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24)
절대회귀-324화(324/424)
제324회 오늘만큼은 적이라 생각하고.
소백타는 곧바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대신 사부와 둘만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건 검무극이 원했던 바였다.
검무극과 마불이 밖으로 나가자 그곳에는 풍천교주와 소백타만 남았다.
한참 동안의 침묵을 깬 사람은 소백타였다.
“정말 다시 돌아가도 저를 차기 교주로 삼으실 겁니까?”
“그래.”
“무림일통을 꿈꾸는 저를요?”
“그래, 그래도 널 차기 교주로 삼을 거다.”
풍천교주의 단호한 대답에도 소백타는 여전히 의심했다.
“왜 그러시겠다는 겁니까?”
“네가 풍천교를 가장 잘 지킬 거라 믿으니까.”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이 지키는 겁니까?”
풍천교주는 제자에게 자신이 느꼈던 반성과 후회를 그대로 전했다.
“다시 돌아간다면, 네게 물었을 거다. 네 꿈이 뭐냐고. 혹시라도 중원진출이라 대답하면 이 말을 해줄 거다. 그 꿈은 우리 꿈이 아니라 언젠가 선대의 누군가가 꿨던 꿈이라고. 그래서 너와 함께 황무지를 걸으면서 새외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이 모래바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강한 이들인지 보여줄 거다. 너라면 이 새외를 누구보다 잘 지켜내고 가꿔갈 수 있으리라 믿으니까.”
소백타는 화가 났다.
“지금에서야 그런 말씀을 하신다고요? 만약 이렇게 돌아오지 않으셨다면 여전히 말해주지 않았을 이야기 아닙니까?”
“네가 잘하고 있으리라 믿고 있었을 테니까. 네가 이런 마음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으니까. 만약 알았다면 진작에 달려왔을 거다.”
풍천교주가 제자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한 거다. 네 마음이 다 풀릴 때까지 계속해주마.”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그들 뒤 창문 너머로 모래바람이 불고 있었다.
* * *
검무극과 마불은 마당에 나란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와 함께 바위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이 먼 새외까지 와서 함께 하늘을 보고 있다.
마불이 불쑥 말했다.
“저 친구의 운명도 오늘 바뀌겠군.”
소백타를 의미한 것이겠지만 그의 운명은 풍천교주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랬기에 검무극은 저 둘의 관계가 어떤 식이든 잘 마무리되기를 바랐다.
“전 교주님이 걱정됩니다.”
그러자 마불은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소교주, 까불지 마라! 그런 걱정은 어른이 자네에게 하는 거다.”
검무극이 옅게 웃었다.
“마불님이 제 걱정해주시는 것처럼요?”
“난 자네 형만 걱정하지.”
냉정한 말이 오히려 더 고맙다. 그는 변함없이 형을 잘 챙기고 있었으니까.
“형이 술자리에서 제 이야기를 꺼냈다고 하셨습니까?”
검무극의 물음에 마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어떻게 하면 소교주 자리를 다시 뺏을까 고민하진 않고요?”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네.”
검무극을 향한 마불의 눈빛에 걱정이 담겼다.
“사람이 갑자기 목표를 잃으면 삶이 흔들리기 마련이지. 겉으론 태연한 척해도 많이 힘들 거야. 그러니 건방지게 어른들 걱정은 말고, 자네 형이나 잘 챙기게.”
“역시 마불님은 제게 작은 거인이십니다.”
“또 쓸데없는 소리!”
마불이 괜히 멋쩍은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검무극은 그가 작은 거인이란 말을 제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예전 거인은 아부로 우뚝 섰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검무극에게 마불은 작은 거인이었다.
동굴에서 나온 그가 이제 자신의 집을 짓기 시작했음을 느낀다. 형을 챙기면서 바닥을 다지고, 새외에 함께 가겠다고 대답하면서 기둥을 세우고, 약초를 캐오겠다고 약속하면서 지붕을 덮고. 그렇게 그는 자신의 집을 짓고 있다.
집이 완성되면 그 집에 형을 부르고, 풍천교주를 부르고, 독왕을 부르고, 또 자신까지 초대해 작은 연회를 열기를 바란다. 그가 황금빛 인생을 살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검무극의 시선이 마불을 따라 다시 하늘을 향했다.
그때 적연을 비롯한 호위들이 다가와서 고마움을 전했다.
“검 선물로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왜 내게 고마워해?”
“소교주님이 선물로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검무극이 고개를 내저었다.
“풍천교주가 너희를 위해 사주신 거다.”
“아! 교주님께서는 소교주님이 사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괜히 생색내기 싫으셨나 보다. 나중에 뵈면 인사드리도록!”
그들이 물러나자 마불이 웃었다.
“왜 웃으십니까?”
“돈은 풍천 그 사람이 냈겠지만, 사려고 했던 사람은 자네지?”
역시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른 마불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 사람이 자네 호위까지 챙길 사람은 아니니까.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사람이 그렇게까지 한꺼번에 바뀌지는 않거든. 투덜대면서 돈을 냈겠지.”
검무극이 미소 짓던 그때 풍천교주와 소백타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
소백타가 검무극에게 걸어와 말했다.
“내가 끝까지 바보인지 아닌지 확인할 시간이 된 것 같소.”
검무극이 제압한 내공을 풀어주며 말했다.
“지금껏 그를 같은 편으로만 봤을 테니 적어도 오늘만큼은 적이라 생각하고 한번 봐 보시오.”
* * *
환왕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환여를 똑 닮은 그는 큰 키에 남자답고 호방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리고 있는 그림은 그의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어두우면서도 기괴한 그림이었다.
지옥문을 연상케 하는 문이 있었고 그 주위에 참혹하게 죽은 시체들과 야수들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기괴함은 지금부터였다.
그림이 움직였다. 문 옆으로 난 작은 길에서 그림으로 그려진 한 남자가 걸어 나오더니 이쪽을 쳐다보며 말을 한 것이다.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환왕에게만 들렸다.
―다만 아직 소교주는 건들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다른 언급은?
―없었습니다. 오직 소교주에 대해서만 언급하셨습니다.
―환여를 죽인 사람이 풍천이 확실한가?
―정황상 그렇습니다.
환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보고를 마친 남자는 자신이 걸어 나왔던 길로 다시 사라졌다.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소백타가 안으로 들어왔다.
“스승님.”
그는 환왕에게 스승이라 부르고 있었다. 환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백타에게 깍듯한 예를 갖췄다.
“어서 오세요, 교주.”
“오늘은 무슨 그림을 그리고 계셨습니까?”
환왕이 그에게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림을 본 소백타는 흠칫 놀랐다.
“평소와 다른 화풍이십니다.”
평소에는 새외의 아름다운 풍경을 주로 그렸던 그였다. 웃고 있는 사람을 그렸고, 개와 고양이를 그렸다. 한데 오늘의 그림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저도 가끔은 이런 그림을 그리고 싶어집니다.”
하필 자신이 찾아온 이날,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걸까?
“이 문은 어디로 향하는 문입니까?”
“제 지옥으로 향하는 문입니다.”
의미심장한 대답에 소백타는 환왕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림만 달랐을 뿐 환왕은 사람 좋은 웃음으로 평소처럼 그에게 차를 내주었다.
소백타는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검무극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마 당신에게 주는 차나 술이 있다면 거기에도 어떤 약물이 들어가 있었을 거요.
이곳에 오기 전 검무극이 해준 몇 마디 말 중의 하나였다. 생각해 보니 이곳에 오면 항상 차를 내주었다.
처음에는 호위들이 독이 있는지를 검사했지만, 그에게 무공을 배운 이후에는 그 과정은 생략되었다. 결국 여기 뭐가 들었는지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동안 마신 거였다.
검무극 말처럼 상대를 적으로 생각한다면? 등줄기가 오싹해질 일이다.
“드세요, 새 차가 들어왔는데 맛이 아주 좋습니다.”
“향이 아주 좋네요.”
소백타는 향만 음미하고는 차를 내려놓으며 말을 이어갔다.
“아까 마교 소교주가 홀로 저를 찾아왔길래 새외일통을 허락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뭐라고 하던가요?”
“능력을 보여달라고 하더군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지 보겠다고. 그래서 앙천혈령술을 발휘해서 힘을 보여줬습니다.”
그러자 환왕이 인상을 굳혔다.
“앙천혈령술은 되도록 쓰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소백타는 검무극이 했던 말을 흉내 냈다.
“본교는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니 세수나 하고 와라. 건방진 소교주 같으니!”
소백타는 화를 참지 못하고 차가 놓여 있던 탁자를 내리쳤다. 탁자가 박살 나며 차가 쏟아졌다.
“언젠가 중원을 치게 된다면 마교부터 쓸어버리고 싶습니다.”
환왕은 차분히 자리를 닦고 치운 후에 다시 차를 타왔다. 예전이라면 미안해하고, 고마워했을 상황인데 지금 소백타의 마음은 달랐다. 검무극 말처럼 그를 적이라 생각하고 그를 보니.
‘끝까지 차를 마시게 하려고?’
같은 행동이었지만 받아들이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새 다탁에 차를 내려놓으며 환왕이 물었다. 집요하되 억지로 권하지 않는 것이 더 무서웠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소교주가 제 앙천혈령술을 파훼했습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가 직접 겪은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수작에 빠졌을 겁니다.”
환왕의 단정에 소백타가 따지듯 물었다.
“왜 이리 자신하십니까? 구화마공을 직접 겪어보신 것도 아니면서요.”
순간 환왕의 표정이 굳어졌다. 평소에도 구화마공이 언급되면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더 화난 얼굴이었다.
소백타가 재빨리 그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앙천혈령술이 안 통하는 바람에 제가 무례하고 예민하게 굴었습니다.”
여전히 표정을 굳힌 채 환왕이 물었다.
“소교주가 새외에 왜 온 것 같습니까?”
“속셈을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을 잡으러 왔다는 것을 들었으니까.
그때 환왕이 허를 찔렀다.
“저를 잡으러 왔습니다.”
소백타는 흠칫 놀랐다. 감출 줄 알았던 내용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스승님의 존재를 어떻게 알고요?”
“마교에 제 사람을 심어뒀습니다. 한데 최근에 그 사람이 붙잡히면서 제 존재가 드러났습니다.”
“왜 마교에 사람을 심어둔 겁니까?”
“제가 왜 구화마공에 예민하게 구는 줄 아십니까? 그 구화마공에 혈교가 몰락했기 때문입니다. 본교와 마교는 철천지원수입니다. 어떤 화해로도 그 피를 닦아낼 수 없습니다. 혈교의 마지막 후예인 제가 어찌 그들을 그냥 두고 보고만 있겠습니까?”
완벽한 거짓말의 재료는 구 할의 진실이다.
이렇게 사실을 왕창 섞어서 말하니 소백타는 내심 혼란스러웠다. 이쪽이 맞고 저쪽이 틀린 건 아닐까? 소백타는 어떻게든 진실을 알기 위해 노력했다.
“저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셔야지요. 분명 교주께서는 대업을 이루실 겁니다.”
“한데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경솔하게 다른 무공을 익혔다는 것을 드러냈으니 사부 성격상 저를 그냥 두진 않을 겁니다. 스승님, 제발 도와주십시오.”
빤히 소백태를 응시하던 환왕이 품에서 약지보다 더 작은 약병을 꺼냈다.
“이 약을 사부에게 먹이십시오! 무색무취이니 술에 타면 절대 알아차리지 못할 겁니다.”
소백타는 깜짝 놀랐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사부를 죽일 독약이란 것을.
“곧장 효과를 내지 않습니다. 사흘 후에 독이 발동하니, 교주가 탄 약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
설마 독을 먹여서 사부를 죽이라고 할 줄은 몰랐다.
“독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를 죽이지 않으면 교주가 당합니다.”
순간 소백타의 가슴이 차갑게 식었다. 독을 술에 타서 적을 죽이는 짓만큼 비겁한 짓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런 사람을 존경하고 좋아했었단 말인가?
환왕은 그 마음을 정확히 읽고 있었다.
“제게 실망하셨습니까?”
소백타는 솔직히 대답했다.
“술에 독을 타라고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를 상대하려면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교주께서 약을 타면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고요. 그렇다면 타야 하지 않습니까? 목숨보다 소중한 게 있습니까?”
잠시 사이를 두고 소백타가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
“저 때문입니까? 아니면 스승님 본인을 구하기 위해서입니까?”
“우린 이미 한배를 탔는데, 그 둘의 차이가 있습니까?”
“맞습니다. 그럼 배는 가라앉지 않겠지요. 대신 저는 술자리에서 사부를 독살한 사람이 되겠지만요.”
더 비교할 필요도 없다. 마치 만리전벽의 막이 찢어졌던 것처럼, 소백타의 눈을 가리고 있던 콩깍지가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환왕은 여유로웠다.
“벌써 저들이 우리 교주 마음에 의심의 씨앗을 심었군요.”
“애초에 제가 심고 키웠어야 할 씨앗이었지요.”
환왕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공손함과 웃음기가 사라진 환왕의 얼굴은 다른 사람을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그들에게 넘어갈 줄은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넘어갈 줄은 몰랐지.”
이미 소백타가 찾아온 속셈을 짐작하고 있었던 그였다.
독을 타라고 한 것은 환왕의 시험이었다. 백소타가 소교주에게 넘어갔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시험.
소백타는 지난 어리석음을 한탄했다.
“당신은 정말 내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던 것이었군.”
교주가 되면서 당면한 어려움에서 도피하고 싶었다. 눈앞의 이 남자는 누구보다 훌륭하게 도피처 역할을 해주었다.
그와 함께 사부 욕을 했었다. 그는 겁쟁이지만 너는 훌륭한 교주가 될 거라 세뇌하면서. 미운 사람을 함께 욕해주는 사람만큼, 박약한 마음에 위로가 되는 것은 없었다.
그곳은 도피처가 아니었다. 도피처라는 이름을 단 지옥이었다.
‘사부님!’
지금 소백타의 마음에 떠오르는 사람은 풍천교주였다.
‘죄송합니다.’
소백타가 은밀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환왕이 자신보다 강한 것을 알았지만 전혀 겁이 나지 않았다. 회한이 만들어낸 흥분이 소백타를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환왕의 환술은 그를 압도했다.
후우우우웅!
깊은 울림과 함께 주변이 바뀌었다.
두 사람이 서 있던 곳은 조금 전 환왕의 거처가 아니었다.
주변에 시체가 널려 있었고, 그림에서나 나올법한 야수들이 사방에서 으르릉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정면에 보이는 커다란 문.
‘저 문은?’
아까 환왕이 자신의 지옥으로 향하는 문이라고 했던 바로 그 문이었다.
놀랍게도 그곳은 환왕이 그렸던 그림 속이었다.
“어쩌려는 거냐?”
“너야말로 어쩌려고 했냐? 저 인간들이 너를 지켜줄 거로 믿고 나를 시험한 거냐?”
그 말에 소백타가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하늘에 거인처럼 큰 검무극과 풍천교주가 그리고 지평선 너머에 진짜 거인이 된 마불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소백타는 알 수 있었다. 거처로 들어온 세 사람이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을.
환왕과 자신은 이 장소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정말 그림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풍천교주는 환왕이 아니라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눈빛에 담긴 것은 걱정이었다.
그 눈빛을 보는 순간 마음에 맺혀있던 뭔가가 완전히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사부님!’
사부에게 너무 미안했다. 교주 자리를 물려준 그 고마움도 모르고 철부지처럼 원망만 하다 일을 그르친 것이다. 그럼에도 사부는 자신에게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제가 다 망쳤습니다. 사부님, 죄송합니다.’
마치 그 어리석음의 결과가 이것이라는 듯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열린 문 앞에서 환왕이 말했다.
“네 사부는 알 거다.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풍천교주조차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이지.”
그가 손을 내뻗자 소백타는 무기력하게 그에게로 빨려 들어가듯 날아갔다.
닫히기 시작한 문 너머에서 환왕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과연 네 사부가 널 구하기 위해 이 지옥문을 열까?”
그의 말이 끝나자 소백타의 간절한 외침이 닫히는 문 사이로 흘러나왔다.
“오지 마십시오, 사부님! 오시면 안 됩…….”
두 사람을 집어삼킨 문이 굉음을 내며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