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84)
절대회귀-384화(384/424)
제384회 비법 재료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조춘배는 근래 기분이 아주 좋았다.
인생에서 최고로 값진 휴가를 보냈고, 멋진 사위 노릇도 했다.
정말 더 바랄 게 없었다.
바로 저 사람 때문에.
“주인장, 잘 지내셨소?”
자신은 마교 소교주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해 주는 인생을 살고 있다.
“소교주님, 이렇게 이른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주인장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소.”
“들어가시죠.”
조춘배가 검무극을 안으로 모셨다.
검무극이 풍류주점 안을 둘러보았다. 오랜만에 왔는데도 변함이 없었다.
“역시! 들어서자마자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검무극이 이 층 항상 앉는 자리에 앉았다.
“주인장도 앉으시오.”
조춘배는 내심 긴장하며 마주 앉았다.
‘무슨 할 말이 있으셔서 이러시는 걸까?’
검무극이 그에게 회담 날짜가 적힌 종이를 건네주었다.
“이날 하루 풍류주점을 통째로 빌려야 할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이지요.”
가족과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검무극이었다. 하루가 아니라 한 달을 빌려도 좋았다. 주점을 가지겠다고 한들 못 주겠는가?
“한데 누가 오시는데 이렇게?”
지금까지는 그냥 다들 불쑥불쑥 찾아왔다. 천마도 불쑥, 마존들도 불쑥. 한데 누가 온다고 이렇게 미리 알리면서 주점을 통째로 빌리려 할까?
“본교의 회합이 있습니다. 제가 우리 주인장 자랑을 했습니다. 이곳에서 꼭 모시고 싶다고.”
“정말 감사합니다, 소교주님.”
이때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
신교 내부에서 열리는 회합을 이곳에서 열어 술도 팔고 풍류주점의 이름도 널리 알리려는 것이라고.
“술과 요리를 신경 써서 준비해 주시오. 손님이 누군지 미리 밝힐 수 없는 점은 죄송하오. 또한 이 회합 역시 당일까지는 외부에 알리지 마시길 당부드리오.”
“아무렴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춘배는 자신만만하게 껄껄 웃었다.
‘드디어 소교주께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기회가 오는구나.’
그의 시선이 뒤쪽 벽면을 향했다. 아무리 귀한 손님이라 해도.
‘나는 교주님도 받아본 사람이다!’
어디 그뿐인가? 마존들은 물론이고 마군주와 황천각주의 술 모임도 했었다.
“귀한 손님 받는 일에 있어서는 산전수전 다 겪은 저 아닙니까? 제게 맡겨 주십시오!”
주인장, 이번 손님은 주로 공중전을 펼치시는 분들이라오.
극비지만 조춘배에게 누가 오는지 미리 귀띔을 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역효과만 날 거다.
조춘배는 걱정에 밤새 잠도 못 잘 테고, 좋은 재료를 구하려고 절벽을 탈 사람이다. 아니, 그날까지 조춘배의 심장이 못 버틸 수도 있었다.
“그럼 주인장만 믿겠습니다.”
사실 마음 같아선 검무극은 평소처럼 들이닥쳐서 하고 싶었다. 일 층에 손님 있고, 무림맹주가 ‘길 좀 비킵시다’ 하면서 사람들 사이를 지나 이 층으로 올라오는 거다.
그냥 평소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지금까지 그래왔듯 조춘배는 그들도 잘 받아낼 거니까. 손님들 사이에서 하는 삼자회담!
물론, 차마 거기까지 주장할 수는 없었다. 호위들이 너무 곤혹스러워 할 일이기에.
“조금 있다가 형이랑 식사하러 다시 올 겁니다.”
“즐겨 드시는 것으로 준비해 두겠습니다.”
주점을 나선 검무극이 길 건너에 죽립을 쓴 채 서 있던 중년 남자에게로 걸어갔다.
“저 때문에 들어오지 않으신 겁니까?”
그러자 중년 사내가 죽립을 벗었다.
“저를 알아보셨군요.”
놀랍게도 그는 교주전 대표 숙수인 왕 숙수였다.
아마 총군사가 이번 회담을 빈틈없이 하기 위해 왕 숙수를 보낸 모양이다. 검무극을 믿는 것과는 별개로, 대접해야 하는 대상이 무림맹주와 사도맹주였으니까.
“혹시라도 주점에 필요한 것이 있을까 해서 와봤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점검하러 온 것이다. 요리는 어떤지, 위생 상태는 어떤지.
“저는 신경 쓰지 말고 맡은 일을 하십시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이번 회담 장소를 검무극이 정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왕 숙수는 내심 신경이 쓰였다.
“저는 괜찮습니다만, 저 주점은 안 괜찮겠죠.”
“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왕 숙수님이 살펴보시는데 저 허름한 주점이 어찌 마음에 들겠습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마음에 들지 않겠죠.”
왕 숙수도 인정했다. 저런 주점에서 이번 회담을 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었으니까.
“그렇다면 왜 저곳을 선택하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왕 숙수에게 가장 크게 와닿을 이유를 댔다.
“음식이 맛있습니다.”
과연 왕 숙수는 대번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라면 충분하지요.”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검무극은 왕 숙수가 풍류주점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본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본단에서 만난 사람은 형 검무양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이번 회담과 관련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어쩐 일이냐?”
“형 얼굴 보러 왔지.”
“바쁘다. 얼굴 봤으면 가봐라.”
괜히 무뚝뚝하게 굴지만, 얼굴에는 반가워하는 기색이 있었다.
“같이 밥 먹자. 회합 장소도 둘러볼 겸.”
“바쁘다니까.”
“우리 형이 온갖 나쁜 점은 다 가지고 있지만 설마 탁상공론의 주인공까지 차지할 줄이야! 현장은 둘러보지도 않고 자리에 앉아서 일을 결정하니 뭐가 제대로 돌아가겠어?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주인장 이건 이렇게 고쳐야 하지 않겠소? 동생아, 너도 이건 양보해야 하지 않겠냐?”
검무양이 귀를 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두 사람은 나란히 마가촌을 향해 걸었다.
“형도 회담에 참석할 거지?”
“왜? 난 참석 안 했으면 싶냐?”
“그럴 리가 있겠어? 내가 이 사람 이기고 후계자가 됐다, 무림맹, 사도맹 사람들에게 자랑해야지.”
검무극은 혹시라도 검무양이 참석하지 않겠다고 할까 봐 걱정되었다.
하지만 검무양은 뜻밖에 당당했다.
“안 가면 후계자 자리에서 밀려난 것이 부끄러워서 안 나왔다고 할 것 아니냐? 그 꼴 당하기 싫어서라도 가야지.”
내키는 일이 아니었을 텐데. 이렇게 참석하겠다는 형이 고마웠다.
“생각해보니 형 오게 하면 안 되겠다. 저런 괜찮은 장남 두고, 왜 동생을 후계자로 삼았지 다들 쑥덕댈 것 같은데.”
“알면 됐다.”
“이번에 무림맹 진 대주 남매도 올 거야. 우리가 더 멋진 혈육이란 것, 보여줘야지.”
“그거 보여주려고 불렀냐?”
“응, 내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자랑하려고 불렀어. 진심이야.”
“유치하긴.”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가 검무극이 불쑥 물었다.
“요즘도 꿈꿔?”
“무슨 꿈?”
“형이 후계자 되는 꿈.”
생각해보니 최근에는 그런 꿈을 꾼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자주 꿨었는데.
“매일 꾼다.”
검무양은 드디어 그 꿈이 자신에게서 떠나가 버렸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바쁘다고 잊을 일은 아니었으니까. 왠지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늙어서 죽기 전날에도 꿀 거다.”
“추하다.”
“무덤에 들어가서도 꿀 거다.”
말해 놓고도 우스웠는지 검무양이 옅게 웃었다.
검무극은 형이 마음을 내려놓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꿈꾸다 보면 언젠가 현실이 될 수도 있지. 사람 일 어떻게 알겠어?”
함께 걷던 검무양이 발걸음을 멈추며 화난 얼굴로 소리쳤다.
“넌 꿈도 꾸지 마!”
아주 가끔 떠올릴 때가 있다. 천마 자리를 자신에게 물려주고 떠나는 검무극의 모습을. 동생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 장면은 또렷해진다.
“내 꿈을 왜 네가 깨우려는 거냐?”
검무양은 일부러 더 차갑게 동생을 쳐다보았다. 이 점만큼은 확실히 해야 했으니까.
“한 번 차지했으면 끝까지 가지고 가는 거다. 양보는 내가 용서 못 해. 알았어?”
“알았어. 양보 안 해. 내가 바보냐? 그 좋은 걸 양보하게?”
다시 두 사람은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풍류주점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시각 왕 숙수는 감탄하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음식 맛이 좋았다. 무난한 듯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졌다. 호불호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맛이면서도, 또 특유의 맛이 있었다.
“이 육수는 어떻게 만든 거요?”
“돼지 우린 육수에 비법 재료를 넣었지요. 교에서 나오신 분이라도 비법 재료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괜찮소.”
이 나이 지긋한 남자는 교에서 나왔다면서 회담 전에 이곳 음식을 맛보고 싶다고 했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장사한 조춘배는 신교의 일 처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았다. 누군가 나와서 점검하는 것은 당연한 일.
또 한 번 국물을 마시고는 왕 숙수는 크게 감동했다.
“처음과 또 다른 맛이 나는구려.”
“어휴, 아닙니다. 아니에요.”
조춘배가 겸손의 손사래를 쳤지만, 올라간 입꼬리만큼이나 어깨도 한껏 올라가 있었다.
“아, 그럼 이것도 한 번 맛보시지요.”
이건 교주님도 드셨던 거요!
왕 숙수가 권한 요리를 먹어 보더니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이것도 좋소. 이게 제일 내 입맛에 맞소.”
그러자 조춘배가 넌지시 말했다.
“좀 싸 드릴까?”
“그래 주시겠소?”
“사실 제가 소싯적부터 손맛을 타고났다는 소릴 곧잘 들었습니다. 혀도 민감해서 맛도 잘 알고. 아시려나 모르겠지만 요리도 무공과 마찬가지라 재능이 필요한 일이거든요.”
“다음에 언제 신교의 숙수들을 데려와서 맛을 보이고 싶소. 이렇게 흔한 재료로도 깊은 맛을 낼 수 있다고.”
“어휴, 무슨 말씀을. 아닙니다, 아니에요.”
조춘배가 또 손사래를 쳤다. 어찌나 기분 좋은지 그의 손사래는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갈 것처럼 흥겨웠다.
한창 신이 나 있던 조춘배는 그제야 검무극과 검무양이 입구에 서서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 소교주님. 대공자님! 언제 오셨습니까?”
조춘배가 정중히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여기 손님은 본교에서 사전 점검차 나오신 분이시랍니다.”
검무양이 먼저 왕 숙수에게 인사했다.
“왕 숙수님.”
“대공자님.”
왕 숙수란 말에 조춘배가 흠칫 놀랐다. 숙수라고? 이 사람이 숙수였어? 왕 숙수?
오랫동안 이곳에서 장사하던 그가 어찌 왕 숙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겠는가? 설마? 그 왕 숙수?
조춘배가 떨리는 목소리로 검무극에게 물었다.
“설마 이분이? 아니죠?”
검무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이분이 교주전 책임 숙수십니다.”
화들짝 놀란 조춘배가 펄쩍 뛰었다. 날아올랐던 나비들이 다 추락했다.
“어이쿠!”
그냥 숙수도 아니고 교주전 책임 숙수에게 양념은 이렇게 만들고, 국물은 이렇게 우리고. 온갖 자랑을 다 했다.
“이 어리석은 놈이 검신 앞에서 막대기를 휘두르며 무학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왕 숙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때론 그 막대기가 검신의 검보다 더 예리할 때도 있는 법이지요.”
정말 맛있는 집은 생각지 못한 곳에 숨어 있다더니, 풍류주점이 그러했다. 검무극이 맛있다고 했을 때도 그래 봤자, 라며 내심 무시했었는데.
왕 숙수가 검무극에게 말했다.
“전 음식과 사람 사이에도 인연이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이 주점과 소교주님과의 인연에는 이 맛도 한몫했을 겁니다.”
조춘배가 교주전 숙수에게 인정을 받는 순간이었다.
“잘 먹고 가오.”
“영광이었습니다, 숙수님!”
왕 숙수는 떠나기 전 조춘배가 챙겨준 음식을 모두 챙겼다. 그 모습만으로도 조춘배는 감동했다.
“그 맛있는 요리, 이 층으로 부탁드립니다.”
감격에 젖어 있는 그를 남겨두고 검무극과 검무양은 이 층으로 올라갔다.
검무양이 전음을 보냈다.
―그렇게까지 맛있진 않던데.
―왜 전음으로 보내? 못됐게 소리 내서 주인장 앞에서 말하지.
―지금은 너무 감격해서 말해도 못 들을 것 같아서.
조춘배는 떠난 왕 숙수의 뒷모습만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이쪽으로 앉아, 형. 여기가 바깥도 잘 보이고 좋다.”
검무극이 좋은 자리를 양보했다.
“태사의는 양보 못 하게 하니까, 이 자리라도 양보해야지.”
형, 그거 알아? 내게 그 자리는 태사의만큼이나 귀한 자리야.
* * *
진하군이 회의실에서 나왔을 때, 진하령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 걸리네?”
“한창 자존심 싸움 중이야.”
진하군의 말에 진하령이 물었다.
“무슨 자존심?”
“사도맹과 비교해서 호위 숫자 때문에 고민이다.”
“더 많이 데려가려고?”
그러자 진하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명이라도 적게 데려가려고.”
그 말에 진하령은 웃고 말았다. 호위 숫자가 더 많으면 겁을 먹었다고 여길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별걸 다 신경 쓴다.”
“저 사람들에겐 중요한 문제니까. 한데 왜?”
“회담 명단에서 나를 뺐던데?”
“응, 뺐다더라고.”
“왜?”
“우리 둘 다 갈 수는 없으니까.”
진하령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라도 변고라도 생기면 한 사람은 살아남아야 하니까?”
진하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들어가서 설득하세요. 설득 못 하면 오라버니가 남는 거야.”
누구보다 동생 성격을 잘 아는 진하군이었다. 게다가 검무극을 정말 보고 싶어 한다는 것도.
“그러잖아도 설득 중이었어.”
“괜히 왔네. 최고의 오라버니를 못 믿어서.”
“과연 내가 최고일까?”
진하군이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진하령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복도 창밖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흐르는 구름은 멈춘 듯 느렸지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 * *
출발 직전까지 백자강은 개인 수련장에 있었다.
회합 날짜가 정해진 이후, 그는 마치 전쟁을 앞둔 사람처럼 그곳에만 있었다.
오늘도 그는 철 인형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 그의 눈에는 철 인형 위로 검우진이 겹쳐 서 있었다.
여전히 오만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밖에서 말했다.
“사인입니다. 출발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들어오너라.”
그곳으로 비사인이 들어왔다.
“저기 누가 서 있는지 아느냐?”
비사인이 철 인형을 쳐다보았다. 그 위로 검무극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누가 서 있습니까?”
“마교주가 서 있다. 십 년 전에 만났던 그 모습 그대로. 삼자회담이 결정된 후부터 쭉 서 있었지.”
비사인은 철 인형을 함께 쳐다보다가 불쑥 물었다.
“베셨습니까?”
잠시 백자강은 말이 없었다. 침묵이 길었지만 비사인은 자신이 실수했다고 여기지 않았다. 분명 사부는 그 질문을 기다렸다.
“베지 못했다.”
비사인은 사부의 이런 점을 좋아한다. 체면이나 자존심 때문에 진실을 속이지 않는다.
“왜 그를 만나겠다고 마음먹었는지 이곳에서 알 수 있었다.”
“무슨 이유였습니까?”
“내 마음속에서 그가 너무 컸다.”
비사인은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에 만나면 작아질 겁니다.”
백자강의 마음에 떠오른 하나의 불안.
“만약 내가 키운 것보다 더 큰 사람이면?”
이렇게 솔직한 사부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사부를 변화시킨 것은 검무극인가, 아니면 검우진인가?
“그럼 제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주시겠네요. 볼 때마다 자꾸 커지는 숙적을 보고 있는 제자의 답답한 심정을요.”
백자강이 소리 없이 웃었다.
비사인은 사부가 웃는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한 번 웃으실 때마다 한 걸음씩 다가선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착각이라도 좋았다.
곧이어 시비들이 옷을 가지고 들어왔다. 사도맹주가 외부에 공식 행차할 때 입는 화려한 복장이었다.
하지만 백자강은 그 옷을 모두 물렸다.
그는 처음 사도에 뛰어들었을 그때를 떠올리며 깨끗한 흑의 무복 한 벌을 입었다.
흑의 무복은 그에게 너무나 잘 어울렸고, 앞서 화려한 복장보다 더 위엄이 있었다.
“가자, 마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