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39)
절대회귀-239화(239/424)
제239회 둘이서 무림 전체와 싸웠답니까?
마의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따라 환자가 적었다. 이런 날이 있다. 저 하늘을 유유히 흐르는 구름처럼, 하루쯤은 너도 편히 쉬어라, 하는 날이.
하지만 그날이 오늘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의방 문이 활짝 열리며 누군가 들어섰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극악소마를 업고 있는 검무극이었다. 그에게서 어마어마한 열기가 훅 느껴졌다.
“……살려주십시오!”
그 말을 하고 검무극은 그대로 쓰러졌다.
깜짝 놀란 마의가 극악소마부터 안아서 침상에 눕혔다.
다시 검무극을 침상에 눕히려는데 정신을 차린 검무극이 말했다.
“저는 괜찮으니…… 소마님을 치료해 주십시오.”
“자네 안 괜찮네.”
마의는 검무극이 완전히 탈진한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지금 말하고 움직이는 것도 정신력으로 버티는 중이었다.
“소마님부터요.”
급한 쪽은 극악소마였기에 마의는 서둘러 그를 진맥했다. 어떤 강대한 기운으로 혈맥이 날뛰는 것을 눌러두었음을 알아차렸다.
“이 기운은 뭔가?”
“만년설삼입니다.”
검무극이 일어나서 침상으로 왔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걷기도 힘들었지만, 극악소마가 걱정되어서 그냥 있을 수 없었다.
마의가 극악소마의 상의를 벗기며 말했다.
“만년설삼이 아니었다면 벌써 죽었을 거네.”
극악소마의 몸 상태는 여전히 위태로웠다.
마의는 서둘러 자신의 침술 가방을 열었다. 가죽으로 된 가방에 크고 작은 침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마의가 침을 놓기 시작했다. 마의의 손놀림은 능숙했다. 그 어떤 의원도 흉내 낼 수 없는 의술의 정수가 한 침, 한 침마다 깃들어 있었다.
침을 놓고 난 후 마의는 극악소마의 단전 위에 알 수 없는 약초로 뜸을 뜨기 시작했다. 독특한 약향이 의방을 가득 채웠다.
“으으으으.”
극악소마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마의가 이번에는 붉은색으로 된 장침을 꺼내 하침했다. 저렇게 긴 침이 저리 깊숙이 들어가도 될까 싶을 만큼 찔러넣었다.
그러자 극악소마의 표정이 편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경련을 일으켰다.
마의는 재빨리 침을 거두어들인 후, 새로운 혈 자리에 침을 놓기 시작했다. 그의 손놀림은 빠르고 정확했다.
그러자 극악소마의 경련이 멈췄다.
지금까지는 만년설삼의 기운이 극악소마를 살렸지만, 이제는 그것이 치료를 방해하는 가장 큰 위험으로 다가온다. 어떻게든 한곳에 그것을 몰아둔 후 치료를 마쳐야 했다.
위기는 계속 찾아왔고, 마의는 능숙하게 위기를 넘기며 자신이 왜 신의인지를 증명했다. 마의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치료를 시도조차 못 할 몸 상태였다. 그 과정에서 심력 소모가 엄청났기에 마의의 이마와 몸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검무극은 긴장한 채 치료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피곤해서 죽을 것 같았다. 정말 미친 듯이 달려왔다. 과장을 보태지 않고 야율한과 싸울 때보다 더 힘들었다.
하지만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전쟁과도 같았던 치료가 끝나고, 극악소마가 안정기로 접어들었다.
“우선 첫 고비는 넘겼네.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지만, 워낙 강단 있는 사람이라 잘 버텨낼 거라 생각하네.”
“제발 살려주십시오!”
그 먼 길을 쉬지 않고 달린 이유는 기다리는 사람이 마의였기 때문이다. 아무도 못 살려도 마의는 살릴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마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최선을 다하겠네.”
“감사합니다.”
그제야 검무극의 긴장이 풀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의가 검무극을 진맥해서 몸 상태를 확인했다. 검무극 역시 완전히 탈진한 상태였다.
“대체 이 몸으로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건가?”
마의는 놀랐다. 이런 몸이라면 누군가를 업고 뛰는 것은 고사하고, 제 한 몸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자, 이것부터 먹게.”
마의가 단약을 건네주었다. 탈진했을 때 기력을 보충해 주는 약이었다.
“전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네. 어서 복용하게.”
“감사합니다.”
검무극이 약을 먹었다.
마의가 검무극의 상처에도 금창약을 발라주었다. 검무극과 극악소마의 상처를 봤을 때, 정말 대격전을 펼쳤던 것이 분명했다.
그때 무인이 들어와서 전서를 전했다.
전서 내용을 확인한 마의가 깜짝 놀라 검무극에게 물었다.
“자네, 대체 어디서부터 달려온 건가?”
전서 내용은 검무극이 부상당한 극악소마를 데리고 출발했으니 미리 준비하란 내용이었다. 놀랍게도 검무극은 전서보다 더 빨리 달려온 것이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심지어 극악소마까지 업고서 말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당연히 착오가 있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검무극의 상태를 보니, 정말 전서보다 빠르게 달려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마의는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야율한을 죽이러 떠난 그였으니까.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결과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렇게 다쳐서 돌아왔으니.
두 사람에게 미안했다. 쉽게 이룰 수 없는 복수임을 알면서도 욕심이 너무 과했다.
‘미안하네, 정말 미안하네.’
마의가 극악소마의 상태를 살피려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검무극이 말했다.
“야율한에게 마의님의 말씀 전했습니다.”
“!”
깜짝 놀라 돌아보니 검무극이 벽에 기대앉은 채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죽어가는 야율한의 두 눈을 보며 똑똑히 전했습니다. 이것이 마의님의 뜻이라고요.”
마의는 너무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뜬 채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마의가 물었다.
“야율한을 죽인 건가?”
“네, 죽였습니다.”
“정말…… 죽였나?”
마의의 목소리가 떨렸고, 이내 온몸이 떨렸다.
“네, 죽였습니다.”
“고맙네, 정말 고맙네.”
마의가 검무극 앞에 마주 앉으며 손을 맞잡았다.
“이제 남은 생은 마음 편하게 사십시오. 가족분들도 그걸 원할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의는 울컥 격정이 치밀어올랐다. 마의는 검무극의 손을 잡은 채 그 앞에 엎드렸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이 순간이 오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수천, 수만 번 이 순간을 떠올렸었다.
문득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 우릴 위해서 바쁜 거잖아. 안 바쁘면 나랑 놀아 줄 거지?
마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살아 있었다면 중년이 되었을 나이인데…… 마의에게는 아들은 여전히 아이로 남아 있었다.
‘더 많이 놀아주지 못해 미안하다. 더 많이 좋아한다고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마의의 마음속에서 아들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눈물은 더욱 쏟아져 내렸다.
‘그래, 나중에 만나면 많이 놀아주마.’
마의가 평생 가슴에 올려두었던 무거운 돌을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아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던 마의가 고개를 들었을 때, 검무극은 벽에 기대앉은 채 잠이 들어 있었다. 모든 일이 끝났다는 안도감에, 지금껏 쌓였던 피로가 몰려온 것이다.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든 것이다.
‘고맙네, 이공자. 내 이 은혜는 영원히 잊지 않겠네.’
바로 그때 그곳으로 한 사람이 도착했다.
걱정 가득한 얼굴로 들어선 사람은 바로 혈천도마였다. 그는 검무극이 도착해서 의방으로 곧장 갔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다.
침상에 누워서 치료를 받는 극악소마가 먼저 눈에 들어왔지만 혈천도마는 검무극부터 챙겼다.
“괜찮나?”
“저 사람을 업고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어찌 괜찮겠나?”
하지만 마의의 표정에 여유가 있었다. 검무극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혈천도마가 괜한 심술을 부렸다.
“저깟 가면쟁이가 뭘 그리 귀하다고!”
혈천도마가 검무극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벌어진 옷깃 사이로 자신이 준 귀호의가 보였다. 피가 가득 묻어 있었다.
“말년에 속 썩이는군.”
혈천도마가 침상 옆에 떨어져 있던 피에 젖은 극품천잠사를 흑마검의 손잡이에 감아주었다. 그리고 검을 검무극 옆에 세워주었다.
“속 썩는 것 맞나?”
“무슨 말인가?”
“저기 동경에 비친 자네 얼굴을 보게.”
혈천도마가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았다.
“뭘 보라는 거냐?”
마의는 뜻 모를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확실히 느낀다. 근래 혈천도마가 변했다는 것을. 그 변화의 시작이 무엇인지도 안다.
그때 그곳에 권마가 도착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커다란 덩치의 그가 들어오자 의방이 가득 차는 것만 같았다.
권마는 두 사람과 인사한 후, 침상에 누워있는 극악소마의 안위부터 물었다.
“소마께서는 괜찮소?”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고비는 넘긴 듯합니다.”
괜히 소마를 챙기러 온 것처럼 보였지만 마의는 알 수 있었다. 제자의 안위가 걱정되서 찾아왔다는 것을.
“제자분은 탈진한 것뿐입니다. 며칠 푹 쉬고 나면 괜찮아 질 겁니다.”
권마의 무서운 얼굴에 안도감이 스쳤다. 마의는 권마에게도 표정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고, 저 안도감을 감추지 않고 드러낼 정도로 검무극에 대한 마음이 깊다는 것도 지금 알게 되었다. 이 무서운 마존들을 이렇게 변화시키다니.
‘이공자, 대단하시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누군가 의방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이 몰골들은 뭡니까? 둘이서 무림 전체와 싸웠답니까?”
술 냄새 풀풀 풍기며 들어선 사람은 취마였다.
그가 인사도 생략하고, 검무극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잠시 말없이 검무극을 응시하던 취마가 다른 두 마존에게 말했다.
“깨고 나면 무용담을 자랑하러 다닐 테니, 한동안 피해 다녀야 할 겁니다.”
그 말을 혈천도마가 거들었다.
“일장연설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그때 또 다른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왔다.
“아픈 사람 옆에 두고 뭣들 하세요?”
마지막으로 도착한 사람은 일화검존이었다. 나이를 잊은 아름다운 외모는 여전한 그녀였다.
마의는 내심 놀랐다. 검무극이 마존들과 어울리는 거야 이미 아는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마존들이 모두 찾아올 줄은 몰랐다.
취마가 검무극을 보며 혀를 찼다.
“동생, 이게 뭔가? 예쁜 여자는 안 오고.”
“여기 왔잖아.”
일화검존의 말에 취마가 다시 말했다.
“동생, 예쁘고 젊은 여자는 안 오고 이렇게 나이 든 사람들만 와서 될 일인가? 내 소싯적엔 말이지…….”
그때 이안과 천소희가 그곳에 도착했다.
마존들이 모여 있는 것에 놀란 이안이 눈을 크게 떴다.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데 혈천도마가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마존들이 길을 열어주자 그녀가 검무극 앞에 앉았다.
“잠든 것뿐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혈천도마의 말에 이안이 눈물을 흘렸다. 검무극이 무사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냥 눈물이 쏟아졌다.
다쳐서 쓰러진 것보다, 너무 지쳐서 잠든 모습이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얼마나 지쳤으면 이런 상황에서도 잠을 깨지 못하고 있는 걸까?
자신이 옆에 없었다는 것이 너무 속상하고 미안했다. 마존들이나 마의가 없었다면 어쩌면 막 소리쳤을지도 모른다. 귀영대주 그만두고 이제부터 따라다닐 거라고. 나 좀 데리고 다니라고.
그녀는 검무극이 편히 잘 수 있게 어깨를 내줘서 기대게 하고 싶었다. 물론, 마존들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천소희도 뒤에서 걱정스럽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권마가 있는 자리였기에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나서진 않았다.
그리고 오늘 방문의 마지막을 장식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방문을 향했다. 방에 들어오기 전부터 누가 도착했는지 알 수 있었다. 기도를 발출하지 않아도, 그 존재감만으로도 등장을 알 수 있는 사람.
천마 검우진이 그곳에 등장한 것이다.
마존들과 이안, 천소희가 좌우로 늘어서며 정중히 예를 갖췄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그들의 인사를 받은 검우진은 극악소마의 안위부터 물었다.
“소마의 상태는 어떠한가?”
“다행히 위험한 고비는 넘겼습니다. 워낙 강건한 사람이라, 이른 시일 안에 원래 모습을 찾을 겁니다.”
“약을 아끼지 말게.”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현재 몸속에 만년설삼의 기운이 녹지 않고 있어서, 회복한 후에 그것을 흡수하면 훨씬 강해질 겁니다.”
만년설삼이란 말에 모두 깜짝 놀랐다.
혈천도마가 검무극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 욕심쟁이가 만년설삼까지 양보했나 보군.”
그제야 검우진의 시선이 검무극을 향했다.
아들을 향한 눈빛은 무덤덤했다. 잠시 잠든 검무극을 내려다보던 검우진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여기 둬봤자 자네 치료에 방해만 될 테니, 저 녀석은 내가 데려가겠네.”
검우진이 성큼성큼 걸어가서 검무극을 안아 들었다.
그 모습에 모두 깜짝 놀랐다. 검우진이 누군가를 안는 모습은 그야말로 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설령 안는다 하더라도 허공섭물로 들어서 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검우진은 허리를 숙여 직접 검무극을 안아 들었다.
마존들에게 그 모습은 너무나 낯설었고, 충격적이었다.
마존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검우진은 아들을 안고 그곳을 걸어 나가버렸다.
“아직도 부러워?”
일화검존의 물음에 취마가 대답했다. 당연히 ‘교주에게 안기는 것? 싫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라는 답이 나올 줄 알았다.
“모르겠네. 아버지에게 안겨본 적이 없어서.”
일화검존이 취마를 돌아보았다.
“취했어?”
취마는 실실 웃으며 술을 마셨다.
혈천도마도 괜한 심술을 부렸다.
“고얀 놈! 내 영약은 악착같이 챙겼으면서 만년설삼을 양보해?”
그러자 마의가 검무극 편을 들어주었다.
“양보 안 했으면 저 사람은 죽었네.”
“죽으라지!”
혈천도마가 나가자, 마존들도 모두 마의와 작별을 고한 후 의방을 떠났다. 이안과 천소희도 마의에게 인사를 한 후 의방을 나갔다.
홀로 남은 마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바탕 폭풍이 몰려왔다 지나간 것만 같았다.
마의가 극악소마가 잠들어 있는 침상으로 걸어갔다.
그를 내려다보는 마의의 눈빛이 부드러웠다. 자신의 복수를 위해 검무극과 함께 싸운 그였다. 그 고마움을 어찌 말로 갚겠는가? 그를 살리는 것으로 갚을 것이다.
“난 당신을 꼭 살릴 작정이니 그대도 힘내시오, 당신을 업고 그 먼 길을 달려온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힘내야 하지 않겠소?”
마의가 창밖을 쳐다보았다. 아까 봤던 하늘은 이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저 하늘에 유유히 흐르는 구름처럼, 남은 인생 마음 편히 살아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