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27)
절대회귀-327화(327/424)
제327회 이미 저를 구하셨습니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악귀들의 시체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 꼭대기에 마불이 앉아서 눈을 감은 채 불경을 외고 있었다.
퍽퍽퍽퍽퍽퍽퍽!
악귀들이 연속해서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거의 동시에 모두 해치웠기에 그들이 사라지는 것도 함께 사라졌다.
악귀들이 모두 사라지자 그 너머로 문이 보였다.
마불은 문을 향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이런 걱정을 하게 될 줄 몰랐는데, 정말 풍천교주가 걱정되었다.
우리 친구 아닌가? 껄껄 웃으며 말로만 가깝게 지냈던 예전이라면 그를 구하기 위해 결코 이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데 요즘은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 풍천교주를 그만뒀다고 했을 때, 그 무슨 멍청한 짓이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를 이해한다.
그래서였을까?
풍천교주를 이런 곳에서 죽게 하고 싶지 않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곳은 황무지였다.
휘이이이잉!
모래바람이 불어와 마불을 덮쳤다.
“빌어먹을.”
이놈의 환술도, 이놈의 모래바람도 징글징글하다.
이 끝도 보이지 않는 황무지에서 도대체 어떻게 빠져나가라는 것일까?
그때 뭔가가 마불의 눈에 띄었다.
그것은 바위틈에 핀 꽃이었다. 마불은 한참을 그 앞에 서서 꽃을 내려다보았다.
휘이이이이잉.
뒤에서 심상찮은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며 그림자가 졌다.
마불이 돌아보자 보통 엄청난 덩치의 거대한 악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래들이 뭉쳐져 만들어진 악귀였다.
살법회인!
마불의 쌍장에서 황금빛 강기가 휘몰아치며 발출되었다.
쇄애애액! 퍼억!
강기는 정확히 악귀의 가슴에 적중했다.
다음 순간.
휘류류류류.
주위의 모래들이 휘몰아쳐 올라오더니 이내 구멍을 메웠다.
쇄애애애액! 퍼엉!
두 번째 강기에 악귀의 얼굴에 구멍이 났지만 마찬가지였다. 모래가 순식간에 구멍을 메웠다.
쉬이잉!
악귀가 손을 내밀자 촤르르르르 모래가 쏟아져나왔다.
그냥 모래가 아니었다. 스치면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그런 날카로운 강기가 모래 주위를 휘몰아치고 있었다.
마불이 몸을 날려 공격을 피했다.
콰쾅!
마불이 서 있던 바닥이 깊게 파이며 흙먼지가 일었다.
마불이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서자 거대 악귀는 밟아버리려는 듯 천천히 다가섰다.
마불은 재빨리 두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마장멸인(魔掌滅印)!
다음 순간!
이번에는 악귀 주위로 그림자가 생겼다.
악귀가 뒤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의 머리 위로 악귀보다도 훨씬 큰 거대한 불상의 손바닥이 그를 내리치고 있었다. 손에서는 황금빛 광채가 뿜어지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쿠에에에에에에엑!”
귀를 찢는 괴성을 내지르며 악귀는 모래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마불이 합장하며 기도하자 황금빛 손이 빛무리가 되면서 모래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악귀가 있던 바닥에 거대한 손바닥 자국만 깊게 남았다.
거대 악귀가 사라진 자리에 문이 생겼다.
문으로 걸어가려던 마불의 눈에 아까 보았던 꽃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마불이 꽃을 들어서 잠시 쳐다보더니 허리춤에 꽂았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다음 문으로 들어갔다.
* * *
풍천교주가 양손에 푸른 기운을 머금자 환왕이 소백타 뒤로 몸을 숨기며 말했다.
“당신 상대는 내가 아니오.”
철컹, 철컹.
풍천교주가 서 있던 곳의 좌우 철문이 열리면서 각각 환술 고수가 한 명씩 그곳으로 등장했다.
환왕이 그들을 소개했다.
“혈교를 지키는 혈수인(血守人)들이오.”
그러자 풍천교주가 말했다.
“혈수인을 흉내 내서 만든 모조품들이지. 이보게, 잊지 말게. 혈교는 이미 사라진 조직이야.”
말을 끝낸 풍천교주가 손을 내밀었다.
휘류류류류류류!
거친 바람 소리와 함께 혈수인 중 하나가 풍천교주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앞서 환왕이 소백타를 끌어당길 때와 마찬가지 수법이었다. 두 사람의 수법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풍천교주의 손아귀에서 남자는 저항 한 번 못 하고 몸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끄으으으윽.”
혈수인의 눈에서 귀기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사람의 기운이 아니었다.
꽈드드드득.
온몸이 빨래처럼 비틀리며 절명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만든 곳인가?”
풍천교주는 알 수 있었다. 이 그림 속 공간은 눈앞에 선 사내 환왕 혼자만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님을.
혈교 부활을 꿈꾸며 수백 년에 걸쳐 준비된 안배이자 혈교 환술의 집합체였다.
“내가 처음 이 조직에 들어왔을 때부터 있었소.”
“그 오랜 역사를 버리고 자넨 자네 꿈을 꾼 것이군.”
“당신도 알지 않소? 살다 보면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바람이 불기도 한다는 것을.”
고개를 끄덕이며 풍천교주가 뭐라 답을 하려는데 다른 혈수인이 풍천교주를 향해 기습적으로 쇄도했다.
그가 풍천교주의 요혈을 노리고 쇄도하던 그 순간.
쉬이익! 푸욱!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보이지 않는 뭔가가 그의 몸통을 관통했다. 달려들던 혈수인은 그대로 쓰러졌다.
풍천교주가 그의 몸에서 뭔가를 뽑아내는 시늉을 했다.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풍천교주의 행동으로 볼 때 기다란 창처럼 느껴졌다.
“어떤가? 자네의 무형기(無形氣)와 한번 겨뤄보고 싶은데?”
보이지 않는 강기를 무기처럼 사용하는 것은 혈교에도 있었고, 풍천교에도 있었다.
당연히 환왕은 거절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일 사람이었다면 소백타를 인질로 잡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건 당신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예의가 아니지.”
철컹, 철컹.
다시 양쪽에서 철문이 열리면서 이번에는 혈수인이 두 사람씩 나왔다.
“자네들 혈수인이 몇 명이었더라. 오래전에 읽었더니 기억이 나지 않는군.”
환왕의 여유로운 미소만 봐도 준비된 자들은 많을 것이다. 한 번에 등장하지 않고 나눠서 등장하는 것은 자신의 내공을 최대한 소모시키기 위함이었다.
“이들을 이렇게 버리긴 아깝지 않나?”
“애초에 그러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오.”
냉정한 환왕이 혈수인이 소모되는 것을 걱정할 리 없었다.
혈수인 역시 두려움을 모르고 달려들었다.
쇄애애앵!
보이지 않는 무형기가 풍천교주의 손에서 날았다.
푸악!
선두에서 달려들던 혈수인이 벽에 가서 꽂혔다. 창이 보이지 않으니 허공에 뜬 채 죽은 모습이었다.
나머지 세 혈수인이 동시에 일장을 내지르며 쇄도했다. 귀기 가득한 장력이 풍천교주를 향해 날아들었다.
풍천교주가 서 있던 자리가 박살이 났지만, 이미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정면의 혈수인은 허리가 꺾였고, 좌측은 가슴에 일장을 맞았고, 마지막은 목이 꿰뚫렸다.
다시 철문이 열리며 이번에는 각기 네 명의 혈수인들이 걸어 나왔다. 그들은 두려움을 몰랐다. 이곳 환술 속에서의 혈수인은 오직 명령만 수행하는 살인병기들이었다.
“앞서 했던 말 취소하네. 예전 혈교가 지금보다 더 피에 굶주려 날뛰었을 거란 말 취소네. 자네가 더하군.”
풍천교주의 조롱에 환왕의 입에 차가운 조소만 지어질 뿐이었다.
이번에 나온 여덟 명의 혈수인들은 앞서 나온 이들과 공격 방식이 달랐다.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일제히 구결을 읊었다.
그러자 그들의 손끝에서 붉은 선들이 뻗어나가며 사방에 붉은 거미줄이 쳐졌다.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처럼 그것들이 풍천교주를 압박하며 조여갔다.
“위험합니다, 사부님!”
놀란 소백타가 소리쳤지만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서걱.
풍천교주가 십여 개의 조각으로 갈라지던 그 순간, 그곳에 풍천교주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동쪽에서 공격하던 혈수인 뒤였다.
휘리릭.
서걱.
풍천교주의 양손에 있던 푸른 기운이 기다란 선이 되어서 혈수인의 목을 잘라버렸다.
그가 쓰러지기 전에 다시 풍천교주의 푸른 선이 허공을 갈랐다.
퍽!
정면에 있던 혈수인의 이마가 꿰뚫리며 쓰러졌다.
휘리리리리릭.
붉은 선과 푸른 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하지만 붉은 선은 푸른 선을 따라잡지 못했다. 푸른 선은 복잡하게 꼬이는 선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푸른 선이 팽팽해질 때마다 혈수인의 몸이 잘려 나갔다. 강기의 선을 이용하는 풍천교주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환술 무공의 극의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정도 공격에는 당연히 버틸 것이라 예상했기에 혈수인이 죽어 나감에도 환왕은 여유로웠다.
지금 풍천교주가 쓰는 수법 하나하나가 얼마나 많은 내공이 소모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풍천교주의 내공이 아무리 중후해도 혈수인 전부를 상대할 수는 없다.
다시 철문이 열리며 이번에는 각각 여덟 명씩 걸어 나왔다.
* * *
팔락팔락.
푸른 나비가 혈수인의 어깨에 내려앉는 순간.
스르륵.
혈수인이 스르륵 쓰러져 절명했다.
마지막 혈수인을 쓰러뜨린 나비가 허공에서 퍽하고 사라졌다.
양쪽 문에서 나왔던 총 서른두 명 중 마지막 혈수인을 쓰러뜨리는 순간이었다.
여전히 풍천교주는 뒷짐을 진 채 여유롭고 고고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소백타는 듣고 있었다. 들리지 않았던 사부의 숨소리를. 사부가 지친 것이다.
사부는 실로 어려운 싸움을 해나가고 있었다. 혈수인도 위협적이지만 문제는 환왕이었다. 그는 혈수인이 싸우는 도중에 기습적으로 공격을 가하고 견제하며 사부를 위협했다. 큰 환술로 그들을 한꺼번에 휩쓸어버리려면 어김없이 나서서 방해했다.
‘……사부님.’
자신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해서든 환왕을 먼저 죽이려 했을 텐데.
이제 양쪽 방에서 나온 혈수인은 각각 서른둘. 모두 합쳐 예순네 명이었다.
풍천교주와 그들과 격전이 벌어졌다. 벌떼처럼 달려들었고, 풍천교주는 자신이 지닌 모든 무공과 환술을 동원해서 그들을 상대했다.
풍천교주의 장력에 혈수인들이 피떡이 되어 날아갔다.
풍천교주는 그들의 공격을 환술로 피했다. 무공이 발휘될 때마다 혈수인들은 시체가 되어 쓰러졌지만, 그만큼 내공 소모도 계속되고 있었다.
꽝! 꽈앙!
쏟아지는 장법을 호신강기로 막으며 뒤로 밀려난 풍천교주에게 혈수인들의 공격이 쏟아졌다. 거기에 비겁한 환왕의 공격이 더해졌다.
충격을 견디며 풍천교주가 쌍장을 휘둘렀다. 푸른 강기가 공간을 휩쓸며 다시 몇 명의 혈수인을 박살 냈다.
긴박한 싸움의 와중에 풍천교주의 전음이 소백타에게 날아들었다.
―셋, 둘…….
다른 일언반구 없이 숫자만 세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사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나.
소백타는 뒤통수로 사정없이 뒤에 선 환왕을 가격하려 했다.
환왕이 풍천교주의 싸움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바람에 뒤통수 박치기는 거의 그의 얼굴을 가격할 뻔했다.
그가 피하느라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피하던 그 순간.
쇄애애애애애액!
소백타가 몸을 낮췄고 그곳으로 풍천교주가 날린 강기가 휩쓸었다.
콰아아아앙!
풍천교주가 그곳으로 쇄도했다.
무리한 공격이었기에 혈수인들의 공격을 연속해서 허용했다. 하지만 풍천교주는 호신강기로 버티며 소백타를 향해 날아갔다.
풍천교주가 소백타와 함께 시공이환술 속으로 피하려던 바로 그때.
휘리리리리릭.
한발 먼저 보이지 않는 줄이 소백타를 잡아당겼다.
뒤로 물러난 환왕이 그를 먼저 낚아챈 것이다.
기습적으로 소백타를 구하는 것이 실패로 돌아갔고 혈수인들의 공격이 풍천교주에게 쏟아졌다.
꽝! 꽈앙! 쾅!
풍천교주는 다시 그들과의 싸움에 집중했다.
그리고 남은 혈수인들을 모두 해치웠을 때 풍천교주의 숨소리는 거칠었고, 입가에서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리하게 내력을 사용하면서 내상을 입은 것이다.
풍천교주는 어쩌면 이곳에서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검무극 앞에서야 여기가 내 세상이다, 큰소리쳤지만. 누구에게나 한계는 있는 법이다.
풍천교주는 입가의 피를 닦으며 소백타를 쳐다보았다. 녀석이 꼬마일 때가 떠올랐다. 똘똘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던 녀석이.
“이상하게도 네가 마음에 들었다. 그 많은 제자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었지. 백타야. 나는 다시 돌아가도 너를 내 후계자로 삼을 거다.”
소백타의 눈에서 싸움 내내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알 수 없는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이제 잘 할 수 있는데. 살 수만 있다면 이제 정말 잘 할 수 있는데.
그때 환왕이 소백타에게 속삭였다.
“네 말이 맞다. 이제 싸움에 집중할 때가 되었다.”
환왕은 이제 본격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되었음을 느낀 것이다.
마지막 문이 열리면 각 방에서 육십네 명의 혈수인들이 나올 것이다. 그들과 함께 합공하면 풍천교주는 끝이었다.
“똑바로 봐라. 네 사부가 어떻게 죽는지. 그런 다음 네 단전을 파괴하고 사지 근맥을 끊고 혀를 잘라서 뇌옥에 처넣을 거다. 평생 오늘 일을 떠올리며 살게 해주마.”
소백타는 절망했다. 자신이 고통받는 것은 괜찮다. 지금 괜찮지 않은 것은 자신 때문에 사부가 죽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정말 죄송합니다.
풍천교주가 제자에게 말했다.
“환술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풍천교주가 어디에 있다더냐? 눈물 닦아라.”
소백타가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내가 저런 놈 만나면 뭐라고 하라고 했느냐?”
소백타가 환왕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비겁한 겁쟁이 새끼야! 저리 안 꺼져?”
소백타는 사부의 눈빛에 담긴 미안함을 보았다. 사부는 자신을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해하고 있었다. 정말 이 큰 은혜를 어찌 다 갚을 수 있겠는가?
“사부님은 이미 저를 구하셨습니다.”
목숨보다 더 소중한 영혼을 구해주었으니까.
풍천교주는 환왕에게 나오라고 손짓했다.
천천히 몇 걸음 걸어 나온 환왕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래도 제일 오래 기다렸는데 바람은 쐬게 해줘야 하지 않겠소?”
끝까지 모험하지 않는 그였다. 철문 뒤에 각각 예순넷이나 되는 혈수인이 기다리고 있는데, 굳이 먼저 나설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철문을 바라보던 바로 그 순간!
철문 너머에서 희미하게 어떤 소리가 들렸다. 뭔가가 부딪치고 진동하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점점 커졌다.
쿵! 쿠웅! 쿵! 콰직! 콰드득!
바람 소리에 비명까지 섞이는가 싶더니 다시 그 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리고 찾아온 정적.
철컹.
문이 열리면서 빛이 흘러나왔다.
황금빛 광채를 내뿜으며 걸어 나온 사람은 마불이었다. 마불 뒤로 그곳에 대기하고 있던 혈수인의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의 등장에 풍천교주와 소백타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반면 환왕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졌다.
풍천교주의 시선이 마불의 허리춤에 꽂혀 있는 꽃을 향했다. 그래, 고맙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아니, 그 어떤 감사로도 부족하리라. 그래서 투덜거렸다.
“꽃 꺾을 시간은 있지? 친구는 죽을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친구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고 친구란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래도 소교주보단 일찍 온 것 같은데?”
“소교주야 항상 늦장이지. 자기 필요한 게 있을 때나 바람처럼 달려와서 이거 내놔라, 저거 해내라, 사람 열불 터지게 하지.”
마불이 동감한다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바로 그때였다.
콰콰콰콰콰콰콰쾅!
무엇인가를 쓸어버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꽈아앙!
마불이 나왔던 문의 반대쪽 문이 박살 나면서 무엇인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들은 바로 대멸식의 여섯 악귀였다.
여섯 악귀가 밀고 나온 복도에는 시체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악귀의 모습에 모두 숨을 죽였다. 동서남북 네 악귀 중 가장 무서운 생김새의 악귀가 분열된 것이었기에, 이 여섯 악귀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모두를 압도했다.
마불은 합장하며 그것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구화마공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것이다.
여섯 악귀가 서서히 사라지자 검무극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흑마검을 늘어뜨린 채 걸어 나왔다. 피를 뒤집어쓴 채 옷은 찢어지고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이곳에 오기 전 관문이 얼마나 힘들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나 다급히 돌파했는지 알 수 있었다.
검무극과 풍천교주의 뜨거운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하여튼 우리 교주님은 저만 없으면 제 욕을 하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