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63)
절대회귀-263화(263/424)
제263회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마교의 지단주가 표행 약탈의 배후에 있다?”
나와서는 안 될 이름이 나오자 검무극의 기도가 차가워졌다.
“여 단주가 이번 일이 커지지 않도록 뒤처리를 맡아주기로 했습니다.”
천마신교의 호남지단주인 그는 그런 약속을 할 수 있을 만큼 이 지역에서는 큰 권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가 개입했다는 증거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는 이런 일에 증거를 남기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제가 증인입니다.”
여소광의 이름을 내뱉는 순간 이엄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여소광을 버리고 자신이 살아남을 길을 찾아야 했다.
“네가 지단주를 모략하는 거라면?”
“그럼 절 죽이셔도 좋습니다.”
지금껏 보였던 태도나 간절한 저 눈빛으로 볼 때, 그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충격적이거나 놀라운 일은 아니다.
처음 회귀했을 때, 마군주를 생각하면 쉬운 일이다. 그는 마군을 사적으로 이용해서 부를 챙겼으니까. 지금까지는 내부를 단속했다면, 이제 외부도 단속해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이번 호남제일표국의 표행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게 되었지?”
“그쪽 표두 중에 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냐?”
“양대남입니다.”
한 번 열린 이엄의 입은 망설임이 없었다.
“이번 표행에서 약탈한 것부터 보자.”
“자, 따라오십시오.”
이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무거웠다. 어느새 단전의 내공이 제압된 것을 느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제압당했다.’
이엄은 그야말로 상대의 무공이 일반적인 고수의 경지를 훨씬 넘었음을 알아차렸다. 젓가락으로 일격에 혈수검을 죽인 것은 결코 혈수검이 방심해서가 아니었다. 어쩌면 이나 쑤시면 될 작은 나무꼬챙이로도 혈수검을 죽일 수 있었으리라.
‘여 단주보다도 훨씬 강한 고수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여소광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아니다. 마교의 지단주라면 큰 권력을 지닌 인물인데, 대체 이자는 누구기에?
이엄이 책장에 숨겨진 장치를 움직이자 벽이 돌아가며 비밀 공간이 나왔다.
그곳에 제법 큰 상자가 세 개 있었는데 안에는 금붙이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막상 그들이 강탈한 재물을 보자 검무극은 이엄과 여소광에게 화가 났다. 이번 일은 돈이 없는 자들이 한탕을 노리고 일을 저지른 것보다 더 나쁜 경우다.
두 사람 모두 가진 재산도 이미 많을 것이고, 이런 짓이 아니더라도 돈을 벌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특히 여소광쯤 되면 여기저기서 상납받는 돈도 꽤 많을 테고.
그런데도 이런 짓을 저질러?
검무극은 치미는 분노를 드러내지 않은 채 담담하게 물었다.
“이번 일을 혈수검 혼자서 해냈나?”
“양표두가 이동 경로를 미리 빼돌려주는 바람에 일이 쉬웠습니다. 미리 함정을 파고 기습을 가할 수 있었지요.”
“방법까지 치사했군.”
신나게 일러바치던 이엄이 입을 다물고 검무극의 눈치를 살폈다.
“너는 돈도 많으면서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거냐?”
“…….”
“대답 안 해?”
“돈은…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닙니까?”
“네가 번 돈이라면 그렇겠지.”
이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솔직히 말하고 싶었다. 어차피 먹고 먹히는 무림에서 뺏기는 놈이 병신 아니냐고. 너도 같은 생각이잖아? 이 위선자 새끼야!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검무극이 그곳을 나와서 복도에서 대기하던 적연에게 명령했다.
“지금 당장 이 지역 황천각, 통천각 책임자들 들어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엄은 깜짝 놀랐다. 여소광과 교류하면서 황천각이나 통천각이 마교의 핵심 조직이란 것쯤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 핵심 조직의 책임자들을 이렇게 막 부른다고?
그때 이엄의 시선이 적연의 가슴을 향했다. 처음 볼 때는 악귀만 보았다. 한데 이제 악귀를 둘러싸고 있는 방패도 보였다.
‘설마?’
이 상징 역시 언젠가 술자리에서 얼핏 들어본 적이 있었다.
‘천마전 호위대?’
이엄의 시선이 검무극을 향했다.
‘그렇다면 이자는? 서, 설마… 마교의 소교주? 으허허헉!’
이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잘못 걸려도 정말 잘못 걸린 것이다.
다리에 힘이 풀린 그가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살려주십시오! 귀하신 분을 몰라뵈었습니다.”
아무리 엎드려 빌어도 그를 향한 검무극의 눈빛은 차가울 뿐이었다.
이엄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정말 이곳을 담당하는 황천각과 통천각 마인들이 바람처럼 달려왔다.
검무극의 일 처리는 거침이 없었다.
먼저 책임자들에게 이번 사건을 설명했다. 그리고 호남지단 단주가 개입된 일이라 그쪽 마인들을 쓸 수 없어서 황천각과 통천각이 나서야 하는 상황임을 알렸다.
설명을 마친 후, 검무극은 황천각 특별조사관에게 먼저 명령을 내렸다.
“우선 약탈당한 표물과 혈수검의 시체를 호남제일표국에 돌려주고 상황 설명을 하게. 이번 표행의 정보를 빼돌린 양대남이란 표두도 처리하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이엄은 그 과정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검무극이 자신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저자는 본교로 보내서 뇌옥에 가둬.”
천마신교의 뇌옥에 갇힌다고? 이엄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안 됩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검무극이 무덤덤하게 되물었다.
“설마 이런 큰일을 저지르고 그냥 넘어갈 줄 알았나?”
“그래서 제가 다 실토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안 죽였잖아?”
이엄은 말문이 막혔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뇌물인데. 표물을 되돌려주라는 걸 보니 그것도 통할 것 같지 않았다.
검무극이 선택권을 주었다.
“좋아, 그럼 선택해! 우리 뇌옥에 갈래? 아니면 호남제일표국으로 갈래?”
이엄은 두 선택 모두 죽은 목숨임을 알았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저는 계획만 세웠을 뿐입니다!”
“너, 이런 일이 처음 아니지?”
“처음입니다.”
이엄의 목소리가 떨렸고 검무극의 시선을 마주 보지 못했다.
처음일 리가 있겠나? 혈수검이 끌려온 숙수들을 잔인하게 죽이는데도 그냥 지켜만 봤는데. 그 하나만 봐도 그의 삶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볼 때 셋 중에 네가 제일 악질이다.”
검무극이 망설이지 않고 주먹을 내질렀다.
퍼어억! 꽈직!
이엄은 가슴이 박살 나서 절명했다.
쿠르르릉!
주먹에서 들린 천둥소리에 그곳에 있던 모두는 깜짝 놀랐다. 마치 하늘에서 벌을 내린 것 같았다.
검무극이 명령을 계속했다.
“풍수산장은 해체하고, 거기서 나온 돈은 이번에 죽은 이들의 가족에게 모두 나눠주도록!”
“알겠습니다.”
희생된 이들의 가족을 위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꼭 그렇게 처리해야 하는 이유도 있었다.
“호남제일표국이 정파쪽 문파지?”
“네, 그렇습니다.”
지역마다 천마신교의 세가 강한 곳이 있고, 무림맹이나 사도맹의 세가 강한 곳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본단에서 가까운 지역일수록 세력이 강하고 멀수록 약해진다.
호남성은 천마신교의 위세가 강한 곳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의 모든 문파가 마교를 따르고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을 뿐 정파나 사파를 따르는 문파도 많았다. 이곳 호남성에도 엄연히 무림맹의 지단과 지부들이 있고, 사도맹도 마찬가지다.
“오해 없도록 무림맹에 기별하고. 여소광은 우리가 자체적으로 처리한다고 전하게.”
무림맹과 교류를 많이 하는 통천각이었으니, 알아서 잘 처리할 것이다.
“당분간 이 마을은 특별히 관리하도록. 내 호위의 모친께서 살고 계신 곳이니까.”
적연은 옆에서 검무극의 거침없으면서도 꼼꼼한 일 처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소교주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일 처리를 끝낸 검무극은 객방에서 쉬면서 기다리고 있던 화순에게로 갔다.
“다 끝났습니다. 이만 돌아가시죠.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싶습니다.”
그 말에 화순은 안도했다. 검무극의 밝은 표정에서 일이 잘 해결되었음을 느낀 것이다. 마지막까지 조마조마했던 심장이 이제야 가라앉았다.
“해드려야죠, 당연히 해드려야죠.”
“말씀 좀 편하게 하시라니까요.”
“그럴 수는 없지요. 이게 편합니다, 공자님.”
밖으로 나올 때도 호위 무인들은 화순을 보호하는 대열로 나왔다.
그렇게 마차에 도착했을 때 검무극이 삼호와 화순에게 말했다.
“마차엔 두 분만 타십시오.”
화순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아드님과 오붓하게 이야기 좀 나누시라고요. 자, 타세요. 출발합니다.”
검무극이 마부석에 올랐다. 삼호가 안 된다고 했지만 ‘명령이야’라는 한마디 말로 해결했다.
화순과 삼호를 태운 마차가 마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마차의 객실에서 화순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출교하고 들은 소리 중에서 제일 기분 좋은 소리였다.
검무극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워낙 어릴 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날이면 어머니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어머니, 아들들 안 싸우고 잘살고 있습니다.’
형과 피를 흘리지 않았던 후계싸움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한 마음이기도 했다.
마차가 화순의 객잔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린 화순은 자신의 객잔을 보자 비로소 무사히 돌아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검무극은 마치 아들처럼 그녀를 친근하게 대했다.
“어머니, 저희 배고픕니다!”
화순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검무극과 호위 무인들은 오랜만에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집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녀의 요리는 정말 맛있었다.
화순은 아들이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 모습 위로 어려서 동네 친구들과 집에 몰려와서 밥을 먹던 모습이 겹쳤다.
‘언제 이렇게 커서.’
그 꼬맹이였던 아들은 어느새 장정이 되어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있다. 그녀의 마음이 뿌듯해지며 감격스러웠다.
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운 검무극이 그녀에게 말했다.
“본교에 모시고 가서 매일 해주시는 밥을 먹고 싶습니다.”
그녀는 안도했다. 이런 좋은 상관을 모시고 있으니 아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녀가 새로 밥과 반찬을 더 가져다주었다.
“공자님은 특별히 한 그릇 더 드세요! 고기도 더 넣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검무극이 환하게 웃었다.
“다른 녀석들보다 아드님을 제일 아껴주겠습니다!”
검무극의 농담에 그녀도 웃었고 호위들도 함께 웃었다.
화순은 검무극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산장에서의 일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검무극 때문에 해결되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공자.’
* * *
검무극 일행은 그곳에서 나흘을 더 머물렀다.
원래라면 다음 날 떠나야 했지만 삼 년 만에 상봉한 화순과 삼호에게 시간을 더 주고 싶어서였다.
삼호는 밀린 효도를 실컷 했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가까운 절에 다녀오기도 했다. 오면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절경도 구경했다. 다리가 아픈 어머니를 삼호가 업고 걸었다.
마가촌에 가서 살지 않겠냐는 아들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고, 평생 살아온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흘 후, 검무극 일행은 화순과 아쉬운 이별을 하고 호남지단을 향해 마차를 달렸다.
잠시 쉬는 시간에 삼호가 검무극에게 왔다.
“고향 마을을 특별관리하라고 명령하셨다는 말씀 들었습니다.”
적연이 그에게 말해준 모양이다.
“당연히 그래야지. 앞으로는 어머니 좀 더 자주 찾아뵙고. 이것도 명령이야.”
삼호는 이번에 실감했다. 그간 바쁘다는 이유로 어머니께 너무 무심했었다는 것을.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베풀어주신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덕분에 어머니가 해주신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어봤다. 내가 더 감사하지.”
그렇게 휴식이 끝나자 적연이 직접 마차를 몰겠다고 마부석에 앉았다.
“최대한 빨리 달리겠습니다.”
“천천히 가자. 안 바쁘다.”
적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빨리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왜?”
“혹시라도 놈이 자신의 비리가 들통 난 걸 알아차리면 달아나버리지 않겠습니까?”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황천각과 통천각의 일 처리가 그렇게 허술하지 않았으니까. 적어도 우리가 도착하기 전까진 아무것도 알지 못하게 처리될 것이다.
“이번 일 때문에 지단주에서 물러난다고? 그럴 리도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건 그거대로 벌이 되겠지. 평생 후회하고 한탄하면서 살 테니까. 한데 그럴 리 없다.”
이엄은 여소광이 이번 일에 개입한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지레 겁먹고 달아날 리가 없다.
“다들 욕심이 그득한 인간들이라서 탐욕이라는 이 덩어리에서 멀어질 수가 없다.”
그렇게 마차는 천마신교 호남지단을 향해 느긋하게 달려갔다.
* * *
여소광은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편안하고 사람 좋은 인상이었기에 전혀 마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 장주에게는 아직도 연락이 없느냐?”
여소광의 물음에 그의 수족인 황표(黃票)가 대답했다.
“아직 없습니다.”
물건을 보냈다고 기별이 와야 하는데, 이엄에게선 감감무소식이었다.
“설마, 놈이 딴마음을 품은 것 아닐까요?”
여소광이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위인이 못 된다.”
게다가 이번에 사용한 칼이 혈수검이었다. 그 욕심 많은 놈을 쓴 것도 만에 하나 있을 우려 때문이다. 그놈 상대하기도 쉽지 않아 감히 딴마음을 품지 못할 것이다.
“소교주는?”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습니다.”
“기 싸움을 하자는 거다. 어려서 못된 것부터 배웠구나.”
“소문 들으셨습니까? 이번에 후계자가 된 이공자가 정말 비범하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당연히 비범하겠지.”
그럼에도 여소광은 여유로웠다.
“그래봤자…….”
아직 혈기 왕성한 젊은이일 뿐이다. 아무리 아닌 척 감추려 해도, 나이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치기가 있는 법. 달콤한 말로 그를 살살 녹여 버릴 작정이다.
일반 무인에서 지단주까지 어떻게 올라왔는지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
“그러니 어서 오시오, 소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