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44)
절대회귀-244화(244/424)
제244회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마불이 대법당을 나왔다.
식사 시간이 되었으니, 검무극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검무극과 함께 식사한 지 오늘로 닷새째.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실없는 너스레 몇 마디 주고받다가 밥만 먹고 헤어졌다. 마치 비무에서 서로 허초를 던져 탐색전을 펼치는 것과 비슷했다.
검무극은 이러면서 점점 자신과 친해질 거라 여기겠지만, 천만의 말씀이었다. 황금대작전? 자신의 황금을 가져다가 왜 남이 작전을 펼치는데?
‘미안하지만 그 작전은 내 작전이다.’
그래, 친해질 것이다. 그래서 역으로 검무극을 설득해서 천마 자리를 포기하게 만들 것이다.
이것이 마불의 계획이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다른 마존들을 회유할 필요도 없다.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다.
물론 검무극이 쉽게 포기할 리 없지만, 마불이 가능성을 본 것은 검무극의 성격 때문이었다.
‘이공자는 기분파다.’
자신이 본 그 어떤 사람보다 더 감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다른 마존들이 넘어간 것이겠지. 거기에 한 가지 더.
‘한 번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려는 사람이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후계싸움을 평화적으로 끝내려 한다.
‘기회는 분명 있다.’
법당에서 염불만 외운 인생이 아니다. 권력에 눈이 멀었다는 소릴 듣는다는 건 그만큼 부지런히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는 의미. 그 경험을 살려서 검무극을 상대할 것이다.
‘난 다른 마존들과는 다르다!’
그렇게 각오를 다지며 황금불사를 나왔을 때!
휘이잉.
입구엔 아무도 없었다. 매일 자신을 기다리던 검무극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왜 안 왔지?’
지금까지 봐온 검무극은 이렇게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닌데?
마불은 잠시 그곳에서 검무극을 기다렸다.
이렇게 바깥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린 적이 있었던가?
그 귀한 인내를 다 쓸 때까지 검무극은 오지 않았다.
검무극은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오지 않았다. 사흘째 되던 날, 결국 참지 못하고 마불은 검무극의 거처로 가보았다.
‘무슨 일이지?’
그리고 마불은 그곳에서 뜻밖의 광경을 목격했다.
검무극이 마당에 있는 넓적한 바위에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놀란 마불이 달려가서 검무극을 내려다보았다. 그제야 검무극이 눈을 떴다.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는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오셨습니까?”
“죽은 줄 알았네.”
“잠깐이나마 좋으셨겠습니다.”
마불이 바위에 걸터앉았다.
“여기 편합니다. 등도 시원하고. 누워 보시죠?”
“난 됐네.”
검무극은 확실히 평소와 달랐다.
“매일 오다가 나오지 않아서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찾아왔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던 검무극이 나직이 말했다.
“사흘 전에 마불님께 가려다가 문득 하늘을 봤습니다.”
마불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하늘로 향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새가 한 마리 날아가고 있었지요. 그 새를 보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럽다.”
마불이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왜 부럽지? 난 경공이 있어 저렇게 날 수 있는데? 심지어 더 높이, 더 빨리 날 수도 있는데.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힘들어하고 있구나.”
작전은 작전이되, 검무극의 진심이 담긴 작전이었다.
“내가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구나.”
회귀 전의 인생은 말할 것도 없고, 회귀 후에도 정신없이 달려온 그였다. 그래서 지금 한 말은 그의 진심이었다.
마불은 검무극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자신이야말로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이었다.
작은 키로 태어나 놀림만 받다 죽고 싶지 않았다. 동정심이나 도움은 더 싫었다. 정말 죽을 고생을 하며 이 자리까지 왔다.
‘이공자, 자넨 앞만 보고 달린다는 게 뭔지 모를 거네.’
지금 이 바위는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온 두 남자를 태우고 있었다.
“그날부터 사나흘 뒹굴뒹굴한 겁니다. 기별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마불의 눈에 검무극이 다른 수작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얻는 게 있어야 수작인데, 여기 폐인처럼 누워서 뭘 얻겠는가?
‘하긴, 이 젊은 나이에 그 많은 일을 해냈으니 힘들기도 하겠지.’
이 힘듦을 이용하면 어쩌면 생각보다 쉽게 후계자를 포기하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불이 넌지시 제안했다.
“이참에 한동안 쉬는 건 어떤가? 후계자가 되어야지 하는 부담감은 내려놓고.”
마불은 내심 기도했다. 이런 답이 나오기를.
―네, 그냥 후계자고 뭐고 다 집어치울까 합니다.
하지만 검무극은 대답 대신 마불에게 불쑥 물었다.
“마불님은 안 힘드십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마불은 자신의 심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자네 때문에 힘들지. 후계자 경쟁에서 물러나 주면 힘이 펄펄 날 텐데.”
검무극이 옅게 웃다가 갑자기 소리쳤다.
“앗! 저 새입니다. 마불님과 저의 식사를 망친 새가!”
작은 새 한 마리가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어찌 저 새인 줄 아나?”
“나는 모습이 딱 그놈입니다. 저기 보십시오, 나 자유롭지? 부럽지? 그러고 있지 않습니까?”
“내 눈에는…… 그저 앞만 보고 나니까 날개가 너무 아프다, 고달프다, 이러는 것 같은데.”
검무극이 마불을 쳐다보았다.
마불은 여전히 새를 쳐다보고 있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심이었다. 저 새가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날개를 쉴 새 없이 파닥거리며 날아가는 게 마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았다. 항상 바빴다. 대공자와 함께 움직이랴, 사람들 만나랴, 광승들 다스리랴, 무공수련하랴.
약해서 힘든 거다. 정신이 썩어빠진 것들이 힘들다고 하는 거다.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아왔다. 그 와중에도 세월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고. 그래서 더 초조하고. 그래서 더 바빴던 인생인데.
‘그래서 내게 남은 것은…….’
한참을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던 마불이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어느새 그는 옆에서 잠들어 있었다. 자신을 옆에 두고 잠을 자는 모습에 마불은 내심 놀랐다.
‘나를 이렇게나 믿는다고?’
연기라고 생각했다. 워낙 여우 같은 이공자이니, 이렇게나 믿고 있다고 속이기 위한 연기.
‘내게는 안 통해, 이공자.’
마불이 기척 없이 바위에서 일어났다.
‘내게는 안 통한다고…….’
마불이 저 멀리 집 밖으로 걸어 나가자 검무극은 눈을 감은 채 나직이 말했다.
“마불아, 후계자고 뭐고 다 내려놓고. 우리 좀 쉬자.”
살살 당길 테니, 살살 끌려와라.
* * *
다음 날에도 검무극은 찾아오지 않았다.
마불은 자연스럽게 검무극의 거처로 걸음을 옮겼다.
검무극은 집에 없었는데 때마침 시비가 건물에서 나왔다.
“이공자는 어디에 가셨나?”
“천독림에서 기별을 받고 거길 가셨습니다.”
“천독림?”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려던 마불이 천독림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대공자 편이라 생각하지만 독왕은 아직 공식적으로 대공자를 지지한다고 발표하진 않았다.
그런 독왕이 검무극을 불렀다니 가서 보려는 것이다. 그들이 무슨 대화를 하고 어떻게 지내는지.
천독림을 향한 발걸음이 빨라졌다.
* * *
오랜만에 천독림에 왔다.
가는 길에 여러 독인을 만났다. 독왕과 함께 연무장에서 짖은 후 나를 향한 그들의 눈빛이 다채롭다. ‘우린 이공자를 적극 지지합니다’ 부터, ‘우리 독왕님을 개로 만들다니!’ 까지.
그렇게 거처에 도착했을 때, 독왕은 뭔가를 제조하고 있었다. 다가가서 보니 기존에 만들었던 독이 아니었다.
“뭔가 범상치 않은 독 같습니다.”
독왕은 독 제조에 빠져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자기만의 세상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을 보니 반가웠다.
나는 잠시 장내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예전 그대로였다. 가구는 물론이고 올려진 약병들과 도구들까지. 정말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때, 내 눈에 띈 하나의 광경.
“헉! 이건!”
내가 너무 놀라자 독왕이 고개를 들었다.
“예전에 제가 먹다가 남겨둔 건데.”
그게 그대로 올려져 있었다.
어휴, 제발 좀 치우고 사세요! 라는 잔소리 대신 이 게으름을 잘 포장해 주었다.
“위험한 것을 다룰수록 모든 것이 익숙한 곳에 그대로 있어야 한다. 그런 거죠?”
그러자 독왕이 다시 만들던 독으로 시선을 주며 대답했다.
“아니. 돌아와서 이것 만드느라 청소를 못 했어. 다음에 누가 더럽다고 하면 그렇게 대답해야겠네.”
예전부터 이 공간은 상선도 함부로 들어오지 못했다. 청소도 독왕이 직접 했다. 생각해 보면 오직 그만의 공간에 나를 들여준 거다.
내가 대충 청소하는 사이 독왕이 단약을 완성했다.
“다 됐다!”
그의 얼굴에 희열이 스치는 것을 보니 만들기가 쉽지 않은 독이 분명했다.
그것은 꽃처럼 알록달록 화려한 색을 지니고 있었다.
“독해 보이는데요? 대체 누굴 죽이려고 만드신 겁니까? 무림맹주입니까? 사도맹주입니까?”
그러자 독왕이 그것을 내게 불쑥 내밀었다.
“먹어.”
“이렇게 대놓고 천마신교 이공자를 독살하신다고요?”
“안되나?”
“그럼 저 휘장 뒤에 형이 숨어 있겠군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나는 단약을 받아들었다.
“대체 이게 뭡니까?”
“천기단(天氣丹)이다.”
천기단이란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천기단은 독을 사용하는 이들 사이에서 세 손가락에 꼽는 희대의 독이자 동시에 영약이었다. 영약이지만 내공을 늘려주는 약이 아니었다.
“안가 구석에서 기령초(奇靈草)를 발견했다. 그 귀한 것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더군.”
“아! 서 조사관이 말해줬습니다. 독왕님이 온 안가를 다 파헤치셨다고요.”
“근처에 있을 화령사(花寧蛇)를 찾으려고 그랬지. 기령초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화령사가 있다. 천기단은 기령초의 열매와 화령사의 내단을 합쳐 만들지.”
“이 무서운 것을 왜 제게 주십니까?”
“왜 이 귀한 것을 주냐고 물어야지.”
독왕이 천기단의 효능을 자랑하듯 말했다.
“천기단을 복용하면 어떤 더위와 추위도 이겨낼 수 있는 체질이 된다. 내공이 없는 상태에서도 벌거벗겨서 사막에 던져둬도, 벌거벗겨 설산에 던져둬도 살아남는 체질이 되는 거지.”
그뿐만이 아니다. 극양이나 극음의 무공을 상대할 때 훨씬 더 유리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독성이 강해서 먹으면 죽지 않습니까?”
“맞아. 천기단의 효능을 욕심내서 버텨보려다가 여럿 녹았지.”
독왕이 내 눈을 빤히 응시하며 덧붙여 물었다.
“한데 넌 살 수 있잖아?”
“!”
순간, 침묵이 흘렀다.
그의 표정과 눈빛에서 알 수 있었다.
“알고 계셨군요.”
“그래. 네가 만독불침지체라는 것,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게 오래 함께 있었는데, 내가 몰랐다고 생각했나?”
과연 독왕은 독왕이었다.
“아쉽습니다. 언젠가 이 사실을 극적인 순간에 밝히려고 했었는데.”
“나야말로 알고 있었다는 것을 극적으로 밝히려 했었는데.”
“성공하셨습니다. 저 많이 놀랐습니다.”
독왕은 내가 만독불침임을 알았음에도 생각보다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아시면 많이 기분 나빠 하실 줄 알았습니다.”
“기분이 왜 나쁘나? 오랫동안 기다렸던 사람인데.”
“만독불침을요?”
독왕이 눈을 반짝였다.
“여러 가지 독을 시험할 수 있잖아. 자, 우선 이것부터 복용하고 다 말해줘. 맛은 어떤지, 얼마나 독한지. 뭘 더 추가하면 좋을지.”
나는 장난스럽게 뒷걸음질을 쳤다.
“저 이공잡니다. 천마가 될 사람이라고요. 함께 연무장을 누빈 지옥개입니다. 저 실험체 아니라고요.”
내 너스레에 독왕이 웃었다. 독왕이니까 당연히 만독불침을 싫어하겠지, 그게 편견이고 선입견일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두 번째 인생을 살고서야 알게 된다.
“그럼 복용하겠습니다.”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기단을 복용했다. 정말 극독이었다. 만독불침이 아니었다면, 이 독한 기운을 온전히 녹일 수 없었을 것이다.
맛 또한 지금까지 복용했던 그 어떤 영약보다 쓰고 독했다. 쓰고 독한 걸로 기록 갱신이다.
“일부러 저 골탕 먹이려고 이렇게 쓰게 만들었죠?”
정말이지 안 할 수 없는 불만이었다.
그렇게 천기단의 기운을 모두 녹였다. 다른 영약과는 다르게 천기단은 단전이 아니라 온몸 혈맥 곳곳에 기운이 스며들었다.
이제 얼음장 같은 물에 빠져도 추워서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어지간한 불길은 모닥불 쬐듯 쬘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독왕에게 넙죽 절을 올렸다.
“귀한 영약을 내려주신 은혜,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는 됐고. 질문에 대답 하나 할 수 있나?”
“백 개라도 좋습니다.”
“자네가 상대하려는 자가 누군가?”
독왕은 느낀 것이다. 내가 끝없이 나아가려는 데에는 어떤 강력한 목표가 있음을.
“기령초를 발견하면 곧장 기별 드리겠습니다.”
말해줄 수 없다는 말을 그렇게 돌려 말했다. 그것만으로도 절반의 대답은 해준 것이다. ‘그런 사람 없습니다’가 아니었으니까.
나를 향한 독왕의 눈빛이 한층 깊어졌다. 그가 뭐라 말을 하려던 그때, 상선이 와서 보고했다.
“마불께서 오셨습니다.”
“마불이 여길 왜 와?”
깜짝 놀란 독왕이 나를 노려보았다.
“하다 하다 마불을 천독림에 오게 하다니. 대체 무슨 수를 쓴 거냐?”
아마 마불은 한 번도 천독림에 와 본 적이 없었던 모양이다.
“무슨 수를 썼다면 그는 결코 여기 오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여길 오네요.”
“무슨 말인지 난 모르겠고.”
독왕이 재빨리 뒷문으로 나가려고 했다.
“나 없다고 해. 마불 그 사람 불편해.”
내가 재빨리 그 앞을 막아섰다.
“부탁이 있습니다.”
“다음에.”
“부탁 들어주시면 독 실험 필요하실 때 언제든 달려오겠습니다.”
독왕이 한숨을 내쉰 후 상선에게 마불을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안 들어주면 그날 바쁜 척할 거 아냐? 뒷문으로 도망가거나.”
“안 그럴 거 아시잖습니까?”
“그러니까 들어주는 거지. 그래, 무슨 부탁인데? 대공자 버리고 네 쪽으로 오라고 마불 설득해 줘? 아니면 쥐도 새도 모르게 독살해서 천독림에 묻어 줄까?”
“어쩌면 그것보다 어려운 일일 겁니다.”
내 부탁은 독왕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오늘 하루만 우리와 놀아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