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20)
절대회귀-320화(320/424)
제320회 내 뒷물결이 그러더라.
낯설었다.
자신 앞에서 무림일통을 말하고 있는 제자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풍천교를 누구보다 잘 지켜나가리라 믿고 교주 자리를 물려줬던 제자였는데.
오죽했으면 그가 섭혼술에 걸린 것이 아닌지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소백타에게는 그 어떤 섭혼술도 걸려있지 않았다.
자신이 모르는 섭혼술이면 어찌하냐고? 그런 섭혼술이 있었다면 이미 그자가 무림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무림일통의 첫발을 내디딘다고? 이 미친놈아!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냐?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으며 교주 대접을 해주었다.
“어떻게 말이오?”
농담이었습니다, 사부님. 풍천교주가 기대한 말이었다. 그래, 껄껄 웃으며 넘어가자.
하지만 소백타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차분히 말했다.
“새외무림부터 일통해야겠지요.”
새외에 풍천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중원만큼은 아니더라도, 이곳에도 많은 문파가 자웅을 겨루고 있었다.
새외에서 풍천교는 중원에서의 천마신교와 같은 위치였다. 당연히 무림맹이나 사도맹과 같은 위치에 있는 세력이 있었다.
“설마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뜻이오?”
“피를 흘리지 않고 저들을 굴복시킬 수는 없을 테니까요.”
거기에 소백타는 한술 더 떴다.
“도와주십시오, 사부님. 사부님이 도와주시면 더 쉽게 새외일통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본교를 위해서라도 도와주십시오.”
결국 풍천교주의 분노가 폭발했다.
“닥쳐라! 네 이놈!”
풍천교주의 몸에서 차가운 기도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갔다.
쏴아아아아아!
소백타는 처음 이 말을 꺼낼 때 이미 사부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로 예상했는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겁을 먹지도 않았다.
“헛된 꿈이다!”
“왜 헛된 꿈입니까? 무인이 무림일통을 꿈꾼다는데 왜 헛된 꿈입니까?”
“전쟁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일지 모르고 하는 소리냐? 수천, 수만 명이 죽을 거다.”
풍천교주의 언성은 높아졌지만 소백타의 어조는 더 가라앉았다.
“사부님이 언제부터 사람들 목숨을 아끼셨다고요.”
“!”
풍천교주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제자는 선을 넘고 있었다. 아니, 첫발을 내디딘다는 말을 꺼낼 때 그 발은 선 너머에 있었다.
“왜 그 꿈은 마교만 꾸고 무림맹만 꾸고, 사도맹만 꿀 수 있는 겁니까? 우린 꾸면 안 되는 꿈입니까? 어려서부터 제가 사부님이나 선배들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중원진출입니다. 이럴 거였으면 그 말씀은 왜 그리들 하신 겁니까?”
이렇게 따지고 물으니 풍천교주는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이 순간 풍천교주는 건방지고 똑똑한 누군가가 떠올랐다. 어른들 밤잠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그라면 이 멍청한 놈이 정신을 차릴 따끔한 말을 해줄 텐데. 자신이 해줄 말은 고작 이 정도였다.
“넌 지금 제정신 아니다.”
소백타는 정말 미친놈처럼 음뢰종으로 걸어가더니 종을 쳤다.
뎅! 데엥!
음뢰종 소리가 교주전에 울려 퍼졌다. 마치 선언하는 것만 같았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그렇게 듣고 싶었던 음뢰종 소리를 이렇게 듣다니.
풍천교주는 이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저 종소리가 신호가 되어 휘장 뒤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교주님 복귀 기념 깜짝 환영회입니다! 라고 할 것만 같았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소백타는 자신을 만난 이후 가장 진지한 눈빛이었으니까.
“사부님은 어디 제정신으로 교를 떠나셨겠습니까?”
그래, 녀석의 말처럼 정말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 미안함은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이 풍천교면 풍천교지 소백타는 아니었다. 내 것을 다 물려받은 놈에게서 들을 말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은 다 그렇게 말해도 너만은 그래선 안 되는 것 아니냐?”
“아뇨, 다른 사람은 못 해도 저는 할 수 있습니다.”
데엥!
다시 음뢰종이 울려 퍼졌다.
종에 새겨진 악귀가 자신을 쳐다보며 비웃는 것만 같아서 풍천교주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분노는 충분히 끓었고 이제 넘칠 일만 남았다.
그때, 검무극이 했던 말이 마음에 울려 퍼졌다.
―해답은 교주님에게 없습니다.
아, 또 흥분해서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구나. 또 내 마음하고 싸우고 있었구나.
종소리가 잦아드는 소리에 맞춰서 풍천교주도 애써 감정을 가라앉혔다.
“좋다. 그래, 네 꿈을 인정한다 치자. 한데 너! 아직 앙천대마기의 대성을 이루지도 못했으면서 무슨 무림일통을 꿈꾸는 거냐?”
차라리 환술이라도 극의에 도달했다면 또 모르겠다. 그 강함이 유혹하는 바가 있을 테니까.
하지만 소백타가 앙천대마기의 대성을 이루려면 적어도 십 년은 더 있어야 할 것이다.
소백타는 음뢰종을 쓰다듬으며 차분히 대답했다.
“비무대회가 열리면 무공실력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무림을 일통하는 일에는 다른 것이 더 중요할 겁니다.”
“다른 어떤 것?”
소백타는 대답하지 않고 풍천교주 쪽으로 걸어 나왔다.
“음뢰종도 봤으니 이만 돌아가시죠. 장로들이 사부님 기다리겠네요.”
태사의의 장치에 내력을 주입하자 신물 앞으로 벽이 내려왔다.
음뢰종 앞으로도 벽이 내려왔다. 벽 너머로 모습을 감추는 음뢰종의 악귀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너는 퇴물이다. 젊은 사람들에게 안 돼. 장강의 뒷물결이 밀어내면 밀려나야지.
다행히 풍천교주는 부정적인 생각을 밀어냈다.
악귀 놈아, 그 뒷물결이 그러더라. 제발 마음속에서 이런 혼자만의 싸움, 하지 말라고. 내 뒷물결은 지겹도록 그 말을 해주는 뒷물결이다. 알겠냐, 이놈아!
풍천교주는 마음에서 회오리치던 풍랑을 가라앉히며 다시 소백타를 쳐다보았다. 그래, 난 지금의 너만 보겠다.
자신을 향한 눈빛에서 강력한 의지를 읽었다. 이놈, 진심이다.
“내가 말릴 것을 알았을 텐데 왜 말해준 거냐?”
풍천교를 떠날 때 말릴 자격을 잃으셨다, 이런 말을 예상했는데. 소백타는 전혀 생각지 못한 이유를 밝혔다.
“아뇨, 몰랐습니다. 제가 사부님 마음을 어찌 알겠습니까? 혹시라도 도와주신다고 하실 수도 있잖습니까? 소교주 뒷바라지나 하는 신세, 질렸을 수도 있고요. 제 꿈을 이루는 것이 몇 배는 더 쉬워질 가능성이 있는 일인데, 당연히 말씀드려야죠. 자, 가시죠.”
소백타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 차분하던 제자를 이렇게 만든 놈은 누구일까?
한데 자신만만하게 걸음을 옮기는 뒷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소백타는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었고, 자신이 그걸 못 본 것일지도.
제자에게 네 꿈이 뭐냐는 질문 한 번 안 던진 대가를 이제야 치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 *
객청으로 돌아온 풍천교주가 꺼낸 첫마디였다.
“나는 잘 모르겠네.”
풍천교주는 교주전에서 제자와 나눈 이야기를 검무극과 마불에게 모두 말해주었다.
오히려 그때보다 감정이 격렬해졌다. 제자 앞에서는 마음을 다스리려고 노력하는 바람에 많이 참았다. 그게 다 터져 나왔다.
이야기를 다 들은 검무극과 마불은 깜짝 놀랐다. 새 풍천교주가 그런 일을 진행하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자네처럼 대처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되더군. 일방적으로 당한 기분이네.”
풍천교주는 검무극 앞에서 괜한 자존심 세우지 않았다. 마불 앞에서도 마음에 걸리는 게 없는 걸 보니, 모래바람 맞으며 함께 온 보람이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나보고 참으란 소리 말게! 자세히 보란 소리도 말게! 그냥 내 마음대로 소리치고, 내 마음대로 화내고, 내 마음대로 생각할 테니까! 어휴, 이 미친놈 하면서 뒤통수를 후려갈겼어야 했는데.”
듣고 있던 마불이 자넨 그게 어울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검무극은 풍천교주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말을 듣고 노력해주는 그가 고마웠다. 교주님, 잘하셨습니다. 환왕이 배후에 있으니 우린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합니다.
“교주님께 계획을 밝혔다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났다는 의미일 겁니다.”
환왕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밝히는 것만큼이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풍천교가 전쟁에 휘말리는 것은 검무극도 결코 바라는 바가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자연스럽게 드는 한 가지 의문.
“만약 배후에 있는 자가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친 거라면, 새외를 전쟁으로 몰아넣어서 무슨 이득이 있을까요?”
풍천교주는 제자에게만 몰입하다 보니 거기까진 생각지 못했다.
“뭐 때문이지?”
“이제부터 밝혀내야죠.”
환왕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풍천교를 장악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렇게 전쟁을 일으키는 쪽으로 유도하지 않았을 텐데.
대체 환왕과 소백타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회귀 전의 풍천교는 새외에서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 사람이 바뀌니 이렇게 사건도 바뀌는 것이다.
검무극이 풍천교주에게 물었다.
“후회하십니까? 그 사람을 교주 자리에 앉힌 것을요.”
당연히라는 말이 나오려다가 목구멍에서 걸렸다. 정말 후회하고 있나? 그렇다면 왜 대답이 곧장 나오지 않는 걸까?
검무극이 다르게 물었다.
“그때로 돌아가면 다른 사람을 앉힐 겁니까?”
잠시 고민 끝에 풍천교주가 대답했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녀석을 앉힐 거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의 최선은 소백타였다. 다만 다시 돌아간다면 녀석의 꿈을 물어봐 줄 거고, 그 헛된 꿈이 자라기 전에 다른 꿈을 심어줄 거다.
누군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시커먼 욕망을 툭툭 건드리더라도, 그건 왜 건드려 새끼야! 저리 안 꺼져? 라고 말할 수 있는 제자로 키워줄 거다.
“그럼 됐습니다. 지금이라도 제자를 바로 잡아주시면 되죠.”
“어떻게?”
“그 대답은 교주님께서 해주셔야지요. 여긴 풍천교니까요. 어떻게 할까요?”
풍천교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일단 만나야 할 사람이 있네.”
이목을 끌 필요가 없었기에 마불과 호위들은 남겨두고 풍천교주와 은밀히 객청을 빠져나왔다.
* * *
검무극이 풍천교주와 함께 도착한 곳은 육대장로 중 수석장로였던 성야의 집이었다.
교주 시절 풍천교주가 가장 아꼈던 인물이 바로 그였다.
“그는 나와의 약속을 어길 사람이 아니라네.”
풍천교주는 그를 믿고 있었다.
모래바람이 부는 황무지에 그의 집이 덩그러니 있었다. 휑한 느낌이지만 또 그만큼 분위기가 있었다.
게다가 사방이 뻥 뚫린 곳에 있었기에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대문은 열려 있었다.
“성 장로.”
마당에서 풍천교주가 불러보았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검무극과 풍천교주가 눈빛을 교환한 후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먼지가 쌓인 걸로 볼 때 집을 비운 지 꽤 된 것 같습니다.”
검무극의 말에 풍천교주의 얼굴에 걱정이 스쳤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성야의 부재가 심상치 않게 다가왔다.
두 사람은 내부를 살펴보았다. 반듯하고 깔끔하고. 집이 정리된 것만 봐도 그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
“가족은 없습니까?”
“원래 혼자였던 사람이네.”
“그와 가장 친했던 사람은 누굽니까?”
잠시 고민하던 풍천교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성야가 누구와 친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 놓고선 제일 아끼는 사람이라 하고 있다. 남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에만 신경 쓰고 살아온 인생이다.
“난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았었는지 모르겠군.”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다들 비슷하죠.”
“자넨 다르지 않나?”
저도 같았습니다. 아니, 저는 더했습니다.
“저야 소교주 아닙니까?”
“난 교주였다고!”
“교주님!”
“그래, 교주.”
“아뇨, 이것 좀 보시라고요.”
검무극이 무엇인가를 발견한 것이다.
책상 옆에 불에 탄 종이가 남아 있었다.
“집이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는데, 이 재를 치우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 내용을 보고 급하게 달려 나갔던 모양입니다.”
아쉽게도 타다 남은 종이 귀퉁이만 남았을 뿐, 내용은 알 수 없었다.
그 종이를 손으로 만져보며 유심히 살피던 풍천교주가 놀라운 말을 했다.
“자네 이 내용 복원할 수 있나?”
“아뇨.”
“난 할 수 있네.”
그 말에 검무극은 깜짝 놀랐다.
“그런 환술도 있습니까? 그거 저도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런 환술은 없네.”
풍천교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타다 남은 재를 그냥 두고 집 밖으로 나갔다.
검무극이 그를 뒤따르며 물었다.
“복원하신다면서요?”
“복원하러 가는 거네.”
“타다 남은 재라도 가져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 종이는 특수한 약물이 처리된 밀지(密紙)라네. 열을 가하면 진짜 내용이 나오지.”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러자 풍천교주에게서 놀라운 대답이 나왔다.
“내가 고른 거니까.”
“풍천교에서 쓰는 밀지입니까?”
“아니네.”
그런데 어떻게 교주가 알지?
한데 자신이 고른 거라고? 풍천교주가 저 종이를 골랐다는 것이 무슨 뜻이지?
“싸고 품질 좋은 것을 골라야 한다고 고월이 어찌나 잔소리했었는지. 자네 돈 아껴준다고 말일세.”
그 말에 검무극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골랐다는 말에, 내용을 복원할 수 있다는 말에 이미 답이 있었다.
“은월에서 쓰는 밀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