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59)
절대회귀-259화(259/424)
제259회 아버지가 보고 싶으셨던 것이.
아쉽게도 악귀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하필이면 처음 출현한 악귀가 나무 인형의 정면에 있는 악귀였다.
그래서 내게는 악귀의 등만 보였다.
나무 인형의 네 곳이 잘려 나갔고 곧이어 악귀가 사라졌다.
악귀가 출현해서 잘리는 것과 그냥 검기로만 잘리는 것의 차이가 있었다. 악귀가 나타나니 속도와 위력이 더 빨라지고 강해졌다. 악귀들이 뿜어내는 마기와 시각적, 심리적인 효과까지 생각한다면, 악귀가 출현해야만 진정한 인멸식이 완성되는 것이다.
나는 다시 인멸식을 발휘했다.
사아악!
악귀는 다시 출현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등만 보였다.
드디어 해냈다는 기쁨과 아쉬움이 동시에 들었다.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었단 말이다! 네 얼굴 보려고 그렇게 노력한 거지, 네 등판 보려던 건 아니라고!’
그러다 머리를 스치는 생각.
‘아! 동경(銅鏡)을 가져다 두면 되지!’
동경을 가지러 가려다 생각을 바꿨다.
이렇게까지 해서 보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무공이 발현한 순서를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 든 것이다. 네가 보여주고 싶지 않다면, 그래 좋다.
‘다른 악귀들 얼굴부터 본다.’
* * *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일화검존은 검무극의 표정이 오늘따라 밝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막혀 있던 검술에 성취가 있었습니다.”
“아! 다행이네.”
일화검존은 기뻤다. 자신은 검무극과 함께 비무하고 무공에 관해 이야길 나누면서 큰 성취가 있었다. 마존급 실력에서 성취를 얻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한데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다음 단계로 오르는 성취가 있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도 못 했다.
“자네란 사람은 정말 예측할 수가 없네.”
처음 검무극이 찾아왔을 때, 하루 이틀 오다가 말 줄 알았다. 소교주가 되었으니 일종의 인맥 관리차 왔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첫날 검무극이 말한 것은 사실이었다.
검술을 말할 사람이 선배님밖에 없습니다.
검무극은 진심으로 자신과 검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 했다. 무학의 깊은 뜻을 가르쳐주려 했고, 또 배우려 했다.
평생 검술을 익혀온 그녀였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검술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고 논검(論劍)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번 기회에 그녀는 느꼈다. 자신이 얼마나 이런 시간을 갈망해 왔는지.
비무친구.
검무극은 진정한 비무친구로 자신에게 다가선 것이다. 이제 저 말은 그녀에게 그 어떤 관계보다 더 깊은 의미로 남을 것이다.
그래서 이 말은 그녀의 진심이었다.
“소교주,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나도 자네밖에 없네.”
검무극이 웃으며 검을 뽑았다.
“그럼 나눠볼까요?”
그들이 허공으로 날아올랐을 때, 모든 마검이 나와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물론 워낙 높이 올라가서 싸웠기에 그들의 모습이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그저 수없이 빠른 검광이 번뜩일 뿐이었다.
하지만 마검들은 무엇인가에 홀린 듯 그 모습에 빠져들었다.
이렇게 비무를 마치고 떠날 때면 검무극은 항상 만나는 마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검존께 많이 배우고 가네. 자네들이 부럽네.”
이 말을 전해 들은 일화검존은 행복했다. 아부든, 진심이든. 다른 사람도 아닌 검무극에게 저런 극찬을 듣는 것은 너무나도 기쁜 일이었다.
아낌없이 무학의 깨달음을 전해주고, 수하들에게 저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라면…… 어찌 넘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 * *
나의 수련은 계속되었다.
소교주가 가야 할 외부 행사는 계속 밀리고 있었다. 수련에 미쳐 있다는 내 소식을 들은 아버지의 배려였다.
마존들도 나를 찾지 않았다. 취마가 와서 술 마시자고 할 법도 했지만, 그 역시 찾아오지 않았다.
교내에서는 무공에 미친 소교주에 관한 이야기밖에 없었다.
오직 검존과 비무를 했고, 비무를 마치고 돌아와선 미친놈처럼 인멸식을 연마했다.
너무 많은 나무 인형이 잘려 나가는 바람에 금속으로 된 인형이 내 연무장으로 도착했다. 만년한철과 강철을 섞어 만든 것으로 검기에 잘리지 않는 특별한 강철인형이었다.
카아앙! 캉! 카앙! 카앙!
시원한 금속음이 반복해서 들렸다.
악귀의 등을 얼마나 많이 봤으면 너, 한 번쯤 고개를 돌려줄 수 없냐?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그리고 오늘, 그 지겨운 반복이 주는 선물이 도착했다.
사아아악!
다시 인멸식의 소리가 달라졌다.
그 순간 나는 보았다.
강철인형의 뒤로 또 다른 악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을.
두 번째 악귀의 출현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악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순간 깜짝 놀랐다.
무섭게 생기지 않았다. 놀랍게도 내 첫인상은 이러했다.
‘잘 생겼다!’
놀랍게도 내가 불러낸 악귀는 잘생긴 악귀였다.
화공에게 독왕의 얼굴을 보여주고 이 얼굴을 바탕으로 악귀를 그려봐라, 했을 때 나올 법한 얼굴이었다.
‘이래도 되나?’
정말 나도 놀랐다.
혹시 이 악귀는 무공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을 반영하는 것일까?
나는 악귀의 얼굴이 상대에게 공포를 안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악귀의 얼굴을 보고자 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래서일까? 무서운 악귀가 아니라 이런 악귀가 나온 것은?
이렇게 되니 등을 보이는 악귀의 생김새가 궁금해졌다. 똑같이 생겼을까? 아니면 다르게 생겼을까?
어쨌든 얼굴이 다 다른지 확인하려면, 좌측이나 우측의 악귀도 발현시켜야 한다.
호기심이 내 열망을 이끌고 있었다.
* * *
“수련은 오늘까지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화검존은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관수련을 할 작정인가?”
“어떻게 아셨습니까?”
“직감이라네. 근래 자네 열기가 점점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네. 마지막으로 쏟아부어야 할 순간이 온 거지.”
“역시 대단하십니다.”
나를 향한 검존의 눈빛은 이번에 비무를 하자고 찾아왔을 때와 또 달랐다.
“소교주, 정말 고마웠네.”
“저도 감사했습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그녀와 친해졌다. 이제 그녀와 두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그녀의 성격에서 오는 거리였다. 아무리 더 친해져도, 한 걸음까지 허용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법이니까.
“무공이 막히면 또 찾아옵니다.”
“자넬 맞을 준비를 해두겠네.”
그녀의 눈빛에서 의지를 읽었다. 여기서 한 번 더 성장한다면, 본교는 새로운 일화검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검무극이 연무장을 둘러보았다. 이제 당분간은 여기도 끝이었다.
“다음에 왔을 때는 다시 모옥의 좁은 마당이 되어 있을지도 몰라.”
“자유로운 영혼과의 더 박진감 넘치는 비무가 되겠군요.”
일화검존이 미소를 지으며 함께 연무장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날이니 오늘은 제게 시간 좀 내주시겠습니까?”
사실 오늘 그녀를 위해 준비한 것이 있었다.
“황천각주가 된 서대룡은 제 오른팔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 조촐한 축하연을 해주고 싶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시간 내야지.”
“혈천도마님도 함께 모셨습니다. 서대룡의 사부이시니 모셔야 할 것 같아서요.”
일화검존은 알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혈천도마와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자신을 데려가려 한다는 것을.
“잠시 기다려 주겠나? 옷 갈아입고 나오겠네.”
“네, 천천히 준비하셔도 됩니다.”
오늘따라 씻고 화장하고 옷을 고르는 시간이 더 걸린 그녀였다.
* * *
검무극과 일화검존이 도착한 곳은 대천산 아래 푸른 들판이 있는 언덕이었다. 그곳에 술과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검무극이 미리 숙수들에게 부탁해서 준비한 만찬이었다.
일화검존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본교 주위에 이런 곳이 있었나?”
“구석구석 찾아보면 멋진 곳이 많습니다. 앞으론 여행도 다니고 쉬십시오.”
“혼자 무슨 재미로.”
그때, 그곳으로 혈천도마와 서대룡이 도착했다. 대도를 둘러맨 두 사람은 이제 누가 봐도 사제지간으로 보였다.
혈천도마는 평소에 입지 않는 깔끔한 장삼을 입고 있었다. 머리도 평소보다 깔끔했다.
검무극은 입이 근질거리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오셨습니까?”
“번거롭게 뭔 축하연이냐?”
혈천도마가 괜히 퉁명스럽게 말했다.
“제자가 큰 자리에 올랐는데 왜 심술이세요?”
일화검존의 말에 혈천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대룡이 일화검존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귀한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서대룡이 모두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그렇게 몇 잔의 술을 마시고, 나는 서대룡과 산책을 나섰다. 일부러 두 사람만 남기고 자리를 피해준 것이다. 오늘 이 자리는 서대룡보다는 혈천도마를 위한 자리였다. 그래서 미리 서대룡에게 귀띔도 했었고.
“각주 일은 어때?”
“아직은 적응한다고 정신없습니다.”
서대룡이 발걸음을 멈추고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요즘 악몽을 꿉니다. 위급한 상황에 소교주님 찾아서 헤매는 꿈요. 제가 처리해야 하는 일인데, 꿈에서는 소교주님만 찾고 있습니다. 그렇게 간신히 찾으면 저를 차갑게 쳐다보며 이렇게 말씀하시죠. 능력도 안 되면서 그 자리를 왜 맡았지?”
“과연 꿈에서만 그럴까?”
“어휴, 저 심각하다고요.”
검무극이 웃으며 말했다.
“현실적으로 그런 일은 평생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이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심력 소모하지 마라.”
“만약 일어난다면요?”
“이걸로 해결해야지.”
검무극이 서대룡이 매고 있는 대도의 손잡이를 한 번 툭 건드렸다.
서대룡이 사부의 손때가 묻어 있는 손잡이를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이 지옥 수련이 되어야 하는 이유겠죠.”
두 사람이 다시 돌아가려고 몸을 돌렸다.
“좀 더 있다 가자.”
저 멀리 혈천도마와 일화검존이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표정이 밝았다.
“좋을 때다!”
검무극의 말에 서대룡이 웃었다.
“아까 함께 오려고 찾아뵈었는데, 단장을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옷도 여러 벌 갈아입어 보시는 것 같고요. 사부님 그런 모습, 처음이었습니다.”
혈천도마가 웃는 모습을 보니 검무극의 기분도 좋았다.
그래요, 이제 지난 일들은 다 잊으십시오. 과거로 가는 문도 잠그고, 미래를 엿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행복하게 지내십시오.
“네게도 봄바람이 불어야 할 텐데.”
“전 틀렸습니다. 절 두고 먼저 가십시오. 이제 더 바빠져서. 전 일만 하고 수련만 하는 인생입니다!”
서대룡은 부러운 눈빛으로 저 멀리 나이를 잊은 풋풋함을 쳐다보았다.
“정말 먼저 가도 돼?”
“데려가셔야죠! 저 오른팔이라고요!”
* * *
시간은 금방 흘렀다.
언제 나오나 하고 들어갔는데, 어느새 나는 백일 폐관수련을 마치고 수련장을 나오고 있었다.
수염도 깎지 않은 채로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천마전이었다.
아버지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천마전을 지키고 계셨다.
“몰골이 그게 뭐냐?”
“아버지 뵙고 싶어서 곧장 달려왔습니다. 이래야 고생한 표를 내죠.”
반가운 마음에 너스레부터 떨었다.
“맛있는 것 먹고 싶어서 혼났습니다. 벽곡단이나 육포 말고 폐관수련에 쓸 수 있는 음식 좀 개발해주십시오!”
아버지는 변함없는 그 미소로 나를 맞아주었다.
“게으름뱅이가 백일이나 수련하다니, 대단하구나.”
“녀석들이 어찌나 부끄럼이 많은지, 정말 보기가 힘들더라고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버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 부담감이 내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해서다.
그럼에도 이 순간 가슴이 떨렸다. 다 못 버렸나 보다. 아버지에게 무공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제 친구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힌 후 제일초식을 발휘했다.
사악!
경쾌한 바람 소리.
네 줄기의 검기가 허공을 갈랐다.
모습을 드러낸 네 악귀.
그토록 보고 싶었던 나의 악귀들이었다.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악귀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놀랍게도 나의 악귀들은 서로 생김새나 느낌이 달랐다.
무서운 녀석도 있었고, 잘생긴 녀석도 있었다. 묘한 신비감을 주기도 했고, 영리해 보이는 녀석도 있었다.
아버지는 그 각기 다른 모습에 놀랐다. 당연히 같은 모습이라 생각하셨을 테니까. 사실 나도 놀랐다. 이렇게 다 다른 느낌의 악귀들이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네 악귀는 아버지의 그것처럼 곧장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나와 교감이라도 하려는 듯 찰나 간 나를 쳐다보는가 싶더니.
슷.
다음 순간 악귀들은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버지는 태사의에서 일어나 계셨다. 아버지는 놀람을 감추지 않았다.
“아버지가 보고 싶으셨던 것이 이것이었습니까?”
나의 해석으로 완성되는, 아버지의 것과는 다른 구화마공.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던 아버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런 것이었다.”
구화마공을 전수해주시던 날 아버지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구화마공은 계속 변해 왔군요.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시대마다 멍청이들과 천재들은 계속 나왔을 테니까.
나는 그 천재가 되어 더 발전된 구화마공을 펼칠 것이다.
아버지의 기도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적어도 무공에 있어서 만큼은, 아버지는 그냥 감탄만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버지만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실 거다. 나와 경쟁해서 이기려 하시겠지. 진심으로 도울 건 돕고, 이길 건 이기고. 아버지는 아버지다.
“그동안 소교주가 처리해야 할 외부 일들을 미뤄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첫 단추가 중요한 법이니까.”
구화마공 제일초식을 제대로 익히라는 아버지의 배려였다. 덕분에 첫 단추를 잘 끼웠으니 이제 시천비술을 익혀가며 차분히 하나씩 끼워가면 될 것이다.
“곧장 출교해서 다 처리하겠습니다.”
“가기 전에…….”
아버지가 태사의에서 내려오시며 내게 말했다.
“같이 밥 먹자. 고생했다.”
아버지는 그 싫어하신다는 사술까지 직접 부리신다. 백 일 간의 힘듦이 저 한마디 말에 모두 사라져 버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