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6)
절대회귀-26화(26/424)
제26회 많이 가져갈수록 인연은 깊어진다.
금아수가 황금장 지하의 비밀통로를 앞장서 걸었다.
길은 미로처럼 복잡했다. 벽과 천장, 바닥 곳곳에 치명적인 함정과 기관 장치가 숨겨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함께 뒤따르던 금사연의 긴장이 전해져왔다.
오직 길을 아는 자만이 갈 수 있는 복잡한 길을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은 황금장의 보물이 보관된 비밀창고였다.
“우리 목숨을 구해줬으니 전 재산을 줘야 마땅하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소.”
“거기까진 바라지 않습니다.”
“액수를 정해 보답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보단 이게 어떻겠소? 이곳에서 은공이 한 번에 가져갈 수 있는 만큼 가져가시는 거요. 대신 수레를 사용해서도 안 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도 안 되오.”
“제가 가지고 나오는 것까진 인정한단 말입니까?”
“그렇소.”
“내공을 사용해도 됩니까?”
“물론이오.”
“그럼 꽤 많이 들고나올 텐데요?”
“은공이 아니었다면 우린 다 죽었을 터, 이 정도는 보상해야겠지요.”
“고맙습니다.”
“지금부터 한 시진 드리겠소. 괜찮겠소?”
“충분합니다.”
나는 천천히 보물창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검무극이 보물창고 안으로 들어가자 금사연이 금아수에게 물었다.
“괜찮으시겠어요?”
“뭐가 말이냐?”
“은공의 무공이라면 생각보다 많이 가져갈 수도 있어요. 아깝지 않으시냐고요.”
금사연은 농담처럼 웃으며 말했지만, 내심 아버지가 나중에 화병이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아버지는 재물을 모으는데 자신의 인생을 바친 사람이었다. 한데 그 인생의 많은 부분이 누군가의 손에 들려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저 안에 오늘 우리가 지켜낸 것보다 더 귀한 것이 있더냐?”
금아수가 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너와 양이가 산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만약 너희들까지 잃었다면…….”
금아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란 소릴 평생 듣고 살았지만, 적어도 그는 자식에 관해서는 피도, 눈물도 철철 흘리는 사람이었다. 다만 표현할 기회가 없었을 뿐.
오히려 이번 기회에 금아수는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모든 재산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을 혈육인데, 재산을 모으기 위해 혈육을 등한시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그리고 재산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
죽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자신이 어떤 목적을 위해 노력하다 죽는다면 여한이라도 없지, 이번 경우는 믿었던 가신의 배신이다. 아마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으리라.
“저 소협, 보통 사람이 아니야.”
“네. 어린 나이임에도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어요.”
“내가 본 것은 실력만이 아니다.”
“그럼 또 뭘 보셨죠?”
“그걸 뭐라고 표현할까 아까부터 고민했었다만, 생각해내지 못했다. 저 소협에겐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세가 있다.”
평생 수많은 사람을 만나온 그였다. 어린 나이임에도 이렇게 여유로우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돈은 다시 벌면 되지만, 저런 사람과의 인연은 평생 한 번 올까 말까지.”
더구나 상대는 젊었다. 금아수는 딸과 손자가 이끄는 황금장의 다음 시대에서도 저 청년과의 인연이 이어지기를 바랐다.
“그래서 다 가져가도 상관없다. 많이 가져가면 갈수록 우리와의 인연은 깊어질 테니.”
* * *
나는 단언할 수 있다.
평생 이런 보물창고는 두 번 다시 들어와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한쪽에 금붙이가 산처럼 쌓여 있었는데 쳐다보면 눈이 부실 정도였다. 불상과 무인상, 식기류와 장식품, 호랑이, 두꺼비, 거북이, 돼지 등 온갖 동물들까지. 그야말로 황금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들이 쌓여 있었다. 처음에는 잘 진열했을 터인데, 나중에는 그 개수가 너무 많아져 그냥 산처럼 쌓아둔 모양이다.
그 옆 장식장에는 진귀한 보석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반지나 목걸이, 팔찌 등의 보석류부터 옥으로 만든 여인들의 노리개까지.
반대쪽 장식대에는 도자기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뒤로는 유명 화공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야말로 온갖 진귀한 것들이 가득했다.
다시 그 옆으로 나를 흥분시키는 것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어두운 곳을 밝히는 야명주와 입에 물고 있으면 중독되는 것을 막아주는 피독주(避毒珠)였다. 특히 피독주는 크기가 아주 작은 최상품이었다.
그것이 각기 다섯 개씩. 돈이 있어도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이었기에 이곳에 있는 그 어떤 보석들보다 더 값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쁜 마음으로 야명주와 피독주부터 챙겼다. 그것들을 모두 챙겨 품에 넣었다.
어마어마한 가치가 품으로 들어갔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다음으로 챙긴 것은 비싸게 팔 수 있는 반지를 손가락에 꼈고, 팔찌와 목걸이를 겹쳐서 찼다. 주렁주렁 무거울 정도로 찼다.
나는 금붙이들을 담을 것을 찾았다. 큰 혁낭이 있으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담을 만한 것이 없었다.
옷이라도 벗어서 담아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구석에 세워진 옷감 원단을 발견했다. 살펴보니 그것은 새외에서 들어온 천잠사 원단이었다.
검으로 그것을 최대한 크게 찢어 커다란 보자기로 만든 다음 거기에 금붙이들을 쓸어 담았다.
내공을 사용해서 옮길 수 있으니, 이렇게 저렇게 배치를 바꿔가며 담을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많이 담았다. 그림이나 도자기는 남겨두었다. 구겨지거나 깨어질 위험이 있어서였다. 정확한 가치를 잘 모르기도 했고.
황금장주의 사정은 생각지 않았다. 적어도 재물과 관련해서 내가 걱정해줘야 할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한 시진도 꽉, 보자기도 꽉 채워서 보물들을 챙겼다.
비밀금고를 나오는 내 모습을 보며 금아수와 금사연의 입이 쩍 벌어졌다.
나는 내 몸집보다 훨씬 큰 보따리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 안에 든 것이 얼마나 될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창고 문이 워낙 컸기에 그냥 나올 수 있었지, 아니었다면 벽을 부수고 나왔어야 할 정도였다.
“약소하게 이 정도만 가져가겠습니다.”
쿵.
보따리를 내려놓자 쿵 하며 바닥이 진동했다.
내 손가락마다 반지가 다 끼워져 있고, 목과 팔에 목걸이와 팔찌가 치렁치렁 감긴 것을 보더니 금아수는 크게 웃었다.
“으하하하하하!”
“우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 재산이 축나니 슬픈 것도 사실이지만, 적어도 은공이 위선자가 아니란 사실이 기쁘오. 내가 아는 위선자들은 쓸데없고 하찮은 체면을 세우느라고 몇 가지 물건만 챙겨 나왔을 테지. 하지만 속은 얼마나 쓰리겠소? 나는 그런 위선자들은 딱 질색이라오. 욕심은 인간을 지배하는 가장 소중하면서도 중요한 감정이거늘.”
그는 욕심 예찬론자였다. 그 욕심 때문에 복건제일거부의 자리까지 올라설 수 있었을 테고.
“천잠사를 찢어 보자기를 만든 것도 정말 현명한 판단이었소.”
“감사합니다.”
“헤어지기가 아쉽구려. 술이라도 한잔하고 가시오.”
“보물을 옆에 두고 술을 마시는 성격은 아니라서요. 다음에 뵙지요.”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은공을 다시 찾아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그때까지 많이 벌어두십시오.”
그 말에 금아수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재물과 관련해서 솔직한 모습을 보일수록 그의 호감이 높아진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은공을 만나려면 어디로 찾아가면 되오?”
“중원 각지에 있는 서호객잔(西湖客棧)에 장주님 이름으로 기별을 남겨두면 제가 찾아뵙지요.”
서호객잔은 본교에서 운영하는 비밀연락소였다. 이렇게 필요한 연락을 받아, 본교의 중요 인물들에게 기별하는 역할을 했다.
“과연 은공께선 범상치 않은 사람이구려.”
금아수는 알 것이다. 비범한 사람들만이 이런 식으로 연락소를 운영한다는 것을.
“다시 뵐 때까지 보중하십시오.”
“은공의 무운을 빌겠소.”
그렇게 황금장주와 깊은 인연을 맺은 후 나는 그곳을 나왔다. 황금장주와 인연은 나로서는 결코 손해가 아니었기에 기분 좋게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 * *
나는 마을에서 마차를 구해 보물을 가득 싣고 교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황금과 보물을 나눠 팔았다. 한 곳에서 소화할 수 없는 수량이었기에 도시에 들를 때마다 여러 곳에 들러서 보석을 팔았다.
평생 중원을 헤매었기에 어디에 무엇이 있고, 어디에서 팔아야 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야명주와 피독주를 제외하고 모든 금붙이와 보석을 팔아치웠다.
그래서 장만한 돈을 가장 믿을 수 있는 중원전장(中原錢莊), 대륙전장(大陸錢莊), 풍운전장(風雲錢莊)에 나눠 맡겼다. 그렇게 내가 챙긴 돈은 무려 삼백팔십만 냥에 달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돈이었다.
‘고맙소, 황금장주. 그대는 모르겠지만, 이 돈은 앞으로 무림의 전설이 될 조직의 초석이 될 거요.’
삼백오십만 냥은 전장에 남겨두고 삼십만 냥만 전표로 찾아서 돌아왔다.
교로 돌아오자마자 천마전으로 가서 아버지부터 만났다.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천마전을 태산처럼 지키고 계셨다.
피의 길, 붉은 융단을 걸어가면서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아버지는 이곳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사마명의 보고를 들으며, 중요한 결정을 내리실 거다. 그 결정에 누군가는 살고, 또 누군가는 죽고.
과연 아버지는 이 삶에 만족하실까?
내가 그랬고 이안이 그랬듯, 아버지도 천마라는 자리로 떠밀렸던 것은 아닐까? 진정 원하는 것은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데.
“출교했다고 들었다.”
“돈 벌러 다녀왔습니다.”
“돈은 왜?”
“언제까지 아버지 돈 쓰고 살 수는 없잖습니까? 앞으로 많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고요.”
“어디에 쓰려고?”
“사조직을 하나 가지고 싶습니다.”
“사조직?”
아버지의 표정이 살짝 매서워졌다.
“마존들도 각자 수하들을 거느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을 상대하려면 저도 조직이 있어야지요.”
“안 될 일이다. 네가 가지면, 네 형도 가지려 할 테고. 마존들의 혈육이나 제자들도 가지려 들 거다. 불가!”
한 번에 허락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지 않았다. 당장 급한 일도 아니었고.
한 명 두 명 좋은 수하들이 모여서, 언젠가 물이 넘치게 되면 그때는 둑이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조르지 않았고, 아버지는 더 이상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돈은 많이 벌었느냐?”
“네, 많이 벌었습니다.”
내가 품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이거 아버지 겁니다.”
아버지가 손을 내밀자 내 손에 있던 봉투가 허공을 날아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더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빠른, 상승의 묘리가 담긴 허공섭물(虛空攝物)이었다.
아버지가 봉투 속을 확인했다. 든 것은 십만 냥짜리 전표였다.
“이게 무슨 돈이냐?”
“아버지 용돈입니다.”
“뭐?”
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저렇게 놀란 이유는 용돈으로 받기에 너무 큰 액수라서가 아니라 바로 용돈이란 말 때문일 것이다.
“나 돈 많다.”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돈 많은 분이신 것. 방금 드린 돈은 저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드리는 제 첫 용돈입니다.”
잠시 전표를 내려다보던 아버지가 불쑥 물었다.
“아부하는 거냐?”
“앞으로 낯간지러울 정도로 아부를 많이 하겠지만, 이 용돈만큼은 아닙니다. 한번은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럼 쉬십시오. 아버지.”
정중히 인사하고 피의 길을 걸어 나왔다.
아버지의 시선이 그곳을 나올 때까지 내 뒤통수를 뜨겁게 달구었다. 지금 몹시 당황하고 계실 것이다.
역대 천마 중 아들에게 용돈을 받은 첫 번째 천마가 되셨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