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69)
절대회귀-369화(369/424)
절대회귀 369화
제369회 얼마나 악착같이 주장했으면.
이 순간 가장 감격한 사람은 비사인이었다.
검무극이 독패자를 죽이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사도맹 무인들이 죽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검무극이 무사해서 기뻤다. 마교 소교주가 무사해서 기쁜 날이 올 줄이야.
호위대주 인궁은 피독주를 뱉어내며 백자강을 쳐다보았다.
‘맹주님은 소교주가 해낼 거라 믿으셨군요.’
역시 자신과는 보는 눈이 다르다고 인궁은 감탄했지만, 사실 백자강도 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알 수 없는 기대감은 있었다. 자신에게는 없는 세상을 자꾸만 보여주는 저 소교주가 허망하게 죽지는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기대감 말이다.
사도십삼랑 역시 큰 고마움을 전하며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예전에 석관추와 백망기와의 싸움에서 사도십삼랑은 여럿이 죽고 다쳤으며, 이후 비사인이 후계자가 되는 과정에서 세대교체가 되면서 아무래도 처음 검무극을 만났을 때보다는 전력이 약해졌다. 따라서 독패자의 독이 살포되었다면 그들 역시 피해가 컸을 것이다.
일랑의 시선이 비사인을 향했다. 한때는 그도 검무극을 싫어하고, 비사인과 친해지는 걸 경계했지만 이제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소맹주님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은 비사인 밑에서 점차 성장해 갈 테고, 오늘 싸움에서 살아남는다면 사도맹을 대표하는 무인은 다시 사도십삼랑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일랑의 전음에 비사인도 기쁜 마음으로 답했다.
―일랑께서 와주셔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를 겁니다.
―앞으로도 이 한 몸 다 바쳐서 모시겠습니다.
극도병단의 무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피해가 가장 컸을 이들이었으니까.
거기에 단주 번천은 한 가지 호의를 더 지니고 있었다. 이번에 검무극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죄를 모두 뒤집어썼을 거란 사실을 맹주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검무극에 대한 호의는 더욱 컸다.
사도맹 무인들이 이렇게 놀랐는데 적이라고 놀라지 않았겠는가?
투랑들의 사기가 완전히 꺾였고, 독패자와 함께 등장했던 신월도와 청살귀도 눈빛을 주고받았다.
자신들이 아는 독패자는 산전수전 다 겪은 늙은이다.
‘그런데 이렇게 간단히 죽였다?’
독패자는 자신들도 껄끄럽게 여기는 인물이었다. 이 자리의 누군들 그를 편하게 상대할 수 있겠는가?
신월도와 청살귀가 자연스럽게 투왕을 쳐다보았다.
투왕은 독패자의 죽음에 그 어떤 동요도 드러내지 않았다. 이미 죽은자에 대한 미련은 싸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까.
투왕이 검무극을 차분히 살피고 있었다. 첫 느낌은 독패자가 느낀 감정과 비슷했다. 천마의 혈육에서 오는 자신감이겠거니, 싶은 여유만만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저 여유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님이 밝혀졌으니, 그 이면을 깊게 살폈다.
그러자 투왕은 맡을 수 있었다.
‘피 냄새다.’
투왕의 마음에 전장에 홀로 서 있는 검무극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 자루 검을 늘어뜨린 채 싸움터에 홀로 서 있는 모습이.
자신과 같은 부류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젊음과 장난기로 본연의 모습을 숨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늘 반드시 죽여야 할 자다.’
투왕은 오늘 싸움이 쉽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까?
그러는 사이 검무극은 혁사군에게 다가가 있었다.
혁사군은 독패자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내심 그가 가장 믿고 있었던 사람이 독패자였으니까.
“한데 당신은 왜 아직 여기 있소? 저쪽 편에 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오?”
“또 나를 음해하려는 거요?”
혁사군은 검무극이 자신을 그냥 두고 보지 않으리라 예감하고 있었다.
당장에 자신의 심기부터 건드렸다. 검무극이 극도병단의 단주 번천에게 일러바친 것이다.
“모함한 사람이 바로 이 부 군사입니다.”
“소교주의 말을 믿지 마시오. 모함이니까.”
혁사군은 말을 하고 나서 적절치 못한 대답임을 깨달았다. 번천이 마교와 손잡았다는 증거가 나왔다고 맹주에게 보고했는데, 모함이라는 말을 하다니. 번천에게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그대가 마교와 손을 잡았다는 증거가 나왔소.
이렇게 한 사람 때문에 말실수를 많이 한 적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 이놈 때문이다.’
오랜 계획이 다 무너지고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놈은 이 순간에도 자신을 흔들어대고 있다.
“당신은 두렵지 않소?”
“뭐가 말이오?”
“당신은 저기 저 사람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을 거요. 한데 저 사람이 사도맹주가 되고 나면 당신을 살려두겠소?”
“무슨 말이오? 또 무슨 억지 누명을 씌우려고 이러는 거요?”
“당신이 맹주가 되었다고 칩시다. 그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억지로 올라선 군사를 원하겠소? 아니면 진짜 실력 있는 총군사를 원하겠소?”
“!”
어찌 혁사군이라고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애써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다. 성공에 대한 열망이 높으면 높을수록 걱정을 파묻은 구덩이는 깊었다.
황석경을 믿었다. 그는 맹주, 자신은 총군사. 맹주전 창가에 서서 함께 지난 일을 나누는 빛나는 미래만 꿈꾸었다.
그리고 지금 마음속 깊은 곳에 파묻어둔 그것을 검무극이 파헤쳐버린 것이다. 정말 깊이 파묻어두었다고 생각하는 것일수록, 이렇게 툭 건들면 튀어나온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주군과 내 사이를 이간질하지 마라!’
혁사군은 하마터면 이렇게 말할 뻔했다.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아직은 저기 서 있는 황석경과 한편임을 들켜선 안 될 상황이었으니까.
“맹주님과 나를 이간질하지 마시오.”
이 대답이 제대로 된 대답이었다.
또다시 검무극이 정곡을 찔러왔다.
“당신은 여기서 저기 저 사람이 있는 곳까지 그 불과 이십여 걸음을 가기 위해 자기 자신을 너무 속이고 있소.”
“!”
순간 혁사군은 뭐라 대답하지 못했다.
검무극은 쉴 틈 없이 그를 흔들어댔다. 검무극이 투왕에게 소리쳤다.
“물러가지 않으면 여기 당신 군사 죽일 거요.”
하지만 투왕은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았다.
“보시오, 저 사람 반응을. 이래도 토사구팽이 아니란 거요?”
혁사군은 내심 당황했다. 아까 말한 검무극의 말이 떠올랐다. 억지로 올라선 군사를 원하겠소? 진짜 실력 있는 군사를 원하겠소?
“자, 마지막 수로 뭘 숨겼는지 시원하게 고백하고 다시 이쪽 편에 섭시다.”
그러자 지켜보던 투왕이 나섰다.
“정체를 감추려고 애쓰지 말게. 이미 맹주도 알고 있네. 자넬 조롱하고 있는 거네.”
혁사군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백자강을 쳐다보았다. 황석경이 저런 말을 한다면 당연히 자신에게 반응해야 하는데, 백자강은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것으로 알 수 있었다.
‘정말 알고 있었구나.’
이곳까지 오는 동안 내내 느꼈던 불안감과 위화감의 정체가 확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심지어 왜 배신했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비사인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를 죽이려 했으니, 욕설이라도 퍼부어야 했는데 철저히 무시했다.
번천도 사도십삼랑도 주인의 뜻에 따라 일절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마지막으로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검무극은 마지막 한마디를 해주었다.
“잘 살펴보시오. 저 뒤에 당신을 삶을 커다란 솥이 걸려 있을지도 모르니까.”
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이었다.
투왕이 혁사군에게 말했다.
“이리로 오게.”
이대로 가도 되는 걸까? 누군가 자신을 기습을 해서 죽이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 되었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혁사군이 천천히 투왕쪽으로 걸어갔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신의 배신은 더 극적으로 멋지게 보여주려고 했었는데.
죽어가는 백자강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하려고 했었다.
―내가 그대를 배신했었소.
그럼 맹주는 이렇게 탄식하겠지.
―믿을 수가 없군. 자네가 배신자였다니?
맹주를 죽이는 것은 투왕이겠지만, 마지막 주인공은 자신이 되리란 욕심이 있었다. 몇 번이나 맹주와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한데 너무 시시하게 정체가 밝혀진 채 투왕에게 가고 있었다.
차라리 누군가 욕설이라도 해주기를 바랐지만, 그 누구도 자신을 신경 쓰지 않았다.
미움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무시당하는 것이 더 기분 나쁜 일임을 혁사군은 뼈저리게 느꼈다.
최악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투왕이었다.
투왕은 그에게 의미 있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그동안 고생 많았네, 이제 새로운 역사가 열릴 거네. 자네 덕분에 여기까지 왔네.
혁사군은 이런 한마디 치하를 간절히 기대했다. 이 철저한 무시를 다 날려버릴 것은 오직 투왕의 한마디뿐이었으니까.
“뒤에 가 있게.”
하지만 이 한 마디가 전부였다.
투왕의 시선은 다시 백자강을 향했다.
혁사군은 느꼈다. 이 순간의 자신은 싸움에 방해가 되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투왕을 이해하면서도 섭섭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혁사군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며 뒤로 걸어갔다. 마음속에 걸린 솥에서 물이 끓기 시작했다.
투왕이 백자강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아셨소?”
“며칠 됐네.”
“증거가 없었을 텐데.”
백자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검무극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마지막 순간까지도 혁사군이 자신을 배신했을 거라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감히 어떤 자들이 군사를 포섭해서 총군사로 만들고, 소맹주를 죽이고 사도맹주 자리까지 노린다고 생각하겠는가?
백자강의 시선이 검무극을 향했다.
“악착같이 주장했네. 얼마나 악착같았으면 본맹 부군사가 아니라 마교 소교주 말을 믿었겠나?”
악착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매력적이란 말로 바꿔야 할 것이다. 검무극과 함께 있는 순간이 신선하고 재미있었으니까. 그랬기에 결국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 순간 검무극이 너스레를 빠뜨릴 리가 있겠는가?
“아! 정말 피눈물 나는 노력이 있었지요. 마교 소교주도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당신은 받으라는 신입은 안 받고 여기서 뭐 하시오? 새출발시키는 게 지겨워져서 직접 새 출발 하려는 거요?”
저런 말에 속는 것임을 투왕은 느꼈다. 상대는 피를 뒤집어쓴 채 전장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그걸 보지 못했기에 독패자가 죽은 것이고.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그곳에 괴악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입으로 나눌 대화는 어느 정도 하신 듯하니.”
괴악이 한 사람을 지목했다.
“당신 나 좀 봅시다.”
상대는 바로 사도칠대고수인 신월도였다.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되도록 먼저 싸우는 것이 여러모로 격조 있을 거요.”
시간이 지날수록 싸움은 난전이 벌어질 거란 의미였다. 그때 싸우지 말고 지금 싸우자는 제안을 신월이 받아들였다.
“맞는 말씀이시오.”
두 사람이 나서자 대치하고 있던 무인들도 뒤로 물러나면서 자연스럽게 두 사람이 싸울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사도칠대고수의 싸움이었기에 모두 숨을 죽였다.
비사인은 괴악이 걱정되었다. 아직 몸이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로 자신을 위해 오늘 이 자리에 온 것이었으니까.
―선배님, 조심하십시오.
비사인의 걱정에 괴악은 등을 돌린 채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신월도가 초승달처럼 휘어진 칼을 뽑아 들었다. 날카로운 예기를 뿜어내며 선공을 가했다.
하늘에 떠 있을 때 아름다운 초승달은 땅으로 내려오자 흉포해졌다.
쉭쉭쉭쉭쉭쉬이이익!
순식간에 수십 가닥의 도선이 그어졌고, 괴악은 생사를 가르는 선들 사이에서 길을 찾았다. 체술인 참격철인을 익힌 그였기에 가까이 붙어야 했다.
서로의 실력을 익히 잘 알았기에 싸움은 순식간에 격렬해졌다. 도기가 날아들었고, 온몸에서 날아간 강기가 주위를 휩쓸었다.
콰콰콰쾅!
지켜보는 것도 위험천만했다. 그들은 주위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싸웠다.
지켜보던 이들이 검기를 발출해서 뒤로 흘러나온 도기를 막았고, 때론 몸을 날려서 피했다.
쇄애애애애액!
반월 모양의 도기가 연속해서 발출되었다. 스치기만 해도 뼈와 살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그런 강력한 공격이었다.
이번에는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미처 피하지 못한 투랑이 도기에 휩쓸려 날아갔다.
지켜보던 이들이 뒤로 물러났다. 상대적으로 무공이 약한 이들은 더 멀어졌다.
그 난리 속에서 백자강과 투왕은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그들은 싸움은 쳐다보지 않았다. 오직 상대의 두 눈만 응시했다. 도기가 얼굴 옆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들은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고요했다. 마치 다른 공간에 서 있는 것처럼.
백자강은 상대가 독패자를 데려온 걸 알고 난 순간부터 무인으로 보지 않고 살수로 생각했다. 오직 이기는 것만이 중요한 자라면, 그에 걸맞게 상대해 줄 생각이다. 상대는 언제든 이 싸움에 뛰어들어 합공을 가할 자다.
‘어디 한번 움직여 봐라.’
이렇게 백자강이 강력하게 그를 견제해 주었기에 검무극은 두 사람의 싸움을 편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들의 싸움에 자신을 대입했다. 신월도가 되기도 했고, 괴악이 되기도 했다.
신월도가 익힌 무공은 도법이고 자신은 검법이지만, 괴악은 체술이고 자신은 권법이지만, 검무극은 그들의 움직임에 자신의 무공을 완벽하게 대입했다. 나라면 이렇게, 나였다면 또 이렇게.
사도칠대고수의 생사혈전을 지켜보며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은 검무극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한순간의 실수가 패배로 이어지는, 그들은 정말이지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진 사람은 정말 억울할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유일하게 다른 점은 두 사람이 싸움에 임한 이유뿐이었다.
그리고 괴악 쪽 이유가 더 특별하고 강했던 모양이다.
번쩍이는 도광 사이를 뚫고 괴악의 팔꿈치가 신월도의 어깨를 강타했다.
찰나의 휘청임. 그걸로 끝이었다. 이런 기회를 놓치는 사람이었다면 괴악은 사도칠대고수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테니까.
퍼어억! 꽈직.
괴악이 자신의 등과 어깨로 신월도의 가슴을 강타했다. 뒤로 밀려나며 피를 토해내는 순간, 어느새 괴악은 마혈을 제압한 후 그의 목을 뒤에서 팔로 휘감았다.
“남기실 말이 있소?”
“기분 더럽소.”
“더럽게 살다 더럽게 가는 것이 우리네 사도 아니겠소?”
꽈득!
신월도의 목뼈가 직각으로 부러지며 그대로 즉사했다.
괴악이 천천히 돌아서 걸어왔다. 모두들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내공을 무리하게 사용하면서 괴악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비사인이 달려 나가 그를 맞이했다.
“괜찮으십니까?”
괴악이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싸움도 나쁘지 않았네.”
평생 자신을 위해서만 싸웠는데,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싸웠다는 의미였다.
“전 이 순간을 잊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비사인은 검무극이었고, 괴악은 극악소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