움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길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싸움이 계속될수록 두려운 마음이 커져만 갔다.
‘제발 좀 죽어라! 이 마귀 새끼야!’
혈륜겁은 마지막 힘을 다해 극악소마를 몰아붙였다.
휘류류류류류류류류!
숨겨둔 비기를 발휘하며 혈륜이 죽음의 춤을 췄고 극악소마의 움직임은 점점 더 위태로워졌다.
‘됐다! 조금만 더!’
혈륜겁은 마지막 비기까지 동원했다.
휘류류! 휘류류!
표창처럼 쓰는 작은 혈륜들이 허공을 가르며 공격에 가세했다.
혼잡하고 어지럽고 거친 혈륜들이 극악소마를 궁지로 몰아넣던 바로 그 순간!
피잉!
퍼억!
오랫동안 극악소마가 기다렸던 소리가 들려왔다.
콰콰콰콰콰콰콰!
살아 있던 것처럼 허공을 수놓았던 혈륜이 바닥을 파헤치며 날아가더니 담을 박살 낸 후 멈췄다. 작은 혈륜들 역시 여기저기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혈륜겁은 놀란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왜 갑자기 조종이 안 되는 거지?’
그때 그의 얼굴로 뭔가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혈륜겁이 무심코 손으로 그것을 닦았다.
피였다. 이마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혈륜겁이 들고 있던 작은 혈륜을 들어 자기 얼굴을 비춰보았다. 이마에 구멍이 뚫린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대체 언제?’
그 의문을 끝으로 절명한 혈륜겁의 신형이 그대로 꼬꾸라졌다.
놀랍게도 극악소마는 미친 듯이 움직이던 그 혈륜의 중앙에 난 아주 작은 구멍으로 혈앙지를 날렸다. 그 구멍과 혈륜겁의 이마가 정확히 일치하던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설마 이런 공격을 할 줄 몰랐고, 자신의 혈륜이 시야를 가렸기에 혈륜겁은 결코 그 공격을 막지 못했다.
검무극과 야율한의 싸움도 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차환을 이용한 한 수까지 빗나가자 야율한의 눈이 달라졌다. 검은 눈동자가 완전히 사라졌고, 눈동자와 흰자위까지 모두 파랗게 변했다. 푸른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아예 파랗게 변해버린 것이다.
검무극은 직감했다. 그가 마지막 비기를 발휘하려 한다는 것을.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신위를 생각한다면, 자신 역시 마지막 한 수를 날려야 할 때였다.
비천검법의 마지막 검식이 발휘되었다.
십이성 대성을 이루고도 지금껏 실전에서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제팔식 귀천식(歸天式)이었다.
귀천식은 사십사연격술이었다.
강력하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내공 소모가 너무 크다는 점이었는데, 지닌 내공의 거의 전부를 사용해야 하는 무공이었다.
그랬기에 만에 하나라도 상대를 죽이는 데 실패하면, 자신이 위험해지는 그야말로 최후의 초식이었다.
이제 눈뿐만 아니라 야율한의 몸 전체가 파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혼원극한(混元劇寒)!
몸의 모든 기운을 다 끌어올려 상대를 격살하는 혼원분광검술의 마지막 비기였다. 원래 가진 능력보다 더 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비기로, 이 역시 실패했을 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최후 비기였다.
검무극이 비천검법 제팔식 귀천식을 발휘했다.
스윽! 스으윽! 스윽!
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소리가 나면서 야율한의 몸 위로 검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극한의 한기를 내뿜으며 야율한이 검을 휘둘러 막아내기 시작했다. 만약 그가 귀천식을 모두 막아낸다면, 검무극은 죽게 될 것이다.
사아악! 사악! 사아아악!
검선이 그어지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야율한의 검도 밀리지 않고 공격을 막았다.
징―
흑마검이 울었다.
공격하는 도중에 흑마검이 운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검무극은 흑마검이 자신과 혼연일체가 되어 야율한이 내뿜는 지독한 사기로부터 마기를 발출하며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 우리가 끝장내자!’
검무극이 모든 심력을 쏟아부었다.
사사사사사삭!
차차차차차창!
십오 수, 십육 수, 십칠 수…….
야율한은 악착같이 막아냈다.
이십삼 수, 이십사 수, 이십오 수…….
“고작 이 정도냐!”
야율한은 소리까지 질렀다.
검선이 더 빠르게 그어졌다.
삼십사 수, 삼십오 수, 삼십육 수…….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공격을 야율한은 혼원극한의 비기로 막아내고 있었다.
이대로 사십사 수가 되면 검무극은 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검무극은 불안해하지 않고 자신을 믿었다. 그래, 너도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노력했겠지. 하지만 나보다 노력하진 않았을 거다!
삼십칠 수, 삼십팔 수, 삼십구 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던 그 순간!
푸우욱!
살이 찢기는 소리와 함께 번쩍이던 검광이 멈췄다.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도 멈췄다. 사십이 수째였다.
검무극의 검이 야율한의 심장에 박혀 있었다. 야율한은 끝내 검무극의 귀천식을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시퍼렇게 변했던 야율한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놀람과 분노, 두려움이 가득 찬 야율한의 눈을 바라보며 검무극이 말했다.
“날 보낸 사람은 가족의 죽음을 눈앞에서 봐야 했던 한 아버지다.”
야율한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사도맹주의 음모나, 마교의 음모. 이런 거창한 이유로 자신이 죽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순간이 그에게 더 큰 징벌이 될 수도 있으리라. 그런 이유로 내가 죽는다고? 더 억울하게 느껴질 테니까. 더 분노하면서 죽게 될 테니까.
“수하를 살려줬는데도, 살리던 환자를 계속 치료했다는 이유로 의원의 가족들을 모두 죽였지.”
순간 야율한의 눈빛이 흔들렸다. 기억을 하는 것도 같았고, 기억도 나지 않는 고작 그런 이유로 내가 죽는 거냐고 따지고 묻는 것도 같았다.
“명령을 어긴 사람은 반드시 죽이는 원칙이 있었다지? 이것이 너의 그 같잖은 원칙에 대한 마의님의 대답이다. 아내를 잃은 남편의 대답이고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대답이다! 지옥으로 꺼져라!”
푸우우욱!
흑마검이 뽑혀 나오자 그의 심장에서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촤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
야율한이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면서 피를 뿜어냈다.
그의 피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검무극은 피하지 않았다. 피의 비를 맞으며 천천히 극악소마 쪽으로 돌아섰다.
싸움을 끝낸 극악소마가 이쪽을 쳐다보며 서 있었다.
검무극이 그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다 끝났습니다, 소마님.”
그에게 한 걸음 걸어가던 그 순간!
극악소마가 허물어지듯 천천히 쓰러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