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51)
절대회귀-351화(351/424)
절대회귀 351화
제351회 숨 쉬는 것 빼곤 다 거짓말.
비사인은 항상 가는 객잔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주위는 사도십삼랑이 여기저기 흩어져 비사인을 호위하고 있었다.
무인 하나가 와서 일랑에게 뭔가를 보고하고 떠났다.
일랑이 다시 그 내용을 비사인에게 보고했다.
“소교주 쪽 보고입니다.”
앞서 검무극과 표기광이 살수들에게 공격을 받고 쫓기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런 보고를 받고도 크게 긴장되지 않은 것은 지키는 사람이 검무극이기 때문일 거다. 과연 결과 역시 예상대로였다.
“살수들은 전멸했습니다.”
일랑이 구체적인 내용을 보고했다.
“시체를 확인해 보니 이번에 동원된 살수 조직은 구천회(九泉會)였습니다. 동원된 살수들이 전원 사망하면서 그들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비사인이 화가 나는 것은 표기광을 죽이려 해서가 아니었다. 표기광을 자신이 지키려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이려 했다는 점 때문이다.
표기광의 호위를 맡은 검무극은 사도십삼랑의 복장을 입고 있었다. 다시 말해 상대는 엄연히 자신의 수하가 지키는 걸 알면서도 살수를 보낸 것이다.
‘감히 내 수하까지 죽이려 했다?’
이건 소맹주인 자신의 권위를 무시하고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누가 청부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까?”
일랑은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구천회는 청부 대상을 가리지 않을뿐더러 청부자 뒷조사를 안 하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살수 쪽 세계에서 인기가 많았다. 그 인기를 바탕으로 규모를 중원에서 손꼽는 조직으로 크게 키울 수 있었고.
“소교주는요?”
“함께 있던 표기광과 함께 행적을 감췄습니다.”
검무극이 살수들에게 당했을 리는 없으니, 어딘가 안전한 곳에 표기광과 함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이용한 조직을 사도맹주가 만들라고 명령한 게 아니란 것이 밝혀졌으니, 이제 검무극이 가져올 정보가 중요해졌다.
“소교주에게만 맡길 게 아니었습니다.”
일랑의 말에 비사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믿음을 굳이 일랑에게 설명하는 것도 정상적인 일은 아니었으니까. 검무극과의 우정은 어쩌면 평생 홀로 마음속에서만 가져가야 할 우정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바로 그때 제 말만 하면 나타나는 호랑이가 비사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런 소리 마시라, 난 내 친구 소교주를 믿고 있다, 이렇게 말씀하셔야지.
비사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사실 밥을 먹으면서도 이런 전음이 날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였다.
―전음 보내지 말고 이리 오지 그랬소? 당신도 어엿한 사도십삼랑인데.
자주 들을 수 없는 비사인의 농담이었지만, 지금은 농담으로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
―나도 그러고 싶소만 당분간은 그럴 수 없소. 표기광이 당신과 접촉한 걸 알자 살수를 보냈소. 이제 표기광을 죽이는 것에 실패했으니, 저쪽에선 당신을 주시하고 있을 거요. 혹 비밀을 알아차린 것은 아닐까 의심하며 지금도 어디선가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르오.
비사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앞서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 벌였던 싸움과는 또 다른 성격의 싸움이다. 상대의 도발에 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따 절벽에서 봅시다.
―그럽시다.
―미행 조심해서 오시오.
검무극의 기척이 사라지자 비사인도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 먹지 않는 반찬들을 깨끗이 다 비운 상태였다.
* * *
사맹관 연무장을 수십 명의 무인이 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기본 체력에만 의지해서 달렸다.
한계를 넘어선 계속된 달리기에 쓰러지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흑룡단 지원했지? 여기서 포기하면 흑룡단에 못 들어간다.”
바닥에 드러누운 채 숨을 헐떡이는 무인을 내려다보며 말한 사람은 교관 황석경이었다.
지망하는 조직에 들어가려면 무공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에 걸맞은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도 필요했다.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원하는 조직보다 낮은 곳에 배정받게 되는 것이다.
“더는 못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자 황석경이 그의 귓가에 뭔가 귓속말을 했다. 그러자 다 죽어가던 사내는 다시 일어나서 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동료인 차 교관이 그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이번에는 뭐라 말해준 건가?”
그러자 황석경이 웃으며 말했다.
“나약하게 굴면 고향에 있던 정혼녀를 딴 놈에게 빼앗기게 될 거라고 했네.”
차 교관이 감탄했다.
“역시. 이번에 입맹한 녀석들 인적 사항도 다 외우고 있구먼.”
황석경이 최고의 교관으로 이름을 날린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점이었다. 그는 달마다 들어오는 수십 명이나 되는 신입 무인들에 대해 다 알고 있었다. 어디 출신이고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며 성격이나 취미, 그리고 어떤 곳을 지원했는지 모두 외우고 있었다.
그가 투왕으로 이름을 날린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머리가 좋아서였다. 똑똑했기에 그만큼 강한 것이다.
“이보게, 황 교관. 이렇게 열심히 한다고 월봉 더 받는 것도 아닌데, 적당히 해.”
황석경은 그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차 교관은 알지 못했다. 교관으로서의 이런 모습이 그의 본성과 얼마나 다른지, 숨 쉬는 것 빼곤 다 거짓말이고 연기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훈련이 끝났을 때 앞서 귓속말을 들은 무인이 달려와서 고마움을 전했다.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황석경은 사람 좋은 얼굴로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출세해서 금의환향해야지.”
“노력하겠습니다.”
누가 봐도 그는 정말 후배를 아끼고 좋아하는 교관처럼 보였다.
하지만 훈련장을 벗어나는 순간 그는 교관이 아니라 투왕이 되었다. 어디선가 전음이 날아들었다.
―살수들이 모두 죽고, 표기광은 사라졌습니다.
의외의 결과에 잠깐 걸음을 멈췄다.
―사도십삼랑 하나가 지킨다고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한데 살수들이 모두 죽었다고?
―네, 그렇습니다.
투왕이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뭔가 이번에 예감이 좋지 않아서 자신의 사람을 쓰지 않고, 외부 살수를 동원했다.
―소맹주가 함정을 팠다? 만약 그런 거라면 이미 내 존재를 알아차렸을 수도 있겠군.
투왕의 판단력은 정확했다.
―그들을 준비시켜라.
―목표는 누굽니까?
그리고 사파 무림의 운명을 좌우할 결정을 내리는 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비사인.
* * *
늦은 밤, 비사인이 도착했을 때 검무극은 절벽에 걸터앉아 있었다.
“표기광은 어디에 있소?”
비사인이 검무극 옆에 나란히 앉으며 물었다. 예전에는 항상 옆에 서 있었는데, 이제 자연스럽게 검무극의 옆자리에 앉았다.
“제이의 인생을 사는 것 보고 왔소.”
무슨 말인가 검무극을 쳐다보던 비사인이 혹시 하는 얼굴로 물었다.
“설마 표 단주가 떠났소?”
검무극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선 그자가 배후를 아는 유일한 사람 아니오?”
이유가 있어 보내줬겠지만, 비사인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구보다 검무극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텐데.
곧이어 비사인에게 충격을 안길 이유가 밝혀졌다.
“떠나기 전에 배후가 누군지 알려줬소.”
비사인은 말없이 검무극을 응시했다.
그래, 검무극이 배후를 알아낼 거라 믿었다. 그랬기에 표기광을 지키게 한 것이었고.
하지만 그걸 하루 만에 알아내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라면 거짓말이라고 여길 것이다. 뭔가 사술을 부려서 알아냈을 거로 생각할 거다.
하지만 비사인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정말 표기광은 진심으로 말해주고 싶어서 말해줬을 거라고. 단 하루 만에 말이다.
“당신은 정말…….”
뭐라 표현해야 할지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이 순간을 놓칠 검무극이 아니었다.
“당신의 멋진 친구요.”
비사인은 제발 이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직은, 아니 앞으로도 이 사람을 이길 엄두가 나지 않았으니까. 이제 자존심조차 상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의 놀람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배후가 누구요?”
“황석경이라고 아시오?”
이제 비사인은 아예 검무극을 향해 돌아앉았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나왔다.
“설마 사맹관의 황 교관을 말씀하시는 거요?”
“알고 계시는군요.”
나름대로 배후가 될만한 여러 이름을 예상했지만, 황 교관은 아예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믿기 어려운 말이오. 정말 믿기 어렵소.”
황석경은 평판도 좋고, 실력도 좋고, 심지어 성격까지 좋은 사맹관을 대표하는 교관이었으니까.
검무극은 비사인의 놀람을 이해했다. 자신도 정말 의외라 여겼으니, 비사인이야 얼마나 놀랐겠는가?
하지만 이 상황에서 문제는 사맹관의 교관이 배후라는 것이 아니다. 그 배후가 투왕이란 사실이다.
“오늘 그자를 은밀히 살폈는데, 무공을 숨기고 있었소.”
숨기고 있는 것 같다고 모호하게 말하지 않았다. 단언하듯 말해주었다. 비사인도 정말 조심해야 하는 상대였으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말한 그 암중 세력의 일원이겠군요.”
“그렇다고 생각하오.”
“당장 그자를 붙잡아서 심문하겠소.”
검무극은 당장 일어나려는 비사인을 제지했다.
“그자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소. 절대 혼자 상대하려 해선 안 되오. 당신과 사도십삼랑과 합공해도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오.”
“!”
비사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농담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검무극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문제는 그자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오. 유검문주가 말하길 자신들에게 이권을 줬다고 하니, 황 교관과 손을 잡은 맹 내부 권력자도 있을 거요. 한 명일 수도 있고, 여러 명일 수도 있겠지. 그렇게 놀랄 필요 없소. 무림맹에 잠입해 있던 자는 장장 십 년의 세월을 투자했소. 이자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하오.”
비사인은 이번 일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중대하고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검무극이 아니었다면, 이 음모는 계속 진행되었으리라. 생각하면 할수록 섬뜩했다.
“표기광을 죽이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지금쯤 그도 알았을 거요. 그럼 달아나 버리지 않겠소?”
다른 인물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투왕은 무공 실력이 압도적으로 좋고, 그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자였다. 문제의 해결책을 달아나는 것으로 삼는 인물이 아니었다.
“사도맹에 들인 시간을 생각하면 쉽게 물러나지는 않을 거요. 당신이 어떻게 나올지 주목하고 있겠지.”
감히 사도맹을 상대로 음모를 꾸미고 있는 자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비사인의 가슴 속에서 투기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침착해야 한다. 황 교관의 실력은 자신보다 월등히 강하다고 했으니까.
상대가 그 정도 고수라면 사도맹주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현실적으로는 상책이지만, 감정적으로는 하책인 방법이다.
자신이 처리하지 못하고 사도맹주에게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는 셈이니까.
또 하나의 문제는 그와 손을 잡은 자들이었다. 어떻게든 그들이 누군지 알아내야 한다. 그런 자를 가까이 두고선 두 발 뻗고 잠을 잘 수 없을 테니까.
“만약 그자를 생포한다면 그자가 누구와 손을 잡았는지 자백하겠소?”
비사인의 물음에 검무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백 안 할 거요. 아니, 그자 실력으로 볼 때 생포 자체가 불가능할 거요.”
검무극은 또 한 번 투왕의 실력을 강조했다. 그와 직접적으로 비사인이 얽혔기에,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는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비사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날 한 번만 더 도와주실 수 있소?”
“사도맹 소맹주라면 흔쾌히 투자할 수 있소. 나중에 이자까지 두둑이 갚으시오. 내가 뭘 도와주면 되겠소?”
비사인은 정말 뜻밖의 부탁을 했다.
“사맹관 구경 한 번 해보시겠소?”
신입으로 들어가서 황 교관에게 접근하라는 의미였다.
“매달 사맹관에 신입 무인들이 들어가오. 당신이라면 황 교관에게 접근해서 그와 손잡은 사람을 알아낼 수 있지 않겠소?”
보통 사람에게는 결코 할 수 있는 부탁이 아니었다. 아니, 멸마대주인 진하군이라도 이런 부탁을 할 수는 없었을 거다.
얼마나 걸릴지도 모를 일에 임무 자체도 극악의 난이도였다. 이건 자신도 할 수 없고,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단, 하루 만에 표기광의 입을 열게 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자는 내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을 거요. 설마 신입 무인으로 접근할 줄 예상 못 할 테니 당신이 안을 파고드는 거지.”
언제나 나만 믿으라며 긍정적인 대답을 했던 검무극이 이번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자신이 없소.”
투왕이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그는 누구보다 똑똑한 사람이다. 이런 상황에서 눈에 확 띄는 신입 무인이 나타난다면 반드시 의심부터 하고 볼 것이다. 다른 때라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비사인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 얼굴로 보시오?”
“당신도 사람이구나 싶어서 그렇소.”
“지금까지는 사람으로 안 본 거요?”
“어디 사람 같은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어야지.”
“지금까지 당신한테 친구하자고 그렇게 매달렸는데, 사람 같지 않다니요! 그거야말로 비인간적인 것 아니오?”
그렇게 한바탕 너스레를 떨고 난 후 검무극이 거절한 이유를 밝혔다.
“상대가 그럴 시간을 주지 않을 거라 생각하오.”
비사인은 궁금했다. 대체 황석경에게서 뭘 봤기에 이렇게 조심하는 걸까? 왜 그리 그를 높이 사는 것일까?
“돌아가시면 호신갑 중에 제일 좋은 것으로 입으시오. 두 겹, 세 겹 껴입어도 좋소.”
오늘 검무극이 여러 차례 자신을 놀라게 했지만 지금 이 말에 가장 놀랐다.
“당신 설마? 그자가 나까지 죽이려 들 거로 생각하는 거요? 그렇게까지 막 나간다고?”
검무극이 경고하고 또 경고한 것은 바로 이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소. 내가 그자라면 당신부터 죽일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