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48)
절대회귀-348화(348/424)
절대회귀 348화
제348회 충성심이 들어갈 자리는?
사도맹의 저잣거리도 마가촌과 다르지 않았다.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웃고 떠들고 소리치는 상인들. 무인들의 기도를 제외하고 딱 이 장면만 떼놓고 보면 이곳이 무림맹 앞인지 천마신교 앞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모습이다.
“뭘 그리 신기하게 보나?”
“수련에 매진하다 보니 여기 나온 지도 오랜만입니다.”
“그리 노력했으니 젊은 나이에 소맹주를 모시는 거겠지.”
표기광은 단골 반점으로 검무극을 데려갔다.
“내가 자주 오는 곳이야. 음식 맛이 괜찮지.”
하지만 그를 대하는 주인장이나 점소이는 전혀 단골을 대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내가 여기서 몇 번 싸웠거든.”
이런 말을 자연스럽게 한다는 건 검무극이 편하게 느껴져서였다. 하루 사이에 그럴 수 있냐고? 더구나 고슴도치처럼 가시만 세우고 다니던 자신이었는데.
보다시피 그렇다. 그는 검무극이 편하게 느껴졌다.
“몸을 다친 것이 이곳 주인장에게는 큰 복이 되었군요.”
“무슨 뜻인가?”
“아니었다면 이곳이 다 날아갔을 것 아닙니까?”
자신의 말을 그렇게 열심히 들어주고, 이런 농담까지 해주는 사람인데, 어찌 함께 있는 것이 즐겁지 않을까?
표기광의 기분을 반영한 주문이 이어졌다. 좋은 술과 이곳 반점에서 제일 비싼 요리를 여러 개 시켰다.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어차피 죽으면 다 쓰지도 못할 돈 아닌가?”
“아껴 쓰십시오. 제가 지켜드리는 한 절대 죽지 않을 겁니다.”
“자신감 하난 끝내주는군.”
표기광은 젓가락을 드는 대신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 사람은 자네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네.”
처음으로 그의 입에서 배후에 대해 나왔다.
“저는 감당 못 해도 제 어부가 있지 않습니까?”
비사인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는 물음에 그는 말없이 술을 마셨다.
검무극은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번 일의 배후를 비사인이 감당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음을.
“요리가 맛있습니다.”
인근에서 알아주는 맛집이라더니, 정말 맛이 괜찮았다. 조춘배가 함께 있었다면 천마신교 대표로 사도맹 쪽 요리 맛을 평가해 달라고 너스레를 떨었을 텐데.
“술만 드시지 말고 식사도 하십시오.”
“자네나 많이 들게.”
표기광은 입맛이 없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거짓말처럼 입맛이 뚝 떨어졌다.
그리고 그의 입맛을 되돌릴 사람은 솜씨 좋은 숙수가 아니라 검무극이었다.
“흑룡단주에는 어떻게 오르신 겁니까?”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자네는 모를 거야. 라는 말로 운을 떼면서 표기광은 다시 검무극의 눈치를 살폈다.
예의상 물은 게 아니라는 듯, 검무극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눈빛을 반짝이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지난 일을 전하며 점점 더 표기광은 신이 났다. 어찌 신이 안 나겠는가? 자기 인생의 가장 큰 업적을 자랑하고 있는데.
“당시 내 경쟁자는 집안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지. 그가 얼마나 정치질을 해댔는지 자넨 상상도 못 할 거네.”
“오직 실력으로 이겨내신 거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경험과 노력을 뒷배만 믿고 설쳐대는 자가 어찌 이기겠습니까?”
표기광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실력으로 난관을 이겨낸 인생이었다는 말, 그러고 보니 다치기 전에 단주로 있을 때도 듣지 못했던 말이었다. 박복한 인생이어서 그랬을까? 그렇게 주위에 많은 사람이 있었음에도 그 한마디 말을 아무도 해주지 않았다.
오늘 이 사람을 만나려고 지난 십 년간 그렇게 박대를 받았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검무극의 말은 그를 기분 좋게 해주었다.
“또 다른 이야기도 해주십시오.”
검무극은 표기광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낭인으로 생활할 때 정말 많이 만나본 사람들이 다쳐서 낭인이 된 무인들이었다. 단전을 다쳐 내공을 쓸 수 없게 되었거나,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린 이들.
조직에서 쫓겨난 후, 평생 칼밥을 먹고 살던 이들이 무슨 다른 일을 하겠는가? 그렇게 그들은 삼류 낭인이 되어 살아갔다.
그들은 술에 취하면 항상 자신들이 잘나가던 시절에 대해 자랑하곤 했다. 그건 자랑이 아니라 한풀이 같은 거였다.
“내 이야기가 재미있나?”
“재미있습니다.”
표기광은 검무극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 애송이는 계속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자네 첫인상이 어땠는지 아나? 말이 아주 많을 줄 알았네. 인연 연자가 아니라 연기 연자라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 말이 많겠구나 싶었지. 한데 자네는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군.”
“아닙니다, 저 말 많습니다. 아직 덜 친해져서 혀를 숨기고 있을 뿐이죠.”
그 말이 우스웠는지 표기광이 웃었다. 죽음이 코앞에 와 있는데 웃음이 나오다니.
“과연 우리가 더 친해질 시간이 있을까?”
자조적인 물음에 검무극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제가 지켜드릴 겁니다.”
“그러지 말고 지금 자네 이야기도 들어보세.”
“제 이야기는 너무 길어서요.”
의미심장한 웃음에 담긴 뜻을 그가 어찌 알겠는가?
“고생이 많았나 보군.”
“말도 마십시오.”
검무극은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자네 성격이라면 주위에 사람들도 많을 것 같은데.”
“그래서 더 외롭죠.”
“더 외롭다고?”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막상 만날 사람이 없다거나. 아무도 저를 챙겨주지 않으면 얼마나 서러운데요. 다들 이런 핑계를 대죠. 다른 사람이 챙겨줄 줄 알았다고. 그래서 저희 같은 사람도 마음속에 시커먼 구멍이 생기게 되죠.”
“시커먼 구멍?”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해준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누구나 시커먼 구멍이 있다고요. 빠지지도 말고 오래 들여다보지도 말아야 하는 구멍이죠.”
표기광은 어린 녀석이 별소리를 다한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자신의 구멍을 떠올렸다. 자신에게도 있다. 너무 커서 안 빠지려고 해도 안 빠질 수 없는 깊고도 큰 구멍이.
이 녀석을 좀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만약 그랬다면 자신의 운명이 바뀌었을까? 살인멸구 당하는 운명이 아니라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다 먹었으면 이만 가세.”
“가시죠.”
두 사람은 반점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가서 좀 자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제가 지켜드려야죠.”
“언제까지 안 자고 지켜줄 수 있을까?”
정말 소맹주를 이해할 수 없다. 적어도 교대할 사람 정도는 함께 보냈어야지.
“자네, 혹시 소맹주에게 실수한 것 있나?”
있죠. 얼마나 그를 당황하게 하고, 놀려먹었는지 알면 기절할 정도죠.
“소맹주님께 멋진 사도를 기대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혹시 이게 실수였을까요?”
표기광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입 무인이 소맹주에게?”
“그럼 언제 말할 수 있습니까? 선배가 될수록 더 못 할 것 같은데요?”
이래서 눈 밖에 난 것이다. 이 반짝이는 눈빛이 거슬렸던 모양이다. 자신보다 더 빛나는 모습에.
그렇다고 이렇게 괜찮은 녀석을 버리다니.
그러다 표기광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괜찮은 녀석? 자신의 말을 들어줬다고 벌써 그렇게 여기는 것일까?
표기광은 그만큼 자신이 외롭게 살아왔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상념에 빠진 채 한적한 오솔길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그들 앞으로 네 명의 복면인이 앞을 가로막았다.
비사인과 약속된 일이 아니었으니.
이번 일의 배후가 표기광을 살인멸구 하기 위해 사람을 보낸 것이다. 드러내는 기도로 볼 때 청부 살수들이었다.
표기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그 순간이 생각보다 너무 빨리 왔다.
운명이란 놈은 이렇게 고약하다. 가장 기분 좋은 순간에 죽음을 선사하다니. 며칠만 더 있다가 오지.
그의 시선이 옆에 서 있는 검무극을 향했다. 이 녀석 이야기도 좀 듣고 싶었는데. 아직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남았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미안했다.
‘괜히 나 때문에 이 젊은 사람이 죽는구나.’
표기광이 검무극에게 말했다.
“어부가 그물을 걷어 올릴 모양일세. 미안하네. 정말 미안하네.”
진심 어린 사과에 검무극은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제 어부가 당기면 모를까 그쪽 어부 손에는 끌려 올라갈 생각 없습니다.”
동시에 살수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두 사람은 검무극에게 다른 둘은 표기광에게 달려들었다.
표기광은 눈을 감았다. 어차피 죽음을 각오하고 있기에, 어설픈 저항은 하지 않았다. 의연하고 멋있게 삶을 마감하는 거다.
쉬이이익.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검바람 소리가 들렸다.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
푸욱!
자신의 몸이 찔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어느새 검무극이 자신을 막아서며 한발 먼저 상대를 찌른 것이다.
또 다른 검이 등 뒤에서 날아드는 것을 느꼈다. 앞서 검무극을 죽이려 달려들었던 자가 목표를 바꿔 공격한 것이다.
‘이번에는 죽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자신의 몸이 당겨졌다.
검무극 쪽으로 끌려가면서 날아든 검을 피했다.
푸욱!
검무극의 검이 뒤를 찔러 온 살수의 심장을 꿰뚫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검무극의 동작은 정말 빠르고 깔끔했다.
남은 두 살수가 표기광을 향해 동시에 날아들었다. 자신이 죽더라도 표기광만은 반드시 죽이겠다는 동귀어진을 각오한 공격이었다.
‘아! 이번에는 정말 죽는다!’
하지만 이번에도 두 공격은 빗나가며 허공만 가로질렀다. 검에 찔리기 직전, 표기광이 알 수 없는 힘에 엎어지면서 공격이 빗나간 것이다.
그 일방적인 공격의 대가는 죽음이었다.
왼쪽 살수의 목을 찌른 검무극의 검이 순식간에 뽑혀 나오며 오른쪽 살수의 심장을 찔렀다. 이 연속된 동작은 그야말로 약속 비무를 펼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물론, 쓰러져 있던 표기광은 이 예술 같은 한 수를 보지 못했다.
‘또 살았어?’
표기광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앞을 막아선 네 복면인은 모두 시체가 되어 쓰러져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제가 지켜드린다고 했잖습니까?”
바로 그때였다.
쉭쉭쉭쉭!
나무 위에서 암기가 날아들었다.
검무극이 검을 휘둘러 암기를 쳐내며 표기광에게 소리쳤다.
“저 나무 뒤로 뛰십시오!”
표기광은 검무극과 함께 정신없이 달려서 거목 뒤로 몸을 숨겼다.
검무극은 검을 내밀어서 검날에 비친 적을 확인했다.
“동쪽 나무 위에 셋입니다. 그 아래 수풀 뒤에도 두 명 숨어 있고요.”
물론, 검무극이 원래 실력을 발휘하면 순식간에 이곳에 있는 자들을 모두 해치워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지금 자신은 표기광에게도 적에게도 사도십삼랑의 무인이었으니까. 실력을 감추고 있던 막내, 딱 이 정도로 실력 발휘 중이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 날 두고 가게.”
표기광은 어제 만난 풋내기를, 아니 실력은 풋내기가 아니었으니, 하루의 인연도 되지 않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이런 말을 할 줄은 정말 몰랐다.
“넷이나 해치웠으니 소맹주도 이해해 줄 거네.”
그때 나무 위에서 누군가 떨어져 내렸다.
쉬이익!
전혀 생각지 못한 은신이었기에 이번에야말로 표기광은 죽는구나 생각했다.
‘진짜 죽는다!’
하지만 상대의 검이 자신의 머리에 박히기 직전, 검무극이 살짝 자신을 잡아당겼다.
떨어진 검이 귓가를 스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 어깨에 박힐 텐데? 라는 생각이 들던 그때.
푸아악!
뜨거운 피를 뿜어내며 기습한 살수는 시체가 되어 나뒹굴었다.
대체 어떻게 그를 처리한 것인지 표기광은 이번에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또 살았어? 대체 어떻게?’
뭐라 묻기도 전에 검무극이 다시 그를 잡아끌었다.
“저기 바위 뒤로!”
표기광은 검무극과 함께 달렸다. 그는 혼란스러웠다. 혼자 몸이 아니라 검무극이 있으니, 안 달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렇게 피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는데.
팍팍팍팍팍!
달리는 두 사람의 발아래로 비수가 날아와 꽂혔다. 아무리 비도술이 뛰어난 살수라도 검무극이 데리고 뛰는데 하나라도 맞출 수 있겠는가?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하며 두 사람은 무사히 바위 뒤로 몸을 감췄다.
“날 두고 가라니까!”
“상대가 살인멸구 하려는데 왜 받아들이시는 겁니까?”
“자넨 내 마음을 몰라.”
바위에 기댄 채 검무극이 그를 쳐다보았다.
“맹에 대한 충성심 때문입니까?”
당연히 표기광은 그렇다는 눈빛으로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검무극의 시선이 저 멀리 쓰러져 있는 시체를 향했다.
“저자들은 청부 살수들입니다. 세상에 어떤 맹이 일을 시킨 수하에게 청부 살수를 보냅니까? 대체 이 지저분한 상황에서 충성심이 들어갈 자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
그때 또 한 명의 살수가 바위를 타고 넘어왔다.
서걱!
검무극의 그의 목을 베고 있을 때.
뒤쪽 나무 뒤에서 튀어나온 살수들이 암기를 던졌다.
쉭쉭쉭쉭쉭쉭쉭쉭쉭!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십여 개의 암기를 보며 표기광은 이제 드디어 진짜 끝장이라 생각했다.
‘부디 자네라도 꼭 살게!’
푹푹푹푹푹푹푹!
살이 찢기는 소리에 눈을 뜨자 어느새 검무극은 바위를 타고 넘어온 살수를 죽인 후, 그 시체를 방패 삼아 자신 앞에 서 있었다. 날아든 암기는 모두 그 시체에 박혔다.
‘뭐야, 또 살았어?’
그가 뭐라 말하기 전에 검무극은 그를 잡아당기며 산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뛰십시오!”
그 뒤로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살수들이 우르르 추격하기 시작했다.
검무극과 함께 정신없이 내달리며 표기광은 이 생각뿐이었다.
‘나, 왜 자꾸 사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