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75)
절대회귀-275화(275/424)
제275회 본교는 선택하지 말라니까.
당연히 검선이 들으라고 꺼낸 말이었다.
검무극은 자리에서 일어나 검선에게 정중히 포권하며 인사했다.
“앞서는 정식으로 인사드리지 못했습니다. 만나 뵈어서 영광입니다.”
검선은 예리한 눈빛으로 검무극을 살폈다.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만, 새삼 검무극의 눈빛과 기도에 감탄했다.
‘마공을 익혔음에도 이렇게 맑은 눈빛이라니? 실로 놀랍구나.’
검선의 시선이 검무극 뒤에 서 있는 혈천도마를 향했다. 앞서 혈천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바뀔 수도 있더이다.
그가 인생을 바꾼 것처럼 말한 것이 이 소교주를 두고 한 말이었을까?
검선이 나직하면서도 엄중한 어조로 다시 물었다.
“앞서 했던 말을 다시 해보게.”
“모르고 계셨으리라 예상했었습니다. 알고 계셨다면 묵인하고 계셨을 리 없겠지요.”
검선은 무림맹주 진패천의 부탁으로 진하군을 지켜주기 위해 따라나섰을 뿐, 그가 무슨 일로 나왔는지 알지 못했다. 애초에 관심도 없었고.
“앞서 했던 말이 사실이란 뜻인가?”
“그렇습니다. 저기 서청은 살육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지나가던 행인을 살해하고, 본교 무인도 죽였지요. 그 외 다른 희생자들도 있습니다. 마침 호남에 와 있던 제가 서청을 벌주려 했을 때, 무림맹이 그 일을 막고 나선 겁니다.”
검선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진하군에게 물었다.
“진 대주, 저 말이 사실인가?”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검선의 성격상 무림맹주의 손자가 아니라, 무림맹주라 할지라도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다.
진하군은 검무극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검선을 이용해서 빠져나가라는 뜻.
“사실입니다.”
순간 검선에게서 노기가 솟구쳤다.
진하군이 빠르게 덧붙였다.
“다만 한 가지 사실이 빠져 있습니다.”
진하군이 서청을 쳐다보며 말했다.
“서청의 죄에 대해서는 저도 합당한 벌을 주려 하고 있었습니다.”
진하군은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천화문과 손을 떼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란 것을.
“어떤 벌인가?”
“뇌옥에 가둘 작정이었습니다. 평생 갇혀 있어야겠지요.”
검선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진하군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나서자 급하게 핑계를 대는 것일 수도 있었으니까.
진하군은 당당하게 검선의 시선을 받았다. 사실 그렇게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었다. 그는 자신을 믿기로 했다. 어떻게든 벌을 주었을 거라고.
비로소 검선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래, 너라면 그럴 줄 알았다.”
검선은 진하군을 믿었기에 힘을 실어주었다. 어려서부터 봐온 진하군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고, 바른 아이였음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너를 믿는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더욱 증진하겠습니다.”
진하군은 천화문을 흡수하는 쪽으로 일이 진행되지 않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지금 생각해보니 욕심에 눈이 멀어도 제대로 멀었다.
물론, 그렇다고 검선의 분노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대상이 바뀌었을 뿐.
검선의 시선이 서청을 향했다. 쳐다보면 눈치껏 검선에게로 달려와야 하는데, 서청은 겁에 질린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서백중이 큰 소리로 불렀다.
“어서 오지 않고 뭘 하는 게냐?”
그러잖아도 화가 나 있는 검선이었다. 그의 심기를 잘못 건드렸다간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어서 오라니까!”
서백중이 버럭 소리치며 전음을 보냈다.
―검선께서 시키는 대로 해라. 와서 나 죽었다고 용서를 빌어!
―살려주십시오, 아버지! 저 뇌옥에 못 가요! 가면 저 죽어요.
―닥쳐라! 지금 어리광 받아줄 상황이 아니다!
서백중이 버럭 화를 내자 서청은 잔뜩 겁을 먹은 얼굴로 검선에게로 걸어왔다.
서백중의 다급한 전음이 진하군에게 날아들었다.
―말려주시오!
―검선께서 나선 이상 나도 어쩔 수가 없소. 문주도 알다시피 검선께선 맹주님의 친우이시자 평생 협행을 해오신 분이시지 않소?
―정말 이럴 거요? 그 사람이 이 일을 그냥 넘어가겠소?
서백중이 진하군의 사부를 언급했다.
확실히 사부는 진하군이 가장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검선이 나선 데다가, 진하군은 천화문에게서 손을 떼기로 마음먹은 후였다. 사부는 분명 자신의 결정을 이해해 줄 거라 믿었다.
―그분도 검선 어르신의 뜻을 거스르진 못하시오.
그러는 사이 서청이 검선 앞에 섰다.
검선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에게 물었다.
“아까 마교 소교주에게 들었던 말이 사실이더냐?”
서청은 뭐라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다시 서백중이었다.
죄가 없다면 아니라고 대답한 후 억울함을 하소연했을 터, 이 행동 하나만 봐도 그가 저지른 짓을 모두 인정하는 셈이었다.
서백중이 대신 나섰다.
“아직 조사 중인 사건으로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일입니다.”
그는 어떻게든 이 순간을 모면하려 했다. 진하군은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을 테니 그가 그렇다고 대답해 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검선이 물어본 상대는 검무극이었다.
“소교주, 이 사람의 말이 사실인가?”
“아닙니다. 이미 모든 죄악이 다 밝혀진 상태입니다.”
그러자 검선이 차가운 눈빛으로 서백중을 야단쳤다.
“감히 내게 거짓을 고하는 건가?”
뇌옥에 가두는 것도 못마땅한 검선이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인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단해온 것이 그의 삶이었으니까.
서백중이 잘못했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전음을 보냈다.
―어서 꿇고 빌어라!
그제야 서청이 무릎을 꿇었다. 그는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뇌옥만은 안 돼!’
서청이 검선에게 애원했다.
“제가 술에 취해서 실수했습니다. 그날 일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순간 검선의 표정이 더욱 차가워졌다. 잘못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고 실수했다는 말이 먼저 나온 것이다. 게다가 술 핑계까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검선은 서청이 어떤 사람인지 대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실수였다?”
“네, 실수였습니다.”
“그럼 다른 사람은 왜 죽였느냐?”
“그건…….”
뭐라 변명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들어 애원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왜 죽였느냐고 묻고 있다.”
서릿발 같은 질책에 서청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온통 백지장 같은 멍한 상태에서 서청의 마음 깊은 곳에서 한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살면서 남에게 가장 많이 사용했던 그것, 바로 분노였다.
서청은 화가 났다. 지금껏 누구도 자신을 이렇게 몰아세우지 않았는데.
다음 순간 그가 소리쳤다.
“죽이고 싶었으니까!”
순간 그곳에 정적이 흘렀다.
“사람을 죽였을 때 짜릿했으니까.”
서청이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며 더욱 크게 소리쳤다.
“당신들도 그 기분 알잖아? 당신들은 더 많이 죽였잖아? 왜 나만 가지고 그래!”
그곳에 있던 모두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에게 달려간 사람은 서백중이었다.
짝!
서백중이 사정없이 서청의 뺨을 후려쳤다.
“닥쳐라!”
“왜 때려요? 제가 틀린 말 했습니까?”
자신을 구하기 위해 때렸다는 것을 알 법도 했는데, 흥분한 서청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저 어르신은 왜 저를 벌주려는 겁니까? 이곳은 무림맹의 영역이 아니라 마교의 영역이지 않습니까? 벌을 받더라도 저 사람들에게 받아야지요!”
짝! 짝!
서백중이 서청을 사정없이 때렸다.
누굴 원망하겠는가? 자식을 이렇게 키운 자신 탓이지.
서백중은 느낄 수 있었다. 검선의 분노가 극에 달했음을. 이대로라면 검선이 서청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재빨리 비사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우린 사도맹과 뜻을 함께하겠습니다.
절박한 그의 전음에 비사인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 칼자루는 자신이 쥐었기 때문이다.
비사인은 검무극에게 감탄했다. 검선을 끌어들여서 일을 이렇게 끌고 가다니? 결과만 보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 같지만, 이 일은 아무나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서백중이 사도맹을 끌어들이려고 잠시 전음을 하는 사이, 그새를 못 참고 서청이 일을 벌였다.
그는 아버지에게 화가 났다. 어떻게든 자신을 구해줘야 할 사람이 혼자 살겠다고 입을 다물고 있는 것으로 오해했다. 자신을 때리기나 하고 말이다.
평소 혈육 간에 애정과 믿음이 없으니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결국 극단적인 생각만 들었다.
서청은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는 오해와 공포심에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었다.
“아버지도 사람들 죽였잖아요?”
당황한 서백중이 재빨리 검선에게 말했다.
“겁을 먹어서 아무 말이나 내뱉고 있으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서백중이 서청을 돌아보며 인상을 썼다.
―닥쳐라! 정말 이 애비까지 죽이고 싶으냐?
급한 마음에 한 말이었는데 실언이었다. 서청은 저 말을 ‘죽으려면 너만 죽어라!’라는 말로 해석했다. 서청이 발악하듯 소리쳤다.
“사독검(邪毒劍)을 독살해서 뒷산 대숲에 묻었잖아? 호남삼랑(湖南三狼)도 죽였고, 멸절검(滅絶劍)도 죽였잖아!”
순간 찾아온 정적.
나와선 안 될 이름이 나왔다. 호남삼랑과 멸절검까지는 정사지간의 인물이라지만, 사독검은 사도맹 소속의 무인이다.
서백중이 당황한 얼굴로 비사인을 쳐다보았다.
―실종된 사독검이 우리 서 문주 뒷산에 묻혀 있었군요.
―오해십니다.
―변명할 것 없소. 어차피 사독검은 내 쪽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럼 손을 잡아주시는 겁니까?
―아쉽지만 그건 곤란하겠소. 아무리 사파라도 우리에게도 자존심이 있지 않겠소?
사파 무인을 죽인 것을 알고서도 그들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보는 눈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검무극이 자신에게 호박을 넝쿨째 굴려줬는데, 데굴데굴 굴러서 자신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버리고 만 것이다.
결국 서백중은 자신에게서 제일 멀리 있던 줄에 매달렸다.
“우린 천마신교와 손을 잡겠습니다. 우릴 받아들여 주십시오.”
서백중은 전음을 보내지도 않았다. 지금 전음으로 상황을 조율할 여유가 없었다. 아들도 아들이지만 이제 자신의 목숨까지 위태로워진 것이다. 믿을 곳은 마교뿐이다.
그 모습에 비사인은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라며 탄성을 내뱉었다. 처음에 검무극이 마교는 절대 선택하지 말라는 말을 농담처럼 했을 때, 비사인은 결국 이렇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예감했다.
그리고 정말 그 일 일어났다.
“내가 분명 싫다고 말하지 않았소? 본교는 선택하지 말라니까.”
“제발 받아주시오.”
“싫다니까! 저기 당신 좋아하는 무림맹으로 가시오.”
“제발!”
“저기 사도맹 소맹주가 얼굴이 무섭게 생겨서 그렇지 사람은 좋소. 저리로 가시오.”
“신교에서 받아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서백중이 검무극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애원했다.
“이거 곤란한데.”
정말 비사인의 예상을 한 치도 빗나가지 않았다.
결국, 못이기는 척 검무극이 넌지시 말했다.
“좋소,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소.”
“말씀하십시오.”
“자제분은 뇌옥행이오. 천화문의 충성심이 변하지 않는 한 참형은 미뤄주겠소.”
용서가 아니었다. 천마신교의 뇌옥 생활은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을 안겨줄 테니까.
그 말에 서청이 기겁하며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살려달라고! 내가 왜! 그깟 하찮은 것들 몇 죽였다고 내가 왜! 아버지, 살려주세요!”
평생을 안하무인으로 살아왔던 그였지만, 이제 진짜 세상의 무서움을 맛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마구 죽이면서 왜 나는 죽이면 안 되는 거냐고!”
서백중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들놈은 사신이 귓가에 속삭이는 대로 소리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서청은 서백중에게도 악담을 퍼부었다.
“자식 버린 아버지가 세상에 어디에 있냐고! 그런 주제에 무슨 문파를 이끄냐고! 이 나쁜 놈아!”
두 사람 사이의 연이 완전히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서백중은 천화문을 위해서라면 이게 더 나은 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천화문은 앞으로도 잘 돌아갈 테고, 어쨌거나 아들은 살아 있고. 그럼 됐다.
서백중은 그렇게 마음을 다스렸다.
그때 지금껏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광섬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서백중을 불렀다.
“서 문주.”
서백중이 무심코 그를 향해 돌아서던 그 순간.
쇄애애애액!
서걱.
광섬이 단칼에 그를 베어버렸다. 워낙 쾌검이어서 그의 검은 보이지도 않았다.
아무도 그가 서백중을 죽일 거라 생각지 못했기에 모두 깜짝 놀랐다. 특히 아들인 서청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는 다음 차례가 자신이 될까 봐 사색이 된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광섬이 비사인에게 고개를 숙이며 짤막하게 말했다.
“사독검은 제 의제(義弟)였습니다. 명을 받지 않고 움직인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검무극조차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무심한 하늘이 세상에 관심을 둘 때면, 이렇듯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법이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검선이 혈천도마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 상황, 자네가 만들었나?
오늘 자리 내내 혈천도마가 전음을 보내고, 작전을 세웠다고 생각한 것이다. 검선에게 혈천도마는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이런 일로 혈천도마가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었으니.
검선의 시선이 검무극을 향했다.
―내가 오래 살아야겠군.
자신조차 검무극의 뜻대로 움직였음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참견하면 젊은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 못 듣소.
―괜찮네.
이렇게 천화문이 정리되었다.
서백중이 죽고 서청이 뇌옥에 갇히게 되면서 이제 천화문의 새로운 수장은 천마신교를 따르는 이가 올라서게 될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검무극에게 집중되었다.
오늘 검무극은 다 이뤄냈다. 천화문을 흡수했고, 서청의 죗값을 받아냈으니까. 실실 웃으며 긴장감 없이 서 있는 그가 이제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소문은 열에 아홉 과장되기 마련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만큼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남은 하나가 검무극이라고.
진하군과 비사인이 천천히 검무극에게 걸어와 원을 그리듯 마주 보고 섰다.
만남이 그러했듯, 무림 역사상 처음 있는 세 후계자의 첫 작별이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