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82)
절대회귀-382화(382/424)
절대회귀 382화
제382회 소마님 얼굴이 크다는.
남이 들으면 믿지 못하겠지만 우린 정말 잠옷을 챙겨서 돌아왔다.
“우리 이래도 되나요?”
“당연히 되지!”
“생각해보니 제가 급히 처리해야 할 황천각 일이 남았네요.”
뒤늦게 정신을 차린 서대룡은 한밤의 모험에서 탈주하려 했지만, 순순히 보내줄 내가 아니었다.
“우리가 언제 또 이래 보겠어? 그리고 잘 생각해봐. 말씀은 가라고 하셨지만 진심이시겠어? 이놈들이 왜 안 올까? 녀석들과 놀면 젊어지는 것 같고, 이렇게나 행복한데.”
그러시겠죠? 서대룡은 반신반의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사부를 그렇게 무서워하는 그가 오늘 무리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제가 임독양맥을 타통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서대룡은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사부에 대한 고마움과 걱정, 임독양맥을 타통했다는 설렘, 오랜만에 나를 본 반가움, 이 모든 게 뒤섞여서 흥분한 상태였다. 오늘 사고를 쳐도 제대로 칠 것 같은 그런 기분.
그렇게 다시 혈천도마의 거처에 돌아왔을 때, 그는 잠이 들어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잠이 들었다. 침상에 누워 곤히 잠든 그를 창가에 서서 지켜보다가 우린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푹 주무세요, 어르신.’
서대룡과 함께 천마신교 내원을 함께 걸었다.
“오랜만이네요. 소교주님과 이렇게 걷는 것.”
“우리 서 각주님이 바쁘셔서 그렇지.”
“얼굴이나 보여주시고 그런 말씀 하세요.”
내가 멋쩍게 웃었고, 서대룡이 따라 웃었다.
“시간 참 잘 가네요. 하루하루 힘들다가도, 돌아서면 며칠이 지나있고, 또 어느새 한 달이 지나있고. 원래 이런 건가요?”
무심코 물어놓고 서대룡이 고개를 내저었다.
“제가 나이가 많은데, 세월 가는 걸 소교주님에게 묻고 있네요.”
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젊은 네 세월은 아직 제 속도의 반의반도 안 내고 있다고. 아직 쾌속보 삼 성밖에 안 된다고. 세월이 대성을 이루면 기억을 모두 휩쓸며 저 멀리 달려가 버린다고.
그런 의미에서 값진 시간을 보내볼까?
“우리 극악소마님께 갈까?”
서대룡은 ‘어이쿠’하며 비명을 내뱉었다.
“차라리 제가 밉다고 하세요. 차라리 비무를 해서 두들겨 패십시오!”
“소마님이 그렇게 무섭냐?”
“그럼 안 무서워요?”
“예전에 함께 지냈던 적도 있었잖아.”
야율한의 수하들을 상대할 때 일이었다.
독왕과 자신이 작전을 펼칠 때, 서대룡은 극악소마와 잠시 지낸 적이 있었다. 직접 저잣거리에서 반찬과 요리 재료를 사서 극악소마에게 밥도 해주었고.
“그때 친해졌잖아?”
“친해지긴요. 눈도 못 마주쳤었다고요! 소교주님 언제 오시나, 언제 오시나. 얼마나 애가 탔었는데요.”
“이야기 나눠보면 좋은 분이란 걸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무서운 분이면 내가 이렇게나 좋아하겠어?”
서대룡이 살짝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한 십 년쯤 지나서 오늘을 떠올린다고 생각해봐. 아, 그때 소교주님과 함께 극악소마님께 갔으면 얼마나 즐거웠을까? 그땐 뭘 그리 망설이고 겁을 냈을까?”
말을 마치고 돌아보니 서대룡은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임독양맥을 타통한 그는 예전보다 더 빠르게 달렸다.
그래, 그리 쉬우면 어찌 극악소마겠는가?
“침상은 옮겨주고 가!”
저 멀리서 서대룡이 멈춰 섰다.
“침상요? 무슨 침상요?”
“넌 안 가 봐서 모르겠지만, 소마님 거처에는 아무것도 없다. 거기서 자려면 침상 가져가야 해.”
서대룡이 눈을 껌벅였다.
“그래서 악인곡으로 침상을 가져가신다고요?”
“이 밤에 찾아가면서 침상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잖아? 그렇다고 맨바닥에서 잘 수도 없고. 내 침상에서 편히 자고 싶어.”
“그렇다고 정말 침상을 가져가요?”
정말 가져갔다.
내 거처에서 있던 침상을 서대룡과 함께 가져갔다. 내가 앞을 잡고 서대룡이 뒤를 잡고.
경계를 서던 마인들이 놀란 눈으로 우릴 쳐다보았다. 침상 위에는 잘 개어진 깨끗한 침구와 잠옷까지 올려져 있었으니, 시선을 더욱 끌었다.
“이건 혼자서도 옮기실 수 있잖아요?
“무거워.”
“무겁긴요. 허공섭물로 둥둥 띄워서 옮기실 수도 있는 분이. 그냥 제가 들고 옮기겠습니다.”
“황천각주에게 그런 일을 시킬 수는 없지.”
“이게 더 부끄럽다고요! 어쨌든 저는 옮겨만 드리고 바로 갈 겁니다. 분명히 말씀드렸어요! 나중에 딴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그렇게 악인곡 입구에 도착했을 때, 서대룡이 예전 일을 떠올렸다.
“생각나십니까? 소교주님이 처음 극악소마님을 만나러 오셨을 때, 제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억나지. 여차하면 나 구하러 뛰어들려고 칼까지 가져왔었지.”
“그랬었는데 이젠 소마님의 거처까지 들어가는군요.”
“칼은 가져왔지?”
“제발 그런 농담은 말아주십시오. 그러시지 않아도 지금 심장이 터질 것 같으니까요.”
서대룡은 몇 번이나 심호흡하며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떨지 마. 자네도 마존이 될 사람이잖아?”
“그런 말씀 하시면 더 떨려요! 제가 마존이 된다는 사실이 아직도 세상에서 제일 놀랍고 떨리는 일이거든요. 아직도 가끔 악몽 꿉니다. 한없이 우울하고 교에 불만만 가득하던 황천각 조사관으로 사는 꿈을요. 소교주님 처음 만나러 들어갔을 때 다른 사람이 제 앞에 앉아 있는 꿈을요.”
“그래도 바뀌었을 거야.”
“네?”
“자네 운명은 나 때문에 바뀐 게 아니라 스스로 바꾼 거니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서대룡은 아무 말이 없었다.
드디어 악인곡으로 들어섰다.
입구를 지키던 무면객은 물론이고 지나가던 무면객들도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다들 우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어요. 저기 노란 줄무늬 가면은 방금 웃었어요.
―없애버릴까?
―없애야 할 사람이 계속 늘고 있어요.
그렇게 극악소마의 거처에 도착했다.
* * *
“소마님, 오늘 하루 신세 지러 왔습니다!”
경쾌하게 들어서는 검무극을 보며 뻥 뚫린 백색 가면의 구멍 속에서 극악소마의 두 눈이 웃고 있었다.
세상에 누가 있어 그에게 와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싶다고 말할까? 누가 있어 침상에 잠옷까지 들고 찾아오겠는가?
“집에서 쫓겨나신 겁니까?”
“요즘 큰 사고를 쳐서 거의 쫓겨나기 직전입니다.”
“소교주님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그러다간 소마님도 함께 쫓겨날 텐데요?”
극악소마가 소리 내서 웃었다. 오랜만에 듣는 극악소마의 웃음이었다.
“가면이 바뀌셨네요.”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청면이 떠나고 새롭게 가면을 만드는 무면객이 생긴 모양이다.
“가면은 더 편합니까?”
“청면에게 전해주십시오. 네가 만든 것보다 훨씬 더 편하다고요.”
“꼭 전하겠습니다.”
그게 청면에게 극악소마의 그리움을 전하는 것일 테니까.
이번에는 서대룡이 정중히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서대룡은 내심 놀랐다.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정말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을 줄은 몰랐다. 정말 먼지 한 톨 없었다. 아, 눈에 띄는 게 있긴 있었다. 벽에 그어진 기다란 줄이 눈에 들어왔다. 가로줄과 세로줄. 이 깔끔한 방에 왜 저건 그대로 두었을까?
“눈빛이 더 좋아지셨소.”
극악소마가 더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이런 말을 하니, 서대룡은 헷갈렸다.
‘칭찬이지? 이거 칭찬 맞지?’
얼마나 극악소마가 무서웠으면 ‘너 눈빛 좋으니 한 번 붙자’는 말처럼 들렸다.
“최근에 사부께서 큰 가르침을 내려주셨습니다. 그 덕분입니다.”
극악소마는 말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일 뿐이었다.
검무극이 극악소마에게 물었다.
“침상은 어디에 두면 될까요?”
“편하신 대로.”
“그럼 이쪽에 두겠습니다.”
한쪽 벽에 침상을 놓았다. 극악소마의 빈방에 처음으로 가구가 놓이는 순간이었다.
왜 침상을 가져왔느냐고? 이제 극악소마가 침상에서 잠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벽이 하얀 것은 그가 익힌 무공심법과 관련이 있었지만, 그가 앉아서 잠을 청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
회귀 전 극악소마는 자신과 친구가 되기를 바랐다. 언젠가 그가 했던 말이 있었다.
―극악이란 이름을 단 자가 편히 잘 수는 없지 않겠나? 내가 가진 최소한이자 유일한 양심이지.
당시에는 자신과 친해지고 싶어서 내뱉었던 허세라고 여겼다. 따로 화려한 잠방이 있겠거니 했다.
회귀 후 극악소마와 새롭게 관계를 맺어가면서 그 말이 진심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때는 말해주지 못했다. 아니, 진심인 줄 알았더라도 하지 않았을 거다. 당시에는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으니까.
이제 그에게 말해줄 때가 되었다.
‘이제 편히 주무시오.’
그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앞으로도 다른 삶을 살아갈 터이니.
그랬기에 오늘의 침상은 극악소마와의 관계를 또 한 단계 발전시키려는 첫걸음이었다.
“아예 이쪽 벽면을 제게 빌려주실 수 있습니까? 매번 옮기기 귀찮을 것 같아서.”
극악소마는 잠시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이 갑작스러운 요구에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감사합니다. 다음에 올 때는 침상 옆에 둘 다탁을 가져올 겁니다. 또 여긴 갈아입을 옷을 넣어둘 작은 옷장을 하나 두고요. 이쪽 벽은 이제 제겁니다.”
서대룡은 놀란 마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예 살림을 옮긴다고요? 여기 극악소마님 방에다가요?’
원래는 작별을 고하고 가려고 했는데, 검무극이 왜 이러나 궁금증이 들었다.
서대룡이 극악소마에게 말했다.
“소교주님의 횡포라고 여겨지시면 황천각에 신고하십시오. 즉시 조사하겠습니다.”
서대룡 일생일대 회심의 농담이었는데.
그가 얼마나 용기를 냈을지 알았기에 검무극은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정색했다.
극악소마는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말없이 그를 응시했다.
‘방금 내가 뭐라고 한 거지? 극악소마에게 농담을 해? 서대룡, 너 미쳤어?’
서대룡의 전음이 검무극에게 날아들었다.
―살려주세요! 제발 수습해 주세요!
물론 이 재미난 상황을 도와줄 리 없는 검무극이었다.
―임독양맥이 타통되면서 배짱까지 커진 모양이다. 차기 황천각주는 또 누굴 세우나?
그렇게 서대룡의 당황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극악소마가 말했다.
“괜찮을 거요. 가구들도 다 흰색으로 칠할 거라서.”
무덤덤한 대답에 서대룡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이 방에는 흰색이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 말과 함께 서둘러 작별을 고하려는 그 순간.
극악소마가 서대룡에게 다가왔다.
‘왜 오는 거야? 그 농담, 결국 용서할 수 없었나?’
움찔하던 서대룡 옆에 극악소마가 섰다.
“가구 배치상 옷장은 이쪽으로 놓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럴까요?”
극악소마가 옆에 서 있을 뿐이었는데 서대룡은 숨이 막혔다.
‘소교주님은 이렇게 무서운 사람하고 어찌 이렇게 친해질 수 있었을까?’
소교주와 마존들의 사이를 보면 감탄을 넘어 경외스럽기까지 하다.
서대룡이 슬쩍 옆으로 한 걸음 옮겼다. 마음 같아선 저 반대쪽으로 가고 싶었는데, 감히 그럴 수는 없었다.
‘미쳤지, 내가 여길 왜 와서는.’
솔직히 고백하건대 반은 호기심이었다. 과연 극악소마의 거처는 어떨까? 나머지 반을 채운 것은 허세와 허풍이었다.
황천각주에 임독양맥까지 타통했으니, 이제 한 번쯤 와 봐도 되잖아?
되긴 뭐가 돼? 왜 지옥을 제 발로 들어오느냐고!
그렇게 작별 인사를 할 기회를 엿보던 그때.
극악소마가 힐끗 서대룡을 쳐다보았다. 분명 눈구멍 속 두 눈은 웃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게 너무 무서웠다.
어쨌든 눈이 마주쳤을 이때가 기회였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 말을 꺼내려던 바로 그때, 극악소마가 먼저 말했다.
“그땐 신세가 많았소.”
“네?”
벌써 잊었소? 하는 눈빛에 서대룡은 머릿속이 하얘지며 말문이 막혔다.
“입이 짧은 내게 밥해 먹이느라 고생했다는 말이오.”
예전에 밥해 먹일 때의 일이다. 극악소마 없을 때 입이 짧으신 것 같다는 농담을 했다가 들켜서, 그때도 혼이 났던 순간을 말한 것이다. 그걸 또 기억하고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마땅히 제가 해야 할 일이었지요.”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이제 작별 인사를 꺼내려는데, 이번에는 검무극이 출교해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이걸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앞서는 혈천도마의 침상에 걸터앉아서 말해주었는데, 이제는 자신이 가져온 침상에 걸터앉아서 말했다.
사도맹에 잠입했던 자를 어떻게 죽였고, 그리고 어떻게 사도맹주를 초대하게 되었으며, 또 어떻게 무림맹주까지 초대하게 되었는지를.
서대룡은 앞서 들었던 내용도 있었고 약 데운다고 자세히 못 들은 내용도 있었다. 듣다 보니 흥미로워서 가야 한다는 생각도 잊은 채 검무극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대화 중에 잠깐 여유가 났을 때 서대룡은 전음을 보내 물었다.
―한데 왜 이렇게까지 자세히 다 말해주시는 겁니까?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물어본 건데, 정말 이유가 있었다.
―그래야 나중에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알아서 대처하실 수 있을 테니까. 정보가 힘이다.
혈천도마에게도, 극악소마에게도 수다를 떨고 싶어서 상세히 말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일어날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이렇게 다 말해주는 것이었다.
암튼 이야기는 잘 들었고. 이제 두 번이나 들었으니 절대 더 들을 일 없다.
“저는…….”
이만 물러가겠다는 말을 꺼내려던 그때 이번에는 극악소마가 무공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그 이야기가 끝나자 검무극이 천화루주 안부를 물었다.
극악소마를 사랑하는 여인 여정이 중원에 기루 사업을 확대해가는 이야기는 ‘그대는 이만 가시오’라고 할까 봐 두려울 정도로 재미있었다.
그러다 무림 정세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다.
서대룡은 처음 알았다. 극악소마가 생각보다 각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지녔고 대화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결국 악인곡 가면에 관한 이야기가 다시 나왔을 때 서대룡의 참지 못했다. 검무극의 너스레에 단련된 자신이 아닌가? 머리와 가슴은 참았는데, 입은 참지 못했다.
“제가 또 보기보단 두상이 작고 얼굴도 작아서, 가면이 잘 어울리죠.”
극악소마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옆에 검무극이 괜히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아뇨, 그렇다고 소마님 얼굴이 크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건 아니야! 검무극이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극악소마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서대룡 쪽으로 다가왔다.
‘아까 갔어야 했는데.’
서대룡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극악소마가 서대룡을 지나서 밖으로 나가더니 곧이어 다시 들어왔다.
그의 손에 백색 가면이 들려 있었다. 이번에 새로 만든 신품 가면이었다.
“써보시오.”
서대룡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가면이 안 맞으면, 가면 밖으로 나온 부분은 이 손으로 다 뜯어내 버리겠다! 이건가?
다행히 가면은 맞았다. 살짝 끼었지만 억지로 맞는 척했다.
“딱 맞습니다!”
“선물이오.”
“감사합니다.”
서대룡은 얼떨떨했다. 극악소마가 가면을 선물로 줄지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새벽까지 둘의 대화를 듣다가 서대룡은 깜박 잠이 들었다.
설마 극악소마의 방에서 내가 자겠느냐 싶었는데. 바닥에 앉아 침상에 등을 기댄 채 깜박 잠이 든 것이다.
잠에서 깨었을 때 검무극과 극악소마는 창가에 나란히 서서 희미하게 밝아오는 여명을 쳐다보고 있었다.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말없이 함께 서 있을 뿐이었는데.
앞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그 모습보다, 말없이 한 방향을 바라보고 서 있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서대룡의 마음에 각인되듯 남았다.
그때 극악소마가 뒤를 돌아보았다.
놀란 서대룡은 눈을 감고 잠든 척했다.
‘가야 하는데. 제발 가야 하는데.’
그렇게 잠든 척하고 있다가 서대룡은 정말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눈앞에 극악소마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고함을 지를 뻔했다. 필사적으로 고함을 참고 주위를 돌아보니 검무극은 어느새 가고 없었다.
그래, 그 사람은 악마다.
재미를 위해서라면 자신을 지옥에 남겨두고 떠나는 악마. 그래, 애초에 이 백색 지옥으로 누가 끌고 왔겠는가?
극악소마가 무뚝뚝하게 물었다.
“대체 언제 갈 거요?”
서대룡은 선물로 받은 가면을 손에 꼭 쥔 채 밤새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을 비로소 꺼냈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