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89)
절대회귀-289화(289/424)
제289회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살아남았다는 기쁨에 두 마존의 존재감이 더해지자 진하령의 심장은 점점 더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대도를 차고 옆에 서 있는 혈천도마나 천천히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는 권마나, 두 사람 모두 정말 무서웠다.
‘이 사람들이 마존들이구나!’
지금까지 그녀에게 마교는 막연했었다. 무섭고 잔인하다고 말만 들었지 실제로 그녀가 접한 마교는 검무극이었다. 젊고 잘생기고, 농담 잘하고.
하지만 오늘 그녀는 진짜 마교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까이 다가온 권마의 얼굴은 정말 무서웠지만 진하령은 최대한 차분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다.
“목숨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두 마존과 이안 모두에게 전하는 고마움이었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그녀는 마존들이 두려웠지만, 자신을 구해준 두 사람이 싫지는 않았다.
마존들은 그저 고개를 한 번 끄덕였을 뿐, 목숨을 구해줬다는 생색을 내지 않았다.
오라버니가 들으면 미쳤냐고 야단치겠지만, 그녀는 이 마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졌다.
두 사람에게 인사한 후 진하령이 이안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도에 매달려 날아오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 있었다. 심지어 적들을 죽이면서 날아온 도였다.
그 마존에 그 이안이라고, 그녀 역시 목숨을 구해줬다는 한마디 생색도 내지 않았다.
이안은 진하령의 내공을 풀어주며 너스레를 떨었다.
“친구! 만나기로 해 놓고 약속 어기기 있어?”
진하령은 자신이 살면서 들었던 그 어떤 말보다 지금의 저 ‘친구’란 말이 깊이 와닿았다. 두 여인의 우정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순간이었다.
진하령은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래서 이 꼴이잖아? 볼 게 얼굴밖에 없는데.”
농담 반 자조 반 그녀의 대답에 이안이 뜻밖의 말을 했다.
“그럼 오늘부터 다른 걸 보여줘야지.”
진하령은 알 수 있었다. 이안은 자신의 저 아름다운 외모를 무기로 삼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저렇게 강한 것이고, 그래서 자신에게 아름답다고 말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말해주고 있다. 우리에게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그래, 오늘부터 호북일미는 없다. 호북제일검이 될 거고, 천하제일검을 향해 나아갈 거다. 앞으로 초림과 같은 자에게 죽을 위기를 맞는 일은 없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오늘 큰 교훈을 얻었다.
정말 간발의 차로 생사가 갈렸다. 만약 자신이 그냥 포기하고 죽으려 했다면, 이안과 마존들이 도착하기 전에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싸우려고 했기 때문에 살아날 수 있었다. 천운도 누군가를 정할 때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람 중에서 뽑는다는 것을 확실히 느낀 것이다.
바로 그때 빛처럼 빠른 무엇인가가 그들을 향해 쇄도해 날아왔다.
쇄애애애액.
검무극이 쾌속보로 그곳에 내려섰다. 어찌나 내려서는 자세가 자연스러웠는지, 애초에 이곳에 함께 있었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검무극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존들과 이안이 제때 도착해서 진하령을 구했음을 알 수 있었다.
“참 빨리도 온다. 이분들 아니었으면 난 이미 죽었어.”
진하령의 농담에 검무극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이분들과 친한 거야.”
검무극이 혈천도마와 권마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자신의 믿음은 정확했다. 믿음을 믿음으로 보답한 두 사람이었다.
“어깨에 힘 더 주셔도 됩니다. 정말 멋지십니다!”
“어디서 미적거리다 이제 오느냐? 늙은이 고생이나 시키고.”
하지만 혈천도마의 걱정스러운 시선은 검무극의 옷에 묻은 피에 가 있었다.
“늙은이 고생시킨 보람이 있는데요?”
“에끼 이놈아!”
그때 권마가 검무극에게 물었다.
“다쳤느냐?”
“제 피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권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며 비로소 진하령은 검무극이 마교의 소교주임을 실감했다. 마존들을 장악했다는 소문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악한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검무극을 향한 두 사람의 눈빛은 자신을 향한 할아버지의 눈빛이었고, 또 오라버니의 눈빛이기도 했으니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을 살려준 사람은 이안과 두 마존들이지만, 결국 검무극 덕분에 살아났다는 것을. 검무극이 아니었다면 이들은 움직이지 않았을 테니까.
“마인에게 두 번이나 목숨 빚을 지는 무림맹주 손녀라니! 난 완전히 망했어.”
그녀의 너스레에 검무극과 이안이 함께 웃었다.
검무극이 두 마존들에게 말했다.
“이안과 함께 안가에서 기다려주십시오. 전 무림맹에 진 소저 데려다주고 가겠습니다.”
“이제 다 끝났느냐?”
“아뇨, 가기 전에 한 가지 확인할 것이 남았습니다.”
무림맹주가 정말 목천가를 멸문시켰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패천이 그런 짓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누군가의 음모에 빠졌다면 또 모를 일이다.
검무극은 까마득히 멀리 보이는 무림맹을 바라보며 일전에 했던 농담을 진담처럼 했다.
“이번에는 정말 튀어요, 어르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 *
맹주전으로 진하군이 성큼성큼 들어왔다.
창가에 서서 밖을 응시하고 있던 진패천이 다급히 돌아섰다.
“어떻게 되었느냐?”
“멸마대를 동원해서 동호 일대를 샅샅이 수색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청룡단에서는 아직 연락 없었습니까?”
진패천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호단(飛虎團)은요?”
여전히 가로젓는 고갯짓. 무림맹의 정예들을 모두 풀어 사방팔방 아무리 찾아도 진하령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다.
납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백천경에게서 어떤 요구 사항도 없었다. 그야말로 걱정에 속이 타들어 가는 중이었다.
“차라리 무림에 공개하시죠.”
지금은 비밀리에 찾고 있어서 수색에 제한이 있는 상황, 차라리 공개 수색을 해버리면 목격자가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패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림맹주 손녀를 납치할 정도로 간이 큰 놈들이다. 누군가의 눈에 띄었을 리도 없었고, 괜히 섣부르게 공개했다가 사도맹이나 다른 악인들까지 개입할 수도 있었다.
진하군은 할아버지의 입에서 ‘이게 다 너 때문이다!’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속 좁은 네 기우에 불과하다는 듯, 진패천은 일절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궁지에 몰렸다고 그 책임을 남에게 미루는 사람이 아니었다.
“검무극에게선 아직 연락이 없습니까?”
진패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은 점점 검무극이 마지막 희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진하군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정말 내가 속은 것은 아닐까?’
이 모든 것이 검무극의 음모였다면?
검무극의 손아귀에 붙잡혀 있는 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동생을 잡아간 후, 언젠가 결정적일 때 자신을 협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을 잃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 세상 유일하게 자신과 말이 통하는 사람이 동생인데.
살면서 한 번도 동생을 잃을 거란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일이 현실이 되니까, 두려운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만약 동생을 잃게 된다면?
앞으로 자신의 인생 또한 크게 바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 진패천은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자신만이 구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진하군은 할아버지가 검무극을 믿고 있음을 느꼈다.
멸마대 임무 중에 동생이 납치됐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을 때, 그때의 할아버지는 검무극을 믿지 않았다.
누구 소행이냐고 물었을 때, 그때 이렇게 대답했었으니까.
―검무극이거나, 백천경이거나.
그리고 자신을 빤히 응시하며 할아버지는 물었다.
―너는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때만 해도 검무극을 완전히 믿지 않았고 무림맹 무인들이 찾아낼 거란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할아버지는 검무극을 믿고 있었다. 믿어서 믿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상황이 절망적이기에 믿는 것이다. 세상 누구보다 강한 분이지만, 손녀의 생사가 걸리자 평범한 할아버지가 되었음을 느꼈다.
“저는 다시 찾아보고 오겠습니다.”
진하군이 나가려던 그때, 맹주전 무인이 달려와서 보고했다.
“하령 아가씨가 돌아왔습니다.”
진패천과 진하군은 깜짝 놀랐다.
태사의에서 벌떡 일어난 진패천이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곧이어 그곳으로 진하령이 들어왔다.
그녀가 먼저 걸어왔고, 그 뒤를 검무극이 뒤따라 들어왔다.
“할아버지!”
진하령이 달려가서 진패천에게 안겼다. 할아버지를 보자 눈물이 쏟아졌다. 그녀는 이번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니 자신의 인생에서 할아버지의 존재가 얼마나 컸는지 새삼 실감했다.
“다친 곳은 없느냐?”
“전 괜찮아요.”
얼굴과 몸이 상했지만 내상을 입지는 않았다.
“잘 왔다, 잘 돌아왔어.”
진패천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철의 심장을 가진 그였지만, 무사히 돌아온 손녀를 보자 마음이 울컥했다. 얼마 만에 흘리는 눈물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진하령은 진하군과도 재회했다.
“오라버니.”
진하군이 동생을 꼭 안아주었다.
“미안하다.”
이 모든 것이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자신이 사부를 의심하면서 시작된 일이었으니까.
“오라버니가 왜 미안해? 칠칠치 못하게 붙잡혀간 내 잘못이지.”
“그런 말 말아라.”
그렇게 서로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제대로 알려준 재회가 끝이 나자, 진패천과 진하군의 뜨거운 눈빛이 검무극을 향했다.
진하령을 구한 일은 두 사람에게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것보다 더 큰 일이었다.
“하령이를 구해줘서 정말 고맙네.”
진패천이 정식으로 포권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검무극도 정중히 예를 갖추며 대답했다.
“진 소저는 맹주님의 손녀분이기도 하지만 제 친구기도 합니다. 너무 개의치 마십시오.”
목숨 빚은 목숨을 구하는 것으로 갚는 법, 진패천은 언젠가 한 번은 검무극의 목숨을 구해주리라 마음먹었다.
한편 진하군은 잠시라도 검무극을 의심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난 아직 멀었다.’
예전이라면 수치심과 열등감으로 끝났겠지만, 이제는 달랐다. 더 노력하고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무극은 이 순간에도 자신을 자극하고 있는 걸 보니, 정말이지 존재 자체가 자극이라 할 사람이었다.
“우선 가서 치료부터 받고, 쉬어라. 밀린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그리고 자넨 잠시 나와 이야기 좀 하고.”
진하군과 진하령은 할아버지가 검무극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검무극과의 대화는 나중에 나눠도 되었기에 두 사람은 순순히 물러났다.
“네, 할아버지.”
진하군과 함께 걸어가다가 진하령이 돌아서며 말했다.
“할아버지를 다시 봬서 정말 기뻐요.”
진패천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이를 다시 보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렇게 맹주전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백천경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나?”
“죽었습니다.”
손녀가 돌아왔으니 당연히 그렇게 되었으리라 예상했지만 검무극에게 직접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왜 하령이를 납치했다고 하던가?”
그러자 검무극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흘러나왔다.
“백천경은 목천가주의 동생입니다.”
순간 진패천은 두 눈을 부릅떴다.
그가 어찌 목천가에 대해 잊을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모두 죽었네.”
“아닙니다. 단 한 사람, 가주의 동생이 살아남았습니다.”
“그도 죽은 걸로 알고 있네.”
“죽음을 위장했습니다.”
진패천은 이제야 백천경의 이중적인 모습이 이해되었다. 설마 이 모든 일이 아들의 죽음과 관련이 있었다니?
그리고 오늘의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나왔다.
“맹주님께 여쭙겠습니다. 목천가를 멸문시킨 것이 맹주님이십니까?”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검무극은 이 침묵이 그 일을 시인하는 침묵이 아니라 생각했다. 만약 진짜 그 일을 저질렀다면, 이런 의심받을 만한 침묵에 빠질 리가 없다. 이 침묵은 사연이 있는 침묵이다.
이윽고 진패천은 짤막한 탄식을 내뱉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날 복수를 위해 그들을 찾아갔다네. 가족의 복수였으니, 홀로 갔지.”
마치 그날의 광경이 생생히 떠오르는 듯 그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내가 도착했을 때, 그들은 모두 죽은 후였네.”
진패천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죽은 내 아들과 며느리를 두고 맹세하네. 나는 그들을 죽이지 않았네.”
명예를 중시하는 그가 아들을 걸었다는 것은 그의 말이 사실이란 의미다. 그만큼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의 일은 진패천에게 하나의 큰 상처로 남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정신이 번쩍 들더군. 복수를 위해 미친놈처럼 달려왔던 내가 그 광경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아나?”
잠시 사이를 두고 진패천이 긴 한숨에 그날의 감정을 실었다.
“다행이라 생각했네.”
검무극은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무림맹주인 내가 다행이라 생각했다고. 만약 이 일이 먼저 벌어지지 않았다면 내가 이런 짓을 저질렀을 수도 있었겠구나, 정말 그런 생각을 했었다네. 무고한 죽음을 애도하고 분노했어야 할 내가!”
진패천이 인상을 굳혔다. 괴로움이 그의 표정에서 묻어났다.
“맹주님은 그들을 멸문시키지 않으셨을 겁니다.”
진패천이 빤히 검무극을 쳐다보며 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아니, 모를 일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어디까지 갈지 어찌 단정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검무극은 단호히 말했다.
“네, 맹주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니까요.”
진패천은 다시 긴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의 패도적인 그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만큼 이 일은 그의 인생에서 큰 상처로 남은 일임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멸문시켰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그 모습을 보면서 다행이라 생각한 자신에게 실망하면서, 그는 내내 괴로워했을 것이다. 평생을 협의로 살아온 그였기에 그 상처는 남들보다 더욱 깊었으리라.
검무극이 다시 한번 앞의 말을 반복했다.
“맹주님은 그러지 않으셨을 겁니다.”
진패천의 눈동자가 떨렸다. 이 순간 그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아주 오랫동안 누군가에게서 이 말을 듣고 싶었다고. 그래서 이 말을 하고 싶었다고.
‘그래, 나는 그러지 않았을 거네.’
진패천은 깊어진 눈빛으로 검무극을 바라보았다.
“왜 나를 이렇게까지 믿는 건가? 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네, 맹주님에 대해서 잘 모르죠.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지 않습니까?”
검무극이 차분히 덧붙였다.
“맹주님이 그러지 않았을 분이셨기에 제가 홀로 무림맹 한가운데 서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