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73)
절대회귀-373화(373/424)
절대회귀 373화
제373회 뜨겁고 차갑고 외로운.
불멸신갑은 지금까지 잘리지 않는 것으로 그 이름을 지켜왔다.
하지만 사도맹주의 검에 안 잘린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투왕은 잠시나마 마음에 떠오른 의구심을 애써 지워 버렸다.
“불멸이 달리 불멸이겠소?”
그러자 백자강이 되물었다.
“이 세상에 불멸이 있다고 믿나? 불멸하기를 바라는 인간의 마음만 있겠지.”
사랑, 꿈, 희망.
백자강은 절대 그런 것들을 믿지 않았다. 그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이렇게 냉철한 당신이 소교주는 왜 믿는 거요?”
백자강은 알 수 있었다. 투왕이 어떻게든 자신의 마음에 의혹을 심어 마음을 흔들려 한다는 것을. 자신과 투왕의 싸움에서는 티끌만큼의 집중력도 흐트러져선 안 되었으니까.
“나는 소교주를 믿지 않네. 소교주를 믿는 건 내 제자지.”
“당신 제자는 마교 소교주에게 속고 있소.”
투왕의 시선이 검무극을 향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흑백으로 보였는데, 그의 두 눈만은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흑백의 몸과 붉은 눈, 그랬기에 검무극은 악귀처럼 보였다.
“저 젊은 소교주의 눈빛을 보시오. 저 눈에 깃든 야욕과 열망이 보이시오?”
다른 말이었다면 무시했겠지만, 검무극을 언급했기에 백자강은 투왕의 질문에 대답했다.
“자네 눈에는 뜨거운 열기가 보이나 보군. 내 눈에는 얼어붙은 설원의 한기만 느껴지는데.”
투왕은 뜨거움을 보고 있었고 사도맹주는 차가움을 보고 있었다.
검무극이 그들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잘들 보셨습니다. 제가 왼쪽 눈은 뜨겁고, 오른쪽 눈은 차갑습니다.”
그러면서 옆에 선 비사인을 쳐다보며 웃었다. 이 긴박함 속에서의 여유는 사도맹주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다.
비사인은 솔직히 검무극에게서 열기나 한기를 느끼지 못했다. 자신이 느끼는 것은 어떻게 하면 실없는 소릴 할까, 하는 저 장난기 가득한 눈빛뿐.
하지만 이 장난기 가득한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
검무극이 비사인에게 물었다.
“설마 당신 눈에도 뭐가 보이시오?”
비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히 대답했다.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전할 수 없는 말이었다.
“외로워 보이오.”
처음에는 못 느꼈는데, 이제는 느낀다. 검무극이 외로운 사람이란 것을. 그건 아마도 자신 역시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일 거다.
“역시 친구가 제일 잘 보는구려. 오죽 외로우면 마교 소교주가 사도맹 소맹주에게 와서 친구 하자고 할까?”
“당신의 외로움이 이상한 결말로 이어지진 않았으면 좋겠소.”
“우리 결말은 늙어 죽을 때까지 낄낄거리며 웃고 노는 거요.”
두 사람의 대화에 투왕이 끼어들며 차갑게 말했다.
“그것이 뜨겁든 차갑든, 내 눈에는 욕심이 보인다. 그대 욕심이 내 욕심보다 작다고 자신할 수 있나?”
“적어도 당신처럼 남의 걸 뺏고자 하는 욕심은 아니오. 그냥 개인적인 용무가 있다고 해둡시다.”
하지만 그 용무가 내 인생을 집어삼키게 두진 않을 것이다. 내가 뜨겁게도 살고, 차갑게도 사는 건 오직 화무기를 죽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내 인생을 위해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서다.
이 싸움이 끝나면 투왕은 깨끗하게 잊고 돌아가서 내 사람들을 만날 거다. 안절부절못하며 또 뭐가 올까, 누가 나올까 걱정하고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화무기를 죽이고 나서도 소교주의 삶을 계속 살아갈 것이고, 천마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그 과정에서는 또 무슨 일들이 있을지, 천마가 되고 난 후에도 또 어떤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한 악인에게 모든 걸 다 쏟아붓는 인생은 회귀 전 한 번이면 족하다.
마존과 밥을 먹다가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한 후에 화무기를 죽이고 올 것이다. 아버지와 사냥하다 잠깐 호랑이 대신 죽이러 갈 것이다.
어딜 다녀왔느냐고 묻는다면, 잠깐 볼일 좀 보고 왔다고 웃으며 대답해야지.
그게 이번 생의 내 인생이 되기를. 그런 인생을 만들기 위해서 죽을 만큼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검무극의 마음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했다. 그 마음은 그저 뜨겁고 차갑고 외로운 느낌으로만 전해졌을 뿐.
“그 개인적인 용무가 당신 제자를 현혹하는 거면 어쩔 거요?”
마지막까지 투왕은 백자강의 심기를 건드리려고 했다.
백자강이 힐끗 비사인을 쳐다보던 바로 그 순간.
쇄애애애액!
투왕의 손바닥에서 기습적으로 장력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백자강은 몸을 틀어서 날아든 공격을 피했다. 얼굴 앞으로 장력이 스쳐 지나갔음에도 백자강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백자강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그 보의 아래에 있는 자네의 욕심뿐일 거네.”
백자강은 검강이 흐르는 검을 투왕에게 겨누었다.
“보여주지 않아도 되네. 내가 직접 그 보의를 찢고,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겠네.”
말이 끝나는 순간, 푸르른 검강이 허공에 뿌려지며 투왕을 향해 날아갔다.
맞받아치는 투왕의 양 주먹에 붉은 강기가 서렸다. 투왕의 주먹에서도 엄청난 강기가 발출되었다.
강기와 강기가 부딪치는 폭음과 함께 두 개의 서로 다른 색이 뒤섞였다. 허공을 수놓으며 화려하게 번지는 붉고 푸른 강기는 마치 화공의 붓끝에서 만들어지는 예술처럼 느껴졌다.
푸아아아앙!
일차 충돌에서 갈라진 푸른 빛무리들이 수십 가닥 뻗어 나왔다. 파괴되어 비산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일제히 방향을 틀어 투왕을 향해 날아갔다.
생각지 못한 공격이기에 투왕은 미처 피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호신강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불멸이 있으니 버틸 수 있다!’
수십 가닥으로 분리되어 날아가던 강기가 투왕 앞에서 하나로 합쳐지면서 새로운 모양을 만들었다. 푸른 강기가 만들어낸 것은 늑대였다.
순간 검무극은 알 수 있었다. 그 늑대 형상이 사도맹 맹주전의 그 늑대와 똑같다는 것을. 사도를 지키는 외로운 늑대, 청랑이었다.
패왕진천검법 제사식 청랑식(靑狼式).
귀를 찢는 늑대울음과 함께 거대한 늑대가 그대로 투왕을 집어삼켰다.
그렇게 강기가 투왕을 강타하던 그 순간 사도맹 무인들은 일제히 탄성을 내질렀다. 청랑의 울음과 함께 주위로 퍼져나온 기도에 그들은 온몸을 전율했다. 온몸의 털이 일제히 곤두섰고, 고함을 지르고 싶은 열망을 느꼈다. 실전에서 처음 본 맹주의 강력한 사기였다.
퍼퍼퍼퍼퍽!
투왕에게서 뭔가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가라앉는 흙먼지 너머로 투왕의 모습이 보였다.
앞으로 두 손을 교차해 채 강기를 막은 투왕의 입에선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뚜두두둑.
불멸신갑이 잘려 나가며 투왕의 몸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불멸신갑과 투왕의 호신강기를 모두 뚫어버린 백자강의 한 수였다.
투왕은 놀란 눈으로 잘린 불멸신갑을 내려다보았다. 사도맹주가 했던 말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이 세상에 불멸이 있다고 믿나?
불멸신갑이 이 지경이었으니 팔목과 정강이를 보호하는 쌍혼은 아예 너덜너덜 찢겨나간 상태였다.
물론, 그나마 그것들이 있기에 투왕은 서 있을 수 있었다.
투왕이 이를 악물었다.
한 수 정도 밀린다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명백한 두 수였고, 아직 숨겨둔 수를 생각하면 세 수, 네 수까지 밀릴 수도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하구나.’
검무극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도맹주가 무림일통의 꿈을 꾸는 이유기도 했다.
아버지와 사도맹주, 그리고 역대 무림맹주 중 가장 패도적이라는 진패천까지.
한 시대에 패웅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모였다. 어쩌면 화무기의 탄생은 이 세 사람이 끌어낸 필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자강이 불멸신갑 뒤로 흘러내리는 피를 보며 나직이 말했다.
“자네의 욕심이 눈물을 흘리고 있군.”
후회인가, 두려움인가를 묻는 그 작은 눈에서 뻗어 나오는 기세에 투왕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백자강이 투왕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강기가 충돌하면서 폭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호신갑들이 손상을 입자, 투왕에게 더욱 큰 충격이 가해졌다.
하지만 투왕은 물러서지 않았다.
내공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그의 두 눈에서 붉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투왕이 쇄도해서 주먹을 날렸다.
파파파파파파파파팍!
연환풍운권 제삼식 섬전난무(閃電亂舞).
빛처럼 빠른 수십 개의 주먹이 허공을 수놓았다.
그 주먹을 백자강은 모두 피해내고 있었다. 너무나 빨라서 지켜보는 이들은 어떤 주먹을 어떻게 피했는지 알아보지 못했다.
오직 검무극만이 두 사람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보았다.
“아!”
절로 감탄이 나왔다. 투왕의 한 수는 정말 대단했다. 적이 아니었다면 찬사를 보낼 수였다.
그리고 그 찬사를 모두 피해내는 사도맹주에게는 경외를 느꼈다.
투왕의 공격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섬권난무와 이어지는 연환초식이 발휘되었다.
연환풍운권 제사식 적쇄금령(赤鎖禁令).
섬전난무의 마지막 주먹이 쫙 펼쳐졌다. 투왕의 손바닥에서 쇠사슬 모양의 붉은 강기가 발출되었다.
촤르르르르륵!
쇠사슬은 순식간에 백자강을 휘감았다.
‘됐다!’
아무리 사도맹주라 하더라도, 적쇄금령에 걸리면 자신의 다음 수가 들어갈 때까지 꼼짝하지 못할 것이다.
연환풍운권 제오식 풍운개벽(風雲開闢)!
쉬이이익.
필살의 의지가 담긴 투왕의 일격이 백자강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호신강기가 상대적으로 약한 얼굴에 풍운개벽이 박힌다면!
‘끝이다.’
바로 그때 투왕은 보았다. 쇠사슬에 묶인 백자강의 손에 검이 들리지 않았음을.
“!”
다음 순간!
푸욱!
허공에서 소리 없이 내리꽂힌 백자강의 검이 위에서 자신의 어깨를 뚫으며 박혔다.
패왕진천 제육식 무영식(無影式)이 발휘된 것이다.
검은 투왕의 뼈와 살을 뚫었다.
“으아아악!”
투왕의 진기가 끊어지자.
파파파파팡!
연속된 굉음과 함께 백자강을 옥죄었던 적쇄금령이 산산조각이 나며 사라졌다.
푸아아악!
그의 어깨에 박혀 있던 검이 저절로 뽑혀 나와 백자강의 손으로 날아갔다.
투왕의 어깨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투왕이 서둘러 혈도를 눌러 지혈했지만, 상처가 깊었다. 멀쩡한 몸으로도 상대할 수 없는데, 이제 더는 버티지 못할 상황이었다.
투왕이 선택한 것은 도주였다.
그가 필사적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큰 부상에도 그는 무서운 속도로 내달렸다.
백자강은 더 빠르게 그를 따라붙었다.
퍼어억!
백자강은 필사적으로 달아나던 투왕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꽝!
큰 충격으로 바닥을 굴렀지만, 투왕은 다시 벌떡 일어나서 달리기 시작했다. 구경하던 이들도 두 사람을 따라 움직였다. 그들은 순식간에 수십 장을 이동했다.
비사인은 혁사군의 마혈을 제압해서 옆구리에 거칠게 끼고 함께 움직였다.
주인은 달아나고, 자신은 비참하게 끌려가고.
하지만 원망이 가득해야 할 그의 두 눈에서 아직 희망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다시 백자강이 날린 강기가 투왕의 등을 적중했다.
퍼억!
투왕이 그대로 바닥에 꼬꾸라졌다.
더는 달아나는 것을 포기한 채 투왕이 앉은 채 숨을 헐떡였다.
“털끝 하나 다치지 않기로 약속을 해서. 이 싸움은 여기까지 하지.”
백자강이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던 절체절명의 순간!
오히려 투왕은 웃었다.
“그렇다면…… 당신이 졌소.”
투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던 바로 그때.
사방에서 백여 명의 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까지 달아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곳에 숨겨둔 마지막 한 수를 위해서.
선두에 선 사람은 투왕의 수족인 사혼이었다.
그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이었다.
채 열 살이 안 된 아이도 있고 열 서넛이 넘은 아이도 있었다. 많으면 열일곱, 여덟쯤 되어 보이는 아이도 있었다.
검무극은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바로 앞서 납치되었던 아이들이란 것을.
아이들은 눈에 총기가 없었다. 뭔가 특별한 방법으로 세뇌한 것이다.
아이들의 가슴에 이상한 가방이 매달려 있었다.
그들이 사방으로 동시에 날아올랐다. 동시에 아이들의 가슴에 매달린 가방이 터지면서 백색 가루가 사방으로 날아갔다.
퍼어억! 퍼어억! 퍼억! 퍼억!
가방 하나에서 터져 나온 가루의 양이 보통이 아니었다. 한데 장장 백여 개의 가방에서 동시에 터졌으니 주위는 순식간에 가루로 뒤덮였다.
“황천(黃泉)이다.”
황천은 대량살상용 독으로 무림에서 가장 엄격하게 금지하는 독이었다. 이 독을 뿜어내는 가방은 죽은 독패자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걸 투왕은 아이들에게 착용하게 했다. 마교의 독왕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계획한 일이었다.
처음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일격에 쓸어버리지 못하게 아이들을 이용했다. 투왕은 이기기 위해서라면 아이들이 아니라, 아기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사도맹 무인들이 일제히 피독주를 꺼내 물었다.
“피독주로는 막을 수 없다.”
앞서 독패자의 독은 검무극이 회오리를 일으켜 태워 버렸지만, 지금은 불가항력이었다. 너무 많은 양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가서 검무극조차 이 엄청난 독을 어쩌지 못했다.
비사인은 몸을 날려서 맹주부터 보호하려 했다.
“어서 피하십시오.”
하지만 이미 사도맹주도 독에 노출된 상태였다.
“마교의 독왕이 그댈 죽인 게 될 거요!”
해약을 미리 복용한 사람은 이곳에 오직 세 사람, 투왕과 혁사군, 그리고 사혼이었다. 혁사군은 투왕이 사도맹주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었다.
투왕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중독된 사도맹주의 공격은 어떻게든 달아나면서 버틸 수 있을 거다. 시간은 자신의 편이었으니까.
이렇게라도 이기면 되는 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승리하는 것,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승리를 거머쥐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투왕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의 눈에 사혼이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이 들어왔다. 투왕도 함께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들도 그대로 서 있었고 독에 노출된 사도맹 무인들도 쓰러지지 않았다. 벌써 다 죽었어야 했는데.
뒤늦게 사도십삼랑과 극도병단의 무인들이 멍하게 서 있는 아이들의 마혈부터 제압했다.
투왕은 한 번도 제대로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던 그였는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그는 놀라고 당황했다.
‘왜?’
아무도 쓰러지지 않는 거지?
놀라기는 백자강을 비롯해 이곳에 있던 모든 사도맹 무인도 마찬가지였다. 황천이 얼마나 지독한 독인지는 다들 잘 알았으니까. 영문을 모르기는 검무극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주위를 둘러보던 검무극의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그의 시선이 고정되자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검무극을 따라갔다.
한 사람이 거목의 나뭇가지에 서서 팔짱을 낀 채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리고 잘생긴 미소년이었다. 그는 허리춤에 십이지간 동물이 그려진 열두 개의 주머니를 차고 있었다.
“독왕님!”
검무극의 놀란 외침에 남자의 입가에 한줄기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독왕이었다. 마의와 독왕이 온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진짜 독왕이 이곳에 등장한 것이다.
불어온 바람에 옷자락을 펄럭이며 마치 천신이 강림하듯 독왕이 천천히 허공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