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05)
절대회귀-305화(305/424)
제305회 두 사람이 잘 어울려 보이는 것은.
서대룡은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오늘따라 왜 그렇게 일이 손에 안 잡혔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가슴 떨리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서대룡이 목소리를 깔고 대답했다.
“악당 잡는 일이 본 각의 일입니다, 소교주님.”
분위기를 잡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어휴, 소교주님하고 있을 때만이라도 좀 편하게 있을래요.”
사실 일보다 더 힘든 것은 각주로서의 위엄을 보여야 하는 점이었다. 검무극과 지내며 너스레 떨고 장난치는 것에 익숙해져서 더 그랬다.
“한데 잡아야 할 놈은 누굽니까?”
“사우종.”
서대룡도 한때 일화검존의 오른팔이었던 그를 알고 있었다.
검무극은 사우종이 청선을 찾아간 일을 전해주었다. 다만 개인사가 될 수도 있기에 일화검존의 약점을 언급했다는 것은 전하지 않았다.
“뭔가 수상쩍군요. 그럼 본각이 할 일은 뭡니까?”
“비밀리에 놈에 대한 특별감찰을 시행해 줘.”
특별감찰에 들어가면 사우종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 재산, 업무, 무공,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취미는 무엇이며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까지. 그의 모든 것에 대해 알아낼 수 있다.
“통천각에도 지원 요청 하고.”
“알겠습니다.”
그러자 서대룡이 한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한데 마존을 협박했으면 그 자체로도 중죄 아닙니까?”
사안에 따라서는 참형도 내릴 수 있었다. 그만큼 천마신교 내에서 마존의 지위는 절대적이었으니까. 그런데 왜 간단하게 해결하지 않고 이런 거창한 조사를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사우종도 그걸 알 텐데, 그걸 아는 자가 왜 그랬을까 싶어서.”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요? 죽기 전에 발악하는 게 아니라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겠지요?”
검무극이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 알아내 보자고.”
“바로 조사 들어가겠습니다.”
사실 서대룡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았다. 지금은 검무극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쁠 뿐이었다.
“나 간다. 일하기 싫으면 나랑 바꾸고!”
검무극이 돌아서 나오려는데 서대룡이 뒤에서 말했다.
“돌아오셔서 기쁩니다.”
여전히 장난을 좋아하는 서대룡이지만, 각주 서대룡에게는 예전과는 다른 든든함이 있었다. 스스로 그 변화를 못 느낄 뿐이지.
“그럼 잘 부탁합니다, 서 각주님.”
* * *
황천각에서 나온 후 곧장 천독림으로 갔다.
지난번에 독왕이 구해온 독성 강한 영약 덕분에 내공이 크게 늘었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독왕은 자신의 돈까지 보탰다. 물론 제일 고마웠던 것은 밖을 나가기 싫어하는 그가 직접 중원에 나가서 구해왔다는 점이었지만.
우리 잘생긴 독왕, 오늘도 외롭게 땅이나 파면서 독충을 찾고 있겠지.
“독왕님! 제가 같이 파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내 눈 앞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
혈천도마의 화원도 놀라웠고, 권마와 이안의 비무도 놀라웠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졌을 때, 지금 이 광경이 제일 놀랍다.
독왕과 마불이 숲에서 나란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정말 마불이었다. 두 사람이 대화도 나누고 있었다.
“아, 이렇게 눈썰미가 좋으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 정도야 보통이지요.”
독왕의 가방에는 독초가 들어 있었다. 함께 독초를 캔 모양이다. 내가 없는 이곳에 저 두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은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예전에 나와 마불이 천독림에서 독초 찾는 내기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마불이 독초를 찾았고, 그게 다 우릴 채집꾼으로 부려 먹으려는 독왕의 음모였다고 너스레를 떤 적이 있었다. 한데 마불이 다시 와 있다고?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조심하십시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가짜입니다!”
내 너스레에 두 사람이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본척만척하고 하던 대화를 이었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찾으신 겁니까? 비결을 알려주시오.”
“비결이랄 것이 뭐 있겠습니까? 운이 좋았을 뿐이지요.”
“정말 마불께서는 타고난 약초꾼의 소질이 있소. 지금이라도 직업을 바꾸시는 걸 추천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마불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취미로 삼아볼까 싶기도 합니다. 공기 좋은 곳을 다니니 건강에도 좋은 것 같고.”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이번에는 상선에게 소리쳤다.
“두 사람 모두 가짜입니다!”
상선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정말 생각도 못 했다. 이 두 사람이 어울리고 있을 줄은.
“두 분 지금 뭐 하신 겁니까?”
그러자 독왕이 신난 얼굴로 말했다.
“마불께서 오늘은 구음초(九陰草)를 찾아주셨다. 내가 몇 년은 찾아 헤맸던 거다.”
말하는 걸 보니 처음 온 것도 아니었다.
“이번에도 내기가 걸린 겁니까?”
그러자 독왕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내기도 내가 졌다.”
“뭐가 걸렸는데요?”
“밥 내기. 상선, 밥 준비해 줘.”
상선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번 내기도 지실 것 같아서 이미 준비해 뒀습니다.”
거처 앞마당에 거창한 식사가 차려졌다.
나도 끼어 앉았다. 상선이 나를 위해 밥과 젓가락을 가져다주었다.
“구음초 한 뿌리에 얼마나 하는데요?”
“못해도 십만 냥은 하겠지?”
“그런데 겨우 식사 한 끼로 때우시려고요?”
“내기에 이겼다는 것이 중요하지.”
나는 마불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악덕 내기꾼에게 속고 계십니다.”
마불이 요리를 맛있게 먹으며 대답했다.
“독왕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네.”
닳고 닳은 마불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이야.
한 사람은 속이는 척, 한 사람은 속아주는 척. 참으로 귀여운 두 사람이다.
독왕이 내 앞에 놓인 요리를 마불 앞으로 당겼다.
“넌 조금만 먹어. 고생하신 마불님 드시라고 만든 거야.”
“저 소교주입니다. 이공자 아니고 소교주라고요! 밥상 엎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요.”
독왕도 못 들은 척 마불만 챙겼다.
“많이 드십시오.”
“맛이 좋습니다.”
“호남지단, 강서지단 겨우 두 군데 돌고 왔는데 이러면, 중원을 다 돌고 오면 의형제라도 맺었겠습니다.”
내 말에 웃어주는 사람은 상선이었다.
두 사람은 극과 극인 사람이다. 한 사람은 천독림을 벗어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오만 사람 다 만나고 돌아다니며 정치를 했던 사람이다.
그런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두 사람의 마음에는 상대의 삶에 대한 동경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독왕은 마불이 부러울지도 모른다. 세상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마불이. 저 작은 키에도 서슴없이 사람을 만나고 다니는 그가. 정작 누구보다 잘생긴 자신은 천독림에만 틀어박혀 있는데.
마불은 독왕이 부러울지도 모른다. 돌아다니는 것에 지치고, 사람들에게 지쳐서 이제는 혼자만의 조용한 삶을 살고 싶을지도.
그래서 지금 이 두 사람이 이렇게 잘 어울려 보이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
화무기를 죽이고 내 삶 앞에 섰을 때,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 묻고 있다.
중요한 것부터 해내고 생각하자! 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정작 더 중요한 것이 지금 나도 모르는 사이 흘러가 버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밥을 먹던 마불이 불쑥 물었다.
“권마의 행보가 바쁘던데. 자네 영향이지?”
제자를 둘이나 삼고, 딸도 구하고. 후계자까지 선정했으니 마불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하리라.
“사부님 성격 아시잖습니까? 누구에게 영향을 받을 분이 아니죠.”
“자네라면 또 모르지.”
“과대평가십니다.”
독왕은 밥을 먹는 내내 구음초만 보고 있었다. 진심으로 저 독초에 푹 빠져 있음을 나는 안다. 지금 독왕의 머릿속에는 어서 들어가서 저 구음초로 새로운 독을 제조하고 싶은 생각뿐일 것이다.
“자네 형은 언제 만나러 갈 건가?”
“뭐 좋다고 먼저 달려갑니까? 맨 나중에 갈 겁니다.”
“지난번에 대공자와 한잔했네. 그날 자네 이야기를 꺼내더군.”
“욕이나 안 했으면 다행이죠.”
평생 형 보고 싶다는 생각 안 들었는데, 오늘은 형이 보고 싶었다.
“승자는 결코 모르는 패자의 마음이 있다네. 자네 형은 위대한 패자라네.”
“마불님이 형의 곁에 남아주셨기에 그렇게 되었죠.”
마불이 나를 쳐다보았다.
“이제 그런 말 안 해줘도 되네.”
“계속할 겁니다. 아부가 아니라 진심이니까요.”
마불의 몸에서 나는 황금빛 광채가 조금 더 강렬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불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독왕은 그새를 못 참고 구음초를 가지고 자신의 거처로 들어간 후였다. 창문으로 그가 구음초를 자르며 열중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린 이만 가지.”
“그러시죠.”
마불과 함께 그의 거처를 나왔다. 상선은 따라나서지 않고 그곳에서 정중히 인사했다.
잠시 후, 저 멀리 뒤에서 독왕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며 들려왔다.
“소교주 어디 갔어? 어디가! 독성 실험해 줘야지!”
지난번 영약들을 사다 주는 대가로 독성 실험을 해주기로 했었다.
나는 못 들은 척 발걸음을 빨리했다.
그러자 마불에게도 전하는 독왕의 외침이 있었다.
“우리 다음 내기는 반선초(返仙草)를 찾는 걸로 합시다!”
마불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도 많이 변했음을 느꼈다. 천독림을 빠져나가는 길만 봐도 그렇다. 예전이라면 최단 길을 선택해서 저 짧은 다리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을 텐데. 지금은 경치 좋고 뺑뺑 돌아가는 길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심지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풍경을 구경하기도 했다.
문득 그의 고향 언덕의 동굴 앞에서 그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제 그만 그 좁고 답답한 곳에서 나오십시오.
어쩌면 마불은 이미 그 동굴에서 나와서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섰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도 마불님을 채집꾼으로 부려 먹어서 반선초를 찾아낼 겁니다.”
마불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며 대답했다.
“식사가 입에 맞아서…… 괜찮네.”
* * *
같은 시각 사우종은 마가촌 저잣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풍류주점을 지나서 계속 걸어 내려가니 변두리에 작은 화원이 나왔다. 꽃도 팔고 나무도 팔고, 모종도 파는 곳이었다.
그가 이곳 화원에 자주 온다는 것은 이미 북천검가 내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원래 일화검존의 오른팔 시절에 주로 가던 대형 화원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다른 마검에게 그 역할을 내주고, 원래 가던 화원도 아닌 이곳 변두리 화원에 와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도 가곤 했던 것이다.
그가 일화검존의 후계자가 되려는 열망이 얼마나 컸던 사람인지 잘 알았기에 다들 이런 행동을 이해했다. 그가 자결했다는 소식을 들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상실감은 컸지만 아무도 그에게 와서 위로하지 않았다. 성공을 위해 오직 앞만 보고 달린 결과였다.
화원 주인은 후덕한 인상의 여인이었다.
“어서 오세요.”
사우종은 인사도 받지 않고 마치 내 집인 양 화원 구석에 앉아 멍하니 나무들을 쳐다보았다. 꽃은 다 지고, 사철나무 묘목들이 세워져 있었다.
그가 와서 이렇게 멍하니 앉아 있다 가는 것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는지 여인은 그를 그냥 두었다.
이곳에서 식물들을 보며 오욕칠정(五慾七情)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듯 보였지만, 그는 번뇌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세속의 욕망 속을 거닐고 있었다.
‘마존이 되기 위해서 남자까지 가져다 바쳤는데, 나를 버려?’
좋아하는 여자에게 남자를 바치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알기나 알까? 그녀에게 온갖 욕설과 저주를 퍼부었다. 애초에 남자를 이용해서 검존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 했던 것이 자신이었음을 그는 생각지 않았다.
애증의 대상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청선은 마존의 자리에 오르자 기다렸다는 듯 이별을 고했다. 검존이 되기 위한 마지막 보루까지 무너진 것이다.
한동안 증오심만 키우며 살았다. 매일 꿈을 꿨다. 어떤 날은 일화검존을 죽이고 자결하는 꿈을 꾸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청선을 죽이고 자결하는 꿈도 꿨다. 어떤 날은 두 여자 모두를 죽이고 자결했다. 그래, 어차피 마존이 될 수 없다면 둘 다 죽이고 자결하는 거다.
자신의 노력으로 뭔가를 이루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기에 이 버림받은 욕망의 끝은 언제나 죽음이었다. 죽일 실력이 되지 않아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 뿐.
이 절망의 끝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접근해 왔다.
바로 지금 자신에게 전음을 보내는 이 사람이다.
―섭혼은 만났나요?
놀랍게도 전음을 보낸 사람은 화원의 주인 여자였다. 사우종이 이곳을 드나든 이유는 괴로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죽이고 죽었으면 죽었지, 괴로움을 잊기 위해 화원이나 드나드는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만, 그녀는 저를 죽이려 들지 않았습니다.
사우종은 지극히 공손했다. 자신은 누군가를 쉽게 믿는 사람도 아니고, 고개 숙이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한창 괴로운 시기에 접근해 온 이 여인은 자신을 단숨에 포섭했다.
감히 천마신교의 섭혼마존을 노리고 있는 여인, 하지만 그녀는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란 믿음을 주었다. 사우종은 저 평범함 속에 감춰진 무서움을 이미 경험했다.
이로써 그는 세 여인과 얽혔다. 그는 생각했다. 자신은 여인을 통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운명이라고.
―다시 섭혼마존을 만나서 자극하세요. 반드시 섭혼술을 써서 그대를 죽이게 해야 해요.
―그리하겠습니다.
사우종은 순순히 죽어줄 사람이 아니었으니, 여인의 말에는 한 가지 대비책이 있었다.
―섭혼마존이 섭혼술을 쓰는 순간, 반드시 음양역혼술(陰陽逆魂術)을 발동해야 해요.
음양역혼술.
오래전에 실전되었다고 알려진 새외의 비술로 상대의 섭혼술을 막아내고 역으로 섭혼술을 걸 수 있는 비기였다. 단, 잠자리를 가진 상대에게만 통하는 비술이었다.
그것이 이번 일에 자신이 선택된 이유였다. 저 여인에게 무슨 의도가 있는지는 관심 없었다. 음양역혼술에 당한 섭혼마존을 꼭두각시 삼아서 교주를 죽이든, 소교주를 죽이든 상관없었다. 사우종의 마음에는 오직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약속은 꼭 지키셔야 합니다.
사우종의 재차 확인에 여인은 몸통만큼이나 큰 묘목을 옮기다가 잠시 멈추고 허리를 폈다. 그녀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전음을 보냈다. 사우종이 절대 거절할 수 없는 보상이었다.
―이번 일을 해내면 검존은 당신이 될 거고, 일화검존은 그대의 여자가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