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62)
절대회귀-362화(362/424)
절대회귀 362화
제362회 자식을 이렇게 잘 키웠다고?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검무극이 정중히 인사하고 돌아섰다.
이 도발의 핵심은 돌아서 가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대의를 위해 돌려보내지 않겠지만, 당신은 돌려보내는구나.
검무극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제발 불러라, 어서 불러! 간절한 만큼 걸음에 미련이 없었다.
“잠깐.”
백자강의 부름에 검무극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지어졌다.
검무극이 그를 향해 돌아섰다.
“왜 그러십니까?”
“어딜 가려는 건가?”
“그만 본교로 돌아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백자강의 작은 눈이 옆으로 선을 쭉 그은 것처럼 가늘게 찢어졌다.
이대로 보내면 자존심 때문에 대의를 그르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물론 검무극의 도발인 것도 안다.
문제는 비교의 대상이 천마 검우진이란 사실이었다.
딴 사람에게는 몰라도 검우진에게만은 지고 싶지 않은 그였다. 검우진은 평생의 숙적이었으니까. 인정하면서도 미워하는 애증의 대상이었으니까.
“자네 아버지가 정말 내게 열 번이라도 절을 하라고 했을까?”
자신의 도발을 백자강이 어찌 모르겠는가? 이젠 솔직할 때다. 검무극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제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화를 내셨을 겁니다.”
검무극이 백자강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치사한 방법을 써서.”
검무극은 자신이 일부러 도발했음을 솔직히 시인했다.
“치사한지는 알고 있나?”
“네.”
거기까지 시인하자 백자강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그만큼 절박합니다.”
“절박해도 내가 절박해야지, 자네가 왜 절박해?”
평온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백자강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안가가 뚫리고 후계자가 습격을 당했다. 그리고 그 배후로 맹의 부군사가 지목당한 상태.
절대 이 사안을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 그랬다면 이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다만 마교의 소교주 앞에서 초조함을 보이고 싶지 않았을 뿐.
반면 검무극의 절박함은 지극히 사적이었다.
“소맹주를 진짜 친구로 생각합니다. 그 친구가 무사히 맹주 자리를 물려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백자강은 여전히 귓가에 소름이 돋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많은 상대에게 통하는 감각이었지만, 이렇게 통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신이 점쟁이는 아니었으니까.
이 검무극도 예외로 두어야 할 것이다.
마교 소교주가 진실을 말한다? 그럴 리가 없었으니까.
“왜 사인이와 친구가 되고 싶나?”
검무극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 친구라면 새로운 사도를 열어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어서입니다.”
“새로운 사도? 자네가 말하는 새로운 사도가 뭔가?”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소맹주가 찾아야 할 길이겠지요. 다만 제 마도나, 소맹주의 사도나, 분명 우리 시대에는 새로운 이상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검무극은 안다. 백자강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회귀 전 자신도 그러했다. 새파란 누군가가 이상을 이야기하면, 속으론 지금 백자강과 똑같이 생각했을 거다.
네가 현실을 몰라서 그래.
자신은 그 현실을 끝까지 다 살아보았다. 때론 보잘것없고, 때론 놀랍고 위대했던 그 인생을, 온갖 고통과 풍파를 이겨내며 살아보았다.
물론 그렇다고 정답을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살아보았다고 이번 생을 잘살게 되는 것도 아님을 안다. 백 번을 다시 살게 되더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잘 살 수 없다는 것도. 오히려 살아보았다는 그 사실이 발목을 잡아 인생을 나락으로 내팽개쳐 버리기도 할 거라는 것도.
백자강, 그래서 노력하는 거다. 그냥 두면 너도, 나도 다 죽고 십이지왕이 무림을 지배하는 쓰디쓴 현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저희 아버지 생각하면 어떤 기분이 드십니까?”
확실히 백자강은 아버지가 언급되면 눈이 반짝인다.
“일단 화부터 나고 싸워서 이기고 싶으시죠? 저는 소맹주 생각하면 즐겁습니다. 만나서 웃고 떠들고 놀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듭니다. 저희 무림은 서로 싸우지 않고 미워하지 않을 겁니다. 바닷가에서 소저들 꼬시며 놀 겁니다.”
“치기 어린 이상에 불과하네.”
“왜 그렇습니까?”
“권력을 가진 인간은 결코 거기에 만족하지 않을 테니까. 자네도, 사인이도 다 변할 테니까.”
검무극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기 오기 전에 소맹주와 함께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저 하얀 구름처럼 머리가 셀 때를 떠올렸지요. 정말 우리가 변할까요?”
백자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굳이 그걸 말해야 알겠느냐 하는 표정에 검무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좋게 변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최대한 덜 나쁘게 변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백자강은 가만히 검무극을 응시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릴 듣게 하는 것만으로도 보통 녀석이 아니라는 건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꿈이라.’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꿈꾸는 사람이 어찌 사도를 지배할 수 있겠는가? 눈만 감아도 죽는 곳이 사도이거늘.
문득 저 검무극의 입에서 ‘맹주님 말씀이 옳았습니다. 제 생각은 한낱 치기 어린 이상에 불과했습니다.’란 말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르침을 내리고 싶었다. 검우진의 아들에게.
검무극은 그의 흥미를 붙잡을 것은 이상도 아니고, 우정도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흥미를 잡아끌 가장 강력한 것은 이것이다.
“아버지가 맹주님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과연 백자강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뭐라고 하시던가?”
“실례되는 말이 될 수도 있는데 그대로 옮겨도 되겠습니까?”
“하게.”
잠시 사이를 두고 검무극이 말했다.
“사파 놈 주제에 꿈이 큰 자다.”
이번에도 백자강은 어이없는 웃음을 짓고 말았다. 기분이 나빠야 할 말인데, 자신을 인정해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그래, 검우진이라면. 그라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때 검무극이 불쑥 물었다.
“맹주께서 꾸시는 꿈도 우리 아버지 꿈과 같은 꿈입니까?”
백자강은 순간 움찔했다.
그는 안다. 검우진이 무림일통을 꿈꾸고 있음을. 그에 대해서 비사인에게 경고까지 했었다.
이제 마교 소교주가 묻고 있다.
너도 무림일통을 꿈꾸냐고.
감히 누구도 묻지 않았던 질문이었고, 당연히 대답한 적 없는 내용이었다.
자네 아버지가 꾸는 꿈이 뭔지 몰라서. 이런 뻔한 말은 생략했다.
이 젊은 소교주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확실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생략할 것은 생략해도 말이 통할 사람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으니까.
“만약 그렇다면?”
잠시 사이를 두고 검무극이 차분히 말했다.
“다른 꿈을 꾸시길 부탁드립니다.”
백자강이 분노를 토해내며 버럭 소리쳤다.
“그 꿈, 자네 아버지만 꾸게 하려고?”
강력한 기운이 검무극을 휩쓸었지만, 대성을 이룬 천마호신공은 이전보다 훨씬 편안하게 검무극을 지켜주었다.
“아뇨, 아버지도 깨울 겁니다.”
검무극을 억누르던 기운이 사라지면서 백자강이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이 만난 이후 처음으로 큰 소리로 웃는 순간이었다.
“자넨 나보다도 자네 아버지를 모르는군. 자네 아버지를 깨우려고 몸을 흔드는 순간 자넨 차기 천마가 될 수 없을 거네. 잠결에 자네 머리통을 부숴버릴지도 모르지.”
그게 사도맹주가 보는 아버지의 모습.
검무극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쩌면요.”
백자강은 적어도 한 가지 면에서는 확실히 검무극에게 끌리고 있었다. 시인해야 할 때, 시인하는 모습. 그는 어설프게 똑똑한 사람들이 가지는 괜한 고집이 없다. 그래서 사람 답답하게 만들지 않는다.
거기에 끌리는 점 하나 더, 생각지 못한 말로 잠시도 지겨울 틈이 없게 한다.
“맹주님, 배고픕니다.”
이 역시 사도맹주가 되고 처음 듣는 말이었다. 감히 자신을 보며 배고프다는 말을 한 사람이 어디 있었겠는가?
“저 밥 좀 사주십시오.”
녀석은 잘 안다. 배고프다는 사람 무정하게 돌려보내기 어렵다는걸.
백자강은 다시 검우진을 떠올렸다. 세상 무뚝뚝하고 차가웠던 그의 모습을.
‘그 성격에 용케도 요런 녀석을 키우셨소.’
그래, 보내더라도 밥은 먹여서 보내야지.
백자강이 허공에 말했다.
“마차를 준비하게.”
그러자 호위대주 인궁의 대답이 들려왔다.
“네!”
마차를 기다리는 사이 두 사람은 말없이 저 멀리 산 아래로 흐르는 강물을 쳐다보았다.
“이곳이 마음에 듭니다. 조용하면서도 경관이 아주 좋습니다.”
“은밀히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이곳으로 부른다네.”
검무극이 발아래를 내려다보다 다시 백자강을 쳐다보며 말했다.
“농담 아니시군요.”
“아니지.”
“혹시 저도 죽을 뻔했습니까?”
“아슬아슬했지.”
백자강은 검무극이 좋다기보단 이런 대화가 즐거웠다. 사도맹주가 되고 평생을 경직된 삶을 살아온 그였으니까.
“요즘도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맹주님쯤 되면 더는 죽일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아직도 많네. 나이만큼 울분도 쌓이는 법이니까.”
검무극이 옅게 웃었다.
나도 다 안다는, 그 웃음을 보며 백자강은 내심 생각했다.
‘젊은 녀석이 뭘 안다고.’
그래서 자꾸 파헤쳐 내고 싶어진다. 아무리 영특해봤자 애잖아? 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진다.
“왜? 자네 아버지는 안 죽일 것 같나? 자넨 고상하고 위엄 있는 모습만 보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선 매일 시체가 쌓이고 있을 거네. 정파 놈들이라고 다를까? 마인이라는 죄를 씌우고, 사파라고 낙인찍어서 죽여대고 있겠지.”
이 사람이 이상을 믿지 않는 이유기도 할 것이다. 저 작은 눈에 오직 차가운 현실만 담으려는 이유일 것이다.
“자네의 이상 속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겠지만 말이야.”
“아뇨. 저는 더 많이 죽일 겁니다.”
“!”
백자강이 의아한 눈빛으로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마교 소교주가 무슨 말인가 싶으시겠지만, 저는 인간이길 포기한 것들이 싫습니다. 싹 다 죽일 겁니다.”
마교 소교주가 할 말도 아니고, 사도맹주에게 할 말은 더욱 아니었기에, 검무극은 너스레로 말을 마무리 지었다.
“선이 있으면 악도 존재한다는 말, 아무래도 악 쪽에서 만든 말 같거든요. 어떻게든 버텨보려고요. 혹시 맹주님께서 만드신 말입니까?”
백자강은 느꼈다. 자신이 웃음이 없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네가 만들었냐는 물음에 하마터면 또 웃을 뻔했으니까.
“자네 마도에선 우리가 제일 많이 죽겠군.”
“그러지 않으려고 소맹주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거죠.”
백자강은 이 젊은 소교주가 쉽지 않은 상대라는 것을 실감했다.
문득 비사인이 보고 싶었다.
검우진이 아들을 이렇게 잘 키워놨는데, 자신은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우진에게 자신이 밀린다고 자식까지 밀리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식? 그래, 제자나 자식이나.
자신은 검우진을 넘어설 수 없다는 패배감 때문인지, 아니면 평소에 비사인을 자식처럼 여겨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 그는 자식 농사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 사이 죽립을 눌러쓴 인궁이 모는 마차가 도착했다. 이목을 피하려고 사도맹 마차가 아니라 저잣거리에 흔히 돌아다니는 마차를 끌고 왔다.
두 사람이 마차에 올라탔다. 이 은밀한 행차를 위해 마차 안에도 면사가 달린 죽립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디 가는 겁니까?”
“배고프다면서?”
그렇게 두 사람을 태운 마차가 도착한 곳은 저자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허름한 반점이었다.
“내가 가끔 오는 곳이라네.”
그렇게 두 사람은 그곳에서 식사했다.
검무극은 새삼 이따금 삶이 던져주는 놀라운 경험에 감탄했다. 사도맹 본단 앞에서 사도맹주와 식사라니? 처음 이곳을 향해 출발했을 때, 상상이나 한 일이겠는가?
“저도 본교 앞에 단골집이 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맹주님을 꼭 모시고 싶습니다.”
백자강은 살짝 고개를 끄덕여줬지만 그럴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라 여겼다. 전쟁이라도 나서 마교 본단을 정복했다면 모를까. 그땐 밥이나 넘어가겠나? 마교의 소교주여.
밥을 먹으며 검무극이 혁사군 이야기를 꺼냈다.
“혁사군은 지금껏 누구보다 훌륭한 군사 역할을 해왔을 겁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완벽하고, 또 운도 아주 좋았을 것이고요. 이제부턴 그를 배신자라 생각하고 보십시오. 분명 다른 면이 보일 겁니다.”
괜히 그랬다가 들통날 걱정은 하지 않았다. 백자강이란 사람은 쉽게 자신의 속내를 들키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그는 다른 부분까지 살피고 있었다.
“자네 말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병으로 물러난 총군사도 놈에게 당한 것이겠군.”
“네, 중독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말하지 않았나?”
“어차피 맹주님께서 알아차리실 테니까요.”
백자강은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저 면사 너머에 있는 진짜 얼굴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말이 저렇게나 많은데도 철저히 할 말, 안 할 말 조절하고 있었다.
검무극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는 데에는 그 중심에 검우진이 있었다.
‘자식을 이렇게 잘 키웠다고? 그 냉혹한 남자가?’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적어도 이 싸움에서만큼은 지고 싶지 않은데.
“맹에 오겠다고 한 날이 언제인가?”
“이틀 후입니다.”
“그때 보세.”
백자강은 검무극을 돌려보내려는 마음을 철회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에게 검무극이 말했다.
“가시기 전에 소맹주 야단 좀 쳐주고 가십시오.”
“야단을? 왜?”
“직접 나오지 못해서 많이 죄스러울 겁니다. 맹주님이 야단치셨다는 소릴 들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겠죠.”
백자강은 진심으로 놀랐다.
이런 상황에서 비사인의 마음을 배려한다고? 그것도 저런 놓치기 쉬운 감정을? 이 젊은 녀석이?
왜 현혹이란 말이 나왔는지 이제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익숙해지지 마라.”
백자강의 말에 검무극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인이에게 그렇게 전하면 알 거네.”
아마 과거 비사인과 백자강 사이에 나눴던 대화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검무극과 헤어진 백자강은 마차에 올라탔다. 작은 눈에서 흘러나오는 광채는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 강렬했다.
‘요놈들 봐라!’
‘요놈’에서 추가된 사람은 놀랍게도 검우진이었다.
비록 마음속 혼자만의 싸움이긴 했지만, 이제 이 싸움은 농부들까지 참전해서 이 대 이 싸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