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50)
절대회귀-250화(250/424)
제250회 열기의 한가운데서.
여덟 명의 마존이 일렬로 선 채 검무극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모든 마인이 그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검무극은 가장 먼저 혈천도마에게로 걸어갔다.
“도마님.”
“소교주.”
혈천도마를 향한 검무극의 눈빛이 뜨거웠다.
“제가 후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어르신 덕분입니다.”
검무극은 모든 마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큰소리로 혈천도마의 공을 세워주었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도귀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마기를 발출했다. 천마가 없는 자리였다면 그들은 ‘혈천! 혈천!’을 외쳤을 것이다.
검무극이 그들을 기분 좋게 바라보았다. 이 과격하고 거친 녀석들 덕분에 천맥강화술의 마지막 단계를 이룰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만독불침을 이룰 수 있었다.
‘고맙다, 도귀들아!’
남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말이겠지만 검무극은 그들이 귀엽게 느껴졌다.
검무극이 혈천도마에게 예를 갖춰 마음을 전했다.
“존경합니다, 어르신!”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가장 먼저 자신의 사람이 되어 준 마존이자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어준 사람이다.
“소교주께서 역량이 뛰어난 덕분이지 이 늙은이가 한 일이 뭐가 있겠나?”
“앞으로도 잘 이끌어 주십시오.”
공식적인 자리였기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예를 갖췄다.
물론, 이대로 지나갈 검무극이 아니었다. 지금의 이 차분하고 나직한 어조와는 전혀 다른 평소 말투로 전음을 날렸다.
―어르신, 나중에 술 마셔요! 축하연 거하게 열자고요! 참, 소교주는 안 씻고 침상에 누워도 되죠?
변함없는 검무극의 너스레가 혈천도마는 너무 반가웠다.
그래, 소교주가 아니라 천마가 되더라도 이럴 사람임을 혈천도마는 알고 있다. 그런 성품이었기에 이렇게 깊이 검무극이란 사람에게 빠져든 것일 테고.
―까불다 교주에게 혼나려고. 집중해!
다음으로 옆에 서 있는 일화검존 앞으로 걸어갔다.
“검존님.”
“소교주.”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검존님 덕분에 검술 실력이 많이 늘었습니다.”
일화검존은 내심 당황했다. 검무극과 나눴던 비무는 이렇게까지 평가받을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비무에서 졌다. 수하들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체면을 살려주는 것이다.
과연 마검들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며 그들 역시 함성을 지르며 마기를 발출했다.
앞서 도귀들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르려 했고 더 큰 마기를 발출하려 했다.
도귀들과 마검들은 오늘 이런 자리에서도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일화검존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학에 관한 소교주의 재능은 하늘이 내린 것이니, 내 도움은 보잘것없었을 거네.”
“너무나 겸손하신 말씀이십니다. 앞으로도 잘 이끌어 주십시오.”
“그러세.”
다음으로 권마 앞에 섰다.
무서운 얼굴에 담긴 깊은 정을 검무극은 안다. 그랬기에 저 사람의 우직한 한 방이 얼마나 강력한지도 안다.
검무극은 자신이 절벽을 무너뜨리고 싶다고 한 것도 진심이지만, 권마가 절벽을 무너뜨리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의 꿈을 이루게 해주고 싶다.
“사부님.”
“소교주, 이제 귀한 몸이 되었으니 나는 사부를 그만두어야 할 것 같네.”
“사부님의 주먹에서 저는 인생을 배웠습니다. 제가 어떤 자리에 오르더라도 사부님은 제 사부님이십니다.”
천마가 되더라도 사부로 모시겠다는 뜻이기에 권마의 무서운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가 깃들었다.
그러자 철권들도 함성을 내질렀다. 특히 그들은 검무극과 함께 권법을 배웠던 이들이다.
수련 과정에서 검무극에게 호감을 느꼈던 그들이기에 그들은 진심으로 소교주가 된 검무극을 축하해 주었다. 맨 앞에 선 흑권 중엔 천소희도 있었다.
이번에는 섭혼마존 앞에 섰다.
다른 마존들을 챙기랴, 출교해서 적들 상대하랴, 청선을 따로 챙기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존.”
“소교주님.”
다행히 그녀의 표정엔 섭섭함은 없었다. 오히려 누구보다 호의적이었다.
그녀는 검무극이 아니었다면 마존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에게 무공을 가르쳐준 풍천교주 역시 검무극 때문에 인연이 된 것이었고. 그래서 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강해져서 그 빚을 갚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검무극은 앞선 마존들과 똑같이 제대로 예를 갖췄다.
“무림인들은 말합니다. 본교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섭혼마존이시라고요. 앞으로도 본교의 가장 무서운 칼이 되어 주십시오!”
“소교주께서 많이 도와주십시오!”
귀술사들이 일제히 귀기를 발출했다. 사방으로 퍼져나간 귀기에 마인들이 들고 있던 횃불이 바람이 부는 것처럼 흔들렸다. 정말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다음으로 취마 앞에 섰다.
취마는 발그스레 달아오른 얼굴로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취마님.”
“소교주.”
“취마님께 술을 배우고 강호를 배운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와 동시에 검무극이 전음을 보냈다.
―형님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아우야, 라고 부르고 싶다.
―확 해버릴까요?
―아서라. 그랬다가 나, 교주님께 제대로 찍힌다.
주고받던 장난스러운 전음과는 달리 취마는 차분하고 준엄하게 말했다.
“언제든 오시게. 소교주를 위한 술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으니까. 자, 이 술은 소교주가 된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마시는 것이네.”
취마가 허리춤에 있던 술을 마시자 뒤에 서 있던 주객들이 일제히 술을 마셨다. 그들이 내뿜은 취기가 마기, 귀기와 뒤섞여 주위를 휘몰아쳤다. 분위기는 점점 더 고조되었다.
다음은 마불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제일 미안한 마음이 드는 마존이 그였다.
“축하하오, 소교주.”
그는 차분했다. 대공자가 소교주가 못되었다고 그 책임을 검무극에게 미룰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소교주에게 본교의 미래가 달렸으니, 그 점을 항상 잊지 않기를 바라오.”
“명심하겠습니다.”
마불의 시선이 검무극의 어깨 너머 저 멀리 검무양을 향했다. 검무양을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소교주의 앞날을 위해 본승들이 기도드리겠소.”
마불의 말이 떨어지자 광승들이 일제히 염불을 외우며 검무극의 앞날을 기원했다.
검무극은 알았다. 적어도 마불만큼은 검무양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거라고.
‘끝까지 형을 잘 지켜주시오, 마불.’
그게 검무극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검무극이 이번에는 독왕 앞에 섰다. 독왕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며 미소가 지어졌다. 어느새 독왕은 자신에게 이런 기분 좋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독왕님.”
“소교주.”
“천독림에서의 가르침 덕분에 앞으로 독살의 위험에서 크게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원래 독에 강한 체질이시니, 내 말만 명심하면 독으로 죽을 일은 없을 것이네.”
곧장 독왕에게 전음이 날아갔다.
―그날 놀아주신 덕분에 이렇게 소교주가 되었습니다.
―고마우면 또 독초 찾기 내기하자.
검무극이 짐짓 목소리를 깔았지만.
―나 소교주요. 채집꾼 이공자와는 다른 사람이오.
―와서 청소도 좀 해주고.
당연히 독왕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검무극을 바라보는 독왕의 눈빛이 맑게 빛났다.
‘이것으로 네가 상대할 사람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갔겠구나.’
드디어 검무극은 마지막 마존 앞에 섰다.
극악소마는 오색찬란한 가면을 쓰고 있었다.
“소마님.”
“소교주.”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가면 속 극악소마의 눈빛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검무극은 세상을 살면서 이렇게 깊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너무나 큰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면이 멋집니다.”
“축하연에 참가할 때 쓰는 가면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딱 어울리는 가면이지요.”
눈구멍 속 극악소마의 두 눈이 웃고 있었다.
검무극은 이제 그의 웃음이 가지는 진짜 의미를 살필 필요가 없어졌다. 적어도 자신에게만큼은 보이는 그것이 다였으니까.
“다시 싸우러 나갈 그날을 고대하겠습니다.”
“저 역시 기다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극악소마가 큰소리로 웃었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무면객들이 일제히 따라 웃었다. 괴기스러운 웃음이었다. 소교주에 등극한 것을 축하해 주는 무면객들만의 방식이었다.
그곳에는 무면객들의 웃음이 퍼져나갔고, 귀술사들의 귀기가 사방을 휘돌았으며, 사나운 마기들과 함께 염불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무극이 챙긴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검무극의 시선이 팔마의 마인들이 아닌 천마전에 속한 무인들로 향했다.
저 멀리 마군주 장호의 모습이 보였다. 천마 직속의 그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앞장서서 몸을 날릴 것이다.
장호를 향해 정중히 포권해주었다. 마군들의 함성에 열기가 더해졌다.
황천각 조사관들과 집행무인들에게도 포권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들 역시 큰 함성으로 축하해 주었다. 조사관들 사이에 서대룡이 환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각주님! 아니, 소교주님!
―오른팔만 믿고 간다!
―제발 다른 신체 부위도 좀 믿으시라고요!
기분 좋게 웃으며 다른 조직의 수장들에게도 정중히 포권하며 예를 갖췄다. 함성은 극에 달했다.
그리고 끝으로 검무극은 한 사람을 찾았다. 아무리 많은 사람 속에 있어도 감춰지지 않는 한 사람. 마인들 속에 서 있는 이안과 눈이 마주쳤다.
―오늘따라 더 예쁘네?
―마인들 다 모이는 자리니, 젊고 잘생긴 사람 있으면 꼬셔 보려고요.
―여기 있는 녀석들 다 합쳐도 안 돼.
―그런 말씀 마세요. 제가 뭐라고.
―아니, 너 말고. 내게 안 된다고.
그녀가 웃었다. 소교주가 되어도 변하지 않는 검무극이 너무나 좋았다.
―축하드려요, 소교주님.
―네가 지켜준 덕분이다.
그녀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정말 그녀가 자신을 위해 몸을 던져 주었기에, 오늘 이 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렇게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검무극이 단상으로 올라왔다. 아직 감사를 전할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검무극이 총군사 사마명에게 가서 인사했다.
“군사님.”
“축하하네, 소교주.”
사마명은 검무극이 이 자리에 오르는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너무 뛰어났기에 걱정되는 바도 있었다. 그리고 예측 불가했기에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당장 지금만 해도 이런 말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으니까.
“소교주가 되었으니 아버지 몰래 바둑 좀 가르쳐 주십시오.”
검무극의 말에 사마명이 미소를 지었다.
“그건 곤란하겠네.”
“군사님께서는 제가 이기기를 바라지 않으시는군요!”
“본교의 평화를 바랄 뿐이네. 바둑만 아니라면 통천각은 언제나 소교주를 도울 것이네.”
그렇게 사마명과도 기분 좋은 인사를 나눈 검무극이 덩그러니 서 있는 검무양에게 갔다.
이 자리에서 가장 불편한 사람이 그 아니겠는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될 수 있었는데. 얼마나 아쉽겠는가?
“형, 난 형만 믿는다.”
단둘이었다면 이 미친놈아, 그만해! 라고 소리쳤겠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했다.
“본교를 부탁한다.”
검무극이 갑자기 검무양을 와락 안았다.
―미쳤어?
―미친 건 형이지. 이 좋은 자리를 내게 양보해 줬으니까.
―미친놈아, 떨어져!
두 사람의 모습에 함성이 터져 나왔다. 피를 보지 않고 후계싸움을 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검무극은 마지막으로 아버지 앞에 섰다.
“아버지.”
검우진은 검무극을 데리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란히 두 사람이 서자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함께 서 준 것만으로도 검무극에게는 엄청난 힘이 실렸다. 천마가 확실하게 인정하는 소교주인 것이다.
그렇게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함성 속에서 심야의 후계자 발표는 끝이 났다.
* * *
검무양이 홀로 걸어가고 있었다.
온통 시끌벅적 교내 분위기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마음 같아선 사람 좋은 얼굴로 분위기에 휩쓸려 주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무대 위에서 주인공에게 안기는 조연의 역할.
땅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그때 뒤에서 누군가 불렀다.
“무양아.”
돌아보니 아버지였다.
“…아버지.”
검우진이 부드러운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같이 밥 먹자.”
그 말을 듣는 순간, 검무양은 울컥했다. 감정을 추스를 새도 없이 눈앞이 흐려졌다. 검무양은 이를 악물고 억지로 참았다. 오늘 같은 날, 아버지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러잖아도 배가 고팠습니다.”
“가자. 오늘은 숙수들도 안 자고 있을 테니, 네가 좋아하는 것 해달라고 하자.”
두 사람은 나란히 걸으며 천마전으로 향했다.
아버지와 이렇게 함께 걸으니 검무양의 마음에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했던 나날들.
그는 장남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버지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아버지의 칭찬을 받고 싶었고,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 가장 확실한 방법이 후계자가 되는 길이었다. 후계자가 되지 못하면 비참하게 버려질 거로 생각했었는데…….
“아쉬우냐?”
“아뇨, 차라리 홀가분합니다.”
이제 검우진도 장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보고 있었다. 검무양에게 검우진은 교주가 아니라 아버지였다.
검우진은 어떤 위로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검무양은 그 어떤 위로보다 밥 같이 먹자는 아버지의 한마디 말이 큰 위안이 되었다. 너무 감사했다.
검우진이 앞서 걸어갔고, 검무양은 몇 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달빛은 말없이 걷는 부자의 앞길을 은은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 * *
나는 멀리 지붕 위에서 아버지와 형이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원래는 형과 술 한잔하려고 했다.
한데 아버지가 형을 챙기는 모습을 보고 뒤로 빠졌다. 우리야 다음에 마시면 되지만, 오늘 같은 날 아버지와의 식사는 형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 될 거다.
내가 회귀하면서 어쩌면 아버지에게 형은 아픈 손가락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형을 챙겨주는 아버지가 고마웠다. 아버지는 아버지다.
나는 훌쩍 몸을 날려 교내에서 제일 높은 첨탑의 꼭대기에 섰다.
그곳에 팔짱을 낀 채 서서 천마신교를 돌아보았다. 축제 분위기인 천마신교는 온통 떠들썩했다. 오랜만에 즐겁고 신나는 분위기였다.
나는 그 열기의 한가운데서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내 마음은 차분했으며 앞날을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열기가 가라앉고 여명이 떠오를 때까지 나는 그렇게 꼭대기에 홀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