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8)
절대회귀-28화(28/424)
제28회 출발하니까 꽉 잡아.
이 층에서 들려온 말에 양호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어떤 새끼야?”
그때 다시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지 확인하지도 않았는데, 대뜸 욕이라니?”
그러자 이번에는 여인의 말소리가 들렸다.
“이건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지요.”
여인의 목소리는 너무나 듣기 좋아서 옥구슬 구른다는 표현이 왜 생겼는지 알 수 있었다. 설령 이 여인에게 욕을 듣더라도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저 머리통 속에 대체 뭐가 들어서 저 모양일까?”
“가정교육이 잘못된 거겠죠.”
“부모가 방치해도 잘 크는 애들은 또 잘 큰단 말이지. 그러니 무조건 부모 탓을 할 수는 없지.”
“맞는 말씀이세요.”
평소라면 화를 미친 듯이 냈겠지만, 양호는 딴생각에 빠져 있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은 색념(色念)이 가득 차 있었다.
‘목소리만 봐서는 천하절색(天下絶色)일 것 같은데? 오늘 잘하면 뜨거운 밤을 보낼 수도 있겠구나!’
함께 있는 사내놈은 작살 내버리고, 여자를 취할 생각을 한 것이다.
이렇게 겁 없는 상상이 가능한 이유가 있었다. 마가촌의 객잔이나 주점, 기루 등은 그 신분이나 실력에 따라 주로 가는 곳이 정해져 있었다.
이곳 조춘배가 운영하는 풍류주점은 하류 무인들이 오는 곳이었다. 당장 자기 아버지는 물론이고, 심지어 그 수하들인 도귀들조차 오지 않는 곳.
그렇다고 이 마가촌은 지나가던 정파나 사파의 무인들이 들릴 곳도 아니니, 당연히 상대가 본교의 하류 무인이겠거니 단정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이 층의 대화는 다시 이어졌다.
“고작 백도귀의 자식이 대낮에 이런 횡포를 저지르는 것을 보니, 도귀의 위세가 가히 대단하구나.”
“혈천도마의 위세를 업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양호는 의아했다. 감히 아버지를 얕잡아 보는 것도 처음 겪는 일이지만, 상대는 혈천도마까지 언급하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어떻게 자랐을지 상상이 간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큰 거죠.”
듣고 있던 양호가 앞서와는 달리 점잖게 말했다.
“왕림하신 고인께서는 모습을 드러내셔서 이 아둔한 후배의 잘못을 짚어주시길 바랍니다.”
자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덧붙여 말했다.
“병신아, 이럴 줄 알았냐? 어떤 연놈들이 신비인 행세를 하는지 몰라도, 당장 대가리 안 내밀면 뒤질 줄 알아라.”
그러자 이 층에서 한 남자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새파랗게 젊은 모습에 양호의 긴장이 풀어졌다.
“너냐?”
“그래, 나다.”
“함께 떠들던 년은?”
그러자 이번에는 여인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의 모습에 양호가 소리를 질렀다.
“으악! 뭐야?”
“왜 그렇게 놀라시나요, 소협.”
“정말 너야? 너냐고!”
목소리의 주인공은 절세미녀가 아니라 뚱뚱한 여인이었다. 행복한 상상이 깨진 양호가 버럭 소리쳤다.
“이 잡것들, 뒈지기 싫으면 당장 내려와!”
* * *
“이만 내려가시죠.”
이안의 말에 술을 마저 비웠다.
이 층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 피해자의 부친인 곽수를 만나러 왔다가 생각지 못한 월척을 낚는 순간이었다.
내가 훌쩍 이 층에서 아래층으로 뛰어내렸다. 이안도 따라 뛰어내렸다. 뚱뚱한 몸이었지만 경신법으로 가볍게 내려섰다.
우리의 움직임을 보고 양호가 흠칫 놀랐다. 삼류 무인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움직임이 너무 날렵한 것이다.
난 쓰러져 있던 곽수를 일으켜 세워서 자리에 앉혔다.
“미리 개입하지 않아서 미안하오. 저놈 입이 방정을 떨 것 같아서 좀 기다렸소. 덕분에 자백을 받아냈소.”
“이 공자님?”
“오, 나를 알아보시는군요.”
“사실은 호위 분을 알아봤습니다. 교내에서는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내가 이안을 보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이게 말이 돼? 나보다 네가 더 유명하다니!”
“그게 어디 유명해서겠어요? 제 덩치가 너무 커서 금방 알아본 거죠. 쳇!”
우리의 대화에 양호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당신이…… 이 공자라고?”
“긴장 풀어. 오늘은 황천각주로 온 거니까. 아니구나, 그럼 더 긴장해야겠구나.”
온 세상이 제 것인 양 까불며 큰소리치던 양호의 목소리가 잦아들며 정중히 말했다.
“본교의 귀하신 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직 어려 무례를 범했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하는 짓 보니 하나도 안 어리던데?”
“아닙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놈입니다.”
양호가 머리를 바짝 조아렸다. 어린놈이 어찌나 영악한지 고개 숙여야 할 때를 귀신처럼 알고 있다.
“저는 이만 가봐도 될까요?”
“기다려. 네게 볼일이 있어 찾아왔으니까.”
“무슨 일이시죠?”
“이번에 네가 저지른 폭행 사건을 조사하러 나왔다.”
“이미 황천각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졌는데요?”
“이번 사건은 전면 재조사다.”
화들짝 놀란 양호에 반해 곽수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옆에 있던 조춘배가 움찔했는데 만세를 부르려다 흠칫 멈춘 것이다.
내가 양호의 죄명을 하나하나 짚었다.
“매일 돈을 뺏었으니 상습 갈취에, 돈 훔쳐 오라고 강요했으니 절도 사주, 폭행으로 친구를 사지에 빠뜨렸으니 살인미수, 그것도 모자라 피해자 아버지까지 찾아와서 폭행. 넌 죄질이 나빠도 너무 나쁘다. 뇌옥에 최소 이십 년은 들어가 있어야 할 거야.”
“이십 년이라고요?”
이십 년은 고사하고 이틀도 감당 못 할 그였기에 양호는 새하얗게 질렸다.
“아닙니다, 그냥 비무를 하다가 그렇게 된 거라고요!”
“늦었어. 넌 황천각주 앞에서 직접 자백했다.”
궁지에 몰린 양호가 지금껏 온갖 악행의 방패막이가 되어 준 사람을 내세웠다.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 아십니까?”
“안다. 백도귀인거.”
“내게 누명을 씌우면 우리 아버지가 그냥 있지 않으실 겁니다.”
“누명 같은 소리 하네. 정말 누명 한 번 씌워봐?”
내 기세에 놈이 움찔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네 아버지는 바빠서 널 돌볼 틈이 없을 거야. 네 아버지도 황천각 조사관 외압 혐의로 체포할 생각이거든.”
지금 이 상황의 압박감을 십대의 양호는 견디지 못했다.
“우리 아버지가 당신 그냥 두지 않을 거야. 뇌옥에서 나와서 당신에게 복수할 거라고. 아니, 뇌옥 안에서도 당신 죽일 수 있어! 그러니 잘 생각해야…….”
퍼억!
말이 끝나기 전에 내 주먹이 사정없이 놈의 배에 박혔다.
배를 부여잡으며 바닥에 주저앉은 양호에게 날벼락이 더해졌다.
“황천각주 협박죄까지 추가하면 삼십 년인데.”
양호가 공포에 질려 고개를 들었다.
“…… 안 돼요, 살려주세요!”
“인심 썼다. 그건 까준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좋아, 널 용서해줘야 할 이유를 한 가지만 대봐. 네 아버지 타령은 그만하고.”
“그게…….”
“사람 살린 적 있어? 누굴 도운 적은? 없어? 그럼 착한 일 비슷한 것이라도 말해 봐. 억지로 지어내기라도 해봐.”
“…….”
“지어낼 수도 없지? 해본 적이 없는 일이니 갑자기 지어내기가 어렵지. 이런 널 왜 용서해야 하지?”
“앞, 앞으로 착하게 살겠습니다!”
“그래, 뇌옥에서 죗값 치르고 나와서 그렇게 살아.”
휘이이익, 퍼억!
내가 놈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턱이 돌아가며 그대로 정신을 잃으며 쓰러졌다.
“각으로 이송해.”
여기서 반쯤 죽여줄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놈에게 진짜 지옥은 뇌옥에 이십 년간 갇혀 지내는 것이 될 테니까. 그냥 한 협박이 아니었다. 정말 형량을 이십 년 때려서 처넣을 작정이다.
본교의 뇌옥은 인권은 철저히 무시되는 지옥 같은 곳이었으니까. 장담하건대 이놈은 채 한 달도 못 버티고 자결하고 말 거다.
‘개과천선? 그럴 놈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악독한 짓을 하지도 않았겠지.’
입구에 있던 두 놈이 달아나려고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입구를 막아서는 무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서대룡과 황천각의 집행무인들이었다. 마군이나 되니까 개기지 본교의 그 어떤 무인들보다 무섭다고 알려진 그들이었다.
두 녀석이 오줌을 지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저희는 시키는 대로만 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벌도 벌이지만 우선 녀석들이 해줘야 할 역할이 있다.
“있는 그대로 불지 않으면 너희가 전부 뒤집어쓴다.”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치 증언하면 용서할 것 같은 어조로 말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증언을 받으면 이놈들 역시 뇌옥행이다. 악행을 주도한 양호보다야 형량이 적겠지만, 최소 오 년은 때려서 처넣을 작정이다.
이놈들을 본보기로 삼으면 앞으로 무관이나 학관에서 감히 동기를 괴롭히는 놈이 나오겠는가?
“취조실로 데려가서 진술받아!”
“네!”
집행무인들이 세 사람의 혈도를 제압한 후 교로 이송했다.
지켜보고 있던 손님 중 하나가 참지 못하고 박수를 쳤다.
짝짝짝!
그러자 나머지들도 일제히 환호했다. 조춘배가 하지 못한 만세를 불렀다.
아마도 내가 아니었다면 이런 반응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천마의 아들 아닌가? 환호를 질러도 괜찮은 상황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억울한 일 있으면 황천각으로 고하시오. 내가 황천각주로 있는 한, 어떤 외압도 통하지 않을 겁니다.”
박수가 더욱 크게 터졌다. 마존을 겁내지 않으니, 다른 어떤 외압이 통한다고 생각하겠는가?
마무리는 농담으로 했다.
“아까 그놈처럼 누가 아버지 불러온다고 겁주면, 나도 우리 아버지 부르겠소!”
사방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 수하 하나가 와서 내게 뭔가를 전했다. 그 기쁜 소식을 곧장 곽수에게 전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마의께서 아드님을 치료했습니다.”
“정말이십니까? 그 귀하신 분께서 제 아들 치료를요?”
“제겐 아드님이 더 귀합니다. 그리고 지금 막 깨어났다고 하니, 어서 가보시지요.”
“으아아아!”
너무 놀란 곽수가 비명을 질렀다.
“아! 동아, 동아! 살았구나! 우리 아들이 살았어!”
주점 주인 조춘배가 그를 부둥켜안았다.
“잘됐네, 잘됐어.”
두 사람을 아는 사람들이 몰려와서 축하해 주었다.
곽수는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큰절을 올리려는 그를 제지했다.
“그대는 평생 본교를 위해 헌신하지 않았소? 당연히 본교가 그대를 지켜줘야지요.”
평생 묵묵히 본교 어디선가 헌신해준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본교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거다. 지금의 본교는 이런 당연한 고마움이 사라지고 없다.
“본교가 그대에게 감사하오.”
내가 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내 마음이 진심임을 느낀 곽수가 눈물을 떨어뜨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서 아들 보러 가셔야지요.”
“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가 서둘러 아들을 보러 달려갔다. 주점 주인장 조춘배가 내게 말했다.
“언제든 오시면 술과 안주는 그냥 내어드리겠습니다.”
“고맙네. 다음에 와서 자네 술 한잔 얻어먹겠네.”
“그래 주시면 제가 영광입니다.”
조춘배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함께 있던 손님들도 모두 허리를 굽혔다. 그들에게 오늘처럼 통쾌한 일은 처음일 것이다.
그들마저 인사를 하고 물러나자 뒤에 서 있던 이안과 서대룡이 내게 걸어왔다.
서대룡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양호뿐만 아니라 그의 부친인 백도귀까지 체포할 테니, 다시 혈천도마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리게 될 것이다.
“괜찮겠냐? 또 난리 나겠지.”
“걱정됩니다.”
“이건 네가 가져온 사건이잖아? 도마의 큰 칼에 나를 묻으려고.”
“그렇긴 하지만요.”
서대룡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사건은 내놓지 말 걸 그랬나, 후회가 표정에 드러났다.
간절히 변화를 꿈꾸는 서대룡에게, 여전히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안에게 난 힘차게 말했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 했다. 그러니 마음 흔들리지 말고 정신줄 꽉 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