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10)
절대회귀-310화(310/424)
제310회 그 망할 년 앞에 데려다주게.
검무극은 풍천교주의 기도에 흠뻑 취했다.
날아드는 야수들의 환영에서 교주의 분노를 느꼈다.
만약 천마호신공이 발동하지 않았다면 그의 기도에 반응해 온몸의 피가 끓고, 검을 뽑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했으리라.
이게 진짜 고수의 기도다. 한 무공의 극의에 다다른 진짜 고수의 기도.
이제 그의 분노를 가라앉혀야 할 때다.
검무극은 달려드는 괴수들을 이리저리 피하며 손을 휘저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제자분을 제가 건든 건 아니고요. 아이고, 저 죽어요!”
그러자 풍천교주가 기도를 거둬들였다.
날뛰던 괴수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먹구름이 사라지며 주위가 환하게 밝아졌다. 심장을 두드리듯 울려 퍼지며 지옥문을 열던 종소리가 멀어져 갔다. 여운을 남기는 종소리의 긴 울림을 끝으로 풍천교주의 감정이 잦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풍천교주의 눈빛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청선은 지금 어디에 있나?”
차분한 물음에 그녀를 걱정하는 마음이 담겼다.
이래서 사람은 자세히 봐야 하는 법이다. 아니, 자세히 본다고 봤어도 풍천교주에게 이런 면이 있다는 걸 지금껏 모르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것이, 그 겹겹이 다른 면모를 이해하고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섭혼마존은 잘 있습니다.”
그제야 풍천교주의 얼굴이 편안해졌다.
“교주님이 이렇게 걱정해주신 걸 알면 많이 좋아할 겁니다. 덕분에 저는 죽을 뻔했지만요.”
“엄살은! 멀쩡히 잘 버텨놓고선.”
“천마호신공까지 썼습니다!”
풍천교주의 체면을 살려 주려고 일부러 천마호신공을 언급했다. 과연 그 말에 풍천교주는 대번에 기분이 풀어졌다. 그는 아버지를 천하제일인으로 인정하고 있었으니까.
풍천교주 뒤에 서 있던 고월이 한마디 했다.
“교주, 제자를 이렇게까지 생각했었어? 그렇게 안 아끼잖아?”
“안 아껴. 아끼기는 뭘 아껴?”
괜히 무안했는지 풍천교주가 다른 이유를 댔다.
“청선이 때문이 아니라 내 자존심 때문이다! 감히 내 제자를 건드려? 이건 날 무시하는 일이야. 설마 내 제자란 것을 몰랐을 리는 없잖아? 아, 몰랐나? 몰랐으니까 저질렀겠지?”
검무극이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가요. 이런 일을 꾸미는 사람이 그 정도 조사도 안 했을 리 없죠.”
“대체 어떤 자인가?”
“여인입니다.”
풍천교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아는 섭혼술을 익힌 여인 중에 이런 일을 저지를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남자도 마찬가지다. 감히 천마신교의 마존을 건든다? 들키면 가문이 몰살당할 텐데. 대체 누가?
“그 여인이 누군가?”
“마가촌에서 화원 주인으로 위장하고 있는 여인입니다.”
“내가 직접 봐야 알겠군. 그 전에 청선 먼저 보세.”
“제가 가서 데려오겠습니다. 참, 제자분은 자신이 섭혼술에 당한 걸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풍천교주의 눈빛이 깊어졌다. 다른 일은 몰라도 섭혼술과 관련된 일만큼은 절대 소홀히 여기지 않는 그였다.
검무극이 나가자 고월이 그에게 말했다.
“교주.”
사람을 불러놓고 고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날 붙어 있는 사이인데, 어찌 고월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제자 일이니 혹여라도 감정에 휘말리지 말라는 걱정이었다.
“뭔 걱정이냐? 내가 얼마나 못돼먹은 인간인지 잘 알면서.”
잘 알지, 하는 얼굴로 고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풍천교주가 소리쳤다. 제자가 오기 전까진 위엄은 잠시 숨겨두었다.
“너는 아니라고 해줘야지! 교주 은근히 정이 많아서 걱정이라고 해야지! 말이라도 아니라고 해줘야지!”
* * *
청선의 손끝에서 피어오르던 검은 기운이 그녀의 팔을 감쌌다.
검은 연기는 물고기 비늘 모양의 갑옷처럼 변했다. 완벽하게 그녀의 팔을 보호하면서 환갑술(幻鉀術)이 성공하나 싶었는데.
쩡.
쇠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비늘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터져나가며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청선이 팔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구결을 잘못 외우는 바람에 팔을 크게 다칠 뻔한 것이다.
사우종을 죽이고 난 후, 무공수련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죄책감 때문이냐고? 천만에. 그녀는 그렇게 마음이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독하고 모진 성격이었기에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그녀를 괴롭혔다.
자꾸 그날의 일이 떠올랐고, 침착하게 대처하는 자신을 상상했다. 이렇게 대답했으면 되었는데. 이렇게 대처했으면 되었는데. 참았어야 했는데.
소교주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멋있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오직 자신만이 다음 세대의 마존이다. 다른 마존들은 다 늙어 죽어도 자신은 살아서 교주가 된 검무극을 모실 것이다. 그런 중요한 관계의 시작을 망친 것 같아 자꾸 미련이 남는 것이다.
그때 밖에서 수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교주께서 오셨습니다.”
“모셔라.”
마침 검무극 생각을 하던 차라 그녀는 내심 놀랐다. 어찌나 시기적절하게 잘 나타나시는지.
잠시 후 검무극이 안으로 들어왔다.
“소교주.”
“마존.”
두 사람이 포권하며 인사를 나눴다. 청선은 혹시 사우종 문제가 커졌나 내심 걱정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검무극은 너무나 기쁜 소식을 가져온 참이었다. 그것도 두 개씩이나.
“일화검존께서 이번 일을 조용히 넘어가 주시기로 했소.”
청선은 크게 안도했다. 대놓고 기뻐할 수는 없었기에 억지로 표정 관리를 해야 할 만큼 기분이 좋았다.
“검존께서 마존을 위해 양보해 주셨소.”
청선이 어찌 모르겠는가? 검무극이 중간에서 중재를 잘 해줬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을.
“도와주신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풍천교주께서 돌아오셨소.”
“아! 사부님께서!”
“돌아오시자마자 마존을 먼저 찾았소.”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섭혼술을 걸었다는 말에 그대 사부가 얼마나 분노했는지.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당신을 많이 아끼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모든 일이 끝나면 말해주리라. 두 사람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기를 바라면서.
“어디 계시나요?”
“지금 제 거처에서 마존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번에는 청선은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 * *
검무극과 청선이 거처로 돌아왔다.
“사부님.”
청선은 모두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지만, 항상 이런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섭혼은 언제 강해져서 다른 마존처럼 될까?
감히 그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에게 강박증처럼 따라다니는 물음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풍천교주는 든든한 울타리 같은 사람이었다. 근래 사우종 때문에 우울해서인지 오랜만에 보는 사부가 더 반가웠다.
“잘 다녀오셨어요? 사부님.”
청선이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췄다.
풍천교주는 청선의 기도만으로 그녀의 무공 성취를 알아보았다.
“그동안 열심히 수련했구나!”
사부가 자신의 성취를 알아봐 주자 청선은 기뻤다. 다른 마존을 따라잡으려고 수련만큼은 누구보다 열심히 했던 그녀였다. 사부가 그 노력을 알아주니 지난 고생이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일어나거라.”
풍천교주는 빤히 그녀의 눈을 쳐다보았다. 사부가 이렇게 쳐다보는 것은 처음이라, 청선은 내심 당황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려 하자.
“내 눈을 똑바로 봐라.”
“네, 사부님.”
청선이 고개를 들어 사부의 시선을 마주 보았다.
검무극과 고월은 긴장한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부디 풍천교주가 풀 수 있는 섭혼술이어야 할 텐데.
“자, 이제 심혼술(心魂術)을 펼쳐보아라.”
풍천교주의 계속된 시험에 검무극은 고월과 잠시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녀에게 어떤 섭혼술에 걸렸는지 알아보는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존이 무공을 펼치는 자리에 함께 있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검무극과 고월이 함께 내원을 산책했다.
“고생 많았지?”
“아닙니다. 저는 일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그러니 너무 개의치 마십시오.”
“자네 입으로 그런 말 말아. 그럼 정말 일 좋아하는 줄 알고 더 시키니까.”
고월이 미소를 지었다.
검무극은 고월에게만큼은 조금 더 많은 정보를 줘야 한다고 여겼다.
“이번 일을 꾸민 자들이 지난번 무림맹에서 사건을 저질렀던 자들과 같은 일당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게.”
만약 사실이라면 심각한 일이었음에도 생각보다 고월은 놀라지 않았다.
“혹시 예상했었나?”
“양쪽 모두 최고위층을 상대로 음모를 꾸민 점으로 볼 때, 같은 배후일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을 했습니다. 만약 소교주님의 추측이 정확하다면, 사도맹에도 저들의 음모가 있을 거라 예상합니다.”
역시 고월은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조심해서 나쁠 것 없으니, 그런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정보를 수집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당분간은 교주와 내 거처에서 지내도록. 조만간 아버지께 허락을 받고 작은 규모나마 은월 본단을 만들어주지.”
그러자 고월은 검무극의 호의를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그 일은 미뤄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왜?”
“그렇게 되면 은월은 천마신교의 공식 조직이 됩니다. 소교주님이 교주님이 되셨을 때, 은월을 공식 조직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지금은 오직 검무극을 위한, 검무극의 명령만 수행하는 조직으로 남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의 충성심에 검무극은 환한 웃음으로 기쁨을 표현해주었다. 네 충성심에 나는 이렇게 기쁘다고. 또 눈빛으로도 말했다. 고맙다, 고월아.
“고 군사.”
“네, 소교주님.”
“자네도 알다시피 우린 가야 할 길이 멀다. 적당히 쉬어가면서 해. 너무 열심히 하다 지쳐버릴까 걱정된다.”
“사람이 지쳐서 나가떨어지는 건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 노고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 아니겠습니까? 소교주님이 이렇게 잘 알아주시니,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고월이 미소를 지으며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풍천교주가 과장해서 그렇지 나가떨어질 정도로 열심히 일하진 않습니다.”
모처럼의 농담에 검무극은 소리 내서 웃었다.
두 사람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언제 또 바빠질지 몰랐기에 오랜만의 이 산책은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 * *
고월과 함께 거처로 돌아갔을 때, 청선은 돌아가고 없었다.
“어땠습니까?”
풍천교주는 청선이 정확히 무엇에 당했는지 알아내었다.
“음양역혼술에 당했다.”
나도 고월도 처음 듣는 무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무공은 중원의 무공이 아니었고 오래전에 실전된 무공이었다.
“오래전에 실전되었다고 알려진 새외 무공이라네.”
풍천교주의 표정이 굳은 이유는 새외 무공 중에서도 특별한 곳의 무공이었기 때문이다.
“이젠 사라지고 없는 혈교 무공이지.”
풍천교의 전신이 혈교였다. 오래전에 실전되어서 풍천교로 이어지지 못한 무공이 갑자기 튀어나와 찝찝한 모양이다.
어느 시대에나 귀신처럼 부유하는 ‘혈교 부활’의 소문은 있었다. 당연히 풍천교주는 그런 소문에 더욱 민감했을 테고.
하지만 결과부터 말하자면 화무기는 혈교와 전혀 관련이 없다. 화무기가 정사마 세 곳을 봉문한 이후, 십이지왕이 중원을 지배할 때도 혈교 부활과 관련한 일은 일절 없었으니까.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섭혼마존에게 걸린 음양역혼술은 풀어낼 수 있습니까?”
풍천교주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와 고월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못한다는 것을 표하고 싶었지만 잘난 척하고 싶은 욕망이 그의 연기를 방해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
“당연하지. 나, 풍천교주네.”
나와 고월이 환호했다.
“역시! 교주님이 최고십니다!”
“멋지다, 교주!”
풍천교주가 치솟은 어깨를 으쓱대며 잘난 척을 이어 나갔다.
“매개체가 된 자는 죽었지?”
그는 사우종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음양역혼술은 잠자리를 한 상태에서 상대가 섭혼술을 걸 때, 역으로 걸 수 있다네. 조건이 아주 까다롭지. 한데 잠자리한 사이에 섭혼술 걸 일이 뭐가 있겠나?”
“상대를 죽이려고 할 때겠죠.”
“청선이 죽이려 했다면 그자는 죽었겠지. 배후가 여자라고 했으니, 직접 나서지 않고 사내놈을 매개를 썼을 테고. 이용한 놈은 뒤탈 없게 청선에게 죽게끔 뒀을 테고.”
“정말 딴사람 같으십니다! 대체 제 앞에 계신 분, 누구십니까? 혹시 교주님이 섭혼술에 당한 상태 아니십니까?”
“이거 욕이지? 칭찬 아니지?”
괜히 기분 좋아지라고 추켜세우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자기 일을 할 때의 풍천교주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죽은 자는 매개에 불과하고, 그자에게 구결을 가르쳐준 그 여자의 몸에 제령인(制靈印)이 찍혀 있을 거네. 대법으로 그것을 뽑아내서 없애면 청선에게 심어진 적혼도 자연스레 사라지게 될 거네.”
풍천교주의 두 눈이 차갑게 가라앉으며 시퍼런 한기가 흘러나왔다.
“내 제자의 생사는 내가 책임지겠네. 그러니 나를 그 망할 년 앞에만 데려다주게.”
나는 풍천교주를 믿는다. 환여를 제압하고 대법을 성공시킬 것임을. 섭혼술에 있어 그를 믿지 못하면 누굴 믿겠는가?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대법이 진행되면 그 여인은 어떻게 됩니까?”
“제령인이 강제로 뽑혀 나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네. 다른 사람을 꼭두각시로 삼으려 했으면 그 정도 각오는 해야지.”
“그 여인을 죽이기 전에 알아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환왕이 어디에 있느냐다.
환여를 죽이면 환왕은 반드시 복수할 거다. 저 쌍둥이들이 얼마나 서로를 위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환왕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복수의 칼날을 갈고, 그 복수 대상이 풍천교주라고?
결코 내가 바라는 상황이 아니었다. 환여를 죽일 거면 환왕까지 같이 죽여야 한다.
“대법 시기는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진 참아주시지요.”
풍천교주의 눈에 흘러나오던 시퍼런 안광이 평소대로 돌아왔다.
“그러잖아도 눈에 힘을 너무 줬더니 힘들다.”
눈을 비비며 한바탕 너스레를 부린 후 풍천교주가 내게 물었다.
“자네, 대체 무슨 생각인가?”
당신 살릴 생각 하고 있소. 환왕 같은 자에게 복수 당하는 인생을 살지 않게 해주려고요.
“어떻게 하면 우리 교주님 멋지게 활약하실까 고민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