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44)
절대회귀-344화(344/424)
절대회귀 344화
제344회 내가 허락하지 않으니까.
달려온 마차가 십여 장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마차를 호위하던 열다섯 명의 무인들도 말에서 내렸다. 그들 중에는 검무극과 진하군도 있었다.
하지만 흑사단주는 오직 마차만 쳐다보고 있었다. 사도맹 소맹주를 만난다는 생각에 그는 긴장했다. 소문으로만 들었지 직접 만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으니까.
‘대체 어떤 자지?’
마차 문이 열리고 비사인이 내렸다.
이 순간의 비사인은 검무극에게 놀림 받고, 편식하겠다고 농담하던 그가 아니었다.
냉정하고 차가운 기도에 피냄새 풀풀 강렬한 존재감을 풍기는 사도맹의 소맹주였다.
‘역시! 후계자는 후계자구나!’
지켜보던 이들은 절로 이런 감탄을 했다.
비사인이 흑사단주를 향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사도십삼랑, 아니 십오랑이 그 뒤를 따랐다.
비사인의 얼굴을 가까이서 본 흑사단주의 첫인상은 이러했다.
‘더럽게 무섭구나!’
소맹주의 인상이 강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뿐만 아니라 그를 호위하는 무인들 역시 예상했던 실력보다 훨씬 강해 보였다.
그때 흑사단주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 사람을 향했다. 상대가 아무런 기도를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끝에 서 있는 가장 젊은 무인에게 시선이 빨려 들어간 것이다.
눈이 마주치자 상대가 씩 웃었다.
‘미친놈인가?’
이런 상황에서 호위 무인이 웃는 것은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기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소맹주님을 뵙습니다.”
흑사단주는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지만 비사인은 고개만 까닥 인사했다.
“단주의 명성은 익히 들었소.”
쌀쌀맞은 반응에 흑사단주는 자신의 예상이 정확하다고 여겼다.
‘역시! 기강을 세워보시겠다?’
사실 비사인의 냉담은 그래서가 아니었다. 원래도 온갖 지저분한 일들로 악명 높은 자들인데, 아이들까지 납치해서 판다는 사실에 좋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였다.
“저 아랫마을에 좋은 술과 요리를 준비해 뒀습니다. 함께 가시죠.”
“됐소. 이곳에서 이야기 나눕시다.”
“좋습니다. 오늘 귀한 분이 오신 걸 아는지 날씨도 아주 좋습니다.”
흑사단주가 송충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송충이 일월검이 든 상자를 가져왔다.
“제 작은 성의입니다.”
일월검이 든 상자를 비사인에게 내밀었다.
‘이걸 받고도 그렇게 계속 뻣뻣하게 굴 수 있을까?’
저 뻣뻣한 멧돼지 털을 부드러운 양털로 바꾸는 선물이 될 것이다.
사도일랑이 나와서 대신 상자를 받았다. 암기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안전하다는 것이 확인되자 상자에 든 검을 꺼내서 비사인에게 건네주었다.
비사인이 일월검을 뽑아보았다.
예리한 검날을 드러낸 일월검은 검을 쓰는 모두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았다.
“훌륭한 검이군.”
검무극이 지닌 흑마검에 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반 보검 중에서는 손에 꼽을 수 있을 명검이었다. 정말 흑사단주가 큰마음을 먹고 주는 선물이었다.
“소맹주님께 잘 어울립니다.”
바로 그때 검무극의 전음이 비사인에게 날아들었다.
-그 검, 내게 주시오.
검이 욕심나서 달랄 사람은 아니었으니.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요?
-십오랑 막내에게 그 정도 선물은 해주셔야지.
비사인은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무슨 속셈인가 싶었지만 이렇게 봐서 저 심연 같은 속마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십오랑!”
“네.”
검무극이 앞으로 걸어 나오자 비사인이 검을 하사했다.
“사도십오랑이 된 환영선물이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소맹주님!”
검무극은 사양하지 않고 검을 받았다.
그 모습에서 진하군은 알 수 있었다. 흑사단에게 받은 검을 검무극에 줄 리 없으니, 분명 검무극의 의도일 거다.
검을 받아들고 돌아선 검무극이 진하군에게 전음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기에 십오랑 하라고 하지 않았소? 막내라서 귀여워서 준 거요.
-두 번 귀여웠다간 사도맹도 주겠소.
-그럼 유성 보고 빈 소원이 반은 이뤄지는 건데.
일월검을 수하에게 줘버리자 흑사단주는 물론이고 그가 데려온 흑사단 무인들 모두 깜짝 놀랐다.
특히 흑사단주는 충격에 빠졌다. 아끼고 아끼던 검을 줬는데 그걸 자신이 보는 앞에서 수하에게 줘버린다고?
‘이건 나를 무시하는 거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애써 참았다.
참지 못한 사람은 흑견이었다.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소맹주님!”
평생 안하무인으로 살아온 그였기에, 사도맹 소맹주라는 이름조차 그를 막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흑사단주에게는 충성심을, 다른 이들에게는 자신이 얼마나 배짱 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줄 기회를.
특히 단주 옆에서 알랑방귀를 뀌고 있는 송충을 확실히 눌러버릴 기회였다.
“그 검은 우리 단주님이 소맹주님께 드린 선물입니다. 그걸 수하에게 줘버리시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 아닙니까?”
비사인은 그 무서운 얼굴로 가소롭다는 듯 쳐다볼 뿐이었다.
흑사단주가 재빨리 나섰다.
“예의에 어긋나다니? 소맹주님께 그 무슨 망발이냐? 어서 사죄드려라!”
물론 흑사단주의 속마음도 흑견과 같았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흑견이 속 시원히 해준 것이다. 애초에 이러려고 데려온 것이기도 했고.
흑사단주의 호통에 흑견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 검은 아무나 들 수 있는 검이 아니라 여겨서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느껴지는 것은 진심 어린 사과가 아니라 여전한 불만이었다. 상대가 소맹주가 아니었다면 벌써 욕설이 튀어 나갔을 것이다.
흑견뿐만 아니라 뒤에 서 있는 다른 흑사단 무인들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자연 분위기는 딱딱하게 굳었다.
비사인이 검무극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게 당신이 원한 거요?
그러자 돌아온 뜻밖의 대답.
-아직 미지근하오. 더 펄펄 끓여야지요.
검무극이 흑견에게 말했다.
“아무나 들 수 없다고 했나? 나는 아무나가 아니다.”
검무극이 고압적으로 대하자 흑견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소맹주니까 간신히 참고 있는데, 제일 어려 보이는 놈이 하대하며 나선 것이다.
“소맹주님은 이깟 검보다 나를 더 아끼고 계신다. 그렇지 않습니까? 소맹주님.”
검무극이 직접 묻자 비사인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지켜보던 진하군은 자신이 저 상황에 부닥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결국 비사인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봤지? 날 더 아끼신다지 않느냐?”
의기양양한 검무극의 모습을 보며 비사인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벌써부터 귓가에 검무극의 목소리가 들렸다. 날 아낀다고 해놓고 왜 이러시오? 날 아낀다고 하지 않았소?
‘이걸로 한동안 날 놀려먹겠구나.’
한편 흑사단주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수하에게 검을 줘버리지 않나, 그 수하가 나서서 소맹주에게 자신을 아끼지 않느냐고 묻지를 않나?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이러는 거지?’
하지만 상황은 이제부터였다. 검무극은 분위기를 더욱 뜨겁게 달굴 새로운 것을 꺼내 들었다. 그가 품에서 꺼낸 것은 몇 장의 종이였다.
“사실 당신들에 대해서 사전에 조사를 했소. 여기 도착하기 전에 받았지.”
종이에 적힌 내용은 은월이 보낸 흑사단에 대한 정보였다. 누가 어떤 일을 저질렀으며 지금껏 어떻게 사업을 펼쳐왔는지 다 적혀 있었다.
흑사단주는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냐는 표정으로 비사인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비사인은 자신과 비슷한 눈빛으로 검무극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마 저 어린놈의 손에 들린 내용을 읽지 않은 듯 보였다.
이 반응만으로 볼 때는 짜고 벌이는 짓 같지는 않은데.
‘이것들이 대체?’
아니, 그리고 조사를 했으면 소맹주에게 보여줬어야지, 왜 품에 간직하고 있었던 거냐? 흑사단주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검무극은 점점 타오르는 불길에 한 사람을 밀어 넣었다.
“여기 흑견이 누구요? 얼굴 좀 봅시다.”
난데없이 자신이 불리자 흑견은 깜짝 놀랐다.
더구나 부른 사람은 이 자리 내내 거슬렸던 막내 놈이었다.
“나다.”
소맹주에게 표출하지 못한 불만이 분노가 되어 검무극에게로 향했다.
“눈코입 다 붙어 있고. 아무리 봐도 당신도 인간 맞는데, 어떻게 그런 짓들을 저질렀소?”
흑견이 화르르 타올랐다. 소맹주가 아니었다면 벌써 검을 뽑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폭발할 것 같은 흑견의 모습에 흑사단주가 나섰다. 지금 안 말리면 칼부림이 난다.
“귀한 분을 모시는 분이시다. 함부로 굴지 마라!”
그러면서 비사인에게 물었다.
“한데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습니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연속되면서 이제야 자신을 부른 이유를 묻는다. 예상치 못하기로는 비사인의 대답도 마찬가지였다.
“그대에게 명령할 게 있어서 불렀소.”
명령? 부탁도 아니고 명령이라는 표현을 썼다.
흑사단주는 내심 불쾌했지만, 더욱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명하시지요.”
비사인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아이들을 납치해서 팔고 있다지?”
너무 놀란 나머지 흑사단주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이건 또 뭐야?’
이미 알고 온 것 같으니 거짓말할 수는 없었다. 아니, 거짓말할 필요는 없었다. 이 정도가 뭐가 문제가 되겠나?
“맞습니다.”
그러자 비사인이 단호한 명령을 내렸다.
“이제부터 중단하시오.”
흑사단주는 물론이고 모든 흑사단 무인들도 놀랐다.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 순간이야말로 비사인은 자신이 변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검무극을 만나지 않았다면 자신의 인생에서 없었을 일이었고, 하지 않았을 말이었으니까.
그리고 비사인은 자신에게 물었다. 정말 네가 원해서 하는 일이냐? 아니면 검무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냐?
적어도 그 물음의 답은 찾을 수 있었다.
“내가 허락하지 않으니까.”
원인은 검무극일지 몰라도 자신은 이 일을 용납할 수 없다. 아이를 납치해서 팔아먹는 사도는 자신의 사도가 아니었으니까.
“이후부터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납치를 하면, 너희 흑사단은 무림에서 사라지게 될 거다.”
마차에서 내린 이후 비사인은 작은 기도도 발출하지 않았다. 이 말도 차분하게 했지만 두렵고도 무거운 침묵이 그곳에 흘렀다.
흑사단주는 한계에 다다랐다. 자존심은 상할 대로 상했고, 분노는 극에 달했다.
“알겠나?”
흑사단이 자리를 잡은 후 그 누구도 자신에게 이래라저래라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대항하는 자들은 눈알을 뽑고, 팔다리를 잘라 돼지 먹이로 던졌다. 그런 인생이었는데.
흑사단주는 결국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비사인이 돌아서서 마차로 걸어가려던 바로 그때.
뒤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검은 돌려주고 가시오!”
외친 사람은 흑견이었다. 흑사단주는 참아도 흑견은 참지 못했다. 지금까지 참은 것도 평생 쓸 인내심을 다 당겨썼기에 가능했다.
검무극이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 봐라.”
정말 그러겠다는 듯 흑견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지금 표정이 굳어진 사람들은 검무극도 비사인도, 진하군도 아니었다.
사도십삼랑의 무인들이었다. 비록 검무극이 진짜 사도십삼랑은 아니더라도, 자신들과 같은 복장을 하고 있다.
한데 흑사단 놈이 감히 도전해왔다. 명백히 자신들을 우습게 본 것이다.
흑사단주가 재빨리 소리쳤다.
“그랬다간 보복을 당할 거다. 물러나라!”
검무극은 흑사단주의 의도대로 움직여주었다. 비사인을 보며 말했다.
“제가 죽더라도 절대 복수하지 않기로 하시죠.”
이 모든 것이 검무극의 의도임을 흑사단주나 흑견이 어찌 알겠는가?
비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맹주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이 대결은 두 사람의 대결로 끝을 낸다.”
흑견이 검을 뽑아 들며 앞으로 나섰다. 흑야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흑사단에서 세 번째 실력인 그였다.
검무극이 일월검을 꺼냈다.
“검이 얼마나 좋은지 시험해 볼까?”
흑견은 자존심 때문에 그대로 싸울 것임을 알았기에 흑사단주가 대신 끼어들었다.
“그건 공정하지 못한 짓이네. 자네 검을 사용하게.”
검무극이 자신의 흑마검을 내려다보았다.
“그럼 너무 불공평할 텐데?”
무슨 말인지 알 리 없는 흑사단주였다.
“뭐, 원하신다면. 그럽시다.”
검무극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흑견은 어떻게든 상대를 이겨서 공을 세울 생각뿐이었다. 일월검을 되찾고 다시 흑사단주의 옆자리를 차지하는 거다.
“바닥부터 올라와 실전으로 다져진 실력을 보여주마!”
흑견이 검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푸욱!
어느새 검무극의 흑마검이 그의 왼쪽 어깨에 박혀 있었다.
“어?”
너무 빨라서 어떻게 찔렸는지도 알지 못했다. 이게 꿈인가 싶었는데.
다시, 푹!
이번에는 오른쪽 어깨를 찔렀다. 그제야 앞서 찔린 왼쪽 어깨에서 끔찍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흑견이 비명을 내지르는 그 순간, 흑마검은 다시 그의 팔꿈치를 연속해서 찔렀다.
보통 단칼에 없애버리는 검무극이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가장 아픈 곳의 뼈마디를 차례대로 끊어냈다.
“으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검무극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푹푹 찔릴 때마다 인간이 가장 큰 고통을 느끼는 곳이 잘려 나갔다.
비사인과 진하군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검무극이 이렇게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죽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이유 없이 행동할 사람이 아니었으니, 두 사람은 말없이 검무극의 행동을 지켜만 보았다.
흑사단주는 감히 말리지 못했다. 아니, 말리기도 늦었다. 이미 흑견은 수십 군데 찔린 후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아직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찌르는 쪽이 고수라는 의미였다.
더는 찌를 곳이 없자 마지막 남겨둔 곳으로 한 줄기 검선이 가로질렀다.
몸에서 분리된 그의 머리통이 흑사단주 옆으로 굴러갔다. 단주 옆에 있겠다는 꿈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흑사단주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흑견의 머리통을 내려다보았다.
‘일개 호위의 무공이 이 정도였다고? 그것도 막내가?’
이런 자들을 두고 우릴 지우려면 손이 얼마나 더러워져야 하는지 알려주자고 허세를 떤 것인가? 그의 몸이 절로 떨렸다.
비사인의 전음이 검무극에게 날아들었다.
-당신 원래 이럴 의도였지?
애초부터 흑사단에게 그냥 경고만 하고 떠날 생각이 아니었던 거다.
-맞소. 내 기준에선 이들도 절대악에 속하는 자들이오.
잠시 사이를 두고 비사인이 물었다.
-만약 나중에 나도 그 절대악에 속하게 되면 어쩔 거요?
검무극이 그에게 걸어가서 아까 받았던 전서를 그에게 전했다.
-당신이 이런 사람이 될 리가 없지 않소?
내용을 읽는 비사인의 표정이 점점 찌푸려졌다. 흑견을 필두로 이들이 저지른 짓은 단순한 악행이 아니었다. 그들의 악행은 악마도 고개를 내저을 정도로 잔인하고 비인간적이었다. 부모 앞에서 어린 딸을 겁탈하는 것이 대수였고, 무공도 모르는 일가족을 한곳에 가둬 산 채로 불태워버린 적도 있었다.
검무극이 왜 일월검을 달라고 해서 분위기를 이렇게 유도했는지 이제 이해가 되었다. 왜 이렇게 흑견을 고통스럽게 죽였는지도 알 수 있었다.
원래라면 검무극이 그냥 다 쓸어버렸을 텐데, 그는 자신의 입장과 권위를 생각해서 일부러 판을 만들어서 죽이고, 최대한 참아주고 있는 것이다.
비사인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어쨌든 이들도 같은 사파에 속한 자들이었으니까.
비사인이 성큼성큼 흑사단주에게 걸어갔다. 그에게 전서를 내밀며 담담히 물었다.
“이게 다 당신들 짓이오?”
흑사단주가 뭐라 대답해야 하나 우물쭈물하는 사이, 비사인의 두 눈에서는 시퍼렇고 섬뜩한 사기가 흘러나왔다.
“네가 시킨 거냐고 묻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