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0)
절대회귀-30화(30/424)
제30회 칼이 우는 이유는.
집행무인들을 거느리고 나간 서대룡이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양태가 체포에 불응했습니다. 남도종 영역에서는 도귀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습니다. 억지로 끌고 오려 했는데 놈의 수하들이 나서는 바람에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백도귀이니 직속 수하만 백 명이었다. 그가 불응한다면, 체포가 쉽지 않은 상황.
사기가 오를 대로 오른 조사관들은 흥분했다.
“우릴 무시하는 짓입니다.”
“집행무인 전부를 데려가서라도 강제로 체포해야 합니다.”
곡명은 젊은 조사관들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신중론을 펼쳤다.
“신중히 처리하셔야 합니다. 도귀와 충돌이 일어난다면 집행무인들이 많이 다칠 겁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조사관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오가는 와중에 난 서류 한 장을 그들에게 내밀었다.
“자, 이걸 놈에게 보내.”
“헉!”
내가 보여준 것은 소환장이었는데, 모두가 놀란 이유는 내가 거기에 적은 죄명 때문이었다.
반란죄.
“체포에 불응했다고 반란죄가 적용됩니까?”
고참인 곡명조차 알지 못하는 내용이었다.
“돼. 우린 교주님이 직접 임명한 직이고, 백도귀는 혈천도마가 임명한 직이다. 우리 명령과 혈천도마의 명령은 상충할 수 없다. 결국 놈은 교주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과 같아. 직접 갈 것도 없다. 인편으로 소환장 보내면 제 발로 달려올 거다.”
그는 올 것이다. 까닥 잘못했다가 도귀 전체에 반란죄의 불똥이 튀면, 그는 도귀들 손에 죽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소환장을 받아든 서대룡이 곧장 달려나갔다.
과연 소환장이 전해지고 채 반 시진이 지나지 않아서 양태가 직접 황천각에 출두했다.
‘반란죄’라는 말은 아무리 성질이 더러운 상대라도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였다.
하지만 그를 여기까지 오게 할 수는 있었지만, 자백하게 할 수는 없었다.
조사관들이 심문을 시작한 지 한 시진이 지나도록 놈은 종화의 여동생을 죽이겠다고 협박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예상했던 바였기에 내가 직접 조사실로 들어갔다.
양태는 내공이 제압당한 채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내가 들어가자 움찔 놀랐다. 아무리 백도귀의 기세가 좋다지만, 마군주를 벤 요즘의 내 기세에 견줄 수는 없었다.
“이공자님.”
“이공자가 아니라 황천각주라 부르셔야지요.”
“제가 결례했습니다. 각주님. 소환장에 반란죄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대체 그 무슨 말씀이신지요?”
“이래야 우리 양 무인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내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하자, 양태도 부드럽게 대응했다.
“체포에 불응한 것은 사죄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조직에 있다 보면 이래저래 눈치를 봐야 할 일들이 많지 않습니까? 수하들 보기에 체면도 있고.”
“이해하오.”
“애초에 이렇게 일이 커질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얘들 장난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없잖아 그런 면이 있습니다.”
어떻게 나오나 싶어 내가 순순히 말을 받아주자 양태는 옳다구나 싶었는지 나를 회유하기 시작했다.
“말이 통하는 분일 줄 알았습니다. 좋게 해결할 수 있겠네요.”
“어떻게요?”
“각주님께서는 처음으로 중책을 맡으시지 않으셨습니까? 앞으로 황천각을 운영하다 보면 외부 도움이 많이 필요할 겁니다. 돈도 많이 들 테고요.”
돌려 말하고 있지만 결국 뇌물을 주겠다는 의미였다.
“어디 그뿐입니까? 나중에 정식으로 후계자가 되시려면 우리 쪽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겁니다. 아무래도 지금은 다들 대공자 쪽에 줄들을 대고 있으니…….”
“도움 주신다면 저야 좋지요. 많이 도와주시오.”
그러자 양태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역시 호탕한 분이시군요. 앞으로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조만간에 좋은 자리 한 번 만들지요.”
그가 내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시게요?”
“이야기 끝난 것 아니었습니까?”
“나중에 뇌옥에서 나오면 날 도와주겠다는 뜻 아니었소?”
뇌옥이란 말에 양태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슨 농담을 이리 섭섭하게 하십니까?”
난 그를 올려다보며 차가운 기도를 드러냈다.
“이게 농담처럼 들리시오? 황천각 조사관의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죄에 관한 이야긴데.”
“그런 협박, 한 적 없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당신 진술은 상관없소. 이미 협박당한 조사관의 진술이 받아들여졌으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본교에는 이런 교칙이 있소. 황천각 무인들의 진술은 그 어떤 상반되는 진술에 우선한다. 교칙을 집행하는 황천각의 조사관들의 권위를 지켜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조항이오. 몰랐을 거요. 나도 이런 법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으니까. 이게 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이오. 우기면 다 되는 줄 아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거든.”
당황한 양태는 뭐라 말을 못 했다. 처음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이 펼쳐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 청천벽력이 더해졌다.
“순순히 자백하면 십 년 형으로 줄여주겠소. 부인하면 이십 년 형이오. 더 이상 협상은 없소.”
“뭐, 뭐라고? 십 년?”
너무 놀란 나머지 양태는 말까지 더듬었다.
“선택하시오.”
“당신 미쳤어?”
양태의 참았던 본성이 나오면서 말이 거칠어졌다.
“미쳐야 한다면 기꺼이. 제정신으로는 당신 같은 사람들 상대하기 어려울 것 같긴 해. 자, 고민할 시간 반 각 주겠소.”
결국 양태의 평정심이 깨어졌다. 그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웃기지 마시오. 십 년은 고사하고 난 단 하루도 뇌옥에 들어갈 생각이 없으니까.”
더는 대화할 가치가 없었기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판은 며칠 내로 열릴 거요.”
“누구 마음대로?”
“내 마음대로. 당신도 당신 마음대로 살잖아?”
놈의 다급한 말이 돌아서는 나를 붙잡았다.
“잠깐! 이공자님! 각주님!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몰라서 묻나? 네 아들이 친구를 폭행해서 죽일 뻔했어. 단순히 한 번 싸우다 다친 게 아니라 몇 년을 매일같이 괴롭혔지. 한데 부모란 자는 사건을 묻기 위해서 조사관에게 가족을 죽이겠다고 협박을 했고. 한데 왜 이러다니?”
“창고나 지키는 놈과 우리가 같소? 적어도 상급자 대우는 해줘야 할 것 아니오? 지금까지 이 정도는 눈감고 넘어가 줬잖소?”
서글픈 말이었고, 동시에 무서운 말이었다. 나를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는 말이기도 했다.
“이제부터는 아니오.”
“날 건들면 마존께서 그냥 계시지 않을 거외다.”
“그냥 있을 거요. 마군주를 베었을 때도 그냥 있었는데, 당신이 뭐라고?”
드디어 양태는 폭발했다. 자기가 좋게 나가서 이런 꼴을 당한다는 잘못된 결론을 내린 것이다.
꽝!
책상을 내리친 양태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이보시오, 황천각주! 나는 목숨을 나눈 친구가 많은 사람이오!”
“장담하건대 아무도 당신을 위해 나서진 않을 거야. 누가 당신 같은 자를 진심으로 좋아해서 목숨을 걸겠어?”
부들거리는 그에게 던진 한마디.
“왜? 우리 가족도 죽인다고 해보지?”
양태는 흥분한 상태였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를 악물며 분노를 삼키는 놈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무너진 것은 화무기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일개 백도귀 따위가 황천각 조사관을 협박하고, 나에게까지 은근히 협박할 정도로 기강이 무너져 있었으니.
“순순히 자백하시오.”
차분히 말하고 그곳에서 나왔다. 문이 닫히자 애꿎은 책상 내리치는 소리만 들려왔다.
* * *
그날 바로 혈천도마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내 거처 앞마당에서 자신의 큰 칼을 바닥에 꽂아둔 채 그 앞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서 오게, 이공자. 아니, 이젠 황천각주라 불러야 하나?”
“편하신 대로 부르십시오.”
“나는 이공자가 편하니 이공자라 부르겠네.”
“그러시지요.”
“이리 와서 한잔하세.”
나는 순순히 그의 앞에 마주 앉았다. 같이 마시자면서 내게 술을 따라주진 않았다.
“분명 경고했을 텐데. 날 자주 봐서 좋을 것 없다고.”
“절 찾아오는 것은 언제나 어르신입니다.”
잠시 나를 쳐다보던 혈천도마가 불쑥 지난 일을 꺼냈다.
“최근에 자네에 대해 새롭게 느꼈던 순간이 있었어. 비무에서 이기고 교주님께 소원을 빌 때, 난 속으로 이렇게 외쳤네. 그래, 저거지. 똑똑한 놈이라면 저런 소원을 빌어야지.”
“제가 생각해도 참 괜찮은 소원이었습니다.”
“그래, 그날부터 시작이었지.”
혈천도마가 자신의 잔을 비우고는 다시 술을 채웠다. 아직 내게 술잔을 내주지 않고 있었다. 그가 다시 술을 자작했다.
혈천도마는 등 뒤에 꽂아둔 멸천대도를 벽처럼 기대앉았는데 깡마른 그에 비해 압도적인 크기의 대도는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정말 멋진 칼입니다.”
“자넨 저 칼이 두렵지 않은가?”
“제가 왜 두려워해야 합니까?”
“자넨 내 칼을 울게 하거든.”
나는 뚫어질 듯 날아드는 혈천도마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칼이 우는 것이 어디 저 때문이겠습니까?”
“그럼 뭣 때문에 우는가?”
“한탄스러워서 우는 거죠.”
“뭐가?”
“제자분은 비무대회에서 제게 산공독을 탔고, 또 다른 제자는 저를 찾아와서 제 수하를 욕보였습니다. 동생분은 마군을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웠고 수하는 황천각 조사관을 죽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칼이 우는 것은 주인의 주변이 주인의 인품에 못 미치는 것을 보며 한탄해서 우는 겁니다.”
혈천도마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말솜씨가 청산유수로군.”
“사실을 읊었을 뿐인데 달변가가 되는군요.”
“자네 말은 틀렸네.”
“가르침을 주십시오.”
“우선 자네는 주변이 내 인품에 못 미친다고 했는데, 아니네. 그들은 딱 내 인품에 어울린다네. 나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지.”
역시 만만치 않은 늙은이다. 자존심이나 명예욕이 높은 자가 오히려 상대하기 쉬운 법인데.
“그리고 엄밀히 따지자면 그 사람들 잘못이 아니라네. 자네 탓이지.”
“저 때문이라고요?”
“용이 승천할 때는 비바람을 몰고 오는 법이거든.”
“누가 용인가요?”
“누구긴, 자네지. 그 비바람에 내 사람들이 휩쓸려 날아가고 있지 않나?”
“승천은 무슨 승천입니까? 미꾸라지가 흙탕물에서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거죠.”
“미꾸라지가 뱀 되고, 뱀이 용 되는 거지.”
다시 혈천도마가 술잔을 비웠다. 여전히 그는 혼자만 술을 마셨다.
“젠장! 다 좋은데 왜 하필 내 사람이 휩쓸리는 거지?”
한탄과 함께 술잔을 내려놓은 혈천도마가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밝혔다.
“갇혀 있는 백도귀를 풀어주게. 자네 때문에 요즘 우리 남도종 사기가 바닥이야.”
“조사해서 죄가 없으면 풀려날 겁니다.”
혈천도마가 마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앞서도 이 마기의 강렬함을 느꼈듯, 아버지가 아직은 내가 혈천도마를 감당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확실히 마존의 무공은 격이 다르다.
“자네에게 충고 하나 하지.”
“하지 마십시오.”
“뭐?”
혈천도마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지만 나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부탁하러 왔으면 부탁만 하십시오. 부탁도 하고, 충고도 하고. 그러지 마십시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런 사람 비호감으로 여깁니다.”
버럭 화를 낼 만한 상황이었는데, 늙은 생강이 맵긴 매웠다. 그는 오히려 쏟아내던 마기를 거두었다.
“맞는 말이야. 이젠 이런 직언을 해주는 사람이 드물지.”
“경계하셔야 합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니까요.”
“누군들 고이고 싶어 고이겠는가? 몸을 담그고 있다 보면 정도 들고, 흘려보내야 할 기회를 놓치기도 하는 게지.”
“그렇다고 우리가 썩은 물에 몸을 담그진 않잖습니까? 이번 기회에 썩은 물은 흘려보내시지요. 지켜줄 만한 가치가 없는 자입니다.”
혈천도마가 들고 있던 잔을 비웠다. 시원하게 잔을 비운 후 그 잔을 내게 내밀었다.
“내 술 한잔 받을 텐가?”
함께 자리한 후 처음으로 권하는 술이었다. 나는 순순히 술잔을 받아들었다.
술을 따르며 혈천도마가 말했다.
“좋아, 썩은 물은 흘려버리겠네.”
“과연 현명하십니다.”
내가 잔을 비우려던 바로 그 순간, 혈천도마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대신 앞으로 이공자가 내 물이 되어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