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88)
절대회귀-388화(388/424)
제388회 우리 연합전선을 펼치지 않았소?
생각지도 못한 정파와 마교의 연합작전이었다.
백자강은 뿌듯해하는 진패천을 바라보다가 다시 검우진을 쳐다보았다.
먼저 검을 뽑아 든 사람은 저 검우진이다. 검무양을 불러올린 사람이 바로 그였으니까. 천마가 자식 자랑을 한다?
‘변한 건 외모만이 아닌가 보오.’
어쩌면 이런 변화가 검무극을 키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순간 백자강보다 더 당황한 사람은 비사인이었다.
다들 둘인데 자신만 혼자라 괜히 자신이 잘못한 것만 같았다. 사부에게 미안했다.
사부를 대신해 소리치고 싶었다.
‘두 분! 정말 유치하십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이런 눈빛으로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검무극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나중에 당신은 자식을 많이 낳으시오! 일곱쯤 낳아서 줄 세웁시다! 그때 복수하시오.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괜히 쳐다봤다 싶었다. 자신을 놀릴 기회만 엿보고 있었을 텐데.
사실 이 자리에서 오직 검무극만이 형을 부른 아버지의 속뜻을 짐작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보여주고 싶으신 거다. 피를 흘리지 않고 후계자 싸움을 끝낸 두 아들을. 그래서 좌우로 당당히 서 있는 아들들을 자랑하고 싶으신 거다. 이건 자랑이자 칭찬이었다.
‘그렇죠? 죽여서 얻는 기쁨보다 살려서 얻는 기쁨이 더 크잖아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버지는 아시잖아요? 이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걸. 마음을 먹으면 그 누구도 죽일 수 있으신 분이시니까요.’
어쨌든 검무극은 느낄 수 있었다. 형과 자신을 나란히 세우는 이 순간이 아버지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 자식 자랑이셨다는 것을.
아버지, 마지막 자랑이 아니게 해드릴 겁니다. 계속 자랑하시게 할 겁니다.
그러는 사이 백자강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는 법이지요.”
혼자 살아온 세월에 어디 외로움만 있었겠나? 정말 원 없이 자유롭게 살아온 인생이었다. 한데 어딜 이 좋은 인생 앞에, 저 고달픈 길을 자랑한단 말인가?
뿌듯해하던 진패천의 얼굴에 살짝 어둠이 스쳤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진패천은 그 바람을 정통으로 맞은 사람이었다. 가지가 부러졌으니까.
그래서 진하군과 진하령만큼은 정말 소중히 잘 키우려고 노력했다. 두 사람은 오직 무림맹과 무림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그에게 유일하게 허용된 사적인 욕심이었다.
자칫 분위기가 무거워질 수도 있을 그때 검우진이 말했다.
“그 가지에서 꽃도 피고, 새도 지저귀는 법이지요.”
검무극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섰다.
“형이 꽃이고 제가 지저귀는 새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검우진이 검무양을 바라보면서는.
“꽃도 피고.”
그리고 검무극을 보고서는.
“바람도 불고 그러지요.”
그렇게 바로잡았다.
검무극은 짐짓 너무 하십니다,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진하령은 미소를 지었다.
다른 의미에서 검무극은 바람 같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갑자기 불어와 돌풍을 일으키다,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그 바람을 찾아 이렇게 직접 온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회합에서도 여지없이 바람이 불고 있었다.
‘정말 상상도 못 한 일들이 벌어지는구나.’
자신이 이렇게 세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 불려 올라올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자식 자랑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게 될 줄은 더욱 몰랐다.
그녀는 처음으로 천마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저 사람이 천마다, 라는 생각에 앞서 이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저 사람의 아버지다.’
닮은 듯 닮지 않았다.
검우진은 말 한마디 붙이기 어려운 위압감을 주었다. 천마임을 몰랐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리가 주는 위엄이 아니다. 권마나 비사인처럼 무섭게 생겨서 느끼는 두려움이 아닌 검우진이란 사람 자체가 주는 강렬한 존재감이 있었다.
원래라면 두려움과 거부감을 느껴야 했는데.
그렇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말을 붙여보고 싶었다.
한 번쯤 뵙고 싶었습니다.
검무극의 아버지이기 때문일까? 처음 봤지만 여러 번 본 것 같고, 묘한 친밀감을 느꼈다.
그녀의 시선이 이번에는 검무양을 향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마신교의 대공자가 아닌.
‘저 사람이 형이구나.’
검무극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차분하면서도 정리된 느낌이었는데, 자기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을 것 같았다. 오히려 닮았다면 검무극이 아니라 오라버니 쪽이었다.
그녀는 검무양과 시선이 마주쳤고, 살짝 고개 숙여 인사했다. 검무양도 살짝 고개만 숙였다.
‘나와 저 사람은 공통점이 있긴 하네.’
혈육이지만 후계자에서 밀려난 이들이란 점. 물론 그녀는 애초에 후계자가 되려는 욕심이 없었지만 말이다.
‘누가 당신들과 혼인할지 몰라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시아버지가 기다리고 있겠군요.’
장인 될 사람이 묻는 거지.
‘부친께서는 뭐 하시는 분이신가?’
‘천마십니다.’
그런 상황을 떠올리자 생각만 해도 우스웠다. 하여튼 검무극과 관련된 일은 항상 그녀를 긴장시키고, 설레게 하고, 웃게 만든다.
그녀의 시선이 이번에는 비사인을 향했다.
원래라면 마주보기 쉽지 않은 얼굴이었는데, 이상하게 그리 흉측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라버니나 검무극과 함께 어울려서 그런 것이겠지?
진하령이 이번에는 백자강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천마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할아버지와도 달랐다.
오히려 세 사람 중 겉모습만 봐서는 어떤 사람인지 가장 알기 어려웠다.
다만 저 흑의 무복이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이런 자리에 저런 복장을 입고 나왔다? 원래라면 이런 느낌이 들었을 거다.
나는 외적인 것에 신경 쓰는 사람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의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이런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서 일이 터지면 가장 싸우기 편한 복장으로 싸우겠다는 의지.
그 의지에 의도가 모두 삼켜진 느낌이었고,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명분과 체면보단,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사람. 그랬기에 그 역시 정말 강해 보였다.
이 층에 있던 사람을 둘러본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가까이 있던 진패천이 그녀의 한숨을 들었던 것일까?
“우리 손녀가 호북일미라는 건 알고 있으신가?”
아니면 죽은 아들과 며느리가 생각나서였을까?
진패천은 평소 무림맹 무인들이나 정파인들에게 손주 자랑을 한 적이 없다.
맹주가 팔불출처럼 손자, 손녀 자랑을 하더라.
이건 자존심 세고 명예를 중시하는 진패천이 결코 허용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랬기에 오늘의 이 자랑은 참으로 오랫동안 참았던 자랑이었다. 눈앞의 두 사람에게 하는 자랑이기도 했고, 모른 척 일 층에 있는 정파의 고수들에게 하는 자랑이기도 했다.
진패천이 진하령을 돌아보았다.
“이 할애비는 네가 천하제일미라 생각하지만.”
모두 앞에서 이렇게 말하자 진하령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안 돼요! 할아버지! 제발!’
그녀가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
“세상에 아름다운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다른 분들이 놀려요.”
“감히 누가 내 손녀를 놀린단 말이냐?”
그러자 비사인과 진하군의 시선이 기다렸다는 듯 한 사람을 향했다. 심지어 오늘 진패천과 초면인 검무양도 ‘놀릴 사람이 이 녀석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하는 표정으로 옆에 선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진패천이 시선의 주인공에게 물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검무극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진하령은 내심 긴장했다. 너스레로 자신을 놀릴 게 뻔했는데.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천하제일미 선발대회를 개최하면 반드시 진 소저가 우승할 겁니다. 맹주님이 심사를 보지 않으셔도 우승합니다!”
진패천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검무극의 대답에 후계자들이 옅게 웃었다. 그냥 제일 아름답지요, 하고 대답하면 될 것을 천하제일미 선발대회에 심사까지 언급하다니.
무림맹주의 물음에 저렇게 대답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검무극밖에 없으리라.
진하령은 검무극의 대답이 우스우면서도 동시에 기분이 좋았다. 더 아름다운 이안이 있음에도 할아버지 앞에서 이렇게 말해줘서 고마웠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물론, 속마음은 이러했다.
―천하제일미는 이안이라 생각하면서.
검무극에게 전음을 보내자 대답이 돌아왔다.
―네 할아버지가 심사 보셔도 이안이 일등일걸?
할아버지, 이 사람이 절 놀려요! 할아버지에게 일러바쳐야 하는데.
오늘 진패천은 바빴다. 그는 아예 작정했다. 이번에는 진하군을 자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들놈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다지만, 아들도 아들 나름이지?”
그러면서 뒤에 선 진하군을 쳐다보았다.
“의협심 넘치고 책임감 있고. 어디서 이런 훌륭한 아들을 볼 수 있겠는가?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물론 그에게는 손자였지만, 다른 후계자들과 비교하기 위해 아들이라 표현한 것이다.
진하군은 당황했다. 평소 진패천은 자신을 이렇게 챙겨주는 분이 아니었다. 당신의 손자라는 걸 이용해서 헛된 짓이라도 할까 오히려 더 엄격하고 무섭게 자신을 대하셨다. 자랑스럽다는 말을 정말 오랜만에 들었기에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오늘 비교 대상이 검무극이고 비사인인데, 어찌 자신이 저 두 사람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겸손을 생략했다.
“할아버지께서 훌륭한 가르침을 내려주시고 잘 인도해 주신 덕분입니다.”
말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할아버지에게 이런 말씀을 드렸던 적이 언제인가 싶었다. 있기는 있었던가? 놀랍게도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자랑스럽다는 말을 들은 적도 오랜만이지만, 자신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제대로 드린 적이 없었던 것이다.
진하군이 검무극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거 아시오? 이전에 할아버지께 감사 말씀을 언제 드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소.
검무극은 어느새 이런 순간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마음 편히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우리가 아까 나왔던 그 아들들 아니겠소? 키워봤자 소용없는 그 아들들 말이오.
아마 이래서일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읽고 위로해주는 사람이었으니까. 거기에 나아갈 길까지 제시해주는 그런 사람.
―그래도 우리가 또 한 번 철들면 제대로 들지 않소?
진하군은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새삼 느낀 것만으로도 이번 회담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자강은 비사인이 아직 검무극에게는 부족하다 여겼지만, 저 진하군에게 부족하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 등은 허용해도 삼 등은 절대 안 될 일이었다.
‘아무리 자랑해도 우리 사인이에겐 안 되지.’
오늘 이 자리가 끝나기 전에 그 점만큼은 확실히 하리라 마음먹었다.
어쨌든 세 후계자가 올라오고 나서 이 층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적어도 활발하게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마존들은 검무극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역시! 소교주가 가야 해결이 되는구나.
검무극은 이 좋은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아래층을 향해 소리쳤다.
“주인장, 술과 요리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조춘배가 술과 안주를 들고 올라갔다.
수도 없이 이 층을 들락거렸지만, 이 순간만큼 떨린 적은 없었다.
‘쏟으면 내 목숨을 쏟는 거야!’
정말 손이 덜덜 떨렸지만 가진 모든 용기를 다 발휘했다.
그가 각자 자리에 술과 안주를 내려놓았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긴장되고 숨 막혔던 순간이었다.
“맛있게 드십시오.”
돌아서려는데 진패천이 조춘배에게 물었다.
“자넨 아나? 소교주가 왜 자네 주점에서 이 회합을 개최했는지.”
조춘배는 무림맹주에게 이런 질문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진패천은 하필 이곳 주점에서 만남을 주최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여겼다. 술맛이 좋아 봤자 얼마나 좋을 것이며, 주인장 성품이 좋아봤자 뭘 그리 좋겠는가? 설령 최고라 하더라도 왜 여기일까?
그때 뜻밖의 사람이 대답을 대신했다.
“여기에 내 아들의 마도가 있소.”
그 말에 가장 놀란 사람은 검무극이었다. 아버지가 이 말을 해줄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내 아들의 마도.
검무극은 너무 감격스러웠다. 너무 기쁘니까 사람이 멍해질 정도였다.
진패천은 잠시 말없이 검우진을 쳐다보았다. 그 역시 검우진이 대신 대답할지 예상치 못했다. 아들의 마도가 여기에 있다?
다른 말이었으면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을 텐데, 자식 문제였으니 예의상 물었다.
“교주께선 자제분의 마도가 어떤 마도인지 알고 있소?”
모두의 시선이 검우진에게 집중되었다. 일 층에 있던 이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특히 마존들은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했다.
잠시 사이를 두고 검우진이 말했다.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오.”
노력이란 말은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들렸다. 대부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을 돌려 말한 것으로 이해했지만, 검무극과 그를 아는 사람들은 달랐다.
‘나를 이해해 주시려고 노력하고 계신다.’
애초에 대신 대답해준 것부터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무림맹주에게 한 대답이 아니었다. 그 대답은 자신에게 한 대답이었다.
검무극의 시선이 아버지의 등을 향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앞서 질문에 대한 예의였을까? 검우진이 진패천에게 물었다.
“맹주께선 손주분들을 얼마나 이해하시오?”
이런 질문을 할 줄 몰랐기에 진패천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다른 내용이라면 모를까, 혈육에 관한 이야기만큼은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나도 노력하는 중이오.”
이 자리에 앉은 이후, 처음으로 공감대가 형성되는 순간인가 싶었는데.
백자강이 불쑥 진패천에게 물었다.
“하면 맹주께서는 손주분이 꿈꾸는 정도가 뭔지 알고 있소?”
순간 진패천은 당황했다. 이와 관련해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으니까.
“노력하신다더니 말로만 노력하신 건 아닌지 모르겠소.”
백자강의 정중한 역습이었다. 자신을 그렇게 어이없고 당혹하게 했는데 그냥 당하고 있을 그가 아니었다. 자식 자랑? 여긴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진패천이 변명하려다 슬쩍 검우진을 쳐다보았다. 아들의 마도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그였으니까, 그가 한마디 거들어 주기를 바라서였다.
자신이 구차하게 변명하는 것보다 검우진이 한마디만 해주면 된다.
‘맹주께선 안 겪어봐서 모르시겠지만, 다 큰 자식과 제대로 대화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소.’
이 말이면 된다. 어리면 어려서 힘들고, 크면 커서 힘들다는 말까지 덧붙여주는 것은 기대도 안 한다.
우리 같이 정마연합전선을 펼치지 않았소? 핏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았소?
진패천의 기대에 찬 눈빛을 바라보며 검우진이 차분히 말했다.
“나는 요즘 자주 대화하고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