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56)
절대회귀-356화(356/424)
절대회귀 356화
제356회 그가 누군지 압니다.
마차 안의 세 사람은 각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우선 검무극은 눈을 감고 천마호신공을 연마하고 있었다. 연마하고 또 하고. 어떤 자투리 시간도 소홀히 보내지 않았다.
무공을 익히다 보면 느낌이 올 때가 있다. 간질간질 사람을 자극하며, 꽃봉오리를 터뜨릴 것만 같은 순간, 바로 다음 단계에 오르기 직전의 느낌이다. 천마호신공이 딱 그랬다.
‘우리 많이 친해졌잖아? 한 걸음만 더 와라.’
이런 검무극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성을 코앞에 둔 천마호신공은 한 걸음 밖에서 애만 태우고 있었다.
정작 그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선 사람은 마차 창밖을 쳐다보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로 자신이 사람들 앞에서 춤추는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는 자신이었다. 장난으로 넘어가면 검무극에게는 종종 시달리겠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춤을 출 필요는 없을 거다.
하지만 검무극에게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무리 싫어하는 일이라도 약속은 꼭 지키는 모습을.
‘하고 많은 일 중에 하필 춤을 춘다고 해서는.’
대단한 고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비사인은 상상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고, 그 옆자리에 앉은 괴악은 광섬을 떠올리며 한 가지 다짐을 하고 있었다.
‘두 번 다시 방심하는 일은 없을 거다.’
애초에 인간이란 것들은 믿어서는 안 될 족속이다. 원래 그렇게 잘 살아왔는데, 나이를 먹어선지 잠깐 마음이 풀어졌다.
그래서 비사인이 걱정되기도 했다. 검무극을 믿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소맹주, 사람을 함부로 믿었다간 크게 후회할 거요.’
자신은 말이 너무 없는 놈에게 당했고, 지금 비사인은 말이 너무 많은 놈에게 당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비사인에게 전하지 않았다. 자신은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이게 원래 자신의 모습이었으니까.
다만 검무극과 비사인의 관계를 내심 주목하곤 있었다. 검무극에게 목숨 빚을 진 것은 진 것이고. 그래도 사도맹과 연을 맺고 있고, 받아야 할 무공도 있었으니까.
그때 눈을 감은 채 검무극이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할 작정이오?”
비사인의 시선이 검무극을 향했다. 검무극이 또 자신의 의견부터 물어봐 주고 있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는데, 이렇게 먼저 물어봐 주는 게 자신을 위한 배려임을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다.
그의 머릿속에 분명 더 나은 계획이 있을 텐데, 이렇게 물어봐 준다. 정말 똑똑한 사람임을 잘 알기에 이런 배려가 더 힘들 거라는 것도 잘 안다.
“날 죽이려 했으니, 나도 죽일 거요.”
이제 남은 건 목숨을 건 싸움뿐이다.
다만 문제는 황석경의 실력이었다. 사도칠대고수인 광섬이 그와 싸워서 지고 그를 존경할 정도의 실력.
그렇다고 검무극에게 죽여주시오, 부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존심 문제가 아니었다. 이긴다는 보장이 없으니 검무극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다. 그건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어쨌거나 이 일은 사도맹의 일이었으니까.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도움을 청하려고 광섬과 괴악을 만난 건데, 이제 괴악만 남았다. 그 혼자로는 역부족이고.
사도맹 내에서 도움을 줄 만한 고수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 중 황석경과 손을 잡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광섬이 포섭되었으니, 이제 누가 포섭되었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놈과 손을 잡은 자들까지 다 처리하고 싶은데. 어떻게 알아낼지 고민하고 있었소.”
검무극에게는 해결책을 묻고 싶진 않았기에 괴악에게 정중히 물었다.
“선배님께 고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그들을 색출할 방법이 있겠습니까?”
이럴 때 멋진 계획을 말해서 역시 늙은 생강이 맵다는 걸 보여주면 좋겠지만, 괴악은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 쓰는 일은 젊은 사람들이 하시게. 그놈 때려잡을 때는 앞장서겠네.”
괴악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미 산공독은 모두 사라진 후였지만, 그 찝찝한 기분은 남아 있었다. 광섬을 포섭한 그놈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해코지한 자는 백 배의 고통으로 갚아주면서 살아왔으니까.
“제가 좀 더 숙고하겠습니다.”
비사인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음이 불안하고 답답했다. 자신을 죽이려 했다면 맹주님을 암살하려 들 수도 있었다. 물론 자신이 아는 사도맹주는 어떤 암습에도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니지만, 상대 역시 보통 놈들이 아니었으니까.
그때 검무극이 비사인에게 따지듯 물었다.
“왜 내게는 방법을 묻지 않소?”
그야 미안하니까. 조금 전에 목숨 빚을 졌는데, 또 물어보기 면목 없으니까.
“별도 보기 싫고, 구름도 보기 싫은가 보오.”
그에게 끌려가고 싶지 않다는 농담이었다.
“싫으면 마시오. 좋은 생각이 났었는데.”
검무극이 다시 눈을 감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비사인이 아무 말을 묻지 않자 검무극이 다시 눈을 떴다. 여전히 비사인은 말없이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좋은 생각이 났다니까!”
“아까 들었소.”
“안 물을 거요?”
“안 물을 거요.”
“똑똑한 척하고 싶소. 제발 기회를 주시오!”
바깥을 바라보던 비사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검무극은 이런 사람이다. 생색낼 일인데 오히려 자신이 몸을 낮춘다. 비사인은 새삼 느꼈다. 진짜 자존감은 생색내지 않는다는 것을.
“싫소! 당신 똑똑한 척하는 것 보기 싫소.”
“이번 한 번만 들어주시오.”
“좋소. 한 번 들어나 봅시다.”
“지금까지 황석경은 자신과 손을 잡은 자들을 만나지 않고 있었을 거요. 당신이 감시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그렇겠지요.”
그러자 검무극이 뜻밖의 가정을 했다.
“만약 당신이 죽었다면?”
“!”
깜짝 놀란 것은 비사인만이 아니었다. 함께 듣고 있던 괴악도 놀랐다.
비사인은 검무극이 무슨 의도로 말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황석경에게 내가 죽었다고 속이자는 것이오?”
검무극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죽었다고 여기면 놈은 틀림없이 조력자와 접선을 할 거요. 이후 일을 상의해야 할 테니까.”
확실히 그럴듯한 계획이었다. 방해자가 사라지는 순간의 방심을 이용하자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려면 맹주님께 알려야 하지 않겠소?”
“그건 당신이 판단하시오.”
비사인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맹주에게 알린다는 것은 이제부터 맹주가 개입한다는 의미다.
마지막까지 자신이 해결하고 싶었는데.
한데 적이 워낙 강력하니 이제 맹주님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되었음을 느끼기도 했다.
한 가지 걱정은 아무래도 짜고 움직이면 자연스러운 반응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반대로 알리지 않고 이 일을 진행하면 어떻게 될까?
어떤 반응이 나올지 알 수 없었다. 특히 사도맹주가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자신이 죽었는데도 전혀 슬퍼하지 않으면 어쩌지?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가소롭다. 사도맹의 명운이 달린 일임에도, 자신이 상처받을 걱정을 먼저 하게 되는 것이다.
“새 소맹주를 임명해 버릴지도 모르오.”
그럴 리는 없지만, 그럴 수도 있는 사람이 사도맹주였으니까.
“이 기회에 당신 다음은 누군지 확인하시오.”
농담 반 진담 반 검무극의 말에 비사인은 옅게 웃었다.
잠시 숙고하던 비사인이 결론을 내렸다.
“지금부터 맹주님께 알려서 진행하겠소.”
비사인이 그렇게 결정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가 실종되면 일랑이 맹주전으로 불려갈 거요.”
“나에 대해서 말할 거다?”
그러자 비사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반대라서 안 되오. 일랑은 당신에 대해서 절대 말하지 않을 테니까.”
그의 충성심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사도맹주가 물어도 비밀을 지킬 거라는 믿음이.
“그 사람이 맹주님께 거짓말을 하게 할 수는 없소.”
맹주에게 거짓을 고하는 것은 이유 불문하고 중죄였으니까.
검무극이 미소를 지었다.
“수하를 아끼는 마음이 훌륭하시오.”
“괜한 소리 마시고, 부탁 하나만 합시다. 황석경을 감시해 주시오. 내가 할 일이지만 보다시피 죽은 몸이라서요.”
상대의 무공 수위를 생각하면 그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임을 알았기에 검무극에게 부탁했다. 부탁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자신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검무극이었으니까.
“좋소, 그럽시다.”
이렇게 흔쾌히 대답하는 검무극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드냐고?
언젠가 그를 맨 앞자리에 앉히고 춤 한 번 춰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람에게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 * *
―소맹주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사혼의 놀라운 보고에도 투왕은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았다.
―지금 맹주전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개미 떼를 풀었고, 사악대주(邪惡隊主)가 소집되어 들어갔습니다.
개미 떼라고 불리는 혈의군(血蟻軍)은 탐색, 조사에 특화된 사도맹의 정예들이었다.
사악대는 맹주전 직속 조직으로 오직 사도맹주의 명을 따르는 정예들이었다.
―정말 죽은 겁니까?
투왕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놔둬야 죽는다더니, 정말 소맹주가 죽은 것이다.
―대체 어떻게 처리하신 겁니까?
광섬이 산공독을 써서 처리한 일이었다. 실패하고 싶어도 실패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소맹주의 죽음을 극비에 부친 채 내막을 조사하고 있습니다만,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이미 맹주전이 어수선합니다.
광섬은 이번 일을 끝내고 당분간 연락을 끊고 은신하기로 했으니, 아무리 조사해도 일의 내막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진작 사도맹주에게 보고했어야 했는데, 소맹주가 멍청한 선택을 했습니다.
투왕은 사혼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자신이라도 마찬가지로 혼자 처리했을 테니까. 물론 이렇게 죽지는 않았겠지. 어떤 싸움에서도 지지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그가 뵙기를 청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투왕이 고개를 갸웃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당분간은 만나자는 연락이 오지 않을 거로 예상했는데. 신중한 사람이니 분명 보자고 한 이유가 있으리라.
―오늘 밤 보자고 전해라.
―네, 알겠습니다.
소맹주의 죽음으로 상황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 * *
그날 밤 자정 사도맹 본단에서 멀리 떨어진 들판에 투왕이 서 있었다.
사방이 뚫린 그곳은 누군가 숨어서 지켜볼 수 없는 지형이었다.
그는 뒷짐을 지고 밤하늘의 달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곳으로 한 남자가 등장했다. 죽립을 눌러 쓴 남자가 천천히 걸어와서 투왕 옆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주군.”
중년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는 투왕을 주군이라 칭하고 있었는데, 안정적인 목소리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차분한 성격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으니 벗어도 되네.”
“주군의 무공실력은 누구보다 잘 압니다만,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겠지요.”
자신의 실력을 믿지 않는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지만, 투왕은 언짢아하지 않았다. 그만큼 중요한 사람이었으니까.
“무슨 일로 보자고 하셨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드리기 위해섭니다.”
“말씀하시게.”
죽립 남자에게서 놀라운 사실이 흘러나왔다.
“소맹주가 살아있습니다.”
생각지 못한 말에 투왕의 표정이 굳어졌다.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소맹주가 직접 일랑을 통해 맹주께 연락해온 것이니까요.”
놀랍게도 남자는 맹주전의 기밀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투왕은 이 중요한 시점에 왜 자신을 보자고 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광섬이 죽었다는 말인데?’
자신이 아는 광섬이 쉽게 당했을 리 없다. 더구나 산공독까지 쓰기로 했던 그였는데.
“하면 소맹주는 왜 죽은 척한 건가?”
놀랍게도 죽립 사내는 비사인의 의도까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주군의 배후에서 제 존재를 알아내려는 것이겠지요.”
이 모든 결과는 한 가지 사실을 의미했다.
“누군지 몰라도 아주 총명하고 강력한 고수가 소맹주를 돕고 있네.”
그러자 나쁜 소식에 이어 좋은 소식도 전해졌다.
“그자가 누군지 압니다.”
남자는 비로소 자신이 쓰고 있던 죽립을 벗으며 정체를 드러냈다. 그만큼 지금부터 하려는 말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달빛 아래 두 남자의 시선이 마주쳤다. 투왕이 포섭하기 위해 가장 공을 들인 남자.
누구보다 똑똑한 투왕이었다. 하지만 지금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자신보다 훨씬 더 똑똑한 사람이었다.
맹주전의 극비를 어떻게 알고 있을까에 대한 해답은 이 남자의 신분에 있었다.
사도맹 부군사 혁사군(赫師君).
놀랍게도 그는 사도맹의 부군사였던 것이다. 총군사 황서성(黃徐成)이 이 년 전부터 노환을 앓으면서 부군사였던 그가 사도맹의 총군사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병세가 점점 악화되었기에 이제 곧 정식으로 총군사가 될 일만 남은 그였다.
“소맹주를 돕고 있는 그자는…….”
투왕은 오늘 여러 놀라운 말을 들었지만, 이어진 혁사군의 말이 가장 놀라웠다.
“마교 소교주 검무극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혁사군이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사실만은 알지 못했다.
지금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투왕의 무공 경지로도 파악할 수 없는 먼 거리에서 자신의 얼굴을 똑똑히 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 먼 거리에서 검무극은 신안술을 발휘하고 있었다.
남자가 죽립을 벗었을 때, 그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
검무극은 사도맹의 고수들의 용모파기를 모두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이 사람이 투왕과 손을 잡았으리라 생각지 않았다. 그는 사도맹 내의 그 어떤 자보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투왕이 혁사군과 손을 잡았다고?’
그야말로 검무극과 혁사군, 양쪽 모두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