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45)
절대회귀-345화(345/424)
절대회귀 345화
제345회 적보다 저 사람을 더 조심하시오.
“아닙니다, 살려주십시오!”
흑사단주의 입에서 살려달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소맹주를 호위하는 이들의 막내가 흑견을 만신창이로 만들어서 목을 쳤다. 그 과정에서 흑견은 제대로 검 한 번 휘두르지 못했다.
그러니 어찌 저항할 생각이 들겠는가?
게다가 비사인의 몸에서 발출된 사기가 흑사단주의 몸을 무섭게 옥죄었다.
사파의 무인이니 사기를 많이 접해본 흑사단주였지만 지금의 사기는 여태 느껴본 그 어떤 사기보다 강력했다. 분노한 비사인의 사기에서는 피 냄새가 짙게 났다.
“그럼 수하들이 제멋대로 일을 저질렀다는 뜻인가?”
궁지에 몰리자 흑사단주은 애꿎은 사람을 끌어들였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흑사단주가 호통친 사람은 송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끌어들인다고? 흑견과 사이가 그렇게 안 좋다는 걸 뻔히 알면서? 기가 막혔지만 그렇다고 지금 흑사단주 탓을 할 상황은 아니었다.
“저도 미처 모르는 일입니다. 흑견은 못 배우고 비천한 자입니다. 단주님의 눈을 피해 못된 짓을 저지르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주변 사람 중에 그의 악행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원래 그런 놈이라고 말했다간 왜 안 말렸냐는 불똥이 튈 것이다.
비사인이 검무극에게 전음을 보냈다.
―여기에 적혀 있는 정보, 얼마나 정확한 거요?
은월의 정보였으니 그 신뢰도야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가장 믿고 아끼는 사람이 보내준 정보요. 본교 통천각 정보와 같은 수준이라고 여기면 되오.
정보의 신뢰도를 확인한 비사인이 송충에게 물었다.
“이름이 뭔가?”
“송충입니다.”
비사인은 들고 있던 종이를 뒤적이며 송충의 정보를 찾았다.
송충의 심장이 두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저기에 뭐라고 적혔는지에 따라 자신의 생사가 결정될 것이다. 그야말로 저 종이는 사신의 생사부(生死簿)였다.
다행히 검이 날아들지는 않았다. 종이에 적힌 악행이 죽음에 이를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사이 한숨 돌린 흑사단주가 그 자리에 넙죽 엎드리며 다짐했다.
“더는 아이들을 납치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수하들의 선 넘는 악행도 제대로 단속하겠습니다.”
비사인은 대답 대신 흑견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흑견의 시체를 보러 간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비사인이 검을 뽑아서 검 끝에 피를 묻혔다. 그리고 들고 있던 종이에 피로 줄을 세 줄 그었다.
비사인은 그 종이를 흑사단주에게 건넸다.
세 명의 이름에 피로 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들은 흑사단 내에서도 악행의 정도가 심한 이들,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지만, 흑사단주는 비사인이 전하려는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흑야, 잠시만 이리 와서 이걸 보게.”
그때까지도 말없이 서 있던 흑야를 자신에게 불렀다.
흑야가 걸어와서 종이에 적힌 것을 보는 순간.
쉬익!
흑사단주의 검이 기습적으로 뽑혀 나오며 그의 가슴을 베었다.
하지만 흑야는 미리 눈치를 채고 있었는지 공격을 피했다.
“그럴 줄 알았소.”
“날 원망하지 마라! 네 악행이 깊어서니.”
두 사람이 혈전을 벌였다.
갑자기 흑사단에서 가장 강한 두 사람이 혈전을 벌이니 흑사단 무인들은 놀라서 어쩔 줄을 몰랐다.
“흑야를 죽여라!”
“단주를 죽여라! 우릴 모두 다 죽이려는 거다!”
“거짓말이다! 흑야를 합공해서 죽여! 명령이다.”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슬쩍 뒤로 빠진 흑삼이 몸을 날려 그곳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는 일단 이런 상황에서는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임을 잘 알았다.
하지만 비사인의 명령을 받은 사도일랑이 어느새 그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감히 뚫을 생각을 못 하고 흑삼은 뒤로 물러났다. 흑견이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죽는 모습을 본 이상 오늘 사도십삼랑에게 검을 뽑을 사람은 없었다.
다른 사도십삼랑들도 주위를 완벽하게 포위해서 빠져나갈 수 없도록 만들었다.
비사인은 팔짱을 낀 채 그들의 싸움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흑야는 흑사단주보다 무공이 아래였지만, 배신당했다는 분노가 그를 미쳐 날뛰게 했다. 지면 죽는 싸움이기에 검기가 난무했다.
검무극과 진하군은 사도십삼랑 포위망 밖에서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쉬이익.
진하군이 검무극의 옷자락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겼다.
멀리서 날아온 눈먼 검기가 검무극이 있던 자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당신이 내 목숨을 구했소!”
“잘도 구했겠소. 피해도 열 번은 더 피했을 거면서.”
“진 대주.”
“목소리는 왜 까는 거요?”
“꼭 후계자 되시길 바라오.”
“갑자기 왜 이러시오?”
“문득 그랬으면 좋겠다 싶어서. 생각날 때 말씀드리는 거요.”
장난처럼 말했지만, 진심을 말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게 어디 내 뜻대로 되겠소?”
그의 할아버지이자 맹주인 진패천은 손자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가차 없이 후계자에서 밀어낼 사람이었다.
“왜 내가 후계자가 되길 바라는 거요?”
만만해서? 이런 대답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는데.
“잘할 것 같아서요.”
진하군이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친구든 적이든, 잘하는 사람이어야지요. 그래야 놀아도 즐겁고 싸워도 가치가 있을 테니까.”
이번에는 검무극이 그를 자기 쪽으로 당겼다.
쉬이이익.
또다시 날아든 검기가 이번에는 진하군이 서 있던 곳을 지나갔다.
“내가 당신 목숨을 구했소! 절대 잊지 마시오!”
그 너스레를 들으며 진하군은 궁금했다. 과연 이 사람과의 관계는 어떻게 끝나게 될까? 정말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러는 사이 싸움이 끝났다.
한 사람은 서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시체가 되어 쓰러져 있었다.
이변은 없었다. 승자는 실력대로 흑사단주.
흑야는 많은 싸움을 했지만 이기는 싸움만 했다. 실력과는 무관한 살육은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종이에 줄이 그어진 이름은 셋이었기에, 흑사단주는 일삼과 일팔을 기습해서 죽여버렸다. 흑야보다도 낮은 실력의 그들이 흑사단주의 기습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다 끝났습니다.”
흑사단주의 보고에 비사인이 말했다.
“이제 흑사단의 가장 악독한 다섯 사람 중에서 네 사람이 죽었군.”
“다섯 명이라고요? 줄을 친 이름은 셋이었습니다.”
흑견까지 포함시킨다 하더라도 네 명. 자신이 한 명 빠뜨렸나 싶어 흑사단주가 다시 종이를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쉬이이익.
서걱.
비사인의 검이 흑사단주의 목을 갈랐다.
그 바람에 흑사단주가 들고 있던 종이도 잘렸는데 공교롭게도 흑사단주의 이름이 있는 곳이 잘려 나갔다.
그 아래 보이는 붉은 선.
마치 줄이 그어진 것처럼 보이는 그 선은 흑사단주의 목에 그어진 선이었다.
푸아아아악!
다음 순간 그 선에서 피를 뿜어내며 흑사단주가 쓰러졌다.
비사인은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흑사단을 세우기 위해 그가 저지른 악행도 악행이지만, 흑견이나 흑야와 같은 수하의 악행을 그대로 방치한 죄가 가장 컸다.
나머지 흑사단 무인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몰살당할 것이 틀림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비사인은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이제부터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대로 있어라. 우리 쪽 사람이 갈 때까지 돌아가서 숨도 쉬지 말고 기다려라!”
흑사단이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소리쳤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죽다 살아난 그들이 그곳을 떠나갔다.
이 시간 이후로 사파 무림에 새로운 소식이 전해질 것이다. 도가 지나친 악행에 사도맹 소맹주가 직접 나서서 철퇴를 내렸다는 소식이. 반발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반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이 긍정적인 평가든 부정적인 평가든 어제와는 다른 평가를 받게 될 거란 점이었다. 비사인은 또 다른 세상으로 한 걸음 걸어 나간 것이다.
비사인이 검무극과 진하군에게로 걸어왔다.
“당신은 이들을 다 죽여버리고 싶었겠지만, 이것이 내 최선이었소.”
“다 죽이고 싶다니? 나를 살인마로 여기고 있었소? 같이 가서 동경을 봅시다. 누가 살인마에 가까운 얼굴인지.”
“당신처럼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이 알고 보면 무서운 짓을 잘 저지르지.”
“분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소.”
그렇게 한차례 너스레를 떨고 난 후 비사인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그의 입에서 할까 말까 했던 말이 흘러나왔다.
“이게 우리 사파요.”
자랑스러워서 하는 말이 아니라 부끄러워서 하는 말이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깊은 자괴감이 들었다.
진하군은 정파에도 나쁜 놈이 있듯, 사파에도 좋은 사람이 있다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검무극이 말했다.
“쓰레기 같았소.”
비사인은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대놓고 말해주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 모습에 진하군은 자신이 하려고 했던 말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위로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무극은 어찌 저리도 사람 마음을 잘 아는 걸까? 나보다 나이도 어린 주제에.
“그래도 당신은 우울해할 필요는 없소. 당신의 사파가 아니니까.”
“무슨 뜻이오?”
“당신의 사파는 저기 있지 않고 여기 있지 않소?”
무슨 뜻인가 했는데 검무극이 사도십삼랑을 쳐다보았다.
“이 사람들이 당신의 사파 아니오? 아직 저들은 당신네 직속 사람들 아니잖소? 심지어 맹주도 아닌 주제에.”
진하군은 속으로 말했다.
‘잘한다.’
그래, 지금 비사인에게 딱 필요한 위로가 이런 것이리라.
쓰레기 같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맹주도 아닌 주제에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검무극이 지금껏 비사인에게 했던 그 많은 일들이 선행되어야겠지. 지치지도 않고 찾아오고, 지치지도 않고 너스레 떨고, 지치지도 않고 배려하고.
그러니까 쓰레기란 말은 보석이 되어 비사인의 가슴에 박히게 되는 거다.
“진 대주도 한 말씀 하시오.”
이 상황에서 자신까지 챙기는 것을 봐라.
“나는 아직 쓰레기란 말을 할 준비가 안 됐소.”
검무극이 진하군에게 웃었다.
“이래서 당신이 맹주가 돼야 한다는 거요. 재밌는 사람이 돼야 우리의 맹주 생활이 즐겁지.”
“살면서 재밌다는 말 처음 듣소.”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비사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검무극과 함께 있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웃게 된다.
검무극이 비사인에게 말했다.
“오늘 일 잘 처리하셨소. 난 당신처럼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했을 거요.”
비사인은 안다. 검무극의 양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덕분에 수하들 앞에서 권위를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결정적인 말 한마디.
“당신의 사도, 마음에 드오.”
겉으로 표를 내진 않았지만, 비사인은 크게 감격했다. 백 마디 칭찬보다 더 기분 좋은 말이었다.
검무극이 진하군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오?”
“나는 사람 면전에서 마음에 든다는 말, 당신처럼 쉽게 하는 사람이 아니오.”
진하군이 저 멀리 널브러져 있는 시체를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흑사단 문제는 아주 잘 처리했다고 생각하오.”
그러자 검무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슨 말을 이리도 길게 하는지 아시겠지요?”
세 사람이 함께 미소를 지었다.
검무극이 일월검이 든 상자를 비사인에게 돌려주었다.
“자, 이건 가져가시오.”
그러자 비사인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이건 당신 선물이오.”
“선물이라고요?”
“사도십삼랑 막내로 들어온 기념선물이오.”
일월검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녔는지는 이곳에 있는 모두가 잘 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쉽게 구할 수 없는 보검, 그랬기에 비사인이 검무극에게 얼마나 고마워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오늘 밤에 괜히 줬다고 잠 못 들면서 후회할 거요.”
“그럴지도 모르겠소.”
“그래도 괜찮소?”
비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 말 한 적 있소? 선물을 줘서가 아니라 당신 얼굴, 멋있게 생겼소. 권마 사부와 마군주, 그리고 당신. 흉측하고 무섭지만 보면 볼수록 멋지게 생긴 삼대장이오.”
“선물 줘서 하는 칭찬 맞으면서.”
검무극은 일월검이 든 상자를 얼싸안고 좋아했다. 선물 잘 줬다는 생각이 들 만큼 좋아했다.
“이렇게 귀한 선물을 받았는데 그냥 있을 수 없지요. 앞으로 자랑하시오. 그대들의 사도십삼랑에 마교 소교주가 막내로 있다 갔다고. 마음껏 소문내시오.”
사도십삼랑은 이미 검무극을 겪어봤고, 또 어느 정도 알 만큼 알았기에, 너스레는 너스레로 받아들였다.
“그런 소문이 났다가 소교주 자리에서 쫓겨나지 않겠소?”
비사인의 걱정에 검무극이 대답했다.
“그럼 당신 찾아갈 테니, 받아주시오. 평생 나랑 놉시다.”
정말 그러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애써 떨치며, 비사인이 수하들에게 말했다.
“얼마나 귀찮아질지 들었을 테니, 다들 소문은 내지 않도록.”
“네!”
우렁찬 대답이 들려왔다.
비사인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나는 본맹으로 돌아갈 작정이오.”
사도맹에 암약하는 자들을 뿌리 뽑을 때가 된 것이다.
검무극이 따라붙었다.
“나도 갑시다.”
이번 일은 단지 사도맹만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비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 무림을 상대로 음모를 꾸미는 적들이라면, 혼자 해결하겠다고 자존심 세우는 건 어리석은 자들이나 할 짓이리라.
“도움은 고맙게 받겠소.”
이제 진하군의 결정만 남았다.
“나는 이만 무림맹으로 돌아가겠소.”
사실 사도십삼랑 복장을 하고 이곳까지 온 것만 해도 크게 무리한 일이었다. 게다가 멸마대를 데리고 사도맹 본단으로 갈 수도 없는 일이었고.
비사인이 진하군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고마웠소.”
“별말씀을. 적보다 저 사람을 더 조심하시오.”
“충고 고맙소.”
듣고 있던 검무극이 말했다.
“속삭이는 척이라도 좀 하시오!”
그렇게 진하군은 그곳을 떠나갔다.
멀리 숨어 있던 멸마대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진하군을 맞았다.
떠나기 전에 진하군은 수하들과 함께 능선에 늘어서서 저 멀리 사도맹을 향해 달려가는 마차를 바라보았다.
함께 가고 싶은 진하군의 마음을 실은 석양이 세상을 붉게 물들이면서 멀어져가는 마차를 빠르게 뒤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