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81)
절대회귀-381화(381/424)
v
절대회귀 381화
제381회 내게 혈천도마는.
“……그렇게 되어서 이번 회합에 무림맹주도 초대했습니다.”
교로 돌아오자마자 아버지에게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오늘 자리에는 총군사 사마명도 함께였다. 어차피 회합 일정과 호위 문제를 조율할 책임자가 그였기 때문이다.
무림맹주까지 초대했다는 말에 아버지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셨고, 사마명은 말없이 나를 응시하기만 했다.
“우리 군사님께서는 이렇게 될 줄 예상하셨죠?”
그럼요, 당연히 예상했습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역사의 흐름입니다. 이게 내가 기대한 말이었는데.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주점 주인을 구하겠다고 갑자기 출교한 소교주님이 사도맹주를 본교로 초대한 일 말씀이십니까? 아니면 무림맹주에게 양해를 구하러 가셨다가 무림맹주까지 초대한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러고 보니 조춘배 부부 구하러 나갔다가 여기까지 왔구나. 의식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면 이 모든 일은 조춘배의 운명이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죄송합니다. 안 그래도 바쁜 분이신데, 큰일을 안겨드렸습니다.”
“큰일인지는 알고 계십니까?”
일을 저지른 사람이 소교주가 아니고, 또 이 자리가 아버지와 함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면, 지금 무슨 일을 벌였는지 아느냐며 호통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소교주께서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셨습니다.”
“칭찬이시죠?”
사마명의 표정이 말했다. 칭찬이겠습니까! 물론, 아버지 앞이었으니 마음과는 다른 말이 나왔다.
“칭찬이죠.”
그는 ‘다만……’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잔소리를 쏟아붓고 싶은 표정이었다.
사마명을 이해했다. 평생을 군사로 살아온 그는 변수와 변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이번 일은 그의 군사 생활 중 가장 큰 사건일 테니까.
“준비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특히 삼자회담이 처음인 만큼 여러 혼란도 예상되고요. 그중에 가장 큰 문제는 호위 문제입니다. 무림맹이나 사도맹 측에서는 최대한 많은 고수를 데려오려 할 겁니다.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고가 터질 확률은 높아지겠지요. 발 한 번 잘못 밟았다가 전쟁이 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최소한의 호위만 거느리고 오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사전 조율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양쪽 군사들과 신경전을 벌여야 할 사람이 바로 사마명 본인이었다. 그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어쩌겠나? 운명이 우릴 이렇게 이끌었는데.
사마명에게서 시선을 돌려 말없이 내려다보고 계시는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회귀 전이었다면 저 눈빛에 덜덜 떨었을 것이다. 얼굴을 마주 보지도 못했을 거다. 그랬기에 아버지와의 관계는 나아가기는커녕 뒷걸음질만 쳤던 거였고.
아버지는 별생각 없이 날 보고 계시는 거다. 사고나 치는 저놈을 어쩌나, 쯧쯧 하시겠지. 괜히 여기서 더 나아가 내게 실망하지 않으셨을까, 날 소교주로 삼은 것을 후회하지 않으실까, 혹시 형 생각을 하실까?
혼자 펼치는 상상의 나래는 오해란 놈이 그 날개를 모두 찢어버린다는 것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화 많이 나셨습니까?”
“당연히! 누구 마음대로 삼자회담이냐? 군사는 당장 무림맹과 사도맹에 연락해서 취소한다고 전하게!”
아버지의 말소리가 교주전을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에는 짜증이나 분노는 담겨 있지 않았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사마명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 대신 화를 내주시고 있음을. 그건 나를 위한 호통이기도 했다.
“안 됩니다, 아버지!”
“안 되긴!”
사마명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고정하십시오, 교주님. 이미 소교주가 약속하고 왔으니 이번 일은 이대로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마명의 위신도 세워주고 그가 내 편을 들어줄 기회도 주는 것이다.
“군사님, 감사합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소교주께는 이미 군사가 있어서요.”
내 군사로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지, 딱 그런 표정으로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뒤끝 있는 우리 총군사님이시다.
“너무 하십니다!”
이렇게 사마명이 농담을 해줘서 분위기는 다소 풀어졌다.
나는 다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과연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두 맹주를 보고 싶어 할까? 이렇게 열심히 봐도, 참 알기 어려운 아버지다.
어쨌든 사고 친 건 친 거고. 아버지께 꼭 드릴 말씀이 있었다.
“이번 회합은 세 분의 회합이지만, 우리 세 사람에겐 큰 영향을 끼칠 겁니다. 우리가 어디서 배우겠습니까? 인생에서 단 한 번 있을, 교주와 맹주들의 만남이니까요.”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했던 그 말을 전했다.
“아버지 믿고 저질렀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입가에 그 특유의 비웃음이 지어졌다. 오랜만에 봐도 잘 어울리십니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돌아서 나오는데 뒤통수가 뜨겁다.
그러게 왜 무림일통을 꿈꾸십니까? 저는 끝까지 막을 겁니다, 아버지.
참, 뒤통수를 달구는 시선은 둘이 아니고 셋이겠지?
천마전을 나서기 전에 허공에 소리쳤다.
“휘 아저씨! 죄송합니다.”
호위인 휘에게 미안함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삼자회담에 신경이 곤두설 또 한 사람이 그였으니까.
* * *
“어르신!”
교주전을 나온 후, 곧바로 향한 곳은 혈천도마가 있는 남도종이었다.
정말 헤어진 가족을 상봉하듯 혈천도마의 거처로 달려갔다. 지난번에 권마만 보고 다시 출교했기에, 혈천도마와는 오랜만의 상봉이었다.
마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천천히 걸어가서 창으로 집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뜻밖의 광경.
혈천도마는 침상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아직 주무실 시간이 아닌데.’
그냥 돌아서려다가 흠칫했다. 혈천도마가 낮잠이라니?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다시 돌아서 조심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라도 깨울까 봐 기척 없이 걸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침상에서 책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 앞에 서서 혈천도마가 새로 산 책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나 걱정돼서 들어온 것 아니었냐?”
돌아보니 혈천도마가 눈을 뜬 채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닌데요?”
아니긴. 순간적으로 얼마나 놀랐는지 그는 모를 것이다. 방에 들어섰을 때 혈천도마가 숨을 죽이는 기운을 느꼈기에, 슬쩍 방향을 틀었던 것이다.
“숨소리 확인하러 다가오면 확 놀라게 하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제가 숨소리 확인을 왜 합니까? 어르신이 어디 침상에서 돌아가실 분이십니까? 전장에서 화려하게 싸우다 멸천대도에 기댄 채 가시겠지요.”
“이놈아! 늙은이에게 죽는다는 말을 그리 쉽게 하느냐?”
하지만 말과는 달리 입가에 감출 수 없는 미소가 지어졌다. 그가 꿈꾸는 마지막이기도 했으니까.
“한데 평생 안 주무시던 낮잠을 주무십니까?”
“가끔 잔다. 너도 나이 먹어 봐라.”
기분 탓일까? 평소 꼬장꼬장하던 목소리보다 힘이 빠져 있었다.
“나갔던 일은 잘하고 왔느냐?”
“저 사고 쳤어요.”
“그렇게 싸돌아다니는데 사고 안 치는 게 이상하지. 무슨 사고?”
아직 이번 일은 아버지와 사마명만 알 뿐,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극비였다.
“사도맹주를 풍류주점에 초대했습니다.”
그러니 그가 얼마나 놀랐겠는가?
“누굴 초대했다고?”
“사도맹주요.”
“내가 아는 그 사도맹주? 백자강?”
“아십니까?”
“알지.”
참 발도 넓고 아는 사람도 많은 그였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 의심 많은 사람이 네 초대를 받아들였다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혈천도마가 옆에 놓인 다탁에서 식은 차를 부어 마셨다.
“한 명 더 초대했습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혈천도마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사도맹주를 초대했는데 감히 누가 문제를 일으키겠느냐? 무림맹주만 아니면 되지.”
잠시 흐르는 정적.
흠칫한 혈천도마가 검무극을 쳐다보며 눈을 껌벅였다.
“아니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혈천도마는 다시 물었다.
“아니잖아?”
“…….”
“설마?”
“왜 아니겠어요?”
그러면서 짐짓 머리를 감싸며 괴로운 시늉을 했다.
“저도 제가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너스레를 떨었지만, 혈천도마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날 향한 그의 눈빛이 깊었다.
“무림맹주까지 초대에 응했다고? 대체 어떻게? 아무리 너라도 그렇지.”
“저 때문에 초대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세 분이 한 번쯤은 서로를 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거죠. 그렇지 않으면 이번 일이 이뤄졌겠습니까?”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던 혈천도마가 차가운 기세를 드러내며 말했다.
“두 맹주가 본교로 온다? 이거 한 번에 양쪽을 정리할 기회군.”
마치 자기 생각인 양 말한 후 혈천도마가 재빨리 덧붙였다.
“교주가 이렇게 생각하면 어쩌려고?”
혈천도마는 아버지가 그런 생각을 품을 수도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으실 겁니다.”
“어떻게 확신하느냐?”
솔직히 확신까진 못 한다. 그냥 아버지를 믿는 거지.
“아들이 초대한 손님이니까요.”
“아들보다 대업을 더 중요시한다면?”
“그땐 어르신이 말려주십시오. 오직 어르신만 말릴 수 있을 겁니다.”
우린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때 그곳으로 서대룡이 들어왔다.
“어? 소교주님!”
나를 본 서대룡이 반갑게 다가왔다.
“언제 오셨습니까?”
“오늘. 뭐야? 눈빛이 달라졌는데?”
못 본 사이에 서대룡의 무공에 큰 성취가 있었음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꾸준히 조금씩 실력이 늘었다면, 오늘 보니 확 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밝혀지는 놀라운 사실.
“어제 사부님께서 제 임독양맥을 타통시켜 주셨습니다.”
검무극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혈천도마는 장난을 친 게 아니라, 진짜 피곤해서 낮잠을 자고 있었던 것임을.
서대룡 손에 약재가 들려 있었다. 마의에게 가서 몸을 보하는 약을 지어온 모양이다.
“제가 몸 좀 살펴보겠습니다.”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라고 묻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았기에 혈천도마는 자신의 손목을 잡고 한줄기 내력을 밀어 넣는 것을 뿌리치지 않았다.
“괜찮다, 나는.”
다행히 괜찮았다. 워낙 무공이 강하고 내공이 심후했기에 선천진기를 쓰지 않고서도 임독양맥을 타통한 것이다.
임독양맥 타통.
일반 고수가 절세고수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 수제자로 삼았으니 언젠가는 서대룡에게 해주겠거니 생각했었는데 그날이 벌써 온 것이다. 그만큼 서대룡이 열심히 수련했기 때문이리라.
검무극이 혈천도마 대신 생색을 내주었다.
“알고는 있지? 임독양맥 타통은 워낙 위험해서 혈육에게나 해주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 됐다.”
서대룡의 눈빛이 뜨거웠다. 서대룡 성격에 얼마나 고마워했을지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전 달여온 약을 데워오겠습니다. 마의께서 그러시는데 이 약이 제일 효과가 좋다고 했습니다.”
서대룡에게 혈천도마가 잔소리를 했다.
“이놈아, 월봉 얼마나 한다고 약을 사 와?”
“저 이래 봬도 황천각주입니다. 돈 많이 법니다.”
서대룡이 약을 데우려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감격한 눈빛으로 혈천도마를 쳐다보자 그는 괜히 목청을 높였다.
“녀석을 위해 해준 게 아니다. 내 제자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이제 내 제자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전 어르신이 최고로 좋습니다.”
괜히 이런 분위기가 어색한 혈천도마는 다시 침상에 누웠다.
“됐고. 나는 더 자련다.”
그런다고 그냥 갈 내가 아니다. 침상 끝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사실 큰소리는 쳤지만, 저라고 걱정이 안 되겠습니까? 제가 생각한 회합이 아니라 정말 위험한 상황이 펼쳐지면 어쩌나. 정말 아버지가 양손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통을 들고 나를 보며 웃으시면 어쩌나.”
“하소연을 왜 내게 하느냐?”
“그럼 이런 말을 누구에게 합니까?”
“가면쟁이에게 가서 해. 술쟁이나 독쟁이에게 가든지.”
나는 못 들은 척 말을 이었다.
“어디 아버지만 겁이 났겠습니까? 어르신이 싫어하시지는 않을까? 혹 알고 보면 어르신이 사도맹주나 무림맹주와 제가 모르는 은원이 있는 건 아닐까? 막상 만나면 참지 못하고 죽이려 들지나 않을까?”
혈천도마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그 정도 은원이면 벌써 찾아갔겠지.”
“그렇겠죠?”
“혹시 모르지. 마존 중 누군가 꾹 참고 있던 감정을 그날 터뜨려 버릴지도.”
“안 됩니다, 안 돼요!”
짐짓 괴로워하고 있는데 서대룡이 약을 데워서 들어왔다.
“사부님, 약 드십시오!”
“그 약 내가 먹어야겠다. 불안해서 내가 먼저 죽겠다.”
약을 가로채려 하자, 서대룡이 보법으로 빠져나갔다.
“이건 사부님 겁니다!”
“언제부터 어르신을 이렇게까지 챙겼다고? 서 각주, 나야, 나! 전임 황천각주이자 천마신교 소교주! 자네가 오른팔이 되어 모시는 사람!”
“사부님이 이 약 다 드실 때까지는 외팔이십니다!”
서대룡이 공손히 혈천도마에게 약을 바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회귀 전 삶에서는 말 한 번 나누지 않았던 두 사람이었는데.
지금 모습 위로 처음 만났을 때 그 우울한 표정으로 내 집무실로 들어오던 서대룡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술에 취해 혈천도마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던 모습이 그 위로 또 겹쳐졌다. 대도를 선물 받고 기뻐하던 모습도.
그리고 이 모습 위로는 또 어떤 모습이 겹쳐질까? 그 모든 모습이 겹쳐진 마지막에는 어떤 그림이 되어 남을까?
약을 마신 혈천도마가 다시 눕자 나와 서대룡은 조용히 방을 나섰다.
그때 혈천도마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다 잘 될 거다.”
묵직하면서도 차분한 그 한마디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정말 편안해졌다.
회귀했어도, 아무리 완벽해 보이고 아무리 노력하는 삶을 살아도, 나도 이런 한 마디가 필요한 사람이다. 잘하고 있다고, 잘 될 거라고. 내게 혈천도마는 이런 사람이다.
“서 조사관, 오늘 우리 어르신이랑 같이 자자.”
“좋습니다.”
분위기에 휩쓸린 서대룡은 겁도 없었다.
그러자 혈천도마가 번쩍 눈을 뜨며 소리쳤다.
“누구 마음대로! 가! 잠은 집에 가서 가!”
혈천도마의 외침을 들으니 이제 비로소 집으로 돌아왔음을 느꼈다. 누군가 어떻게 그 험한 길을 갈 수 있었냐고 묻는다면, 돌아올 곳이 있었기 때문이라 대답하리라.
“가라고, 이놈들아!”
순순히 말을 들을 것 같았으면 애초에 말을 꺼내지도 않았지.
난 신난 얼굴로 후다닥 달려 나가며 소리쳤다.
“잠옷 챙겨 올게요! 가자, 오른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