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01)
절대회귀-301화(301/424)
제301회 인연이 있는 자에게만.
편중과의 여정은 더없이 즐거웠다.
그가 능숙하게 모는 마차에서는 천마호신공을 수련했고, 맛 좋은 객잔에 들러 밥을 먹었다. 갈 때와 마찬가지로 경치 좋은 곳이 있으면 마차를 세우고 함께 구경했다. 폭포 너머에서 뜨는 무지개를 보았고, 술 한잔하면서 마부의 삶을 듣기도 했다.
그렇게 마가촌에 도착하고, 나는 그에게 돌아가는 비용까지 지불했다.
“여긴 험악한 마인들이 많아서 손님을 태우고 돌아가기에는 위험하오. 이 돈은 그대에게 주는 돈이 아니라 애들 옷이라도 한 벌 사 입히라고 주는 돈이니 내 성의를 무시하지 마시오.”
편중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은 얼굴이었지만 이 한마디로 대신했다.
“언젠가 다시 모실 날이 있기만을 고대하겠습니다.”
이 사람과는 두 번 다시 보지 못하겠지만, 사람 인연 또 모를 일이다. 언젠가 허연 백발이 된 편중의 마차에 올라탈 일이 생길지.
“조심히 돌아가시오.”
편중을 돌려보내고 마가촌으로 들어섰다.
“아, 좋다! 이 냄새!”
마가촌 특유의 냄새가 나를 반겼다. 드디어 집에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소교주님!”
저쪽에서 나를 보고 달려온 사람은 풍류주점의 조춘배였다. 어찌나 반갑게 뛰어오는지 넘어질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주인장, 잘 지냈소?”
“언제 돌아오신 겁니까?”
“지금 막 도착하는 길이오. 오자마자 우리 주인장부터 만나는 걸 보니 오늘 일진이 아주 좋을 것 같소.”
“어이구,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저까짓게 뭐라고요.”
손사래를 치면서도 그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조춘배까지 보자 정말 돌아온 것이 실감 났다.
그는 수레에 식재료를 싣고 풍류주점으로 가던 중이었다.
“재료를 직접 사시는군요.”
“그럼요. 제가 일일이 싱싱한 재료로 직접 고른답니다. 자, 가시지요.”
조춘배가 수레를 밀려고 할 때, 나는 그를 수레에 앉혔다.
“같이 앉아서 갑시다.”
나는 수레 앞에 조춘배와 나란히 앉았다.
조춘배가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
“둘 다 앉으면 수레는 누가 끕니까?”
“마음으로 끄는 거죠.”
내가 장난친다 여긴 조춘배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밀어드리겠습니다. 처음으로 제 수레에 한 번 타보십시오!”
그가 수레에서 내리려던 그 순간, 수레가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이구! 저절로 움직입니다!”
물론 내가 허공섭물을 이용해서 수레를 움직이는 거였다. 조춘배는 신기한지 감탄을 연발했다.
“제가 어려서부터 주점 일을 시작해서 온갖 경험을 다 했지만, 이런 경험은 또 처음입니다.”
“사실 나도 처음이오.”
“소교주님의 귀한 내공을 이런 데 써서 되겠습니까?”
“그 귀한 내공은 항상 쓰레기들에게만 쓰이고 있소. 오히려 지금이 제일 귀한 일에 쓰이는 거요.”
조춘배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무인이라면 꼭 소교주님을 모셨을 겁니다.”
“나는 싫소.”
혹여 말실수했나 바짝 긴장한 조춘배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풍류주점이 없을 것 아니오? 주인장 아니더라도 수하들은 많소.”
조춘배의 입가에 깊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우린 풍류주점에 도착했다.
나는 항상 앉아서 술을 마시던 이 층 자리로 올라갔다.
“여긴 여전히 비워두시오?”
“네, 소교주님과 특별한 분들을 위한 자리죠.”
“이러면 주인장 손해 아니오?”
“그 손해 안 보려고 평생 아등바등 살아온 인생입니다. 이제 이런 재미도 있어야지요.”
조춘배가 흐뭇하게 벽에 새겨진 마존들의 서명을 쳐다보았다.
나도 함께 그곳을 쳐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아버지도 남기셨군요!”
“소교주님이 출교하시고 한 달쯤 되었을 무렵에 오셨습니다.”
“혼자 오셨소?”
“네, 두 번 오셨는데 두 번 다 혼자 오셨습니다.”
아버지가 이곳에 혼자 앉아서 술을 마시고 계시는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저기 서명을 남기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셨을 텐데. 이러니 내가 안 좋아할 수가 있나? 역시 아버지는 아버지다.
“한잔하시겠습니까?”
“아버지께 인사부터 드려야 해서요. 나중에 들르겠소.”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풍류주점을 나선 내 발걸음이 빨라졌다. 아버지 서명을 보고 나니, 아버지가 더 보고 싶었다.
* * *
천마전 앞에서 호위 책임자 적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이미 전해진 모양이다.
그는 재빨리 내 아래위를 훑어보며 다친 곳은 없는지를 살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호위들을 돌려보내고 혼자 강서지단에 간 사실에 화가 났겠지만, 내가 무사히 돌아온 것에 안도하는 눈빛이었다.
“이런 일에 익숙해져야 해. 갈 길이 아주 머니까.”
“아무리 그러셔도 익숙해지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맞는 말이다. 내가 죽으면 그들이 모든 책임을 져야 했으니까.
돌아서려는 적연에게 물었다.
“눈은 어때?”
“괜찮습니다.”
“한 번 보자.”
이제 그는 실랑이 없이 순순히 안대를 벗었다. 눈에 붉은 기운을 살펴보니 그사이 수련에 진척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 고비만 넘기면 고통이 줄어드는 단계로 접어들 거다.”
적연의 눈에 손바닥을 대고 부드러운 내력을 주입했다.
“소교주님 무공 경지가 바뀌는 것은 제가 제일 잘 알겠습니다.”
“느낌이 달라?”
“네, 마지막에 살펴봐 주셨을 때와 또 다른 느낌입니다.”
오히려 나는 느끼지 못하는 변화를 그의 눈은 미세하게 다 느끼고 있었다.
“대체 언제 수련하시는 겁니까?”
“농땡이처럼 보이지만 내가 의외로 부지런해. 올 때도 마차 타고 오면서 내내 수련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오가면서 마차에서 한 천마호신공 수련 때문에 변화가 생겼다고 생각지 않는다.
편중과 함께 석양을 바라보았을 때 바뀌지 않았을까? 주양의 손에 동전을 올려줄 때 바뀌지 않았을까? 지단주 호경의 고충을 들어주고 있을 때 바뀌지 않았을까?
여전히 나는 믿는다.
삶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어야 무공도 바뀌는 법이라고.
* * *
드디어 뵙고 싶었던 아버지가 저 멀리 앉아 계신다.
피의 길을 성큼성큼 걸어서 태사의 아래까지 걸어갔다. 아버지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본교를 지키고 계셨다.
“다녀왔습니다.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아버지께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나갔다 돌아오면 항상 아버지를 먼저 찾아뵙는다. 벌써 여러 번이고, 똑같은 인사를 하지만, 그때마다 느낌이 다르고 대하는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갈수록 아버지가 더 반갑고 좋다.
“나가기만 하면 손에 피를 묻혀서 돌아오는구나.”
호남에서도, 강서에서도. 변명의 여지는 없었다.
“이게 다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아버지의 입가에 비웃음이 스쳤다. 오랜만에 보는 저 비웃음이 어찌나 반가운지.
아버지도 예전과 많이 달라지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 태사의에서 내려다보시던 분이었는데.
“나가서 좀 걷자.”
요즘은 이렇게 나와 함께 걷기를 좋아하신다.
아버지를 따라 천마전을 나왔다. 후원을 따라 조성된 오솔길을 함께 걸었다.
“마부를 잘 만나서 솜씨 좋은 객잔을 많이 알아뒀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 맛집이 숨어 있더라고요. 나중에 제가 다 모시겠습니다.”
나는 내 손에 죽은 자들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통천각을 통해 있었던 일들을 보고 받으셨을 테니까. 내가 아버지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풍경 좋은 곳이 어디인지, 또 어디에 가면 분위기 좋은 다루가 있는지.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버지가 태사의에서 이곳 후원까지 나오셨듯, 이제는 중원으로 함께 나가고 싶었으니까.
“요즘 염왕채에서 이자를 얼마나 받는 줄 아십니까? 미친놈들입니다.”
염왕채 이야기도 하고 마검대 무인들과 나눴던 대화도 전해주었다.
“마검대에게 아버지가 직접 선물을 보내주시면 사기가 많이 오를 겁니다.”
“그러지.”
아버지가 순순히 대답하자 너스레를 안 떨 수가 없었다.
“차별이 너무 심하십니다.”
“무슨 차별?”
“이공자일 때와 소교주일 때 너무 다르시다고요.”
“달라야지. 그래야 네 자리가 얼마나 귀한 자리인지 알지. 왜? 예전처럼 대해주랴?”
“아버지 지풍에 이 잘생긴 얼굴 구멍이 날 뻔한 그 시절요? 사양합니다!”
아버지와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 너무 좋다.
아버지가 잠시 발걸음을 멈춘 채 멀리 보이는 대천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었다.
“다음에는 저와 놀러 가시죠.”
“내가 움직이면 강호가 놀란다.”
“놀래라고 하고요. 천마전은 그만 지키시고 이제…… 아버지 인생을 지키러 가시죠.”
순간 아버지의 등이 흠칫하는 것이 느껴졌다.
난 아버지의 무림출도가 전쟁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아버지의 출도는 즐거운 여행이길 바란다.
“아버지하고 놀고 싶어서 그럽니다.”
아버지는 말없이 저 멀리 있는 대천산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 어디 아버지라고 나가고 싶지 않으시겠는가? 저 자리가 주는 중압감은 앉아보지 않으면 모를 테니까.
“권마에게 딸이 생겼더구나.”
“저도 놀랐습니다. 사부가 그런 결정을 할지.”
“네가 개입한 것은 아니고?”
“제가 온갖 일 참견하기 좋아하지만, 이번 일 만큼은 아닙니다. 부모 자식의 일인데 감히 어찌 끼어들겠습니까?”
“의외였다.”
어디 놀란 사람이 아버지뿐이겠는가?
“세상에 혼자 남겨져도 잘살 것처럼 보이지만 외로웠던 거죠. 어떠십니까? 아버지도 딸 하나 있으면 좋겠습니까?”
어쩐 일로 아버지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없어지고 딸이 생긴다면요?”
아버지는 더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하십니다!”
오랜만에 아버지 앞에서 재롱을 떠니 기분이 좋았다.
“따라오너라.”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천마전의 후원에서도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외부의 침입을 불허하는 온갖 경계들을 지나 은밀히 펼쳐진 진법까지 연속으로 지나고 나서야 목적지를 볼 수 있었다. 이곳은 처음 와보는 곳이었는데 현판에 적힌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천마보고(天魔寶庫).
천마신교의 보물창고로 나를 데려오신 것이다.
“아! 여긴 처음 와봅니다.”
아버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병장기가 날을 번쩍이고 있었고 영약과 영초들은 온갖 향을 풍기고 사람을 유혹하고 있었다. 야명주와 피독주와 같은 눈부신 보석들은 수도 없었다.
무인이다 보니 우선 눈이 가는 것은 병장기나 영약이었다.
검과 도, 창은 물론이고 부(斧), 륜(輪)과 겸(鎌), 척(尺), 선(扇), 필(筆), 침(針)…… 그야말로 온갖 종류의 신병이기들이 다 전시되어 있었다. 하나같이 무림에 출현하면 피바람을 일으킬 신병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영약 역시 천년설삼은 아예 취급도 하지 않았다. 만년설삼급의 최상급 영약과 영초들이 음기와 양기의 성질에 따라 분류되어 보관되어 있었다.
거기에 따로 보관된 영약도 있었다. 숫자는 모두 여덟.
“여기 이쪽 것들은 전쟁이 발발하면 즉시 마존들에게 지급될 영약이다.”
그뿐 아니라 전쟁에 사용할 독과 암기들도 있었다. 암기는 무림에서 사용이 금지된 금용암기들이었고, 독은 한 번에 수백, 수천 명을 한 번에 앗아갈 수 있는 대량살상용 독이었다. 그 비싼 무형지독이 병째 있었으니, 얼마나 많은 독이 준비되었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섬뜩해졌다. 전쟁이 터지면 곧장 이 독들은 독왕에게 전해지겠지?
어디 그뿐인가? 한쪽에는 호신갑들이 쌓여 있었다. 이렇게 쌓여 있으니 얼핏 저잣거리 싸구려 무복처럼 보였지만, 하나하나 무림에서 구하기 힘든 호신갑이었다. 이 역시 전쟁이 발발하면 마존들과 각 조직의 수장들에게 지급될 것들이었다.
아버지는 전쟁 준비를 착실히 하고 계셨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를 너무나도 존경하지만, 전쟁만은 안 됩니다.
아버지도 내가 그런 마음임을 알고 계신다. 그럼에도 이걸 보여주시는 것은 설득하시는 거다. 너와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그때 아버지가 뜻밖의 말씀을 꺼냈다.
“이 중에서 하나만 골라라.”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말씀이 이어졌다.
“소교주에게 주는 내 선물이다.”
생각지 못한 선물이었기에 감동은 더욱 컸다.
소교주님가 된 후에 소교주님, 소교주님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이제 진짜 소교주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여기 있는 것 중에 무엇이라도 골라도 됩니까?”
“어차피 천마가 되면 다 네 것이다. 물론 지금은 단 하나지만.”
이 값진 보물들 중 하나를 고른다는 것은 가슴 떨리는 일이다. 이 중에서 내게 가장 도움이 될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병장기와 영약이 있는 곳을 지나쳐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어딜 가느냐? 거긴 영약 없다.”
아버지는 당연히 영약 중에서 하나를 고를 거라 여기셨다. 천마검 다음 보검인 흑마검이 있으니 병장기는 필요 없었으니까.
“왠지 거기부터 보여주시는 것이 저쪽에 더 좋은 것이 있을 것 같아서요.”
나는 보고의 물건들을 구경하며 계속 걸어갔다. 정말 별의별 것이 다 있었다. 음기를 보충해주는 방석도 있었고, 양기를 북돋아 주는 향로도 있었다. 기계장치로 무공을 펼치는 철제인형도 있었고, 춤을 추는 미녀상도 있었다. 철제인형의 무공은 절세신공일 것 같았고 춤을 추면 절세의 보법을 펼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계속 지나쳐갔다.
귀하고 화려하고 신기한 온갖 것들이 있었지만 내 마음을 당기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돌아서려던 그때 내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손바닥 크기의 정방형의 쇳덩어리였다.
“이건 뭡니까?”
“비궤(秘櫃)라는 거다.”
궤라는 이름이 붙었다면 상자라는 뜻인데, 어디에도 뚜껑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 쓰이는 겁니까?”
“나도 모른다.”
아버지를 돌아보자 정말 모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언제부터인가 본교에 전해져 내려온 물건이다.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 것인지 밝혀진 바가 없고 인연이 있는 자에게만 열릴 거라는 말만 전해져 온다.”
“아버지는요?”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도 그저 쇳덩어리에 불과했다.”
인연이 있는 자에게만 열린다.
혹시 지금 이것에 끌리는 마음이 그 인연일까?
이것을 선택하고 싶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이 칙칙한 쇳덩이가 눈길을 끌었다.
나 역시 인연이 아닐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 많은 보물 중에서 이걸 고르고 싶다는 이 마음 말이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걸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