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43)
절대회귀-343화(343/424)
절대회귀 343화
제343회 오늘은 사도십오랑이다.
별을 바라보던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
비사인과 진하군이 검무극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검무극은 그 맑고 깊은 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친구란 말이 너무나 생소하게 들렸다. 이 사람이 말한 것이 정말 우리가 아는 그 단어일까?
“우리가 언제부터 친구였소?”
비사인이 무뚝뚝하게 물었다.
진하군도 같은 마음으로 검무극의 대답을 기다렸다.
“나만 친구라 생각했던 거요?”
“당신은 정말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다 생각하시오?”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오.”
잠시 사이를 두고 비사인이 다시 물었다.
“친구인 줄 알았다가 누군가 배신하면?”
동네 친구도 변했니, 배신했니, 난리를 겪는데 정사마 세 후계자가 친구가 된다고? 그 배신은 수천, 수만의 생사가 걸려있는 배신이 될 것이다.
“그땐 이렇게 생각합시다. 참, 우린 적이었지? 섭섭해하지 맙시다. 배신이라고 생각하지도 말고.”
“이미 당신 검이 내 심장을 찌르고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나 있을까?”
무서운 얼굴로, 무서운 말을 하고 있었지만 비사인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부드러웠다. 그는 검무극과 친구가 되어 지내는 인생을 상상하고 있었다.
천마가 된 검무극과 사도맹주가 된 자신, 그리고 무림맹주인 진하군이 서로 만나서 웃고 떠드는 모습을. 허연 머리가 되어서도 여전히 변함없는 검무극의 너스레에 어이없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하지만 이상과 현실이 다르듯, 그의 입에서도 마음과는 다른 말이 나갔다.
“마교 소교주와 친구가 되었다는 소문이 나면, 소맹주 자리에서 쫓겨나게 될 거요.”
그러자 진하군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는 오죽하겠소? 마교 후계자와 사도맹 후계자와 친구가 된다? 후계자가 되기는커녕 할아버지께 맞아 죽을 수도 있소.”
검무극이 진하군을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직 진 대주는 후계자가 안 됐소. 우리가 도와서 후계자로 만듭시다.”
그러자 진하군은 정색하며 말했다.
“당신들이 돕는다고 맹주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게 아니오. 내가 맹주가 될 만한 자질을 갖추고 그만큼의 그릇이 되었을 때, 비로소 오를 수 있는 거요.”
정파 후계자는 그렇게 쉽게 정할 수 없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역시 우리와 선을 그으시는군.”
검무극이 비사인 옆으로 바짝 붙으며 친한 척했다.
하지만 비사인은 옆으로 한걸음 떨어지며 검무극을 피했다.
“너무 정들이 없으시오!”
이제 세 사람은 원을 그리듯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진하군이 검무극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무림을 꿈꾸는 거요?”
비사인도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다시 검무극의 시선이 밤하늘의 별을 향했다.
“내가 꿈꾸는 무림은 그대의 정도와 그대의 사도와 나의 마도가 잘 어울리는 무림이오. 운명이 우리에게 이런 신분을 주고, 경천동지할 무공까지 준 것은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며 무림일통을 꿈꾸라고 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오.”
서로에 대한 신뢰는 무림일통을 꿈꾸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야 가능한 관계이리라.
“나는 아버지하고도 안 친했었고, 형하고도 안 친했었소. 날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호위의 마음도 모르고 살았소. 그래서 항상 내게 묻소. 네 주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주제에 대체 무림을 일통해서 뭘 하겠다는 거냐고.”
별을 바라보던 검무극의 시선이 다시 두 사람을 향했다.
“무림일통보다 당신들하고 친구가 되는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하오.”
농담처럼 말했지만, 검무극의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무인에게 제일 쉬운 일은 서로 싸우고 죽이는 일일 테니까. 그러니까 이런 쉬운 인생 말고, 우린 더 어려운 도전을 합시다. 우리 진짜 친구 한번 되어 봅시다.”
“!”
비사인과 진하군은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검무극 말이 옳다. 진짜 친구가 되는 건 싸우는 것보다 백 배는 더 어려운 일이다.
“세상에는 죽여야 할 악이 너무 많소. 우리가 아니면 죽이지 못하는 절대악도 있지. 보시오, 심지어 우리까지 잡아먹으려는 악도 있지 않소? 그것들 때려잡으면서 삽시다. 같이 모여서 술 마시고, 우리끼리 수하들 흉이나 보면서. 같이 여행 다니고. 내가 바라는 무림은 그런 무림이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비사인은 자신도 모르게 내뱉었다.
“꿈같은 일이오.”
“그럼 평생 꿈꾸며 삽시다.”
비사인과 진하군이 각자의 생각에 잠기던 바로 그때였다.
밤하늘을 가르며 유성이 떨어졌다.
검무극이 손뼉을 마주치며 재빨리 소원을 빌었다.
“무림일통하게 해주세요!”
진하군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비사인은 옅게 웃었다.
그들은 이후로도 한참을 그렇게 쏟아지는 별 아래 서 있었다.
* * * 흑사단주 추굉(秋宏)은 창밖을 쳐다보며 인상을 굳혔다.
“이제 아예 대놓고 감시하는군.”
그가 있는 건물의 건너편에 두 명의 무인들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바로 무림맹의 멸마대에서 나온 고수들이었다. 몇 달 전부터 자신들을 압박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예 대놓고 감시하는 것이다.
추굉은 거구에 다혈질은 무식할 거라는 통념을 깬 사람이었다. 그는 눈치도 빠르고 잔머리에 능했다.
사업에 있어서는 비정하고 잔혹한 성격으로 경쟁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거했다.
그런 그였지만 길 건너 감시자들만큼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눈엣가시 이름이 멸마대인 이상 마음대로 뽑을 수는 없었으니까.
“흑십삼은?”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흑사단주의 물음에 대답한 사람은 그의 수족인 송충(宋沖)이었다.
납치한 아이들을 황룡표국에 전하러 나간 흑십삼에게서 소식이 끊어졌다.
“아무래도 멸마대 놈들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흑사단주가 인상을 구겼다. 정말이지 멸마대라면 치가 떨렸다.
“아무래도 사도맹에 도움을 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사도맹에서는 절대 대가 없이 돕지 않는다. 이번 일로 도움을 받게 되면 막대한 돈을 그들에게 후원 명목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안 그래도 사도맹에 들어가는 돈이 많은데.
그때 다른 수하가 와서 전서를 전하고 갔다.
“사도맹에서 온 전서입니다.”
사도맹 이야기를 하던 중에 이런 전서가 왔으니 흑사단주와 송충은 깜짝 놀랐다.
내용을 읽은 흑사단주가 서찰을 신경질적으로 구겨서 송충에게 던졌다.
“건방진 놈!”
송충은 구겨진 서찰을 펼쳐서 읽었다.
놀랍게도 사도맹의 소맹주가 만나자는 기별이었는데, 나오지 않으면 흑사단을 무림에서 없애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송충은 분노한 수장의 마음부터 풀어주었다.
“어린놈이 후계자가 되고 기고만장해진 모양입니다.”
흑사단주의 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보통 이만큼 화가 나면 시체가 쌓여야 하는데, 상대가 상대이니 분노만 쌓일 뿐이었다.
“한데 소맹주는 왜 갑자기 날 보자는 거지?”
날아온 전서에는 앞서 저 말과 만날 시간과 장소만 적혀 있을 뿐, 용건은 적혀 있지 않았다. 그래서 더 화가 난 흑사단주였다.
“기강을 잡겠다는 속셈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사도맹 직속도 아닌데 기강은 무슨.”
“사도맹 놈들이 언제 그런 것 따졌습니까?”
기분이 상한 흑사단주에 비해 송충은 이 연락을 기회로 여겼다.
“이번 기회에 소맹주에게 투자해 두시면 앞으로 여러모로 중원에서 사업을 펼쳐나가기가 쉬울 겁니다. 그리고 만나셨을 때 멸마대 문제도 넌지시 부탁하십시오.”
기분 나쁜 건 나쁜 거고,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다. 사업은 사업이니까.
“올해 농사 헛했군. 결국은 어떻게든 뜯기는구나. 얼마면 될까?”
그가 불변의 진리처럼 믿는 것이 있었다. 누군가를 구워삶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돈. 만약 실패한다면 돈이 부족해서다.
“돈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니 다른 걸 주시지요?”
“어떤 것?”
“일월검(日月劍)을 주시지요.”
“미쳤어?”
버럭 할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월검은 자신이 가진 보검 중에서 제일 아끼는 것이었으니까.
“소맹주를 만날 기회가 자주 있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확실히 우리 사람으로 만드시죠.”
“그러다 맹주 자리에 못 오르면? 태사의에 오르는 날이 되어야 아는 것 아니야?”
“그래서 투자가 어려운 것 아니겠습니까?”
잠시 숙고하던 흑사단주가 결정을 내렸다.
“좋아, 일월검 내주자.”
멸마대 문제도 그렇고. 아깝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상대였으니까. 주고 어떻게든 다 뽑아먹는 거다.
“대신 흑일(黑一)부터 흑십(黑十)까지 모두 데려간다. 흑야(黑夜)와 흑견(黑犬)도 부르고.”
송충이 흠칫 놀랐다.
“너무 과합니다.”
“과해야지.”
“흑견 성격 아시잖습니까? 무슨 사고를 칠지 모릅니다. 사도맹 소맹주 앞에서도 지랄발광할 놈입니다.”
“그러라고 데려가는 거야.”
흑사단주는 이 부분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
“퍼줄 땐 퍼주더라도 호구처럼 보여선 안 돼. 이쪽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긴장해야, 우리가 주는 선물의 가치도 커지는 거다.”
한번 결정을 내리면 절대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송충은 그 뜻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이만 출발하시죠?”
흑사단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야지, 안 가면 우릴 무림에서 지우시겠다는데.”
* * * 약속 장소에 거의 도착했을 때, 검무극은 마차를 세우게 했다.
그리고는 진하군에게 말했다.
“오늘 주인공을 위해 우린 옷을 갈아입읍시다.”
“무슨 말이오?”
“오늘 자리는 사도맹 소맹주가 흑도 문파에게 가르침을 내리는 자리 아니겠소? 멸마대가 함께할 자리는 아니지요. 멸마대는 대기하게 하고, 우린 사도십삼랑 복식으로 갈아입자는 말씀이오.”
진하군은 비사인과 자신이 함께 가서 그들을 압박하려고 했다. 사도맹 소맹주와 무림맹 멸마대주가 함께 경고하면 효과가 두 배라는 생각에서였다.
한데 검무극은 비사인의 입장에서 그의 권위를 높여주려 하고 있었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진하군은 흔쾌히 그 의견을 받아들였다.
비사인은 검무극이 자신을 위해주는 마음을 느꼈지만, 모른 척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옷 두 벌만 주시오.”
그러자 사도십삼랑들이 여벌의 옷을 두 사람에게 주었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검무극이 말했다.
“오늘은 사도십삼랑이 아니라 사도십오랑이 되겠소. 십사랑, 십오랑 신입 받으시오!”
사실 진하군이 이 옷을 입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다. 스스로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누군가 꼬투리를 잡는다면 크게 비난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검무극이 자기는 다리가 길어서 바지가 짧네, 색깔이 자기랑 어울리지 않네, 온갖 너스레를 떨면서 갈아입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 반성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진짜 중요한 것은 옷 속에 누가 들었느냐라고.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걱정하는 소심한 사람이 들었는지, 상대를 배려해 기꺼이 그들의 복장을 하는 큰 사람이 들었는지.
옷을 다 입은 검무극은 마지막 너스레를 잊지 않았다.
“당신, 십사랑 할거요? 십오랑 할거요?”
* * * 흑사단주는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주위로 흑사단의 정예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무림에서는 흑사단을 들개 같은 이들로 보았다. 온갖 이권에 몰려와서 뜯어먹고, 숫자로 밀어붙이고, 죽여도 죽여도 또 기어 나오는 그런 조직 말이다.
하지만 그건 흑사단을 반만 아는 것이다.
적어도 흑사단주는 개가 아니라 호랑이였다. 개 행세를 하는 것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을 아는 영리한 호랑이였다.
흑일부터 흑십도 호랑이였다. 그 열 명을 벗어나면 늑대도 되고, 여우도 되고, 개도 되겠지만. 흑사단주가 아끼는 이들은 인정할만한 고수들이었다.
물론, 가장 든든한 사람은 흑야였다.
무공실력만 따지면 흑사단주 다음으로 강한 인물이었다.
그는 말이 없고 조용한 성격이었는데, 살육을 좋아해서 일부러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될 싸움에도 나서서 피바다를 만드는 걸 즐겼다.
마지막에 등장한 이가 흑견이었다.
그 역시 흑사단주 다음인 인물이었다. 흑야가 무공으로 다음이라면, 흑견은 성질 더럽기로 다음이었다.
살인에 폭행에 겁탈에, 온갖 나쁜 짓은 다 하는 흑사단에서도 유명한 악인으로 인간이라면 차마 못 하는 일 담당이 그였다.
“형님, 대체 무슨 일로 우릴 다 부른 거요?”
흑사단주에게 형님이라 칭하는 그였다. 젊은 시절부터 흑사단주를 보필했기에, 유일하게 흑사단주를 어려워하지 않는 인물이기도 했다.
“사도맹 소맹주가 나를 보자고 연락을 해왔다.”
“그자가 왜요?”
“후계자도 되었는데 뭐 없냐, 하는 거겠지.”
흑견의 시선이 흑사단주 옆에 놓인 기다란 상자를 향했다. 상자에 그려진 달과 해 문양을 보고 흑견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일월검입니까?”
“맞다.”
“소맹주에게 주려고요?”
흑사단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흑견은 버럭 소리쳤다.
“안 됩니다. 그 귀한 검을 그놈에게 왜 줍니까? 돈이나 좀 쥐여 줘서 보내십시오.”
흑견은 흑사단주가 이 검을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알았다. 그가 송충을 노려보며 말했다.
“저 입만 산 놈이 주라고 했겠지요.”
흑견은 송충을 싫어했다. 원래 자신이 흑검단주의 옆이었는데, 송충에게 밀려난 것이다.
송충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무식한 새끼가 벌써 날뛰는구나.’
이래서 흑견은 부르면 안 된다고 한 것이었다.
두 사람이 팽팽하게 맞서던 그때.
“저기 옵니다.”
저 멀리 마차와 호위하는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흑사단주가 수하들에게 말했다.
“귀한 분께 적어도 이건 알려드려야지. 우릴 무림에서 지우려면 손이 얼마나 더러워져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