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68)
절대회귀-368화(368/424)
절대회귀 368화
제368회 주면 곱게, 안 주면 고통스럽게.
백자강은 온몸을 휘몰아치는 투왕의 투기를 느꼈다.
살을 파고들고, 당장 달려 나오라고 잡아 뜯는 이 예리한 투기에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것이었다.
‘제대로 싸워본 놈이다!’
백자강의 가슴이 뜨거워지며 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상대는 확실히 한바탕 다 쓸어버리고 싶은 무인의 원초적인 파괴욕을 자극하는 인물이었다.
투왕이 느끼는 감정은 그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상대의 저 편안한 눈빛과 휴가가 너무 화려하지 않으냐는 한마디 말만으로 온몸의 털이 일제히 섰다.
‘까닥 잘못하면 죽는다!’
가슴 철렁한 이 긴장감이야말로 투왕이 가장 좋아하는 감정이었다.
사도맹주가 시체가 되어 쓰러져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를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온몸이 짜릿해졌다. 평생 다시 없을 기쁨을 줄 것이다. 지금까지 싸워서 이겼던 모든 승리의 기쁨을 다 합친 것보다 더 큰 기쁨이리라.
‘반드시 이긴다.’
두 사람이 만들어낸 뜨거운 투기와 열기가 주위를 휩쓸었다.
휘몰아치는 기운을 느끼며 혁사군이 뒤늦게 마차에서 내렸다. 계획대로 일이 진행 중인데 이상하게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사도맹주의 반응이 평온한 것이야 그럴 수 있었다. 워낙 대단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호위 무인들의 반응이 마음에 걸렸다. 황석경이 길을 막았음에도, 마치 이 순간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그들은 차분하게 투왕을 응시하고 있었다.
혁사군이 모른 척 시치미를 떼며 투왕에게 말했다.
“황 교관, 맹주님이 묻고 있지 않소? 무슨 연유로 감히 맹주님 앞을 막아서는 것이오?”
주군, 드디어 그날이 되었습니다. 부디 대업을 이루시기를!
이윽고 투왕이 투기를 가라앉히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휴가가 화려하다 했소? 괜찮소. 이번 휴가가 끝나면 사도맹에서 가장 화려한 자리로 복귀할 거요.”
상대가 너를 죽이겠다는 명백한 의지를 드러내자 백자강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내 자리는 자네가 생각한 것만큼 그렇게 화려하지 않을 거네.”
“그 공허함은 직접 느껴보겠소.”
투왕이 오른손 주먹을 왼손바닥에 가볍게 쳤다.
파앙!
고막을 터뜨릴 것 같은 큰 파공음을 신호로 숨어 있던 고수들이 몸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등장한 사람은 초승달처럼 휘어진 칼을 찬 중년 고수였다.
신월도(新月刀).
그는 사도칠대고수에 속한 인물이었다. 앞서 비사인을 죽이려 했던 광섬에 이어 또 한 사람의 사도칠대고수가 적으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맹주님.”
신월도가 백자강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잘 지냈나?”
“사도 무림을 잘 이끌어주신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다행이군.”
“일이 이렇게 돼서 미리 사죄드립니다.”
“괜찮네, 그럴 수도 있지.”
백자강은 그가 왜 투왕에게 붙었는지 따져 묻지 않았다. 그를 움직일만한 조건을 제시했겠지.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백자강이었다.
두 번째로 등장한 사람은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늙은이였다. 어찌나 주름이 많은지 백살도 더 되어 보였지만 실제로 그렇게 나이가 많지는 않았다.
청살귀(靑殺鬼).
그는 정사마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전대고수로 정사마 모두에게 공적으로 몰린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그만큼 악명이 높은 악인이었는데, 살아서 오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청살귀의 등장은 신월도의 등장보다 더 놀라운 일이었다. 내공 역시 당대 고수들보다 훨씬 심후했기에 상대하기가 더 까다로운 인물이었기도 했고.
“네가 어렸을 적 본 적이 있는데, 기억하느냐?”
청살귀가 백자강에게 아는 척하며 물었다.
백자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긴, 네가 요만할 때였으니까.”
손바닥을 내려 허리춤 부근에서 꼬마 아이 키를 재는가 싶더니, 그 손바닥이 홱 꺾이며 장력을 발출했다.
쇄애애애애애액!
콰아아앙!
푸른 기운이 넘실대며 날아든 장력을 막은 사람은 호위대주 인궁이었다.
내공에서 밀린 그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고, 다른 호위들이 그 등을 받치며 내공을 지원했다. 뒤에 두 사람이 더 힘을 합치자 비로소 밀려나는 것을 멈췄다.
청살귀가 몇 개 남지 않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구먼.”
인궁과 호위들은 조용히 옆으로 비켜섰다.
그 뒤에 서 있는 백자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새롭게 등장하는 이를 지켜보았다.
이번에는 등이 굽은 추괴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독패자(毒覇者).
그는 한때 독으로 이름을 날렸던 독인이었다. 무림에서 금지된 대량학살독을 사용하는 바람에 공적으로 몰려 사라진 인물인데, 오늘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총군사에게 하독된 독을 제작한 이도 바로 이 독패자였다.
독패자의 등장에 호위대주 인궁의 표정이 굳어졌다. 독패자는 앞서 등장한 어떤 적들보다 위협적인 인물이었으니까.
“피독!”
인궁의 명령에 호위무인들이 일제히 품에서 피독주를 꺼내 물었다.
독패자가 비웃듯 킬킬댔다.
“너희들이 쓰는 그 하찮은 피독주로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느냐?”
피독주도 독성을 막아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난전이 벌어졌을 때 독패자가 기습적으로 하독한다면 자신들의 안위는 둘째치고 맹주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
투왕과 신월도, 청살귀검, 그리고 독패자.
하지만 준비된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오십여 명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싼 그들은 훗날 투왕을 따르던 투랑(鬪狼)이라 불리던 무인들이었다.
그들 역시 지극히 호전적인 이들로 싸우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싸움에 미친 고수들이었다. 앞서 등장한 고수들이 호랑이라면 그들은 사냥개는 되는 자들이었다.
그들을 보면서 혁사군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날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온 이들이었다. 물론 원래라면 더 많은 준비를 했겠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아무리 맹주라도 버티지 못한다.’
팡! 파앙!
다시 주먹과 손바닥을 마주쳐 주위를 환기한 후에 투왕이 모두에게 명령을 내렸다.
“호위들부터 다 죽이고 싸움에 합류한다.”
투랑들까지 모두 일제히 병장기를 뽑아 들며 살기를 내뿜었다.
투왕은 합공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걸 부끄러워하는 사람이었다면 독패자가 이곳에 없었으리라.
백자강은 어제 검무극이 간청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상대는 이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이려 하니,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이기는 것에 의미를 두지 말라는 부탁이었던 거다.
피독주를 문 호위 무인들이 검을 뽑아 들며 백자강의 정면을 제외한 좌우와 뒤쪽을 막아섰다.
적들이 점점 압박해오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멀리서 누군가 소리쳤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멀리서 들려온 외침이 그곳까지 또렷하게 날아들었다.
“거기 왼쪽 여섯 번째 키 크신 분! 암기 내려놓고, 잠깐만 기다리시오!”
눈이 어찌나 좋은지 정말 왼쪽 여섯 번째 투랑은 암기를 꺼내고 있었다. 키도 컸다.
모두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자 저 멀리 한 대의 마차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혁사군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저 잔망스러운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아차린 것이다.
‘소교주!’
과연 마부석에서 마차를 모는 사람은 검무극이었다.
투랑들이 달려들려는 것을 투왕이 손을 들어서 제지했다. 그냥 두고 보라는 명령이었다.
달려온 마차는 백자강 앞에 멈춰 섰다.
“다행히 아직 시작 안 하셨군요.”
신월도와 청살귀검, 독패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투왕을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냐는 무언의 물음에 투왕이 그들에게 말했다.
“저자가 마교 소교주요.”
검무극이 이번 일에 개입했다는 말을 이미 들었는지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새삼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생각보다 어리군.”
검무극은 그들을 알아보았다. 등 굽은 추괴 독인이나 휘어진 칼을 쓰는 고수가 누군지 모를 그가 아니었으니까.
“생각보다 무서운 분들이네요.”
예의를 갖추기는커녕 여유가 지나쳐 장난처럼 보이는 검무극의 태도에 그들은 모두 인상을 굳혔다. 물론 장난은 아직 시작도 안 했음을 그들을 알지 못했다.
마차 문이 열리며 비사인이 먼저 내렸다.
그러자 검무극은 마치 비무대회에 무인을 소개하는 사람처럼 큰소리로 그를 소개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불사신처럼 살아 돌아온 사도맹의 후계자이십니다! 저를 부끄러워하지만 분명 제 친구이기도 합니다!”
이 정도 장난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 비사인이었다
비사인은 곧장 떨리는 목소리로 백자강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사부님.”
제자를 바라보는 사부의 눈빛이 더없이 부드러웠다.
“몸은 괜찮으냐?”
“걱정해주신 덕분에 괜찮습니다.”
펼쳐진 상황을 보니 정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비사인이었다.
다음으로 마차에서 괴악이 내렸다.
“최근 친구의 배신으로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보신 사도칠대고수 괴악님이십니다!”
이 상황에서 저런 말을 한다고? 아, 이놈은 정말 미친놈이다! 괴악 역시 못 들은 척 백자강에게 정중히 포권하며 인사했다.
“잘 지내셨습니까?”
“오랜만이네.”
“소맹주가 맹주님을 위하는 마음이 큽니다.”
이 자리는 소맹주를 위해서 왔다는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비사인은 자신을 위해 이렇게 말해주는 괴악이 고마웠다.
비사인은 검무극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떠올렸다. 그 반만 할 수 있어도, 괴악과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으리라.
다음으로 괴악의 시선이 향한 사람은 신월도였다.
“당신이 왜?”
괴악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도칠대고수 중 무림 일에 가장 관심이 없는 사람이 신월도였다. 그런 그가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소.”
“당신과 싸우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또 몰랐군.”
“사도가 달리 사도겠소.”
“그렇지.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후회 없이 잘 싸워봅시다.”
“그럽시다.”
세 사람의 등장에 가장 놀라고 당황한 사람은 혁사군이었다.
원래 계획은 합공이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뒤로 빠져 물러나는 것이었다.
호위들은 맹주 지키느라 바쁠 거고, 자신을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이다.
한데 이들이 나타나면서 계획에 문제가 생겼다. 물러나거나, 아니면 저쪽 황석경 뒤쪽으로 가야 하는데.
저 검무극이 과연 보내줄까?
반면 투왕은 변수가 발생했음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변수조차 다 때려 부순다, 이것이 그의 마음이었으니까.
“다 죽여라!”
그때 또 다른 이들이 등장했다.
“멈춰라!”
화려한 경공으로 그곳에 내려서는 열세 명의 고수들, 바로 사도십삼랑이었다.
일랑이 투랑들에게 소리쳤다.
“너희들 상대는 이쪽이다.”
비사인이 그들과 시선이 마주쳤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도십삼랑의 눈빛에 뜨거움이 가득했다.
소맹주님을 뵙습니다!
비사인의 눈빛도 함께 뜨거워졌다. 그래, 이 위기를 넘긴다면! 정말 앞으로 잘해 낼 수 있을 자신이 있었다. 그래, 이긴다! 꼭 이긴다!
지원군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또다시 들려온 차가운 한마디.
“나를 모함한 자가 누구인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혹한 분위기의 남자는 바로 극도병단의 단주 번천이었다.
번천 뒤로 사도맹 최정예 극도병단의 정예 무인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감히 맹주님을 시해하려 들다니! 한 놈도 살아나가지 못할 것이다!”
투랑들이 돌아서서 사도십삼랑과 극도병단과 대치했다. 앞서 투왕이 했던 말을 번천이 다시 했다.
“이자들을 모두 해치우고, 맹주님을 돕는다!”
우렁찬 외침에 극도병단의 정예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기세와 사기는 사도맹주 쪽이 더욱 높아졌다.
바로 그때 검무극은 보았다.
독패자가 허리춤에 찬 주머니에 슬그머니 손을 넣으려는 것을.
검무극은 직감했다. 그가 대량살상용 독을 퍼뜨려서 극도병단의 무인들부터 다 없애려 한다는 것을.
독왕과 오랫동안 있었기에 독을 쓰는 사람들의 심리나 움직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이곳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인 독패자만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고.
극도병단의 저 많은 무인이 모두 상급의 피독주를 가졌을 리 없다. 그들이 지닌 중급 피독주로는 독패자의 독을 막을 수 없으리라.
“잠깐만요, 독패자 어르신!”
검무극이 재빨리 소리쳤다.
“싸우기 전에 하나만 물어봅시다.”
주머니로 향하던 독패자의 손이 잠시 멈췄다.
“우리 어르신께서 총군사에게 독을 쓰셨습니까? 사도맹 신의의 눈도 피한 수준 높은 독이라던데요?”
“그래, 노부가 만든 독이다.”
“해약은 있습니까? 본교의 독왕께서 그러더라고요. 진정한 독공의 정수는 하독이 아니라 해독에 있다고요.”
말을 이렇게 하니 없는 해약도 있다고 할 분위기였다.
독패자가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다행히 그는 해약이 있었다.
“여기 있네.”
“저 주십시오.”
“내가 왜 줘야 하나?”
“지금 주면 곱게 죽고, 안 주면 고통스럽게 죽게 될 테니까요.”
독패자가 가소롭다는 조소를 지었다.
“그래, 소문은 들었네. 천방지축 소교주가 중원을 떠들썩하게 한다지?”
독패자가 힐끗 투왕을 쳐다보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마교 소교주를 죽여도 되느냐고 묻는 눈빛이었다. 투왕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마교 소교주는 사도맹주와 싸우다 양패구상한 걸로 처리되어야 했으니까. 독왕의 도움이 있었던 것으로 처리하면 다들 믿을 것이다.
독패자가 주머니를 내밀었다.
“가져갈 자신 있으면 직접 와서 가져가게.”
독패자의 도발에 검무극이 그에게 걸어갔다.
독패자가 어떤 독인인지 잘 알았기에, 호위대주 인궁은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지 않느냐는 표정으로 백자강을 돌아보았다.
백자강은 말없이 검무극을 쳐다보고 있었다. 왜 검무극이 독패자를 상대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해약을 구하기 위해서? 그래 보이지만, 아니었다.
독패자가 가장 위험한 자였으니까. 무사히 돌아가려면, 가장 먼저 죽여야 할 자가 독패자였으니까. 자신도 죽이려면 독패자 먼저 죽여야지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백자강은 어제 검무극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제가 생각하는 명예는 반드시 죽여야 할 자를 죽이는 그 결과에 있습니다.
자넨 진정 죽여야 할 자를 죽이고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겠나?
다른 이들도 긴장된 눈빛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검무극을 잘 아는 비사인부터 괴악이나 사도십삼랑, 그리고 인궁까지. 각기 경험한 바는 달랐지만 검무극의 놀라운 모습을 다들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과연 그 놀라움과 특별함이 독패자에게도 통할까?
검무극은 겁 없이 독패자 앞까지 걸어갔다.
독패자는 이 용기를 만용이라 여겼다.
‘마교 소교주니까 죽이지 못할 거라 믿겠지?’
그렇지 않다면 강호의 그 누구도 독패자인 자신에게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걸어올 수 없을 테니까. 저런 여유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지는 못할 테니까.
‘이 어리석은 마인 놈아, 네 자만이 너를 지옥으로 이끌 것이다.’
검무극이 그의 손에 들린 주머니를 받아들려던 바로 그때.
퍼어억!
두 사람 주위로 독연이 터져나갔다.
“안 돼!”
비사인이 소리쳤다.
달려가서 구하려 했지만 이미 검무극 주위로 독연이 가득 피어오른 상태였다. 설마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할 줄은 몰랐다. 당신이라면 무슨 수가 있었어야지? 터뜨리기 전에 죽일 줄 알았다. 검무극이니까.
바로 그때였다.
푹! 푹!
독연 속에서 검광이 번쩍이며 살이 찢기는 소리가 연속으로 들렸다.
휘이이이잉.
두 사람 주위로 회오리바람이 불면서 주위에 있던 독들을 끌어모았다.
화르르르륵
독연에서 불이 붙으며 타기 시작했다.
불길이 회오리치며 두 사람 주위를 휘감았다. 모두 놀란 얼굴로 이 놀라운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독연은 완전히 불에 타서 바람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 사라졌다.
그곳에 여전히 검무극과 독패자가 서 있었다.
독패자는 여전히 해약 주머니를 앞으로 내민 상태였다.
검무극이 주머니를 들자, 독패자가 뭐라 말을 하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푸아아아악!
목과 심장에서 피를 뿜어내며 독패자가 뒤로 쓰러졌다.
그곳에 있던 모두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독을 모아서 열양지기로 태워 버리는 고절한 수법이라니? 아니, 그 이전에 독패자의 독을 어떻게 견딘 것일까?
검무극이 두꺼비처럼 불룩하게 입안에 물고 있던 피독주를 두 개나 꺼냈다. 피독주가 없어도 되었지만, 모두가 보는 앞에서 굳이 만독불침임을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물고 있었던 거였다.
“천마신교 소교주가 쓰는 극상품 피독주를 무시하면 되겠소? 해약을 줘서 약속대로 곱게 죽여줬소.”
백자강과 투왕은 반신반의했다. 아까 상황에서 독패자는 분명 극상품의 피독주도 통하지 않는 독을 썼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실제로 독패자는 어떤 피독주도 통하지 않는 극독을 썼지만, 이들이 그런 사실을 알 수는 없었다.
어쨌든 사도맹주 쪽 무인들은 한 가지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끔찍한 독이 퍼부어지기 전에 검무극이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줬다는 것을.
검무극이 총군사를 위한 해약을 품에 넣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자, 이제 물고 계신 피독주 빼시고 편하게 싸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