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53)
절대회귀-253화(253/424)
제253회 부둥켜안기보다 어려운 일은.
소교주가 되면서 바뀐 것은 또 있었다.
내원 깊숙한 곳에 있는 새 거처로 옮기게 된 것이다. 집도 크고 연무장도 크고, 주위의 화원이며 산책로까지. 기존 거처와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집이었다. 나를 시중드는 시비의 숫자도 훨씬 늘었다.
새 거처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내 취향대로 내부를 바꾸는 일이었다.
사실 회귀 전부터 야영을 워낙 많이 해서 아무 곳에서나 잘 잤다. 하지만 이젠 나의 잠자리는 중요해졌다.
소교주로서 바쁠 것이고, 수련한다고 바쁠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 공간은 더 소중하다. 그 바쁜 와중에 내 휴식처가 되어줄 곳이기 때문에.
큰 침상으로 바꿨고 푹신하고 아늑한 새하얀 침구를 깔았다.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엔 책상을 놓았다. 편안히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의자도 놓았다.
책장에는 혈천도마에게 추천받아 사 온 책들로 꽂아두었다. 올해 안에 다 읽는 것이 목표지만 반이나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책을 한 권 뽑아서 창가 의자에 앉았다.
그러다 책을 들고 침상에 몸을 던졌다. 폭신하면서도 기분 좋은 새하얀 이불 위에서 뒹굴뒹굴했다.
“그래, 이거지.”
그러다 누워서 책을 읽었다.
시화집을 읽는 것이 무공수련에 도움이 되냐고? 되고말고. 어지간한 수준까지는 오직 무공에만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지만, 나 정도의 수준에 오르면…….
툭!
“아야!”
졸다가 책이 얼굴에 떨어진 것이다. 그래, 고수의 검은 피해도, 이건 못 피하지.
나는 잠시 침상에 누워서 잠시간의 평온함을 만끽했다. 침상에서 나가면 미친 듯이 수련하고 앞을 향해 달려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순간이 정말 고마웠다. 당연한 걸 고마워하면 인생이 행복해지는 법이다.
바뀐 것은 나의 거처만이 아니었다.
호위들에게 약속한 대로 그들에게 주어진 낡고 좁은 숙소를 허물고 연무장이 딸린 크고 넓은 숙소를 지어주었다. 호위들이 다 달라붙어서 인부들을 돕자, 숙소는 금방 완성되었다.
내부의 침상이나 가구들도 최대한 좋은 것으로 신경 써 주었다. 그런 것까지 꼼꼼하게 챙겨주니 당연히 다들 좋아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수장인 적연이 모두를 대표해서 내게 인사했다. 나는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들에게 나를 소개하고 있었다.
“당분간은 나도 수련에 매진할 테니까, 중요한 일 아니면 찾지 마.”
나는 그 길로 개인 연무장으로 들어섰다.
내 연무장은 모두 두 개였는데, 외부에 큰 연무장이 있었고 그보다는 작지만, 실내에 마련된 개인 연무장이 있었다.
나는 실내에 있는 연무장에서 수련했다.
외부보단 좁다지만, 그 어떤 실내 연무장보다 넓었다. 아버지 연무장 다음으로 크고 잘 꾸며진 곳이리라.
하나만 봐도 안다고, 벽에 세워진 십팔반 무기들은 훈련용치고는 너무 훌륭한 품질의 것들이었다.
벽과 천장, 바닥 역시 어떤 충격에도 무너지지 않게 튼튼하게 지어져 있었다. 정말이지 소교주가 되니 다 달라졌다.
그래, 새 술은 새 부대에, 새 무공은 새 연무장에서!
구화마공을 본격적으로 수련하려니 마음이 떨렸다.
어떤 사기도 마기도 통하지 않는 절대마공.
드디어 꿈에서도 바랐던 구화마공의 수련이 시작된 것이다.
구화마공은 모두 아홉 개의 초식으로 이뤄져 있었다.
사람이 사용하는 초식이 여섯, 천마혼이 사용하는 초식이 셋이다. 사람이 사용하는 초식만 완벽하게 익히더라도 대성은 가능하다.
다만, 그런 경우에는 천마혼은 초식을 발휘하지 못한다.
천마혼은 그 자체로도 강하지만, 초식을 사용할 때 더욱더 강하다.
마왕처럼 거대한 그것이 사람이 공격하는 것처럼 빠르게 초식을 사용한다고 상상해 보라!
그러니 아홉 초식을 완벽하게 익혀서 대성을 이뤄야 한다.
구화마공은 비천검법과는 완전히 다른 무공이었다. 비천검법이 검술이라면 구화마공은 말 그대로 마공이었다.
한 초식, 한 초식 사용하는데 막대한 내공이 소모되었고, 당연히 그 위력은 비교할 수가 없었다.
나는 심법부터 차분히 수련을 시작했다.
구화마공의 수련 중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여기서 자칫 잘못하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기에 나는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진기를 움직였다.
내 인생 이렇게 조심하고 집중한 심법 수련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행히 구결대로 진기를 일주천 하는 데 성공했다. 아버지가 알려주신 요결이 아니었다면 심법부터 막혔을 것이다.
아직은 초식 수련은 하지 않았다. 우선은 심법부터 편하게 운기할 수 있을 때, 그때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할 것이다.
진기를 일주천하고 이주천하고, 삼주천하고.
그렇게 운기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세 시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배고픈 줄도 모르고 구화마공의 심법에 푹 빠져 있었던 것이다.
운기를 할 때마다 단전의 내공 반응이 달랐다. 정순하고 웅혼한 내공이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몰입할 무공이 생겼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가야 할 길이 아주 멀다는 것을 예감한 것이다.
“배고프니 일단 밥부터 먹자.”
오늘은 직접 요리를 했다.
장작을 패서 불을 피우고 고기를 손질했다.
대충 때우고 어서 수련해야지, 이러면 안 된다. 이런 중요한 수련을 할 때일수록 더 잘 먹고, 더 잘 쉬면서 최고의 몸과 정신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넉넉히 고기를 구워 호위무인들을 불러서 함께 먹었다.
그들은 내가 직접 요리를 한 것에도 놀랐고, 그것을 이렇게 함께 먹자고 부른 것에도 놀랐다. 심지어 요리들이 먹을 만하다는 사실에는 더욱 놀랐다.
“다음에 또 해준다. 기대해라.”
그들이 돌아가기 전에 수장인 적연을 따로 불렀다.
“수련은?”
“다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조만간에 내가 한 번 봐줄 테니까, 더 열심히 하라고 해.”
“다들 좋아할 겁니다.”
“잠깐. 자네 눈 좀 봐.”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아.”
적연이 안대를 벗었다.
전에 봤을 때보다 더 붉었다. 고통이 상당할 텐데.
“힘든 거 자꾸 참으면 성격 나빠진다.”
나는 그의 눈에 손바닥을 대고 내력을 주입해서 다스려주었다. 그에게 방법을 가르쳐 주면 되겠지만, 아직 그의 무공실력으론 이런 효과를 보기 어려웠다. 눈이라서 굉장히 섬세하게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해주셨을 때보다 더 편안해진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구화마공을 익히기 전과 익힌 후에 나도 모르는 차이가 생겼을지도 모르니까.
적연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소교주님.”
내겐 별것 아닌 한 수였지만 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은 쫓아낸 옛 호위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 호위무인에게 정 쌓는 것은 나 대신 죽어달라고 점수 쌓는 거라고. 야비한 짓이라고.”
그가 뭐라 대답 하나 궁금해서 말한 것인데.
적연이 다시 안대로 눈을 가리며 말했다.
“정이 있든 정이 없든, 제 사명을 다할 뿐입니다.”
정 없는 소리처럼 들렸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는 누가 좋아서 지킨다기보단, 누군가를 지키는 자신이 좋은 거다. 그래, 이게 맞지. 이안이 특별했던 거고.
“고기 맛있었습니다.”
적연이 꾸벅 인사하고 돌아섰다.
무뚝뚝하고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누군가를 볼 때는 자세히 봐야 한다. 안대까지 벗겨가며 자세히.
* * *
저녁에는 시천비술 수련을 했다.
문제는 시천비술이었다. 구화마공은 어떻게든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떼는 느낌인데, 시천비술은 도통 암흑 속이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계속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나도 이렇게 어려우니, 풍천교주가 절대 안 된다고 고개를 내저을 만도 하다.
누가 ‘아, 그건 이거잖아!’ 딱 이 한마디만 해주면 되는데. 하긴, 그 한마디를 못 들어서 지금껏 해낸 사람이 없는 것이기도 하겠지.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구화마공을 십이성 대성하려면 반드시 시천비술을 익혀야 한다. 그것도 시간 차이가 확실히 날 수 있는 단계까지.
“어휴, 나도 모르겠다!”
딱!
손가락을 튕겨서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열었다.
투명한 바다와 새하얀 모래사장, 푸른 하늘과 잎 넓은 나무, 그 아래 편안한 의자와 옆을 기어가는 게 한 마리까지.
“좋다, 좋아!”
나는 그곳에 벌러덩 누웠다. 이곳이 왜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여기 누워서 눈을 감고 있으면 너무 기분이 좋았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잠이 솔솔 온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구화마공을 익힌 후부터, 시천비술의 막막함이 체감상 조금 쉬워진 느낌이 들고 있었다.
적연이 눈이 더 편해졌다고 하는 것도 그렇고, 나도 모르게 구화마공이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일까?
* * *
검무극의 거처에 적연이 찾아왔다.
“소교주님!”
연무장 안에서 들려오는 검무극의 대답.
“들어와.”
적연이 연무장 안으로 들어가자 검무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연무장 중앙에는 향이 피워져 있었다.
‘분명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는데?’
그때 뒤에서 갑자기 검무극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향을 하나 들고 서 있었다.
“어디 계셨습니까?”
은신술 수련이라도 하나 싶었는데, 검무극이 알 수 없는 대답을 했다.
“자네와 다른 시간에 있었기를 바랐지.”
“네?”
검무극이 걸어가서 연무장에 있던 향과 자신이 들고 있던 향을 비교했다. 향의 길이가 같은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시천비술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인가 싶어 향을 쳐다보던 적연이 재빨리 보고했다.
“악인곡에서 기별을 해왔습니다. 오늘 천화루주께서 떠난다고요.”
* * *
악인곡에 도착했을 때 마당에는 천화루주를 호위할 무면객들이 마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쁘신데 오시라고 한 것은 아닙니까?”
“루주님이 가시는데 당연히 와서 인사드려야죠.”
아직 천화루주는 나오지 않은 상태였고 극악소마만 먼저 마당에 나와 있었다.
“섭섭하지 않으십니까?”
“섭섭하죠.”
나는 깜짝 놀랐다. 소마 입에서 ‘몸도 나았으니 이제 각자 인생 살아야죠.’ 이런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왜 보내십니까? 더 있다 가라고 하시죠?”
“꿈이 큰 여자입니다.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지켜봐 주는 것이 그녀를 위한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극악소마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 몰랐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극악소마가 뭐라 말하려고 할 때, 건물 안에서 천화루주가 나왔다.
떠나기 전, 극악소마에게 마지막 모습을 잘 보이려고 화장도 예쁘게 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나온 그녀였다.
“그동안 신세 많이 졌어요.”
작별을 고하는 그녀에게 내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루주님이 계셔서 음침하던 본교가 밝게 빛났었는데, 다시 암흑천지가 되겠군요.”
내 말에 천화루주가 활짝 웃었다.
“아닌 줄 알면서도 기분이 좋은 걸 보니, 저도 나이를 먹나 보네요.”
“더 놀다 가십시오.”
그녀가 극악소마를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오라버니 몸도 다 회복하셨고, 일도 바쁘실 텐데. 이만 가야죠.”
극악소마의 대답을 바라는 그녀의 눈빛.
이건 또 시험이었다!
그리고 극악소마는 여러 오답들을 피해 정답을 골랐다.
“더 있다 가게. 일은 미뤄도 되네.”
천화루주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바쁘다고 했으면 짐 다시 풀었을 거예요.”
그녀가 극악소마를 응시하며 이별의 아쉬움을 전했다.
말없이 바라보는 두 사람.
그래서 더 애틋한 이별이었다.
그녀가 내게도 작별을 고했다.
“이공자께서는 훌륭한 소교주가 되실 거예요.”
“혹시 제 앞날도 보입니까?”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차마 말 못 할 미래라서 말씀 안 해주시는 것은 아니고요?”
“그럼 오히려 말씀해 드려야죠. 제겐 은인이신데요.”
극악소마를 구해준 순간, 나는 그녀의 은인이 되었다.
“너무 큰 운명을 지니신 분들은 제가 볼 수가 없답니다. 소교주께서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운명을 지니신 거죠.”
그녀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우리 오라버니 잘 부탁해요.”
언제나처럼 같은 인사로 대답했다.
“그건 제가 드릴 말씀이라고요!”
그렇게 천화루주가 떠났다.
모처럼 왔는데 그냥 떠나기 싫어 극악소마와 함께 악인곡을 걸었다.
나는 극악소마에게 하소연했다.
“요즘 무공수련이 꽉 막혔습니다.”
“소교주께서 막힐 정도면 대단한 무공이겠군요.”
아마 구화마공이라 생각하겠지만, 문제는 시천비술이었다.
잠시 말없이 걸음을 옮기던 극악소마가 갑자기 천화루주에 대해 말을 꺼냈다.
“아까 천화루주를 생각하는 마음이 대단하다고 하셨죠.”
“그런 마음으로 지켜봐 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우린 부둥켜안고 있지 않으니까요.”
우린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췄다. 극악소마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도 제 이득을 위해서였습니다. 기루를 통해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가 천하의 기루를 모두 장악하면 그 모든 정보를 제가 가지게 될 테니까요. 이기적인 목적이 있죠.”
“그렇게 따지면 루주님도 마찬가지겠지요.”
극악소마가 밀어주지 않으면 쉽게 이룰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두 사람은 이상적인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면서 더불어 사업적으로 원하는 바도 뚜렷했으니까.
“저와 천화루주는 한 걸음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부둥켜안고 있을 때보다 서로를 더 잘 볼 수 있습니다.”
극악소마가 맑은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소교주께서도 잠시 그 무공에서 한 걸음만 떨어져 보십시오. 딱 한 걸음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지금껏 마음이 급해 시천비술을 부둥켜안고 있었다는 것을. 숨이 막히도록 꽉 껴안아야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히려 부둥켜안는 것보다 한걸음 떨어지는 것이 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지금 그와 난 한 걸음 떨어져서 마주 보며 서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잘 보이는 모양이다. 가면 속 맑은 눈빛은 물론이고 어떻게든 나를 도우려는 소마의 마음마저 보이는 것을 보니.
나는 감사의 마음을 표정에 가득 담으며 그에게 말했다.
“보십시오, 저를 부탁해야 하는 게 맞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