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55)
절대회귀-355화(355/424)
절대회귀 355화
제355회 내공 쓸 수 있다고 했잖소?
“천마신교 소교주!”
광섬과 괴악은 동시에 검무극을 알아보았다.
첫 만남에서 검무극이 워낙 강렬한 인상을 줬기에 잊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왜 그대가 여기에 있지?”
검무극이 여기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기에 그들은 크게 놀랐다.
광섬과 괴악의 표정이 상반되게 바뀌었다. 괴악의 마음에 한 가닥 희망이 피어올랐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변수가 생긴 것이다.
반면 광섬은 그야말로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괴악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소맹주를 죽이려던 참이었다.
한데 이렇게 되면 마교 소교주까지 죽여야 할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지금 벌이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닌데, 마교 소교주까지 죽으면 무림이 발칵 뒤집힐 것이다.
생각지 못한 변수에 속이 탄 광섬은 성큼성큼 걸어가서 술을 부어 마셨다.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당장 이 일을 황석경에게 보고해야 할지, 아니면 독자적으로 처리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보고하고, 답을 들으려면 시간이 걸릴 텐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계획이 마교 소교주에게 노출되었다는 점이다.
광섬이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눈빛이 여유로운 게 자신을 죽이지 못할 거라 확신하는 모양이다.
‘소교주,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만났다.’
그는 이 골치 아픈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을 내렸다.
광섬이 괴악을 쳐다보며 말했다.
“자넨 적어도 소맹주를 죽였다는 죄는 쓰지 않아도 되겠네.”
광섬의 뜻을 짐작한 괴악이 차갑게 반응했다.
“미친 새끼.”
그나 자신이나 악인 중의 악인이었다. 평생 사람을 믿지 않고 살았지만 그래도 함께 어울렸던 광섬을 믿는 마음은 있었다. 과묵한 성격도 마음에 들었고. 그 과묵함에 속았다. 속인 그보다 속은 자신에게 더 화가 났다.
그의 무공인 참격철인은 온몸으로 싸우는 체술이다. 내공이 없으면 어떻게 기습조차 시도해볼 수 없다.
소교주, 소맹주, 자신까지 셋이서 달려들면 어떻게 될까? 내공이 없더라도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광섬의 검이 얼마나 빠른지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다. 내공 없는 자신의 체술은 안마가 될 거고, 둘의 공격은 애들 칼싸움이 될 거다.
광섬이 내린 결정은 괴악의 예상대로였다.
“소교주와 소맹주, 두 사람이 서로 싸우다 양패구상한 것으로 처리될 테니까.”
검무극이 비사인에게 말했다.
“결국 당신이 걱정했던 일이 벌어지는군요. 우리가 싸우다 서로 죽는.”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시오?”
“친구가 한날한시에 죽으면 그건 그거대로 가치 있는 일 아니겠소.”
비사인은 지금 검무극의 너스레를 받아줄 심정이 아니었다.
‘이렇게 죽는다고?’
광섬과 괴악을 믿었다. 그랬으니 아무 의심도 없이 술을 마셨던 것이고. 사도맹주를 따르는 사람이라서 당연히 믿어도 된다고 여겼다. 생각해 보면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인데.
문득 사람을 똑바로 자세히 보라던 검무극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이것도 결국 사람을 똑바로 보지 못한 결과겠지.
자신이 죽고 나면 사도맹은 어떻게 될까? 맹주님은? 광섬까지 끌어들인 자들이니 상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그의 마지막 걱정은 자신이 아니었다.
“마교 소교주는 죽이면 안 되오. 우린 죽이더라도 저 사람은 보내주시오.”
내가 죽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살려달라는 말을 하다니? 비사인은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소교주는 약속할 거요. 이곳에서 있었던 일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고. 마교 소교주쯤 되는 인물이니 약속을 함부로 저버리지 않을 테고.”
광섬이 별다른 반응이 없자, 비사인은 더욱 간절히 그를 설득했다.
“그대가 소교주 입장이라 생각해 보시오. 어차피 사도맹에서 일어난 일들이오. 저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잖소? 그가 굳이 자신의 명예를 실추해가면서 오늘 일을 밝힐 리가 없소. 소교주를 죽이면 마교에서 당신들을 찾아내서 다 죽일 거요.”
비사인이 검무극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렇지 않소? 당신이 말해보시오.”
그러자 검무극이 말했다.
“말할 거요.”
“뭐요?”
“내 눈앞에서 당신을 죽인 자인데 그냥 있을 수 없지. 다 말할 뿐만 아니라 복수할 거요.”
비사인은 답답했다. 이 소교주야, 지금 장난칠 때 아니라고. 제발, 이번 한 번만 내 장단에 맞춰줘.
그런 속마음을 감추고 비사인이 차분히 광섬을 설득했다.
“원래 소교주가 마음에 없는 소리 잘하오. 일 크게 벌이지 말고, 소교주는 보내주시오.”
그러면서 비사인이 검무극을 쳐다보며 눈빛으로 말했다.
―나 장난치는 거 아니오. 그러니 당신도 장난치지 마시오.
물론 순순히 그 바람을 들어주면 검무극이 아닐 것이다.
“당신, 지금껏 만난 중에 지금이 제일 멋있소.”
제발 좀! 비사인은 버럭 화를 내려다 말았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자신이 부탁한다고 살려주고 안 한다고 죽이고.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나 살려주려고 애쓰는 사람이 안 멋있으면, 그것도 문제 아니겠소?”
말을 하고선 비사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이 순간에도 너스레를 떠는구나. 그래, 차라리 저 사람과 웃고 너스레 떨다 죽자.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검무극이 광섬을 쳐다보았다.
“저 사람 눈을 보시오.”
비사인도 검무극을 따라 광섬의 눈을 쳐다보았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차가운 눈빛이었다.
“그는 날 살려줄 생각이 전혀 없소.”
비사인이라고 어찌 몰랐을까? 다만 이대로 검무극까지 죽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비사인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오. 당신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닌데.”
그러자 검무극이 말했다.
“당신의 두 번째 한숨이오.”
그에게 열 번째, 백 번째 한숨을 보여주고 싶은데. 한숨 두 번 보여주는 관계로 끝이구나.
검무극과 함께라면 어떤 위기도 다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 일도 자신이 주인공이 되라고 검무극이 밀어줬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그를 믿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잊고 있었다. 검무극의 놀라운 능력에 감탄하고 그의 너스레에 웃는 사이 그도 인간임을 잊고 있었다.
“정말 미안하오.”
탄식하듯 뱉어진 그의 사과에 검무극은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할 필요 없소.”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괴악이 광섬에게 말했다.
“저 얼마 되지도 않은 덜 익은 우정도 저리 절절한데, 우린 이게 뭐냐?”
광섬은 못 들은 척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검무극이 광섬에게 말했다.
“당신은 무림 역사에 길이 남을 주인공이 되겠소. 마교 소교주와 사도맹 소맹주, 그리고 사도칠대고수를 한자리에서 죽이게 되니까.”
그러자 괴악이 한마디 보탰다.
“산공독으로 죽였다는 것도 그 기록에 꼭 남겨놔라!”
광섬은 더는 시간을 끌지 않겠다는 듯 검을 뽑으려 했다.
검무극이 재빨리 물었다.
“죽기 전에 하나만 물어봅시다. 납치되어 데려간 아이들은 어디에 있소?”
“그건 왜 묻나?”
“그 일 때문에 이번 일에 말려든 거니, 죽어도 알고 죽어야 하지 않겠소?”
하지만 그 일은 광섬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모른다.”
“그럼 당신이 존경하는 그 사람이 사도맹 내에서 누구와 손을 잡았소?”
검무극은 그를 통해서 뭐라도 알아내려 했다.
하지만 이번 역시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역시 모르는 모양이었다.
“당신은 그저 황석경의 칼로 쓰이는 사람이군.”
검무극은 비사인에게 덧붙여 말했다.
“나중에 이 사람이 사도맹주를 죽이기 위한 검으로 쓰였을 거요.”
충분히 가능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계속 신뢰를 쌓아가다 결정적인 순간, 사도맹주를 암습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와 함께 독도 쓰고, 암기도 쓰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쓰면 사도맹주도 암살할 수 있지 않았을까? 거기에 투왕까지 나선다면?
더욱 걱정되는 상황은 이것이었다. 마교 소교주까지 죽었으니, 마교와 사도맹의 관계가 급속히 나빠질 것이다. 자칫 오해가 쌓이면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이번 죽음의 내막을 제대로 밝혀낼 수 있을까? 그 와중에 놈들은 어부지리만 노릴 것이고.
비사인은 답답한 마음을 검무극에게 전했다.
“당신이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소. 사실 나는 내공을 사용할 수 있소. 항상 하는 장난처럼 웃으면서 그렇게 말해줬으면 좋겠소. 그래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살아남는다면?”
“사람들 모아두고 춤을 추겠소.”
태어나서 춤이라곤 쳐본 적이 없는 그였다.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느니 죽고 말지, 라는 생각을 하는 그였다.
오직 살고 싶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걸까?
살고 싶었다. 죽어도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
아직 할 일이 많은데. 아직 맹주전 태사의에 앉아 보지도 못했는데. 자신만의 사도를 세워보지도 못했는데.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지도 못했고. 친구네 집 앞 술집에서 함께 술을 마셔보지도 못했고…… 아직 친구 아버지에게 인사도 못 했는데.
검무극이 비사인을 보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나 내공 사용할 수 있소.”
비사인도 웃어주었다. 거칠고 흉한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래, 검무극과는 이렇게 웃으며 죽는 게 어울린다.
‘당신 친구여서 좋았소.’
광섬이 검을 뽑아들며 괴악에게 말했다.
“그래도 당신과의 정이 있으니, 마지막에 죽여주겠소.”
“우리가 안 지 이십 년이고, 함께 다닌 지도 칠팔 년인데, 참 대단한 정이다.”
광섬은 못 들은 척 비사인을 향해 걸어왔다.
“소맹주에게 악감정은 없소.”
심장이 빨리 뛰었지만 비사인은 당당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히 광섬을 응시했다.
‘하늘이시여, 부디 사도맹을 지켜주십시오!’
광섬의 검이 날아들었다.
쇄애애애액!
채앵!
비사인은 두 눈을 부릅떴다.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검무극의 등이었다. 순식간에 공간을 가로질러 와서 날아드는 검을 흑마검으로 막은 것이다.
“당신!”
말을 나눌 여유는 없었다.
검을 교차하고 있던 광섬이 곧장 독문무공 추뢰삼검을 발휘한 것이다.
자신을 막은 이 한 수에 광섬은 알 수 있었다. 다른 얄팍한 수를 썼다간 그냥 죽을 거라고. 그는 자신의 독문 무공에 모든 내공을 쏟아부었다.
‘내공이 있어도 결과는 다르지 않다!’
인간이 어떻게 떨어지는 벼락을 피할 수 있겠는가? 이 거리에서 추뢰삼검이 펼쳐진다면 반드시 검무극을 죽일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번쩍!
쉬이이이익!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공격이었다. 하지만 벼락을 피하는 인간도 있었다.
‘하나는 피하더라도!’
연속해서 추뢰이검이 발휘되었다. 검광이 번쩍이며 순식간에 십여 가닥의 검선이 검무극을 향해 쏟아졌다.
챙챙챙챙챙챙챙챙챙!
하지만 검무극의 흑마검이 공격을 모두 막았다. 이쪽이 벼락이면 저쪽도 벼락이었다.
광섬은 놀라고 당황했다. 지금껏 이 거리에서 발휘된 추뢰이검은 오직 한 사람만이 막아냈었는데.
그래, 마교 소교주니까 막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마지막 삼검만큼은 못 막을 거다.
이곳에 있는 모두를 휩쓸 추뢰삼검이 펼쳐지려던 그때.
푸욱!
살이 찢기는 소리와 함께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멈췄다.
갑자기 흐르는 정적은 이 승부가 한 수로 끝났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광섬의 시선이 천천히 자신의 가슴을 향했다.
흑마검이 그의 가슴을 관통해 있었다. 이 공격을 놓쳤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나보다 더 빠르다고?”
광섬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그 맑고 깊은 눈빛은 앞서 비사인과 너스레를 떨던 사람과 다른 사람이었다.
반대로 생기를 잃어가는 그의 두 눈을 바라보며 검무극은 차갑게 말했다.
“술병에 산공독을 타던 그 순간에 당신이 무인으로 해왔던 모든 일은 다 사라졌소. 이제 넌 아무것도 아니다.”
광섬이 뭐라 하려고 입술을 달싹거렸다.
쉬이익! 서걱!
그라고 예외는 없었다. 가슴에서 뽑혀 나온 흑마검이 단칼에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쿵.
사도칠대고수 중 한 명이자 쾌검의 달인이었던 광섬이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한 채 절명하는 순간이었다.
흑마검에 묻은 피를 시원하게 촤악 털어내며 검무극이 비사인을 향해 돌아서며 씩 웃었다.
“내공 쓸 수 있다고 했잖소?”
살아났다는 기쁨과 함께 비사인의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지옥문이 열렸다가 다시 닫히는 순간이었다.
“대체 어떻게?”
“산공독이 내 체질에 안 맞나 보오.”
아! 이 사람은 대체 언제까지 사람을 이렇게 놀라게 할 작정일까?
“날 어디까지 끌고 다닐 생각이시오?”
“말했잖소? 편하게 끌려다니면서 별도 보고 구름도 보시라고. 언젠가는 그때가 좋았지, 싶은 날도 올 거요. 그러다 내가 지치면 그땐 날 좀 끌어주시고.”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만났다.
비사인은 고맙다고 말하지 않았다. 고마움의 정산은 마지막에 다 하기로 했으니까. 그 고마움에 목숨 빚까지 얹어졌다. 이게 다 정산이 될까?
놀란 것은 비사인만이 아니었다. 괴악은 멍한 표정으로 광섬의 시체를 쳐다보고 있었다.
검무극의 실력에 놀란 것이다. 산공독이 통하지 않은 것은 둘째치고, 그 가까운 거리에서 광섬의 공격을 모두 막아냈다. 그리고 더 빠른 쾌검술로 그를 죽였다.
쾌검술이 검무극의 독문무공이 아닐진대, 그야말로 기본기로 광섬을 이긴 것이다.
‘우리보다 훨씬 강하다!’
소교주가 특별한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다.
그가 정중히 포권하며 검무극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소교주, 자네 덕분에 목숨을 구했네. 앞으로 뭐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게.”
“그럽지요. 앞으로 내 친구 잘 부탁합니다.”
그러면서 비사인을 쳐다보았다. 정중히 부탁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괴악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비사인에게 함부로 굴지 말라고.
괴악이 비사인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이 눈빛으로 대화를 나눴다.
―대체 어떻게 이런 사람과 친구가 됐나?
―나도 모르겠습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저 사람 친구가 되어 있어서.
세 사람이 건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참, 약속은 언제 지킬 거요?”
“무슨 약속 말이오?”
“살아남으면 사람들 앞에서 춤추겠다는 약속 말이오. 맨 앞자리 예약이오.”
“내가 언제 그런 약속을 했소?”
비사인은 딱 잡아뗐다.
“미안하지만 증인도 있소.”
검무극이 괴악을 쳐다보았다.
“소맹주가 한 약속 들으셨지요?”
괴악은 검무극과 비사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무슨 약속? 난 들은 적이 없는데?”
“살면서 나보다는 소맹주 만날 일이 많으시다?”
괴악이 멋쩍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한낱 교관 놈이 감히 사도맹주 자리를 노린다고? 자, 어서 가세. 우리가 또 남 잘되는 꼴은 못 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