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4)
절대회귀-24화(24/424)
제24회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정식으로 황천각주에 부임하기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사이 나는 한 가지 일을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앞으로 들어올 귀영대 무인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줄 생각이다. 충성이란 허울로 젊음을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능력만큼의 월봉으로 보답할 거다.
언제 죽을지 모를 인생이라며 흥청망청 돈을 날리든, 땅 사고 집 사고 노후 준비를 하든, 도박만 안 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선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는데, 나는 이 무렵에 큰돈을 벌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안에게 잠깐 바람 쐬고 오겠다는 서찰을 남겨둔 후, 은밀히 교를 나섰다.
내 삶은 회귀를 염두에 둔 삶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대법 재료를 구하느라 바쁘고 힘들게 보냈지만, 그 와중에도 내가 기억해야 할 것들은 꼭 기억했다. 수십 년에 걸쳐 무림에서 있었던 여러 사건을, 그중에서도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사건들이 언제 어디에서 일어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이번에 사건이 벌어지는 곳은 복건성(福建省) 무이산(武夷山) 인근 마을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사건이 발생한다.
수련도 할 겸 그곳까지는 풍신사보의 쾌속보로 내달렸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지만, 달리면 달릴수록 그 심오함에 빠져들었다.
쉴 때면 아득한 평원을 바라보며 옛 생각에 잠겼고, 지평선에서 불어온 바람에 모래 먼지가 밀려오면 벌떡 일어나서 다시 달렸다.
사건이 발생하는 날에 맞춰 어느 날은 신나게 달렸다가 또 어느 날은 천천히 달렸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서 무이산 아랫마을에 도착했다.
내가 낭인으로 떠돌 때 한 나이 든 낭인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그는 한때 낭인사무소를 운영하며 수수료를 챙기는 일을 했었다고 한다. 그때 발생한 사건, 그가 술에 취할 때면 ‘참혹한 일이었지’란 한숨으로 시작하는 그 사건이 오늘 이곳에서 일어난다.
나는 장사하는 사람에게 물어 이곳 낭인사무소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다.
저잣거리 끝 낡은 건물에 낭인들이 집합하는 장소가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숨 막힐 듯 좁은 공간에 십여 명의 낭인들이 앉아 있었다. 벽에 기대서 졸고 있는 낭인도 있었고, 병장기를 손질하거나,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몇몇 시선이 내게로 모였다가 별다른 흥밋거리를 못 찾고 흩어졌다.
나는 구석진 책상에 앉아 뭔가를 작성하고 있는 중년인에게로 걸어갔다.
그를 보자 마음이 울컥했다. 그가 바로 낭인 시절 오늘의 일을 알려준 임추(林秋)였던 것이다.
“일거리가 있소?”
내 물음에 임추가 고개를 들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누구 추천을 받고 왔나?”
“서광 형님이 가보라고 하셨소.”
“서 무인과는 어떤 사인가?”
“예전에 함께 일한 적이 있소.”
“무슨 일?”
“형산(衡山)에서 형님 일을 도왔소.”
“소동파 건이었지?”
“아니오, 남악파였소.”
알고 있음에도 틀리게 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온갖 군상들이 모여드는 곳이니 나름 신중하게 신원을 파악하려는 임추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준비를 하고 온 상황이었다.
“서 무인의 추천이라면 믿을 수 있지. 오늘 당장 일할 수 있나?”
“물론이오.”
“마침 오늘 큰 건수가 있는데 잘 왔구먼. 저기 가서 기다리게. 사람이 더 모여야 하니까.”
나는 그가 말한 자리에 가서 앉았다. 몇몇 낭인들은 힐끗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진쯤 지나자, 임무에 나갈 인원이 다 모였다. 총 열다섯 명이었다.
지난 삶에서 임추는 이 일에 동원된 낭인이 오십 명이라고 했었다. 하여튼 술자리 낭인들의 허풍이란.
암튼 열다섯 명이라고 해도 큰 임무임은 확실했다. 보통 낭인들이 동원되는 일은 적게는 두셋, 많아봤자 예닐곱 정도였으니까. 정말 위급한 일이 아니라면, 떠돌아다니는 거친 인생을 이렇게 많이 쓰지 않았다.
“오늘 인솔은 양 무인이 맡을 거네.”
소개받은 양당(梁當)은 오랜 낭인 생활로 잔뼈가 굵은 자였다.
“보수가 많은 만큼 위험한 임무다. 병신 짓 하는 놈은 내 손에 먼저 죽을 테니, 그리 알도록.”
모두에게 경고한 후 양당이 내게 다가왔다.
“서 무인 추천이라고?”
“그렇소.”
“실력은 믿어도 되겠나?”
“누굴 베면 인정받는 거요? 당신이오?”
너무 저자세로 나가도 낭인처럼 보이지 않을 거라서, 적당히 세게 나갔다.
“이봐, 건방 떨지 마라. 그러다가 그 모가지, 새벽이슬처럼 똑 떨어지는 게 이쪽 세계다.”
나를 본보기로 낭인들의 기강을 잡으려고 한다는 것을 느꼈기에 굳이 시비 붙지 않았다.
“명령에 잘 따를 테니 걱정마시오. 난 돈만 받으면 그만이오.”
“두고 보겠다.”
그렇게 십오 명의 낭인들은 준비된 말과 마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몇 번의 접선을 통해 최종 장소를 파악한 후에야 여인과 소년을 만날 수 있었다.
얼굴이 꼭 닮은 그들은 누가 봐도 모자지간이었다.
그들을 만난 후에야 양당은 이번 임무에 대해 말해주었다.
“우린 저 두 사람을 남평(南平)까지 안전하게 데려가야 한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한다.”
호위 임무에 낭인이 열다섯이나 동원되었다는 것은 이 여인과 소년의 신분이 대단하다는 것을 뜻했다. 동시에 이들이 큰 위험에 빠져 있다는 의미기도 했고.
마차에 탄 아이가 창문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귀엽고 잘생긴 남자아이였다. 나는 아이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고, 아이가 꾸벅 인사했다.
성격도 좋아 보였고 교육도 잘 받은 아이였다. 함께 타고 있던 여인이 내게 가볍게 목례한 후 휘장을 닫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불안과 걱정이 가득했다.
그렇게 두 사람을 태운 마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낭인들은 말을 타고 앞뒤로 마차를 호위한 채 함께 달렸다.
마차는 말들이 지쳐 더는 달릴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멈춰 섰다.
말들을 쉬게 하면서 사람들도 요기하며 쉬었다. 양당은 준비해 온 육포를 낭인들에게 나눠주었다. 여인과 아이에게는 따로 준비한 음식을 주었다.
낭인들은 이번 임무에 평소 받는 돈의 두 배를 받았다. 이들을 인솔하는 양당은 몇 배는 더 받아 챙겼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번 임무를 무사히 마치기 위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언제 또 식사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다들 든든히 먹어!”
그렇게 반 시진 정도 휴식한 후 마차는 다시 출발했다.
출발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달리던 말에서 낭인 하나가 굴러떨어졌다.
“멈춰!”
낭인들이 멈춰서 쓰러진 그를 살폈다. 그는 시커메진 얼굴로 게거품을 물고서 죽어 있었다.
“죽었습니다.”
보고하던 낭인이 함께 있던 동료를 보며 깜짝 놀랐다. 정확하게는 서로가 놀라고 있었다. 그들 역시 눈에 핏줄이 곤두서 있었고,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독?”
그 말을 꺼내는 순간 그들은 목을 부여잡으며 뒤로 넘어갔다.
“으윽.”
낭인들의 얼굴과 몸이 시커멓게 변하며 줄줄이 쓰러졌다.
끝까지 쓰러지지 않은 사람은 셋이었다. 우릴 이끌었던 양당과 또 다른 낭인, 그리고 나였다.
그들 두 사람이 나를 보는 눈빛에서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자들이 독을 풀었구나!’
이건 나조차도 알지 못했던 일이다. 과거 임추에게서 들었을 때는 외부 습격으로 낭인들이 당했고 그 시체조차 찾지 못했다고 들었다. 설마 인솔자가 음식에 독을 풀었을 줄이야.
아마 이자들은 자신들이 독을 쓴 것을 감추기 위해 시체를 모두 처리한 모양이다.
“너는 왜 죽지 않았지?”
양당이 놀란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네가 준 육포를 안 먹었으니까. 오늘 처음 본 사람이 준 음식을 어찌 먹나?”
내가 회귀해서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지만, 바뀌지 않는 것들도 있다. 밥에 산공독을 탄 숙수가 그날 죽는다는 운명처럼, 오늘 이 낭인들의 죽음 역시 그러했다.
불필요한 살생은 막아주려고 해도, 이렇게 어쩔 수 없는 일들도 생기는 것이다. 바뀔 일은 바뀌고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두 사람이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차라리 그걸 먹고 죽는 게 나았을 거다.”
바로 그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푸욱!
양당의 검이 다른 낭인의 등을 관통해서 가슴을 뚫고 나왔다.
“큭!”
남자는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그에게 말했다.
“바보냐? 그놈이 나를 상대하게 한 후에 죽였어야지. 내 실력이 어떨지 알고?”
“이놈은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놈이라 절대 먼저 싸우려 들지 않았을 거다. 어차피 내가 먼저 나서서 싸워야 한다면…… 그냥 네게 정신을 팔고 있을 때 죽여버리는 것이 낫지.”
둘이 비슷한 실력이었던 모양이다.
“참 한심한 인생이다. 일렬로 서서 그렇게 상대의 등만 찔러대는 인생을 사니, 네 차례라고 안 오겠냐?”
“내 등 뒤에는 아무도 세우지 않을 테니, 걱정은 집어치워라.”
“이렇게 동료들까지 죽이고 번 돈으로 대체 뭘 하려고?”
“할 거야 많지. 술 마시고, 여자도 사고.”
“고작 그러려고 이 많은 사람을 죽여? 귀신들이 전부 매달릴 텐데, 무거워서 네 하물이 서기는 하겠냐?”
“이 머저리 새끼야. 네 목숨 걱정이나 해!”
놈이 동료를 죽여버린 것은 따로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그곳으로 네 명의 남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 사람 중 세 사람은 복면을 썼고, 수장으로 보이는 남자만이 복면을 쓰지 않았다. 그들의 눈빛과 걸음걸이에서 상당한 실력자들임을 알 수 있었다.
“오셨소이까?”
양당이 정중히 인사했다. 말투나 행동으로 볼 때, 새롭게 등장한 이들이 양당을 고용한 것처럼 보였다.
복면을 쓰지 않은 남자는 양당과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가 마차를 보며 소리쳤다.
“그만 나오시오. 마차째 확 태워버리기 전에.”
그러자 마차에서 여인과 아이가 겁에 질린 얼굴로 내렸다.
“어찌나 쥐새끼처럼 잘 숨어다니는지, 찾느라 혼났소이다.”
여인이 남자에게 사정했다.
“권 무인, 우리 양이만이라도 살려주게.”
여인은 남자를 잘 아는 듯 보였다. 권이라 불린 남자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좋습니다. 옛정을 생각해서 살려드리죠.”
여인의 얼굴에 기쁨과 희망이 스치는 순간. 권이 야비한 본색을 드러냈다.
“이럴 줄 알았냐? 이 망할 년아. 무릎부터 꿇고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어디서 상전 노릇이야?”
애타는 모정을 희롱하며 권은 껄껄대며 웃었다.
놀란 아이가 어미의 치마폭에 안겼다. 수하였던 이에게 수모를 당하자 여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어떻게든 아이를 살리고 싶은 마음에 여인이 다시 사정했다.
“양이만 살려주면 그대가 받을 돈의 열 배를 주겠네.”
“제아무리 돈이 최고라지만 목숨보다 중할 수는 없지. 당신 아버지도 이미 제압당해서 붙잡혔다. 다 끝났다고.”
아버지가 제압당했다는 말에 여인은 비통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권이라 불린 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아이에게 나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권이 양당에게 물었다.
“저놈 뭐야? 수하 아니었어?”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특히 아이를 감싸 안은 여인의 눈빛에는 변수를 바라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난 천천히 걸어서 여인과 아이 앞을 막아섰다.
“난 돈 받고 이 두 사람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기로 한 사람이다. 지켜야 할 사람은 등 뒤에 세우는 사람이기도 하고.”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여인의 손에 천잠사(天蠶絲)로 꼬아 만든 동아줄이 쥐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