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41)
절대회귀-241화(241/424)
제241회 그만 좀 강해져요!
천화루주는 크게 감격했다.
극악소마는 화를 내기는커녕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말을 해준 것이다.
“네, 오라버니 방 정말 보고 싶어요.”
그녀는 애써 눈물이 나려는 것을 참았다. 천화루의 주인으로 살아오면서 온갖 고생을 다 했지만 그래도 울지 않았던 그녀였다. 한데 극악소마의 저 한마디에 눈물이 나려는 것이다.
그녀는 극악소마와 쌓아 왔던 관계가, 그와의 애정이 이 순간 완성되는 느낌을 받았다.
서로 사랑에 대해 단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지만, 조금 전 극악소마의 말은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로 들렸다. 단지 방을 보여주겠다고 말했을 뿐인데.
천화루주가 검무극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이공자님.”
극악소마가 깨어나길 기다리면서 서대룡에게 들었다. 검무극이 극악소마를 업고 먼 길을 달려왔다는 것을. 거기다 무인이라면 누구라도 원하는 만년설삼까지 양보했다는 것을.
“저야 업고 달린 것밖에 없습니다. 감사는 제가 아니라 마의님께 드려야지요.”
천화루주가 마의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의선님.”
“아닙니다, 부인. 마존께서 워낙 강건하셔서 별일 없었던 것이니, 제게 감사할 필요 없습니다. 앞으로 드실 약은 제가 악인곡으로 보내드릴 테니, 두 분은 이만 가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극악소마와 천화루주가 먼저 의방을 나섰다.
마의는 두 사람을 보면서 아내를 떠올렸다. 우리도 저런 적이 있었지, 하면서.
그리고 놀랍게도 아내를 떠올렸음에도 이전과는 달리 마음이 편해졌음을 느꼈다.
마의가 검무극에게 말했다.
“복수를 마치면 허망함을 느끼지는 않을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네.”
“허망하십니까?”
마의가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혀. 마음이 너무 편하고 좋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더 통쾌해하셔도 됩니다.”
“잠시 시간 좀 내주겠나?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네.”
마의가 검무극을 데리고 자신의 처소로 들어갔다. 마의는 비밀 문을 지나 예전에 보여주었던 곳으로 안내했다.
그곳엔 예전에 살던 집을 그대로 재현해 뒀었는데, 이제 바뀌어 있었다.
사방에 책장을 두고 편히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서재로 만들어 둔 것이다. 그는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변하는 중이었다.
“오, 분위기 좋습니다. 도마 어르신도 책을 무척 좋아하시는데.”
“알고 있네. 그 친구와는 종종 책 이야기도 나누곤 한다네.”
마의에게는 유일하게 친구라고 할 사람이 혈천도마였다.
그때, 검무극이 구석에 놓인 나무들을 발견했다.
“저건 뭡니까?”
나무뿐만 아니라 그것을 다듬고 조각할 수 있는 도구들이 함께 놓여 있었다.
“아버지가 목수셨네. 아버지를 떠올리면 기억나는 건 마당에서 나무를 깎으시던 모습이지. 이제 나도 취미로라도 좀 해보려고.”
마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불효자도 이런 불효자가 없네. 아들이 내 마음에서 편해지니까, 이제야 아버지 생각이 나다니.”
“아버님도 마찬가지셨을 겁니다.”
두 사람이 마주 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검무극은 고마웠다. 이렇게 바뀌려고 노력하고, 무엇보다 그 바뀐 모습을 이렇게 보여주려는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자네 때문에 나는 이렇게 행복해지고 있네.
마의는 지금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다. 그래,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렇게 말해주니까 비로소 나도 아는 것이니까.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고맙습니다, 마의님.
제가 목숨을 걸었던 보람을 느끼게 해주셔서요.
그리고 부디 행복하십시오.
* * *
천화루주는 태어나 처음으로 마교의 내원을 걷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마주친 마인들이 극악소마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들은 온갖 흉포하게 생긴 마인들이었다. 출도하면 무림을 뒤집어엎을 것 같은 그 무서운 마인들이 극악소마에게는 새색시처럼 얌전하게 인사했다.
그녀가 극악소마에게만 들리게 속삭여 말했다.
“우리 오라버니가 어떤 사람인지 잊고 있었어요. 이렇게 대단한 분이셨는데.”
극악소마도 남자였기에 싫지만은 않은 말이었다.
“앞으로 천화루 앞에 오라버니 가면을 걸어둬야겠어요. 이것들아, 어디 술 먹고 진상 부려 봐라!”
그녀의 농담에 극악소마는 그저 말없이 눈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평소에도 말이 별로 없는 극악소마였기에 그녀는 대답이 없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금 너무 떨려요, 저 건물은 정말 특이하네요, 저기 무인들이 매복해 있나요? 온갖 말을 재잘거리던 그녀가 마지막에 한마디 덧붙였다.
“죄송해요. 멋대로 와서.”
다른 말은 듣고만 있었는데, 이 말만큼은 극악소마가 대답했다.
“괜찮아.”
거기에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한마디가 덧붙여졌다.
“언젠가 한 번은 데려오려고 했었다.”
극악소마가 평소 워낙 과묵했기에 이런 한마디, 한마디에 그녀는 크게 감격했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은 악인곡에 도착했다.
입구에 펼쳐진 광경에 천화루주는 깜짝 놀랐다.
그곳에 셀 수 없이 많은 숫자의 무면객이 도열해 있었다.
극악소마가 부상을 회복하고 돌아온다는 소식에 모두 집합한 것이다. 모두 백색 가면을 쓰고 있었고, 가면은 모두 웃고 있었다. 무섭고도 웅장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극악소마에게 이렇게 많은 수하가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두 사람이 지나가면 근처에 있던 무면객들이 고개를 숙였다. 무면객들의 인사가 파도처럼 계속 이어졌다. 그들은 극악소마의 무사 귀환을 열렬히 환영하고 있었다.
천화루주는 두려운 마음이 들면서도 동시에 어떤 흥분을 느꼈다. 자신을 향한 시선에는 수장의 여인이라는 존경심과 호기심이 공존했다.
한 번도 여인을 데리고 온 적이 없던 극악소마가 처음으로 여인을 데리고 악인곡으로 온 순간이었으니까.
그녀는 이 순간부터 자신의 운명도, 또한 극악소마와의 관계도 달라질 것임을 느꼈다.
천화루주가 속삭이며 물었다.
“한데 서로 어떻게 알아봐요? 저렇게 가면을 쓰고 있는데.”
“자네는 못 알아보지만 우리는 다 알아본다.”
“신기해요.”
그 말을 듣고 보니 가면마다 조금씩 모양이 다른 것 같기도 했다. 독특한 문양이나, 이런저런 색들이 칠해져 있기도 하고.
그렇게 한참을 걸어 거처에 도착했다.
극악소마의 방에 들어간 천화루주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사방이 하얀 벽으로 된 방 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녀가 하얀 벽에 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너무 깨끗한 방이네요.”
“자네가 지내기는 불편할 거야.”
극악소마와 함께라면 뭐든 감수할 수 있을 그녀였지만, 가구 하나 없는 방을 보고 있자니 왠지 마음이 아팠다.
“여기서 주무시나요?”
설마 했는데 극악소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침상이 없는데요?”
“내가 누워서 자는 건 천화루에 갔을 때뿐이다.”
“아!”
자신의 무릎에 누워있기를 좋아하는 극악소마였는데. 마교에 있을 때는 이런 곳에서 지내다니. 정말 크고 화려한 침상에서 잘 줄 알았는데.
그때 극악소마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이번 기회에 본격적으로 자네 꿈을 이뤄보지?”
그 말에 천화루주는 깜짝 놀랐다. 그녀의 꿈은 밤의 여제가 되는 것이다. 중원 전역에 자신의 기루를 세우는 것.
“여불개가 죽고 세력의 공백이 생긴 지금이 기회일 거야.”
극악소마가 뒤를 봐주겠다는 의미였다. 분명 기회는 기회였다. 그리고 천화루주는 이런 기회를 놓칠 여인이 아니었다.
“네, 한 번 해보겠어요.”
두 사람이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안다. 극악소마가 일과 관련해서는 철저하고 이성적이라는 것을.
천화루주가 꿈을 이루는 건 극악소마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밤을 지배한다는 것은 정보를 지배한다는 의미기도 했다. 술과 미녀 앞에서 비밀은 힘을 잃기 마련이니까.
이번에는 천화루주가 벽에 그어진 선에 대해 물었다.
“저기 저 선은 뭔가요?”
검무극과 함께 그어둔 선이었다. 하얀 방에 눈에 띄는 것은 그것뿐이었기에, 그녀는 처음부터 묻고 싶었던 것을 참고 있었다.
“내 인생 선이다.”
절대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지만, 선을 바라보는 극악소마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기분 좋아 보였다.
천화루주는 극악소마 옆에 나란히 서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래서 저렇게 멋지게 그어졌나 보네요.”
* * *
거처로 돌아왔을 때, 마당에서 이안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해?”
“뭐하긴요. 잠꾸러기 도련님 기다리고 있었지요.”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어요.”
의방에서 잠이 들었을 때, 그녀가 와서 펑펑 울었다는 것을 마의를 통해 들었다. 얼마나 걱정했는지, 지금은 왜 왔는지 그녀 얼굴에 다 드러났다.
“굶었어? 얼굴이 핼쑥하다.”
게다가 이후에 또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좀 예뻐졌나 했더니 다시 못난이 됐네.”
“백배는 더 못난이로도 잘만 살았거든요.”
“가자, 맛있는 것 사 줄게. 오늘 우리 둘이서 풍류주점 거덜 내자!”
“저 말씀 드릴 것이 있어요.”
“가면서 해. 나 배고프다.”
먼저 앞장서 걷자 이안이 뒤를 따랐다.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오던 그녀가 불쑥 말했다.
“이제부터 저 데리고 다니세요. 저, 다시 호위할 거예요.”
나는 계속 걸어가며 대답했다.
“그래.”
“농담 아니라 진심이에요.”
“알아.”
너무 순순히 대답하자 이안이 후다닥 뛰어나와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요?”
“응.”
펄쩍 뛰며 기뻐하려던 찰나 그녀가 흠칫하며 물었다.
“조건이 있겠죠?”
“당연히.”
“무슨 조건이죠?”
“비천검법을 십이성 대성을 이루면 호위해.”
이안이 실망하며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대성도 아직 못 이뤘는데, 십이성 대성을 언제 이루라고요? 늙어 죽을 때까지 못 이룰 수도 있어요.”
“아니면 너까지 업고 와야 하잖아?”
“!”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기에 그녀는 계속 고집을 피우지 못했다. 극악소마가 죽을 위기에 처하는 상황이라면 십이성 대성을 이뤘다 해도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만 좀 강해져요!”
“제가 더 강해지겠습니다! 가 정답입니다, 우리 귀영대주님.”
그렇게 우린 마가촌의 풍류주점에 도착했다.
“각주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조춘배가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주인장, 잘 지내셨소?”
“저야 늘 똑같습죠. 요즘 많이 바쁘셨다는 말씀 들었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도 우리 주인장 요리 먹고 싶어서 혼났소.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싹 다 해주시오.”
신난 발걸음으로 주방으로 향하는 조춘배를 뒤로 하고 이 층 우리 자리로 올라갔다.
“그거 아세요? 주인장이 이 자리는 항상 비워둔 데요.”
“우릴 위해서?”
“네. 언제라도 우리가 오면 앉게 해주시려고요.”
“가끔 오는데 뭘 그렇게까지? 손해가 날 텐데.”
“아뇨, 여기 교주님과 마존들이 앉으셨던 자리라고 소문이 나서, 구경하러 오는 손님들 때문에 장사가 더 잘된다네요.”
이안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주인장이 노린 걸까요?”
“워낙 노련한 양반이라 그럴지도 모르지.”
나는 이안과 동시에 웃었다. 걱정할 때의 그녀 모습과 이렇게 활짝 웃을 때의 모습은 딴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느낌이 달랐다.
어쨌든 이안의 웃는 얼굴을 보니 교로 돌아온 것이 실감 났다.
“귀영대 일은 어떻게 돼가고 있어?”
“청면님이 몇 사람을 만나고 있어요. 믿을만한 이들이 있다고 해서요. 일이 착착 진행되니 너무 걱정돼요.”
“뭐가?”
“대주지만 사람을 만나본 적이 거의 없잖아요? 아는 사람이라곤 도련님밖에 없었는데. 이런 제가 과연 대주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나를 상대했는데 누굴 상대 못 하겠냐?”
“아, 또 그게 그렇게 되나요?”
그때 조춘배가 술과 안주를 가지고 올라왔다.
“주인장, 간만에 제 술 한잔 받으시오.”
“아닙니다, 두 분 말씀 나누십시오.”
언제나처럼 조춘배가 사양했지만 나는 그의 소맷자락을 끌어 앉혔다.
“한 잔만 받으시오.”
“어휴, 이러면 안 되는데. 감사합니다, 각주님.”
조춘배가 내 술을 받았다.
“이 자리가 명소가 되었다고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게 다 각주님 덕분이지요.”
“다음에 아버지나 마존들이 오면 벽에 무공 흔적을 남겨두시라고 하겠습니다.”
“무공 흔적요?”
“그래야 여기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볼거리가 있을 것 아닙니까? 아버지가 남긴 흔적 옆에 극악소마님이 혈앙지로 구멍을 뚫어두는 거죠. 여기 탁자에는 도마 어르신께 시 한 수 적어달라고 하고요.”
조춘배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귀하신 분들께 그런 부탁을 어떻게 드리겠습니까? 그리고 그랬다가 누가 벽이라도 뜯어갈까 봐, 탁자라도 훼손할까, 저 잠도 못 잡니다. 자, 그럼 맛있게 드십시오.”
조춘배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내려갔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곤 했지만, 상상만 해도 즐거운지 일 층으로 내려가는 그의 표정이 흐뭇했다.
이안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사람 관계에 대해 잘 모르겠다 싶으면 여기 주인장께 물어보면 도움이 될 거다.”
온갖 인간 군상을 겪으며 살아온 조춘배만큼, 사람 관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럴게요.”
이안과 함께 술을 마시고 요리를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조춘배의 요리는 너무나도 그리웠던 맛이었다.
“청면과 함께 출교해라. 가서 고 군사와 풍천교주도 만나보고 오고. 귀영대에 들일 무인들도 구해 오고.”
이제 그녀를 온실에서 내보낼 때가 된 것이다.
“그리고 조만간에 아버지가 후계자를 선정하실 거다.”
내 말에 이안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 일이 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또 내가 얼마나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지.
“작전은 있으세요?”
“생각해 둔 바는 있지. 뜻대로 이뤄질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작전이죠?”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나는 술잔을 비우며 말했다.
“황금대작전쯤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