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22)
절대회귀-322화(322/424)
제322회 당신은 실패하지 않았소.
소백타의 몸에서 사나운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본교는 그대의 전쟁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렇게 화가 나지 않았다. 예상했던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얼굴을 씻고 오라는 말에 이루 말할 수 없이 모욕감을 느꼈다. 자존심을 제대로 건든 것이다.
‘네가 그렇게 강해?’
귀신 울음이 사방에 울려 퍼지며 검무극을 귀기로 짓눌렀다.
아직 대성을 이루지 못한 마공이지만 앙천대마기였다.
천마호신공이 발동하며 검무극의 몸을 보호했다. 검무극이 편안한 얼굴로 서 있자 소백타는 더욱 내공을 끌어올렸다.
‘네가 정말 그렇게 강하냐고!’
정말 강했다. 귀기에 눌리기는커녕 오히려 성큼성큼 소백타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으니까.
“당신이 가진 게 뭐기에 이 난리요? 뒷골목 파락호들 기루 뺏기도 아니고, 대체 뭘 가졌기에 새외일통을 논하고 무림일통을 꿈꾸는 거요?”
검무극은 소백타 앞까지 다가섰다.
“당신 얼굴의 이 정신 사나운 문양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줄 것 같진 않은데?”
소백타의 눈빛에 어떤 결의가 스치던 그 순간, 그의 또 다른 패가 뒤집혔다.
두 눈에서 선홍빛 기운이 흘러나오면서 앞서 나왔던 귀기와 합쳐지기 시작했다.
순간 검무극은 알 수 있었다.
‘저 기운은 앙천대마기가 아니다!’
다음 순간, 시뻘건 기운이 검무극을 덮치면서 주위가 바뀌었다.
검무극이 서 있는 곳은 교주전이 아니었다.
주변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벽과 바닥이 꿀렁대고 있었다. 짐승의 내장 속에 있는 기분이 드는 이곳, 와본 곳이다.
그래, 화원의 여인이었던 환여가 만들었던 그 공간!
하지만 환여가 만들었던 공간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색이 달랐고 모양이 달랐다. 풍천교주의 앙천대마기의 기운과 예전에 느꼈던 환여의 기운이 모두 느껴졌다.
‘두 무공이 합쳐졌구나!’
합쳐진 기운은 더욱 강력했다. 물론 두 무공을 합치게 해준 사람은 환왕일 거다.
소백타가 뭔가 바뀐 것처럼 느껴진 것은 그가 섭혼술에 당해서가 아니었다. 두 강력한 무공이 합쳐지면서 그것이 인성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거기에 환왕의 설득과 세뇌가 더해졌을 테고.
환왕이 자신의 무공을 제공해서 그를 더 강하게 만들어줬다고?
천만에! 만약 그런 효과를 낸다면 소백타의 무공을 훔쳐서 자신이 흡수했을 것이다.
‘이 합쳐진 무공의 끝은 죽음이다.’
검무극은 확신했다. 환왕이란 사람은 이미 회귀 전의 삶에서 보여줬다. 그는 오직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임을.
이 공간의 정면에는 사람의 얼굴이 튀어나오던 만리전벽이 있었다.
그 반대편에서 누군가 얼굴을 쑥 내밀었다.
“소교주, 보여달라고 했소?”
얇은 막 뒤에서 튀어나온 얼굴은 소백타였다. 그의 목소리가 기괴하게 울려 퍼졌다.
“구화마공을 익힌 당신을 죽일 순 없겠지. 대신 이곳에 영원히 가둬버릴 순 있소.”
무림일통의 자신감은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마교 소교주까지 가둬버릴 수 있다고 믿는 이 강력한 무공에서.
자연스럽게 그의 마지막 패도 알 수 있었다. 환왕이 무공을 전수해줬다면, 그가 도와줄 거란 믿음도 있을 것이다. 이 합쳐진 무공에 환왕까지 돕는다?
이제야 그의 흥분과 자신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무공은 무슨 무공이오?”
검무극의 물음에 소백타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앙천혈령술(殃天血令術)!”
그가 자신할 만큼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건 앞서 사도맹이 팔았던 불안정한 내공증폭제 광폭을 복용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런 방식으로 강해지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모르오?”
소백타가 웃었다. 출렁이는 막에 드러나는 그의 표정에서 그 어떤 불안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가는 당신들이 치러야 하지 않소? 구화마공만 믿고 안주해온 당신들이! 어떻소? 이제 충분히 내 능력을 보았소?”
검무극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생각에 잠긴 그에게 소백타가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시오?”
어떻게 하면 당신에게서 환왕에 대해 들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여길 빠져나갈 수 있을까 고민 중이었소.”
검무극이 흑마검을 뽑아 들자 소백타가 비웃었다.
“막이 얇아 보이니 쉽게 찢어질 것 같겠지.”
여유로운 웃음으로 막을 뒤흔들고 있는 소백타는 결코 알지 못했다.
혈안정수와 신안술을 발휘한 검무극의 눈에는 막을 파훼할 수 있는 푸르스름한 선이 보인다는 것을.
물론 모든 파훼법이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예전 섭혼마존과의 싸움처럼 생사가 오가는 위험을 넘어서야 찾아낼 수 있는 환술이나 사술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만리전벽의 막을 자르는 파훼법은 검무극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쉭!
흑마검이 가볍게 허공을 갈랐다.
찌이이이익.
마치 천이 찢기듯 막이 찢어졌다. 그 바람에 막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던 소백타가 안으로 고개를 푹 들이밀었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뜬 채 경악했다. 심지어 검무극은 막을 베면서 자신의 얼굴에 상처 하나 남기지 않았다.
“어떻게?”
검무극은 손을 쑥 집어넣어서 벽 너머에 있던 소백타의 멱살을 잡은 후 안으로 잡아당겼다.
소백타가 그곳으로 끌려 들어왔다.
검무극은 바닥에 쓰러진 그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여기서 영원히 못 나간다고 했소? 평생 나하고 있을 자신 있소?”
소백타가 반사적으로 공간을 없앴다. 공간이 없어지면서 교주전으로 돌아오는가 싶었는데.
스스슷.
그들은 다시 원래 있던 공간으로 돌아왔다.
“!”
소백타는 깜짝 놀랐다.
공간을 없애는 구결을 외웠고 분명 교주전으로 다시 돌아왔었다. 한데 다시 그 공간으로 끌려오듯 되돌아온 것이다.
다시 구결을 외웠다. 하지만 벽과 바닥이 출렁대며 요동칠 뿐, 만들어진 공간은 없어지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다!’
그는 내심 당황했다. 이 공간을 만드는 법을 배운 이래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실패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의 시선이 찢어진 벽을 향했다.
‘저것 때문인가?’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이 만들었던 공간과 비슷하지만 달랐다. 색도 다르고 느낌도 달랐다.
‘저걸 찢는 바람에 뭔가 달라졌다!’
소백타는 알 수 없는 불길함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침착하게 다시 해보시오.”
검무극의 말에 다시 시도했지만, 여전히 공간은 사라지지 않았다.
소백타는 만리전벽으로 달려가서 검무극이 찢었던 곳으로 다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찢어진 막 뒤에 새로운 막이 생겨 있었다.
진기를 주입해서 막을 찢어버리려고 했지만 늘어나기만 할 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소백타가 검무극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당신이 다시 저 벽을 찢어보시오.”
검무극이 검을 뽑아서 막을 향해 내리쳤다. 하지만 막은 찢어지지 않았다. 찔러도 베어도 막은 늘어나고 출렁일 뿐이었다.
“아까는 어떻게 찢은 거요?”
“나도 모르겠소. 당신 얼굴이 날 놀리는 것을 보니까 화가 나서 찢었는데. 저쪽에서 얼굴을 들이밀어야 찢어지는 거요?”
검무극이 되물었지만 소백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도 몰랐으니까.
“어떻게든 나갈 수 있겠지. 설마 못 나가겠소?”
다소 여유로운 검무극과는 달리 소백타의 두려움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저 태평한 자는 이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모른다. 공간을 없애지 못하면 여기서 굶어 죽게 되는 거다.
“내공이 소모되고 있소?”
소백타가 자신의 내공을 살피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검무극이 벽에 털썩 기대앉으며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군. 아니었다면 선천진기가 고갈돼서 죽었을 테니까. 쉬었다 다시 해보시오.”
검무극의 말이 옳다. 흥분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소백타는 침착하게 벽을 살폈다. 내장처럼 꿈틀거리는 벽의 움직임이 잦아들고 있었고 서서히 색깔도 어두워지고 있었다. 벽은 죽어가고 있었다.
“앙천대마기와 같은 대단한 마공에 다른 마공을 합쳤는데 부작용이 없으리라 생각했소?”
그랬다. 소백타는 부작용 따윈 없을 거라 믿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없었고.
소백타는 자리에 앉아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마음을 다스리고 내공도 채워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도하려는 것이다.
진기를 일주천하고 눈을 떴을 때 검무극은 벽을 살피고 있었다.
소백타가 침착하게 다시 공간을 없애는 구결을 외웠다. 하지만 여전히 실패였다.
바로 그때였다.
주르르르륵.
사방 벽에서 핏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리듯 벽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멈추지 않았다.
깜짝 놀라 주변을 살핀 소백타는 절망했다.
“피가 빠져나갈 곳이 없어.”
바닥에 피가 고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핏물이 차오르면 결국 익사해서 죽을 것이다.
자신이 만든 환술 속에서 핏물에 익사해 죽는다고? 그것도 마교 소교주와 함께?
소백타는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잠시 멍하게 서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맹렬한 적개심이 치밀었다. 소백타가 내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양손에서 시뻘건 기운이 뭉쳐지기 시작했다.
“이게 다 너 때문이다!”
소백타가 검무극을 향해 강기를 발출하려고 손을 내뻗었지만 검무극은 한 발 더 빨랐다. 암영보로 쇄도한 그가 일격을 날렸다.
퍼억!
가슴을 맞은 소백타가 날아가 벽에 부딪힌 후 바닥에 쓰러졌다.
검무극은 피에 잠긴 그를 잡아 일으켜서 내공을 제압했다. 어느새 피는 무릎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왜 나 때문이오? 자기가 만든 것도 못 없애면서 새외일통을 하겠다고 설쳐댄 당신 때문이지.”
검무극이 사정없이 소백타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건 당신 사부 몫! 당신 사부가 당신 만나고 돌아와서 그러더군. 어휴, 이 미친놈 하면서 뒤통수를 후려갈겼어야 했다고.”
소백타가 이를 악물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지금 검무극과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피가 빠르게 차오르고 있었다.
소백타는 차오르는 핏물을 보며 공포를 느꼈다. 처음 느껴보는 죽음의 공포였다.
이런 와중에 검무극이 그를 자극했다.
“당신 사부가 교주 자리를 물려줬으면 그걸 지켜낼 생각을 했어야지. 자기에게 주어진 복도 못 지키는 주제에 뭘 하겠다고!”
“복? 대체 무슨 복?”
복 받았다는 말은 그에게 역린 같은 말이었다.
“원래도 나는 교주 자리를 물려받을 사람이었다!”
“더 일찍 물려받았으니 좋은 거잖아?”
“좋다고? 그때의 난 아직 교주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었는데? 더 수련해서 앙천대마기의 대성을 이룰 때쯤 물려받아야 할 자리였다. 한데 사부는 나에게 교주 자리를 내던지고 가버렸지.”
가슴 속 깊이 묻어 두었던 것들이 터져 나왔다.
“내게 그러더군. 자신을 따르는 이들이 많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웃기지 말라고 해! 그 사람들 사부를 따르지 날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잖아? 왜 그걸 몰라? 사부 앞에서 하는 말과 내 앞에서 하는 말이 다르다는 걸 왜 모르냐고!”
피는 어느새 배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사부가 떠나고 내가 어땠는지 아나?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어. 누가 내 자리를 노리지는 않나? 속으로 날 무시하는 건 아닌가? 암살당할까 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지. 그래놓고 뭐? 다른 사람은 다 그렇게 말해도 너만은 그래선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도 알지도 못하면서.”
검무극은 알 수 있었다. 그에게서 언뜻언뜻 느껴졌던 치기는 바로 사부에 대한 원망에서 시작된 것임을.
‘때문에’ 자리에 ‘덕분에’를 넣고 버티고 이겨냈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그는 그러지 못했다.
“오직 그만이 나를 유일하게 이해해 주는 사람이었지.”
환왕은 그의 원망과 분노, 두려움의 틈을 비집고 파고들었으리라.
소백타는 이걸 말하고 싶었다. 빌어먹을 사부보다 그 사람이 백 배 더 나은 사람이라고.
“그는 혈교의 마지막 후예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환왕과 환여를 끝으로 더는 혈교의 무공이 등장하지 않았으니까.
“조용히 살아가려고 했는데, 내가 사부에게 버림받고 교주 자리에 오르는 것을 보고 마음이 변했다고 했지.”
환왕은 한 인간이 가장 약한 순간, 가장 큰 힘이 되어 주는 척했을 것이다. 혈교의 마공을 가르쳐주며 그의 마음을 녹였으리라.
소백타가 이제 가슴까지 차오른 핏물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피를 거울삼아 핏물을 찍어 마지막 문양을 얼굴에 그리기 시작했다.
세 문양 중 죽은 사람의 얼굴에 그리는 풍화였다. 물론 핏물로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 사람이 그려준 천화로 싸움터에 나가고 싶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검무극은 알 수 있었다.
“설마 그 사람이 교주전의 화공이었소?”
이제 마지막이라 여겼는지 소백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얼굴 문양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가르쳐준 사람이지.”
드디어 환왕이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려준 사람이지.”
피는 이제 턱밑까지 차올랐다.
‘이제 죽는 건가?’
소백타는 문득 검무극과 눈이 마주쳤다. 검무극의 맑고 깊은 눈빛에 알 수 없는 희열이 깃들어 있었다.
“뭐가 좋아서 웃고 있지?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마지막까지 잘난 척이지?”
“평소의 나라면 정말 잘난 척 많이 했겠지만, 오늘은 많이 참았소.”
이어진 말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공간을 없애는 당신의 시도는 실패하지 않았소. 내가 성공했을 뿐이지.”
“뭐?”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난 당신 사제가 되겠군.”
“무슨 헛소리냐?”
“내게만 전수해줬으니 당신은 알 수가 없지.”
핏물은 얼굴까지 차올라서 까치발을 해야 대화할 수 있었다.
“당신 사부가 이곳을 펼치고 접을 때마다 항상 하는 동작이 있소.”
검무극이 핏물 밖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소백타는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핏물은 두 사람 얼굴 위까지 차올랐다.
그렇게 핏물 속으로 잠겨 들던 바로 그때, 밖으로 내민 검무극의 손가락이 딱하고 튕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