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65)
절대회귀-365화(365/424)
절대회귀 365화
제365회 생각만 해도 화가 나는데.
백자강은 믿을 수 없었다.
‘정말 당대 마교 소교주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진심으로 비사인을 친구로 생각하고, 진심으로 서로 싸우기를 원치 않으며, 진심으로 자신에게 술을 사주고 싶어 한다고?
역대 천마의 후계자 중 최고라고 소문이 자자한 저 검무극이? 소맹주와 일랑까지 현혹해 버린 저 소교주가?
백자강의 눈빛에 담긴 불신을 혁사군이 먼저 읽었다.
‘됐다!’
그는 이 불신을 이렇게 오해해서 해석했다.
어찌 마의나 독왕이 와서 하는 말을 믿겠는가?
‘거절하시오! 어서 안 된다고 하시오!’
혁사군은 내심 조마조마했다. 독왕과 마의 중 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이 함께 와서 살피면 반드시 독을 쓴 것이 들통날 것이다.
‘그땐 나도 어쩔 수 없소. 당신을 위해서라도 거절하시오.’
한편 검무극도 백자강의 눈빛에 담긴 불신을 읽었다. 물론 검무극은 거짓을 감지하는 백자강의 능력을 알지 못했다. 그랬기에 어떻게든 백자강을 설득하려고 애썼다.
―놈들을 궁지로 몰아붙이려고 한 거짓말입니다. 이번만큼은 저를 믿어주십시오. 마의와 독왕을 받아주는 척해주십시오.
이렇게 고백의 전음을 보내지 않더라도 이제 백자강은 검무극을 믿었다.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았으니까.
이윽고 백자강이 입을 열었다. 물론 혁사군이 함께 있는 자리였기에 순순히 허락하지 않았다.
“만약, 두 사람이 와서 확인했는데도 중독된 것이 아니라고 밝혀지면 어떻게 할 건가?”
검무극은 백자강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려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차피 오지 않을 이들이었고, 지금 필요한 것은 혁사군도 납득할 조건을 내거는 일이다.
“강서지역에서 본교의 세력을 반으로 줄이겠습니다.”
강서지역은 천마신교가 사도맹을 상대하는 요충지였다.
“공식 문서로 작성해줄 수 있나?”
“있습니다.”
백자강은 다시 귓가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감각은 너무나 잘 작동하고 있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검무극의 전음이 뒤이어 날아들었다.
―이건 못해 드립니다. 아버지 허락도 없이 그랬다간 그날로 쫓겨날 겁니다! 절 양자로 삼아주시면 모를까요.
백자강은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하여튼 못 말리는 녀석이다. 이런 중대한 순간에 저런 너스레라니.
“좋네. 그럼 두 사람이 도착하면 확인하도록 하지.”
생각지 못한 결정에 혁사군이 불만을 드러냈다.
“설마, 지금 소교주의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백자강은 작은 눈으로 혁사군을 응시했다. 순간 혁사군은 자신이 경솔하게 나섰음을 깨달았다. 어차피 자신의 말이 사실이면 흥분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검무극이 저런 조건을 걸었다면, 군사로서 오히려 이 결정을 반겨야 할 상황이었다. 강서지역에서 천마신교의 세력이 반으로 줄어드는 일은 사도맹에 큰 이익을 안겨줄 일이었으니까.
“맹주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백자강이 검무극에게 물었다.
“그들은 언제 도착하나?”
“십여 일 걸릴 겁니다.”
일부러 최대한 시간을 길게 잡았다. 비사인이 최대한 부상에서 회복해서 이 싸움을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건 자신의 싸움이 아니라 비사인의 싸움이었고, 또 백자강과 사도맹의 싸움이었으니까.
“좋아, 자네는 그때까지 맹에 머물도록 하게.”
검무극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혁사군을 쳐다보았다.
“그 사이 부군사가 총군사를 죽여서 증거를 없앨 수도 있습니다.”
검무극은 제대로 정곡을 찔렀다. 혁사군은 정말 총군사를 어떻게 없애야 의심을 피할 수 있을지를 떠올리고 있었으니까.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요? 총군사는 내게 스승 같은 분이시오.”
“그러니까. 스승 같은 분에게 왜 그러셨소?”
혁사군은 차가운 눈빛으로 검무극을 노려보았다.
그 똑똑한 군사들도 손쉽게 다루곤 했는데, 그들보다 훨씬 젊은 검무극은 이상하게 껄끄럽고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마교 소교주라는 지위에 눌려서?
아니다. 이자는 사람 마음을 갑갑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객잔 점소이로 만나도 주문 한번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이다.
서로를 노려보는 팽팽한 기 싸움을 백자강이 마무리 지었다.
“독왕과 마의가 도착할 때까지 맹 부근에 머물도록 하게.”
“감사합니다, 맹주님.”
혁사군은 흘러가는 판도가 바뀌었음을 느꼈다. 이제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혁 군사는 잠시 남게.”
검무극을 내보내고 혁사군을 남긴다? 마치 혁사군을 믿는 것처럼 보였지만, 반대였다. 이제 적을 안심시키며 다독일 때다.
“어린놈이 객기를 부리는 바람에 우린 큰 이익을 볼 수 있게 되었군.”
검무극을 지칭하는 말이 소교주가 아니라 놈이 되었다.
다시 말해 검무극이 아니라 자신을 믿는다는 의미를 드러내 준 거다.
‘그랬다면 독왕과 마의를 받아들이지 말았어야지.’
혁사군은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사도맹에 대한 걱정처럼 드러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독왕과 마의는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특히 독왕은 이 무림에서 가장 위험한 자입니다. 그자가 본맹에 들어와서 무슨 짓을 하고 돌아갈지 알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맹주님의 안위가 걱정됩니다.”
맹주를 걱정하는 마음을 앞세워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꿔보려 했다.
하지만 백자강이 지금 어떤 마음인지 알 리 없는 그의 헛된 노력이었다.
“그들이 오면 철저히 감시하게.”
진짜 그들이 온다고 했으면 백자강도 못 오게 했을 것이다. 독왕을 사도맹에 들인다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날 이후에는 물 한 잔 마실 때도 마음이 불편할 테니까.
그 점은 혁사군도 생각할 수 있는 점이었다. 그랬기에 백자강은 선수를 쳤다.
“한데 소교주는 왜 저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거지?”
혁사군을 떠보는 날카로운 눈빛이 날아들었다.
정말 자네가 꾸민 일은 아니지?
원래 자신은 이렇게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으니까. 무작정 혁사군을 믿으면 오히려 위화감을 느낄 테니까. 의심을 막아주는 의심이었다.
“시간을 벌려는 것 같습니다.”
“무엇 때문에?”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혁사군이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산전수전 다 겪은 백자강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백자강은 혁사군이 딴생각하지 못하게 정신없이 흔들었다.
이번에는 차가운 사기를 발출하며 검무극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마의와 독왕을 불러 확인한다는 것은 실로 건방진 수작이다. 본맹의 신의를 무시하는 말이지 않나?”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게다가 강서지역 일도 문서로 약속해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든 마음을 바꾸려고 혁사군이 새로운 문제점까지 짚었지만 쉽지 않았다.
“소교주는 자만심 가득한 자네. 자존심 때문에라도 어떻게든 약속은 지킬 거야. 검우진 그 사람이 머리통에서 열불 좀 나겠군.”
혁사군은 한숨을 내쉬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았다.
독왕과 마의가 와서 총군사가 중독으로 인한 병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자신은 끝장이었다. 황석경에게 독을 받아서 하독한 사람이 자신이었으니까.
지금껏 자신의 승승장구를 방해하는 여러 일이 있었다. 앞을 막고, 발을 걸려고 하고. 그때마다 황석경의 도움으로 헤쳐나왔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방해의 크기가 재앙급이다. 지금껏 있었던 나쁜 일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컸으니까.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정중히 인사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뒤에서 백자강이 말했다.
“잘 알아보게. 저 어린놈에게 우리가 농락당해서 되겠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맹주님.”
혁사군은 든든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후 다시 돌아섰다.
‘그 어린놈 때문에 이제 맹주가 죽게 생겼소.’
* * *
그날 밤, 혁사군은 예전 투왕을 만났던 그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 멀리 들판에 황석경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도 그는 먼저 와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황석경은 늦는 법이 없다. 그를 보자 오늘 검무극을 보는 내내 느꼈던 갑갑함이 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앞서 그 갑갑함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본능의 신호였음을. 황석경 정도가 되어야 그 점소이에게 원하는 주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혁사군은 앞뒤 다 자르고 본론부터 말했다.
“소교주가 마의와 독왕을 불렀습니다.”
투왕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대번에 그들이 왜 오는지를 알아차렸다.
“총군사 때문이군.”
“맞습니다. 소교주 놈이 보통내기가 아닙니다.”
투왕은 먼저 혁사군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는 결정을 내린 상황에서도 언제나 군사에게 먼저 물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이곳에 오면서 이미 혁사군은 마음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독왕과 마의를 못 오게 할 방법이 있습니까?”
투왕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마존과 마의를 함부로 죽일 수도 없을뿐더러, 설령 그래야 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상대가 독왕이면 쉽지 않았다. 일격에 죽이지 못하면 이쪽은 몰살이다. 그게 독왕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비록 계획했던 것보다 시기가 많이 당겨졌지만, 이 순간을 위해 우린 많은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까?”
이 결정은 자신과 황석경의 운명을 바꿀 일이었다. 수하들의 운명을 바꿀 것이고, 사도맹의 운명과 나아가 사파 무림을, 그리고 무림 전체의 운명을 바꾸게 될 것이다.
혁사군이 비장한 눈빛으로 물었다.
“준비되셨습니까?”
비장한 혁사군에 비해 투왕은 편안해 보였다. 인생을 싸움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다. 매 순간 지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살아왔기에 언제든지 대답할 수 있었다.
환한 달빛 아래서 투왕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나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네.”
* * *
같은 시각 다른 곳에서도 만남이 이뤄지고 있었다.
검무극은 앞서 사도맹주를 만났던 그 들판에 서 있었다.
그곳으로 백자강이 들어섰다.
“이리로 오실 줄 알았습니다.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내게 거짓말한 건 괜찮네.”
“아뇨, 그 때문이 아닙니다. 제 거짓말 때문에 맹주님이 위험해지셨습니다. 저들은 마의와 독왕이 함께 조사하면 반드시 중독된 사실을 밝혀낼 거로 생각할 겁니다. 결국 두 사람이 도착하기 전에 이번 일을 마무리 지으려 할 겁니다.”
“어떻게 마무리 짓는다는 건가?”
“그냥 달아나지는 않을 테니.”
검무극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될 말이 흘러나왔다.
“맹주님을 죽이려 들 겁니다.”
자신을 죽일 거라는 말에도 백자강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죄를 제게 뒤집어씌우겠지요. 그들은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겁니다.”
검무극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원래라면 몇 년 후, 혹은 십여 년쯤 후에 일어날 일이었을 겁니다. 한데 제자분과 제가 친구가 되면서 시기가 바뀌게 된 거죠.”
원래라면 ‘제가 등장하면서’라고 했어야 할 말이었다. 하지만 검무극은 비사인과 친구가 되면서라고 말했다. 틈이 날 때마다 친분을 과시하려 했다.
무림일통을 꿈꾸는 건 아버지만으로 충분하다. 아버지를 말리는 것만 해도 충분히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자넨 이번 싸움에서 빠지게.”
물론 사도맹의 일이니 맹주의 뜻에 따라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투왕이란 것을 알았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지금 일대일로 붙으면 사도맹주가 투왕을 이길 거로 생각한다.
문제는 투왕은 이기기 위해서라면 무슨 수라도 다 쓸 거라는 점이었다. 투왕은 승리에 집착한 인물이지, 정정당당을 추구하지는 않았으니까.
“절 걱정해주시는 겁니까?”
“자네가 다치면 자네 부친에게 면목이 서지 않을 거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가 경공은 또 제대로 배워서, 달아나는 것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백자강은 검무극이 이번 싸움에 끼려 하는 이유가 있으리라 여겼다.
“왜 이번 싸움에 끼려는 건가?”
검무극은 솔직히 대답했다.
“소맹주 때문입니다. 저보다는 더 이 싸움에 끼고 싶을 겁니다. 부상이 다 낫지 않았으니, 제가 옆을 지켜주겠습니다.”
백자강의 귓가에 소름은 돋지 않았다.
문득 떠올려보았다.
마교주와 사도맹주가 친구인 무림을.
하지만 단 한 장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에게 그런 무림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때 검무극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제 마도나, 소맹주의 사도나, 분명 우리 시대에는 새로운 이상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 우정은 이뤄지지 않을 거네.”
그러자 검무극은 깜짝 놀랄 말을 꺼냈다.
“저는 맹주님과 우리 아버지의 우정도 믿는 사람입니다.”
“뭐? 자네 아버지와?”
이럴 때면 당황스럽다. 천마와 사도맹주의 우정을 이야기하는 저 눈빛은 순박한 꿈이나 꾸는 순진한 더벅머리의 그것이 아니었으니까. 저 똑똑한 능구렁이 같은 녀석이 진심으로 말하고 있으니까.
“우리 아버지와 제대로 말씀 안 나눠보셨잖아요? 제가 볼 땐 두 분이 잘 어울리실 것 같은데.”
“어떻게 죽일지 서로를 노리면서 말이지?”
백자강은 검무극을 만나면 만날수록 호감이 깊어지는 것을 느낀다.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고,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할까 궁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있으면 재미있었다. 지금만 해도 세상의 무인 그 누구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천마와 사도맹주의 우정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녀석의 아버지라면?’
어쩌면? 이라고 생각했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을 가소롭게 쳐다보던 그 검우진의 눈빛은 생각만 해도 화가 나는데, 친구는 무슨!
“소맹주와 함께 싸우도록 해주십시오!”
“좋도록 하게.”
평소 백자강이었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허락이었다. 사도맹의 일 처리를 하는데 누군가를 끼워 넣을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둘의 우정을 인정해주기로 했다.
“곧 깨어질 우정, 지금이라도 만끽하게.”
“감사합니다.”
백자강은 사도맹주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가족도 두지 않은 자신이었다. 그때는 그게 옳다고 믿었는데, 나이를 먹은 지금은 아주 가끔은 다른 인생을 떠올릴 때가 있다.
특히 이번에 검우진의 아들을 보고 있자니 더욱 그런 마음이 든다.
‘사인아, 앞으로 너 고생 좀 해야겠다.’
검우진 아들에게 질 수는 없지 않으냐?
투왕과 혁사군이 바라보던 달을 검무극과 백자강도 함께 올려다보았다.
“이번 일 끝나면 제가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슨 부탁?”
“끝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백자강의 인생에서 감히 누가 있어 나중에 조건을 말하겠다고 했던 사람이 있었겠는가? 그랬기에 이 순간은 여전히 신선했고, 그랬기에 짜증 대신 호기심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놈들은 지금껏 모아둔 전력을 다 쏟아부을 겁니다.”
“날 상대하려면…….”
백자강은 그 작은 눈에 환한 달빛을 가득 담으며 말했다.
“많이 모아뒀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