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12)
절대회귀-312화(312/424)
제312회 저 문은 절대 열 수 없다.
화원 마당에서 검무극이 환여를 불렀다.
“주인장 계시오?”
그러자 화원 뒤쪽에서 환여가 걸어 나왔다.
“어서 오세요, 소교주님.”
반갑게 인사하는 그녀는 원래의 후덕한 화원 주인으로 돌아와 있었다.
“주인장 계셨구려. 혹시 달아난 줄 알고 용모파기를 그릴 화공을 부르려고 했소.”
환여가 살짝 얼어붙은 모습을 보이자 검무극이 웃으며 덧붙였다.
“농담이오. 죄가 없는데 우리 주인장이 달아날 리가 있겠소?”
이제 이곳이 익숙하다는 듯 검무극은 구석에 놓인 화분으로 걸어갔다.
“새 꽃이 들어왔군요.”
“좀 전에 들어왔어요.”
검무극은 쪼그려 앉아 꽃을 구경했다.
소교주의 세 번째 방문.
‘명백히 어떤 의도가 있다.’
조금 전에 꾼 꿈 때문이었을까? 환여는 앞서 방문보다 더 큰 불안감을 느꼈다.
풍천교주가 돌아왔다고 수하가 보고했다.
어쩌면 섭혼마존이 음양역혼술에 당한 것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그럼 날 잡아 죽이지, 뭐 때문에 망설이는 거냐?’
당장이라도 저 소교주가 자신을 기습할 수도 있는 상황. 그녀는 언제라도 환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녀의 마음에 감도는 긴장감과는 별개로 검무극은 태연했다.
“그 죽은 무인이 왜 여길 자꾸 왔는지 이해가 되오. 여기 오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소.”
“좋게 봐주시니 정말 감사해요.”
“그 무인에 대해 아시는 게 있소?”
“아뇨. 통 말이 없으셨던 분이셔서요.”
사우종을 이용할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의심받게 될 줄 몰랐다. 섭혼마존과 치정 관계에 있었으니, 당연히 거기에 집중할 거로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일이 꼬였지?’
그 해답이 바로 자신의 눈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내가 자주 찾아오니 이상하시오?”
“아뇨. 원래도 마가촌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신다고 알고 있었어요. 저기 풍류주점 주인장과는 각별한 사이시잖아요?”
검무극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지어졌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저 말에는 은연중에 협박이 깔려 있었다. 나는 네가 아끼는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검무극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의 입가에는 조금 전에 지어졌던 차가운 미소 대신 기분 좋은 웃음이 대신하고 있었다.
“나에 대해서 잘 아시는구려.”
“상대방 신분은 개의치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어요. 주점 주인과 친하게 지내시는 분이니 화원 주인과도 친할 수 있겠지요?”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서로를 대하는 그들의 행동은 더없이 자연스러웠다.
“혹시 가족이 있소?”
쌍둥이 동생이 있어요, 라고 해주면 좋겠지만. 그녀는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아뇨, 없어요.”
“혼자서 외로우시겠소.”
“꽃과 나무들을 가족처럼 여기고 살고 있답니다.”
오늘 대화하면서 검무극은 확실히 느꼈다. 이 빈틈없는 여인의 입에서 환왕이 언급되려면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겨울이 지나 봄꽃의 꽃망울이 터질 때가 되어도 쉽지 않을 것임을. 하지만 이 여인, 오랫동안 공을 들이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주인장에게 말해줄 소식이 있소.”
평온한 상황에서 안 된다면, 그녀를 궁지로 몰아붙여야 할 것이다.
“어떤 소식이죠?”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소. 뭐부터 듣겠소?”
“나쁜 소식부터 듣죠.”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풍천교주가 돌아왔소. 섭혼마존이 관련된 일이라 풍천교주가 직접 이번 사건을 조사할 거요. 잠시 후에 풍천교주가 마군들을 이끌고 직접 와서 화원도 뒤질 거요.”
검무극은 숨기지 않고 정보를 노출했기에 환여는 오히려 헷갈렸다. 자신을 진짜 의심했다면 풍천교주와 함께 오면 되었을 텐데.
“풍천교주는 자신했소. 자신이 직접 와서 살피면 반드시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화원은 걱정 없었다. 이곳 화원에는 환술이나 섭혼술과 관련해서 그 어떤 증거가 될만한 것도 없었으니까. 자신의 진짜 신분을 알아낼 수 있는 증거도 없었고.
문제는 자신이었다.
과연 풍천교주가 자신을 직접 본다면? 그라면 자신의 진면목을 알아낼 수도 있었다. 소교주에겐 숨길 수 있었지만 풍천교주는 자신이 없다.
‘풍천교주와 맞부딪치기 전에 떠나야 해.’
아까 풍천교주가 돌아왔다는 수하의 보고를 들으면서도 당장 떠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소교주 때문이었다.
자신의 용모파기를 공개하고 추격대를 보내지 않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먼저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정말 자신을 믿기 때문이라면? 여전히 의심스럽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아직도 그대가 무고하다고 생각하오. 꽃을 좋아하는 악인은 없는 법이니까.”
그래, 밑져야 본전이다. 어차피 소교주에게서 빠져나갈 자신은 있었으니까.
“좋은 소식은 뭐죠?”
“나와 식사합시다. 내가 사겠소.”
생각지 못한 제안에 환여는 놀랐다. 왜 자신과 밥을 먹으려는 것일까? 음식에 독을 타려고? 자신을 제압하려면 좀 더 쉬운 방법이 있을 텐데.
정말이지 이 사람은 도통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답이 내려지지 않으니까 자꾸 휘말리게 된다.
“더 나쁜 소식 아닌가요? 소교주님처럼 귀한 분과 밥을 먹다간 체할 거예요.”
검무극이 큰소리로 웃었다.
“역시. 우리 주인장이 왠지 유쾌한 분일 것 같았소.”
검무극의 너스레에도 환여는 진지했다.
“소교주님은 편하게 저를 대하시지만 저는 너무 힘들답니다. 소교주님을 뵌 것만으로도 힘든데 풍천교주 같은 분을 뵈면 저는 쓰러지고 말 거예요. 정말 제가 무고하다고 믿으신다면 잠시 화원 문을 닫고 고향에 다녀올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용모파기가 공개되고 추격대가 자신을 쫓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붙잡힐 리가 있겠는가?
문제는 이 일을 맡긴 사람이 자신을 무능하게 여길 거라는 점이다.
정체가 노출된 채 마교에 쫓기게 된다면 앞으로 주된 역할은 동생이 맡게 될 거고, 자신은 그를 보조하는 역할이 될 것이다. 바라는 바가 아니다. 그녀는 그림자가 아니라 빛이 되고 싶었다.
“저를 믿는다고 하셨잖아요?”
“물론이오.”
“그럼 부탁드릴게요. 제발 저를 보내주세요.”
“풍천교주만 만나면 보내주겠소. 내가 옆에 있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환여는 빤히 검무극을 응시했다. 그녀의 눈빛이 달라졌다.
“귀하신 분께서 한 입으로 두 말씀을 하시는군요. 저를 의심하지 않는다고 하셨잖아요?”
“의심하지 않소.”
이제 검무극은 상황을 다음 국면으로 넘겼다.
“의심은 긴가민가한 상태에서 하는 거지 당신이 확실한 흉수인데 의심을 왜 하겠소?”
“!”
환여는 깜짝 놀랐다. 검무극이 이런 말을 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악인이었다니.”
공교롭게도 검무극은 꿈속에서 했던 말을 비슷하게 했다.
환여는 알 수 있었다.
‘애초부터 나를 가지고 놀았구나!’
다만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이것이었다.
“언제부터 알았지?”
환여의 기도가 달라졌다. 섭혼마존에게 섭혼술을 걸고, 마교 소교주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본모습이 나왔다.
“처음부터.”
여인에게 꽃을 사주러 왔을 때부터 알았다는 의미.
환여가 탄식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꾸몄는지 알아내려고 한 거였구나.”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했는데. 검무극의 대답은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당신도 모르잖아?”
순간 환여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당신도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잖아? 그가 어떤 목적인지 모르잖아? 나를 죽이려는 건지, 우리 아버지를 죽이려는 건지, 소모품인 당신에게는 말해주지 않았겠지.”
환여의 기도가 거칠어졌다. 바뀐 기도에 담긴 분노는 검무극의 말을 시인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소교주란 지위가 당신 목숨을 지켜줄 방패가 되었겠지. 그 방패가 내게도 통할까?”
“그건 나도 모르지. 당신이 든 창이 어떤 창인지 모르니까.”
바로 그때였다.
화원 담장 너머 저 멀리 일단의 무인들이 이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앞장선 사람은 풍천교주였고, 뒤따르는 이들은 마군들이었다. 덩치가 원체 크니 멀리서도 잘 보였다.
“화원을 수색할 때, 우린 식사나 합시다.”
환여가 차갑게 제안을 받았다.
“그 밥 내가 사지.”
그녀가 손뼉을 치는 순간!
주위가 바뀌었다.
* * *
환술 속의 공간.
눈앞에 술과 음식을 파는 반점이 있었다.
귀혼반점(鬼魂飯店).
그 반점 앞에 서 있는 환여의 모습은 달라져 있었다. 눈이 찢어지고 입술은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환술 속의 모습과 평소의 모습이 극과 극인 그녀다.
“이런 얼굴인 줄 알았으면 같이 밥 먹자고 안 했을 텐데.”
내 말에 환여는 인상을 찌푸리며 차갑게 조소했다.
그녀가 먼저 걸어가자 귀혼반점의 문이 저절로 활짝 열렸다.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반점 안은 손님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웃고 떠들던 장내가 일제히 조용해지면서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들의 초점 없는 텅 빈 눈동자에는 영혼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귀혼(鬼魂)들이었다.
귀혼들로 가득 찬 그곳은 강력한 귀기가 반점 안을 채우고 있었다. 천마호신공이 스스로 발동하며 나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환여가 앉은 자리로 걸어갔다. 그녀는 눈빛부터 여유로웠다. 적어도 이곳 귀혼반점에서는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 옆에 한 노인이 서 있었다.
“귀혼반점의 주인이신 귀숙이시다.”
검무극은 느낄 수 있었다. 이 노인 역시 환술의 절대고수라는 것을.
회귀 전 일을 떠올려보면 환왕과 환여는 다른 십이지왕과 마찬가지로 많은 수하를 거느렸었다. 이 귀숙이란 노인도 그들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귀숙, 오늘 함께 오신 분은 신교의 귀한 분이시니 특별히 잘 부탁드려요.”
귀숙은 차갑게 나를 노려보았다.
“마교에 귀한 신분이 있을 리가! 다 하찮은 것들이다.”
그의 목소리에 강력한 귀기가 느껴졌다. 환여가 환술 중에서도 섭혼술에 능통하다면 노인은 귀술에 특화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귀숙의 등에 소리쳤다.
“이보시오, 주인장. 본교도 많이 바뀌었으니, 선입견을 버리시오!”
내가 전혀 겁을 먹지 않는 모습에 환여는 감탄했다.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군. 네 나이에 이런 기도와 여유는 흉내조차 내기 어렵지.”
“우리 마존들하고 얽히다 보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알게 될 거요. 어휴, 그 사람들 처음에 어땠는지 아무도 몰라. 내 시커멓게 탄 속을 누가 알까?”
환여의 길게 찢어진 눈에서 이제 대놓고 섭혼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섭혼술을 이용해서 내 속마음을 읽으려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천마호신공이 발동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사술은 통하지 않았다.
“내 의도를 파악하려 한 것도 아니면 뭐 때문에 나를 지켜본 건가?”
“그야 당연히 궁금해서요. 배후가 누구기에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
“왜 알아내지 않고 포기한 건가? 풍천교주를 동원하지 않았다면 좀 더 나에 대해 알 수 있었을 텐데.”
“당신은 쉽게 대답하지 않을 사람이고.”
잘 봤다는 표정으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당신에게 내 귀한 시간을 들일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소.”
다 포기한 듯 말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 마지막 승부수가 통하지 않는다면 그녀를 인질로 잡아 환왕을 끌어들일 것이다. 그녀를 고문해서라도 알아낼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아낼 것이다. 이 일은 풍천교주의 생사와 관련된 일이었으니까. 정 안 되면 복수의 대상을 내게 돌려서 환왕을 기다릴 것이다.
이것이 아낌없이 나에게 모든 것을 준 풍천교주에 대한 내 보답이다.
그때 점소이가 술부터 먼저 가져왔다. 점소이 역시 두 눈이 공허한 귀혼이었다.
나는 술 냄새를 맡아보았다.
“이거 죽은 자들이나 먹는 술 아니오?”
죽은 자란 말이 나오자 시끄럽던 주위가 조용해지며 모두가 이쪽을 쳐다보았다.
텅 빈 눈동자에 담긴 귀기. 아마 천마호신공이 아니었다면 공포에 휩싸이며 온몸이 떨렸을 것이다.
옆에 앉아 있던 귀혼과 눈이 마주쳤다. 그놈에게서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하지만 감히 달려들지 못했다.
환여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소교주, 그대가 믿는 것이 구화마공이겠지. 맞아, 구화마공을 익힌 그대를 환술로는 죽일 수 없지.”
이것이 구화마공의 위엄이다. 어떤 사술과 환술도 통하지 않는 절대마공의 위엄.
“알면서 왜 데려왔소?”
“죽일 순 없어도 가둘 순 있으니까.”
혈안정수와 신안술로 주위를 살폈다. 푸르스름한 빛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예전 섭혼마존과의 싸움에서처럼, 파훼법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을 죽이면 이곳도 사라지겠지.”
죽음 앞에서도 그녀는 자신만만했다.
“이건 장담하지. 이곳에서 나를 죽이면 소교주 너는 영원히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영원히 저 귀혼들과 함께 이곳에 갇혀 지내야 하지. 내가 자결해도 마찬가지다. 내가 죽는 순간 파훼법 자체가 사라져버린다.”
그 말이 사실이라는 듯 일제히 귀혼들이 이쪽을 쳐다보았다. 공허한 눈빛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평생 우리와 함께하자.
우리가 들어온 문을 쳐다보았다. 저 문으로 나가면 되지 않느냐는 눈빛에 환여가 자신 있게 말했다.
“저 문은 안에서는 절대 열 수 없다.”
“풍천교주가 나를 구하러 오겠지.”
“저 문밖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지?”
여유를 부리며 환여는 호언장담했다.
“저 문은 풍천교주가 아니라 풍천교주 할아버지가 와도 못 연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끼이이이이이익.
문이 큰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소스라치게 놀란 환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뿐만 아니라 주방 안에서 고개를 내민 귀숙의 표정도 심각했다. 귀혼들도 일제히 문을 바라보았다.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바로 풍천교주였다. 그의 어깨에 매달려 있던 귀혼이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의 발목에는 귀혼의 잘린 손이 붙어 있었다.
“누가 그래? 내가 못 연다고?”
열린 문 너머로 바깥이 보였다. 과연 환여의 말처럼 들어올 때와 풍경이 달랐다. 저 멀리 불길이 치솟고 피의 비가 내리는 지옥,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그곳에는 귀혼들의 시체가 저 멀리 지평선까지 끝없이 널려 있었다.
풍천교주는 저 귀혼들을 뚫고 나를 찾으러 온 것이다.
“우리 악덕 소교주에게 돌려받아야 할 것이 좀 많아야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