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98)
절대회귀-298화(298/424)
제298회 이놈들아! 여기 이분은.
천마신교 강서지단주 호경(護景)은 책상에 쌓인 서류를 하나씩 살펴보고 있었다.
호경이 하루 중 가장 많이 하는 일은 각 지부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꼼꼼히 살피는 일이었다.
그때 그의 집무실로 마검대주 중악이 방문했다.
“바쁘십니까?”
“어서 오세요, 기별도 없이 어쩐 일이시오?”
“단주님 뵙고 싶어서 들렀지요.”
“잘 오셨소.”
한쪽은 뒤를 캐고 있고, 다른 한쪽은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평소보다 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중악이 책상에 쌓인 서류뭉치를 보며 말했다.
“이래서 원성이 자자했군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단주님께서 워낙 꼼꼼히 일 처리를 하시니, 아래에서 실무를 보는 자들이 힘들어한다는 불평이 있습니다. 수하들 사기도 좀 챙겨주시지요.”
중악은 웃으면서 농담처럼 말했고 호경은 담담히 대답했다.
“화를 당하는 이유 대부분이 작은 일을 살피지 못해서가 아니겠소?”
“우리 단주님께서 계시는 한 사도맹 놈들은 감히 도발할 생각도 못 할 겁니다.”
“그게 어디 저 때문이겠습니까? 우리 대주님과 마검대 덕분이지요.”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두 사람 모두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참, 요즘 본교를 사칭하고 돌아다닌다는 자에 대해 소문 들으셨습니까?”
“나도 들었소. 그 일을 조사해 보라 명령을 내린 상태요.”
“저도 사람을 풀어 알아보니 소문이 아니라 사실인 모양입니다.”
호경의 표정이 절로 심각해졌다. 신교 사칭은 본단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사안이었다.
“혹 그자가 누군지 아시오?”
“정체는 모르지만, 그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자가 있습니다.”
“정보를 주시면 수하들을 보내 붙잡아오겠소.”
“그렇게 쉽게 생각하실 게 아닙니다. 놈이 상당한 고수라고 합니다.”
호경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고수가 본교를 사칭한다? 이상한 일이군요.”
“붙잡아와서 조사해 보면 알겠지요. 한데 지단에서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호경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교묘한 화법이었다. 너희가 감당할 수 없으면 우리가 해결하겠다.
“우리가 처리하겠소.”
도발에 넘어가서가 아니라 원래 강서지단주인 자신이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지단에서 해결이 안 될 때, 마검대에 도움을 청해야 하고.
“수하들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중악이 직접 방문한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그가 직접 나서지 않고 수하들만 보내서 처리할까 봐.
“내가 직접 수하들을 데리고 움직이겠소.”
“아, 단주님께서 직접 움직이신다면야 안심입니다.”
중악은 내심 생각했다.
‘당신 약점이야. 그 헛된 자존심 말이야.’
만약 자신이었다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이런 위험한 일을 처리하라고 마검대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제 비선을 통해 놈을 끌어들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지요.”
밖으로 나가려던 중악이 웃으면서 덧붙였다.
“이번 일 마치면 한잔하시지요.”
“좋습니다.”
호경도 좋은 얼굴로 중악과 작별했다.
‘그 술자리가 당신 마지막 자리가 될 거다.’
중악이 뇌물을 챙긴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어쩌다 한두 번 정도였다면 눈감아줬을 수도 있다. 마검대는 이곳 강서지단에 꼭 필요한 중요한 정예조직이었으니까.
하지만 주기적으로 상납받는 곳이 너무 많았다. 그 액수도 너무 컸고. 어느 정도여야 눈을 감아주지. 마치 이런 느낌이었다. 내가 부정을 저질렀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렇다고 나를 자를 거야?
‘당신 모가지 내가 잘라주지.’
돌아서 나가는 중악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진짜 목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 * *
“드디어 마교에서 움직이기로 결정 났다.”
적패의 말에 주양은 흠칫 놀랐다.
검무극이 죽게 되었으니 속이 후련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너는 내일 놈을 서쪽에 있는 폐사찰로 데려와라. 할 수 있겠나?”
“할 수 있습니다. 한데 저는 괜찮은 겁니까?”
“내가 잘 말해뒀으니 그곳에 도착하면 그들이 너를 챙겨줄 거다.”
“알겠습니다.”
“실수하면 우린 다 죽는다. 명심하도록!”
그날 밤 주양은 꿈을 꿨다.
바다에 누워 둥둥 떠 있는 꿈이었다. 따스한 햇볕에 행복하게 잘 떠 있었는데.
문득 검무극이 마인들에게 난도질당하는 상상을 하는 순간 몸에 힘이 들어가면서 가라앉았다.
허우적거리다 침상에서 떨어졌고 아침까지 잠들지 못했다.
* * *
주양이 검무극을 찾아갔을 때, 그는 객잔에서 누군가와 만나고 있었다.
이곳 객잔에서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주양은 유심히 그들을 살폈다. 상대방 남자가 검무극에게 서찰 같은 것을 건넸다.
검무극이 내용을 유심히 살피더니 상대에게 몇 마디 건넸다. 이럴 때 보면 너무 진지해 보여서 정말 마교 소교주라도 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서찰을 건넨 상대가 객잔을 나섰다. 입구에 서 있던 주양은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남자를 슬쩍 쳐다보았다. 그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주양이 검무극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구요?”
“통천각에서 나온 사람이오.”
“통천각?”
“천마신교 최고의 정보조직이지.”
“당신은 또 만나자마자 허풍이군!”
주양은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저 최고라는 정보원과는 대체 무슨 대화를 나눈 거요?”
“강서지단에 대해 알아본 거요. 지단주에 대해서도, 마검대주도 알아보고.”
두 사람이 언급되자 주양은 움찔했다.
“진짜면 그 서찰 나도 한 번 봅시다.”
검무극이 서찰을 든 손을 내밀었다. 주양이 그것을 받아 들려는 순간.
화르르륵.
서찰은 검무극의 손에서 불길이 오르면서 타버렸다.
“본교 기밀을 봤다간 당신은 살아남을 수 없소.”
놀란 주양은 재가 되어 날아가는 종이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들어본 적 있다. 진짜 고수들이 삼매진화로 이렇게 종이를 태워버린다는 말을.
“이제 내 진정한 신분이 믿어지오?”
그렇다는 대답을 기대했는데.
“이렇게 고수면서 왜 미친 거요?”
검무극은 날아오른 재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웃었다.
“당신을 믿게 하려면 마존들을 내 뒤에 줄 세워야겠소.”
주양은 말없이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그럴 기회는 없을 거요. 오늘 당신은 죽으니까.’
검무극도 주양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잠을 잘 못 주무신 것 같소. 고민이라도 있소?”
이제 주양은 귀신같이 알아맞히는 검무극이 놀랍지도 않았다.
“오늘 나와 갈 곳이 있소.”
“갑시다.”
검무극이 흔쾌히 따라나서자 오히려 주양이 당황했다.
“어디 가는 줄 알고 가자는 거요?”
“가보면 알겠지.”
“내가 함정이라도 파뒀으면 어쩌려고? 나 무시하는 거요? 네 함정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가 아니오. 날 죽이면 내 이자를 못 받지 않소? 당신은 돈을 받아내는 사람이지, 목숨을 받아 가는 사람이 아니지 않소?”
뜻밖의 대답에 주양은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정말 말이나 못 하면.”
주양이 앞장서 걸었고 검무극이 그 뒤를 따라나섰다.
주양의 마음은 복잡했다. 이 이상한 사람과의 관계도 조금 있으면 끝이다. 이제 영원히 이 미친놈을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주양이 힐끗 검무극을 돌아보았다. 죽으러 가는 줄도 모르고 장사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여유롭게 따라오고 있었다.
“저기 저 옷, 당신에게 잘 어울릴 것 같소. 한 벌 사드릴까?”
“그 돈으로 이자나 잘 갚으시오. 젠장! 헛소리 말고 따라오기나 하시오.”
왜 이렇게 신경질이 나는 거지?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은 검무극을 죽이고 싶지 않은 거다. 실없이 웃고 있는 저놈이 뭐가 불쌍하다고!
주양은 문득 동전이 떠올랐다.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주던 그 동전이. 그래, 자신의 손을 망가뜨리지 않은 고마움에서 비롯된 감정이겠지.
저잣거리를 벗어나 갈림길에 도착하자 주양이 발걸음을 멈추고 길가 바위에 앉았다.
“쉬었다 갑시다.”
“당신도 체력단련 좀 해야겠소. 만날 앉아서 돈이나 세고 있으니, 몸이 그 모양이지.”
검무극이 그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잠시 말없이 앉아 있던 주양이 불쑥 물었다.
“당신이 진짜 마교 소교주면… 대체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요?”
잠시 사이를 두고 검무극이 말했다.
“보다시피 사람들을 만나고 있소. 자식 치료비로 빌린 열 냥 때문에 평생 당신들에게 붙잡혀 사는 마부도 만나고, 그 사람에게 대롱을 꽂고 피를 빠는 당신도 만나고, 그 사람 구하려고 담을 넘어 뛰어든 이름 모를 협객도 만나고.”
그 말을 듣고 있는데 주양의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심장이 떨릴 말이 전혀 아닌데, 검무극과 함께 있다 보면 이렇게 심장이 떨리는 경험을 하곤 한다.
“마인이 왜 염왕채를 바로 잡으려 하오? 정파인들도 두고 보는걸. 당신은 마인이잖아!”
“정파인 중에 인면수심이 있을 수 있고, 마인 중에서 그런 꼴 못 보겠다 하는 마인이 있을 수도 있고. 뭐 그런 거 아니겠소? 그리고 어차피 염왕채 일은 내가 아니라 앞으로 당신이 해나갈 일이오.”
“나 같은 놈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한단 말이오. 당신 말마따나 평생 앉아서 돈이나 세고, 상대가 불행해지는 모습이나 즐기던 인생인데. 그런 거창한 일을 어떻게 한단 말이오?”
“거창한 일 아니오. 정상적인 일이지.”
검무극은 차분히 그를 응시했다.
“송충이 같은 인생을 살아봤으면, 이제 훨훨 나는 인생도 살아보시오. 나비는 못 되더라도, 나방은 될 수 있지 않겠소?”
이 순간 주양은 그가 진짜 마교 소교주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형벌일지라도,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단 한 번 오는 기회일진대.
그랬기에 더 화가 났다. 그는 마교 소교주가 아니었으니까. 마교 소교주가 한낱 사채꾼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진 않을 테니까.
“미친 소리 이젠 듣기 싫소! 이 길로 여길 떠나시오!”
주양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 길로 떠나서 두 번 다시 강서성에는 오지 마시오. 다시 오면 당신은 죽어.”
주양은 이 미친 고수를 살려주려고 마음먹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남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었다. 평생 이기적으로 자신을 위해서만 살아온 인생이었다. 왜 하필 딱 한 번 베푸는 호의의 대상이 이런 미친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가는 걸 어쩌겠나?
“당신 죽일 사람들 기다리고 있소. 그러니 가시오. 당신이 함정임을 눈치채고 멀리 달아나 버렸다고 할 거요. 믿어줄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를 위해 이런 위험을 감수한 적은 또 있었던가? 단연코 없다.
“왜 알려주는 거요?”
“당신처럼 이상하게 미친 사람을 처음 봐서 그런 것 같소.”
그러자 검무극이 이유를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가 아닐 거요.”
검무극은 주양의 속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당신이 정말 이기적이면서도 생존력이 강한 사람이라 그렇소. 당신 본능이 아는 거요. 이래야 산다는 것을.”
“당신은 정말! 호의를 베풀어도! 진짜 마인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알고 있소.”
“알고 있다고?”
“아까 보고 받는 거 보지 않았소? 현재 강서지단 움직임은 내가 훤히 들여다보고 있소.”
주양은 이제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렇지. 이래야 진짜 미친놈이지. 완벽하오, 당신.”
“그리고 당신 혼자 가면 죽어.”
검무극이 먼저 일어나서 걸음을 옮겼다. 왠지 그 말이 섬뜩하게 들렸기에 주양은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무리한 호의였으니까. 언젠가 오늘을 돌아보겠지. 그때 그 미친놈은 내가 살면서 유일하게 살려주고 싶었던 자였다. 이렇게 시작되는 회상이리라.
그렇게 두 사람이 약속 장소인 사찰에 도착했다.
그들이 사찰 앞마당에 들어서자 매복해 있던 수십 명의 강서지단 마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일제히 검을 뽑으며 마기를 드러냈다.
마인들 사이에서 지단주 호경이 걸어 나왔다.
“그대는 무슨 이유로 마인이라 사칭하고 다닌 것인가?”
호경은 검무극을 알아보지 못했다. 예전에 만난 적이 있었지만, 검무극이 어렸을 시절, 오래전 일이었다. 이후 호경은 중원의 여러 지단을 돌았기에 다시 검무극을 볼 기회가 없었다.
“사칭하고 다닌 적 없소.”
호경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다.
“이미 증인이 있거늘.”
호경은 검무극과 함께 있던 주양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자가 본교를 사칭했나?”
싸늘한 질문에 주양은 당황했다. 예상했던 상황이 아니었다. 적패가 그랬다. 자신이 도착하면 알아서 챙겨줄 거라고.
저 질문도 그렇고 날아드는 마기도 그렇고, 어디에도 자신을 위한 배려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마인을 사칭하는 자의 동료쯤으로 보고 있었다.
‘빌어먹을!’
분노의 대상은 적패였다. 그는 자신을 챙기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이 검무극과 너무 가깝게 어울리는 것을 보면서, 그냥 함께 죽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내 뒤에 딱 붙어 있으시오. 눈먼 칼에라도 맞으면 억울하지 않겠소?”
이곳에서 자신을 생각해주는 사람은 검무극 밖에 없었다.
“본교를 사칭한 자가 저자가 맞느냐고 물었다!”
호경이 재차 묻자 주양은 대답 대신 검무극에게 말했다.
“통전소와 결탁한 마인은 저 사람이 아니오.”
그 말에 호경까지 긴장하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통전소와 결탁한 사람은 바로…….”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 지붕 너머에서 이쪽으로 훌쩍 날아와 내려섰다.
그는 바로 마검대주 중악이었다. 건물 지붕과 사방 담벼락 위로 마검대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호경까지 놀랐지만, 중악은 차가운 마기를 흘리며 주양에게 집중했다.
“통전소와 결탁한 마인이 누구냐?”
주양은 중악이라고 밝히는 순간 자신은 무조건 죽게 될 것이다. 아니, 여기서 밝히지 않더라도 결국 죽게 될 것임을 예감했다.
공포에 질려 있던 그때 검무극이 품에서 동전 두 개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치 이자를 주지 않았소. 받으시오.”
동전 두 개가 주양의 손바닥 위에 올려졌다.
말없이 그것을 내려다보던 주양이 동전을 다시 검무극에게 건넸다.
“이자가 너무 많소. 이미 낸 이자만 해도 원금을 다 갚고도 남았소.”
검무극은 그를 보며 활짝 웃었다.
주양은 일평생 발휘하지 않고 고이 모아두었던 용기에, 죽을 때까지 발휘할 모든 용기까지 다 발휘했다.
“통전소 수장인 적패에게 뇌물을 받고, 당신을 죽여주겠다고 한 사람은 바로 저 사람 마검대주요.”
중악의 몸에서 차가운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그곳을 둘러싼 마검대의 마인들 역시 마기를 뿜어냈다.
어차피 죽을 목숨! 주양은 폭주하는 마차처럼 목청껏 소리쳤다.
“이놈들아! 여기 이분은 천마신교 소교주님이시다! 모두 무릎을 꿇고 숭배하라!”
아, 난 이렇게 미친놈으로 죽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