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92)
절대회귀-392화(392/424)
제392회 더 신나는 곡으로!
“드디어 때가 되었소.”
검무극의 말에 비사인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저 장난기 가득한 눈빛이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어찌 모르겠는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일단 딱 잡아뗐다. 이 무서운 얼굴이 모르겠다는데 누가 따지고 들겠냐마는, 안타깝게도 상대는 검무극이었다.
“약속을 지킬 시간 말이오.”
어떤 약속일까 싶어서 함께 있던 검무양과 진하군, 진하령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동시에 또 이런 생각도 했다.
불쌍한 사람, 또 무슨 약점을 잡혔기에!
하지만 지금은 동정심보다 호기심이 앞섰다.
그건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검우진과 진패천, 백자강도 마찬가지였다.
비사인이 눈빛으로 말했다.
‘설마? 여기서? 아니라고 해주시오.’
그럴 것 같았으면 애초에 말을 꺼내지도 않았으리라.
“그 약속을 지키기에 지금만큼 좋은 시간과 장소는 없을 것 같은데?”
검무극은 그 약속이란 표현을 쓰면서 주위의 호기심을 더욱 고조시켰다.
비사인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첫 비무를 하기 위해 비무대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도 이렇게 심장이 뛰진 않았다.
검무양이 넌지시 말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괜히 소맹주님 난처하게 하지 마라.”
“그 약속을 한 사람은 저 사람이었어.”
비사인이 초조한 얼굴로 술잔을 비웠다.
“당신, 포기 안 할 거지?”
“당신이 나라면 어쩌겠소?”
싫은 건 싫은 거고.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만약 반대의 경우, 검무극을 이렇게 놀려먹을 기회가 왔다면?
“포기 못 하겠지.”
“이번 기회를 놓치면 난 아마 평생 오늘을 후회할 거요.”
비사인도 공감했다. 오늘 모인 사람들은 평생 다시 모으기 쉽지 않은 이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비사인이 다른 이유를 댔다.
“오늘의 이 회담 그 배후 놈들이 주시하고 있을지도 모르오.”
“그럴지도 모르지.”
“이런 상황에서 하라고?”
춤이나 추고 있는 모습을 보여서 되겠냐는 말이었는데.
“오히려 그들이 봤으면 좋겠소.”
“뭐요?”
“너희들이 있어도 우린 이렇게 잘 지내고 있다. 우린 우리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 보여 주고 싶소.”
장난이 아니라 진심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면 나중에 놈들을 제거하더라도 제대로 이긴 것이 아닐 거요. 놈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맙시다.”
언제나 그렇듯, 검무극이 바라는 것은 이것이다. 아,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어딜 다녀왔나? 아, 별일 아니니까 하던 말씀 계속하시죠.
비사인은 또 술을 마셨다. 확 춰버릴까 하는 고민이 엿보였다.
검무극이 작전을 바꿨다.
“소맹주.”
비사인이 고개를 들자 검무극이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괜찮소. 그냥 당신 놀리려고 해본 소리요.”
“정말이오?”
“아무리 약속이라도 이런 상황에서 지키기는 곤란하지 않겠소. 아쉽지만 내가 포기해야지. 자자, 우리 신경 쓰지 말고 술 마십시다.”
춤을 안 추게 되어서 기뻐야 했는데 왠지 기쁘지 않았다.
참다 참다 진하령이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넌 몰라도 돼.”
그때 비사인이 불쑥 말했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춤추기로 약속했소.”
진하령이 헉, 하는 표정으로 얼어붙었다. 진하군은 물론이고 검무양까지 놀랐다.
일제히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시선에 검무극이 손사래를 쳤다.
“왜 날 봐! 소맹주 혼자 한 약속이었어.”
당연히 진하령은 믿지 않았다.
“그럴 리가! 악마의 유혹이었겠지.”
검무양과 진하군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서 밀어 함정에 빠뜨렸겠지!”
“날 호시탐탐 뒤에서 밀려는 사람은 저 소맹주라고!”
“그럴 리가! 저분이 그럴 리가 없지.”
“언제 봤다고?”
이번에는 검무양이 나섰다.
“내가 동생 대신 사과하겠소.”
오히려 두 사람의 행동이 결과적으로는 검무극을 돕는 역할을 했다. 비사인의 성격상 저렇게 말하는데 숨길 수도 없는 일.
“아니오, 내가 추겠다고 한 것이 맞소.”
비사인이 술을 연거푸 석 잔을 마시더니.
“추겠소.”
모두가 비사인을 말렸다.
“참으세요!”
진하령을 시작으로.
“내 동생에게 말려들지 마시오.”
검무양도 말렸고.
“무리하지 마시오.”
진하군도 말렸다. 처지를 바꿔서 자신이 비사인이라면? 아, 끔찍한 일이었다.
“약속도 안 지키는 소인배가 될 수는 없소.”
“차라리 소인배가 되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안타깝게 말한 진하령이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저 흡족해하는 모습을 보세요.”
그러자 검무극이 그녀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그래서? 안 보고 싶어?”
“…….”
비사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분위기와 취기에 휩쓸린 상태였다. 언젠가 한 번 해야 한다면? 그래, 차라리 오늘 하자! 이런 젊은 패기도 더해졌고. 검무극에게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결국 그는 태풍과 해일, 그리고 용암을 향해 돌격했다.
비사인이 성큼성큼 백자강 앞으로 걸어갔다.
지금껏 비사인 자리에서 오갔던 대화를 다 들은 그들이기에, 백자강은 너 정말 하려고? 하는 표정이었다.
“예전에 제가 스스로 약속한 것이 있었습니다. 이 위기에서 벗어나면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겠다고요. 오늘 그 약속을 지킬까 합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두 알 것 같았다. 그 말에는 다른 의미도 들어 있었다. 그만큼 큰 위기였고, 결국 검무극과 함께 그 위기를 넘어섰다는 것. 그냥 한 약속이 아니었고, 그냥 추는 춤이 아니었다.
백자강이 가만히 제자의 두 눈을 응시했다.
‘네게 이런 면이 있었더냐?’
비사인의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술기운인지 흥분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백자강의 허락이 떨어졌다. 역시 시원시원한 성격의 그였다.
비사인이 돌아와 검무극에게 부탁했다.
“준비 좀 해주시오.”
“정말 할 거요?”
비사인은 원망 대신 각오가 된 사람의 눈빛을 보였다.
“또 당신에게서 새로운 표정을 보는구려.”
“당신의 그런 말에 속아 여기까지 왔소.”
“아직 갈 길 멀었소. 당신 표정 다 볼 거요.”
비사인의 눈동자가 떨렸다. 놀랍게도 저 말이 진심임을 이제는 안다.
검무극이 난간에서 아래층의 조춘배에게 말했다.
“주인장, 가서 악공들을 불러오시오.”
“알겠습니다.”
조춘배가 달려 나가려는 것을 권마가 제지한 후 단주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단주들이 쏜살처럼 달려가서 인근 기루에서 악공들을 데려왔다.
악공들이 도착하자 비사인이 일 층으로 내려갔다. 이 층에 있던 검우진과 진패천, 그리고 백자강은 난간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비사인과 함께 있던 넷은 그를 따라 아래로 내려왔다.
일 층에서 술을 마시던 고수들 모두 비사인을 쳐다보았다. 몇몇은 벌써 술에 취해 있었다.
비사인이 그들에게 말했다.
“오늘 역사적인 삼자 회담을 기념하는 의미로 제가 여러분들 앞에서 춤 한 번 추겠습니다.”
그러자 모두 깜짝 놀랐다. 주점 앞에 악공들이 와서 자리를 잡을 때만 해도, 흥을 돋우려고 불렀다고 여겼다. 한데 사도맹 소맹주가 춤을 춘다고?
사도맹 고수들이 이 층을 올려다보았다. 난간에 서 있는 백자강은 이미 허락을 내렸다는 듯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렇다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었다.
사파의 노고수가 물었다.
“하면 천변극살무(千變極殺舞)를 추려는 것인가?”
천변극살무는 그 춤을 보고 살아남는 자가 없다는 사파의 절세신공이었다.
“아닙니다.”
“하면 혼원탈백무(混元奪魄舞)를 추려는 것인가?”
내공이 약한 사람이 혼원탈백무를 보면 미쳐 버린다고 알려진 죽음의 춤이었다.
“아닙니다.”
“그럼 일반 검무를 추겠다고?”
보통 무인들에게 춤이라 하면 검을 들고 펼치는 검무를 의미했다.
“아닙니다. 그냥 보통 사람들이 추는 춤을 출 겁니다. 잔칫날 추는 그런 춤 말입니다.”
질문을 한 노고수는 물론이고 다른 이들도 처음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춤을 추겠다는 게 무슨 말이지? 세간에서 일반 사람들이 추는 그런 춤을 춘다고? 자네가? 이 자리에서? 왜?
“우리 소맹주가 취했군.”
노고수의 말에 주위 고수들은 다시 백자강을 올려다보았다. 안 말리실 거냐는 눈빛에 백자강은 말없이 내려다볼 뿐이었다.
사파 고수들뿐 아니라 정파 고수들도 의아해했다. 하지만 다들 술도 한 잔 마신 데다가, 사도맹 소맹주가 대체 어떤 춤을 출지 궁금했다.
마존들은 비사인이 아닌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혈천도마가 고개를 내저으며 눈빛으로 ‘어휴, 이놈아!’ 야단치자 검무극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마존 중에 그 누구도 그 억울함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특히 독왕의 눈빛이 아련했다. ‘아, 내가 저 마수에 걸려 연무장에서 짖었지.’
객잔의 창문이 활짝 열렸다. 자리에 앉아서도 보고 서서도 보고 누군가는 나와서도 봤다.
비사인이 주점 밖 길 가운데 섰다.
“아, 이 일을 어째.”
시작도 하기 전에 진하령의 얼굴이 먼저 붉어졌다. 자신이 더 부끄러웠다.
“앞으로 우린 비 소맹주를 못 보게 되겠죠? 백 년 폐관 수련에 들어가 버릴지도 몰라요.”
검무양과 진하군도 검무극을 합공했다.
“나쁜 놈!”
“이번만큼은 해도 너무 하셨소.”
“저 사람 혼자 약속한 거라니까.”
검무극의 항변이 통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하필 이때 그 약속을 꺼냈잖아?”
검무양이 핵심을 파고들었지만, 검무극의 결정적인 반격이 있었다.
“그래서? 안 볼 거야?”
“…….”
검무양도 진하군도, 진하령도 못 들은 척 각기 다른 방향을 쳐다보았다.
“비 소맹주! 멋지십니다!”
검무극이 환호하며 손뼉을 치자 옆에 있던 세 사람도 함께 박수를 쳤다.
정파와 사파의 노고수들은 그 모습에 살짝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다. 후계자들이 이렇게 어울리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감히 검우진과 진패천, 백자강이 있는 앞에서 대놓고 야단치지는 못했다.
비사인은 눈을 감았다.
홀로 있는 이 기분, 세상에 혼자 내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긴장한 탓에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 싸움 중이었다면 방금 죽었다.
지켜보던 진하령이 눈을 가렸다.
“아, 난 도저히 못 보겠어.”
“나도.”
검무극도 눈을 가리자 진하령이 따졌다.
“당신은 왜 가려?”
“막상 보려니 나도 차마 못 보겠어.”
“사람 죽여 놓고 피가 무섭지?”
악공들이 다시 음악을 연주했다. 그들 또한 얼마나 놀랐겠는가? 갑자기 연주해야 한다고 왔는데 마교주, 무림맹주, 사도맹주가 있고, 마존들과 정파와 사파의 최고수들이 있고,
그리고 그 무엇보다 사도맹 소맹주가 자신들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려 하고. 악공들도 비사인만큼이나 정신이 나가 있었다. 그래, 단체로 꾸는 꿈이겠지.
다시 음악이 흘러나오고 이번에는 비사인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
진하령이 가렸던 손을 치웠다.
비사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춤을 잘 췄던 것이다.
실눈을 뜨고 쳐다보던 검무극도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이 시켰지만 부끄럽고 떨리기는 매한가지였는데.
“잘 추는데?”
정말 그럴듯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막 추는 춤이 아니었다. 손과 발이 제법 음률을 타고 있었다.
사실 비사인은 사도십삼랑 중 사도팔랑에게 춤을 배웠다. 한때 항주 뒷골목을 휘저었다는 사도팔랑이 그에게 비장의 춤을 전수해 주었던 것이다.
비사인은 시간 날 때마다 그 춤을 열심히 연습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란 것을 예상했었다. 그게 오늘일 줄은 몰랐지만.
검무극은 알 수 있었다. 그가 연습하고 또 연습했음을.
이런 사람이 비사인이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키려 하고, 기왕 하는 것 잘해 내려 노력하는 사람.
하지만 비사인의 춤은 곧 한계에 봉착했다. 애초에 타고난 춤꾼도 아니고, 급조해서 배웠던 춤이었다. 연습도 부족했고.
동작이 반복되면서, 부끄럽다는 생각에 손발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럴수록 뻔뻔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몸이 움츠러들며 본 실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자신을 잃은 안타까운 몸짓이 모두에게 전해졌다.
검우진은 살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진패천은 헛기침을 했다.
백자강은 그 작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혼자 왔었어야 했나?’
정사마 모두가 안타까워하던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 훌쩍 춤판으로 뛰어들었다.
“같이 춥시다!”
난입하듯 뛰어든 사람은 검무극이었다.
그가 비사인의 춤을 따라 추기 시작했다. 오늘 처음 추는 춤이 제대로 될 리 없었지만, 검무극은 그 동작을 열심히 따라 했다.
일부러 더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춤을 춰서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거 너무 재미있는 춤이오!”
그러다 흥취가 더 올랐는지 검무극이 소리쳤다.
“더 빠른 곡으로 부탁하오.”
악공들이 더 빠른 곡을 연주했다.
검무극의 관절이 이리저리 꺾였다. 저런 춤은 또 어디서 배웠을까? 란 말이 절로 나오는 괴상망측한 춤이었다.
또다시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고, 이번에는 비사인이 그 춤을 따라 췄다.
비사인의 그 흉측한 얼굴이 더욱 상기되어 있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거다. 검무극이 춤판에 뛰어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죽기 직전, 누군가 구해주러 뛰어들어도 이렇게 기쁘지는 않았을 거다.
“형, 같이 추자!”
검무극이 달려가서 검무양을 억지로 데려가려 했다.
스릉.
검무양의 검이 반쯤 뽑혔다.
검무극이 방향을 바꿔 진하군을 데리고 나가려 했는데.
스르릉.
검이 더 많이 뽑혔다.
그때, 스스로 뛰어든 사람이 있었다.
바로 진하령이었다.
‘안 돼! 하령아!’
진패천이 말리기도 전에 진하령은 이미 음률을 타고 있었다.
춤을 잘 춰서가 아니었다. 그녀도 이런데 나서는 것을 극도로 부끄러워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검무극이 저렇게 친구를 위해 나섰는데, 자신도 나서서 도와주고 싶었다. 그 부끄러움을 나누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몸이 충동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녀가 함께하자 분위기는 환해졌다. 그녀는 살랑살랑 춤을 췄고, 검무극은 신나게 췄다. 비사인은 넋이 나간 채 이 춤 저 춤 막 췄다. 악공들은 더욱 신나게 연주하기 시작했다
삼자 회담도 처음이지만, 정사마 무인이 한데 모여 춤을 춘 것도 무림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마불의 몸에서 광채가 더욱 빛났다. 온 중원을 다 돌아다녔던 마불은 한때 나도 좀 놀았다는 듯 발을 까닥거리며 음률에 몸을 싣고 있었다. 보는 눈들이 없었다면 뛰어들었을지도 모를 움직임이었다.
처음에는 못마땅하게 쳐다봤던 정파와 사파의 고수들도 이제 애들 재롱처럼 느껴지는지 굳은 표정을 풀었다.
백자강은 열심히 춤을 추고 있는 비사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진패천은 저런 얼굴을 여러 번 보았다. 남의 자식이 아무리 잘났어도, 내 자식이 최고지 하는 그런 얼굴 말이다.
진패천이 이번에는 반대쪽에 선 검우진을 쳐다보았다.
그는 말없이 검무극이 춤추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들에게 져주길 바라오. 당신의 첫 패배가 아들이라면…… 그나마 괜찮지 않소?’
진패천의 시선이 다시 춤을 추고 있는 아이들을 향했다.
“정사마가 모여도 저렇게 즐거운데.”
젊음이 저렇게나 좋은 건데. 나는 왜 젊었을 때 저렇게 신나게 놀아보지 못했을까? 싸우고 또 싸우고. 이번에는 몇 명을 죽이고, 또 이번에는 누굴 죽이고. 청춘을 그렇게 다 보내버렸을까? 저렇게 한 번 활짝 웃어보지도, 저렇게 한 번 신나게 놀아보지도 못하고.
그러자 백자강이 말했다.
“어쩌면 정사마이기에 더 즐거운 건지도 모르지요.”
진패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하령이 이렇게 따라 해보라며 손과 허리를 귀엽게 움직였다. 검무극과 비사인이 그 춤을 따라 췄다. 셋이서 동작을 맞추자 군무를 추는 것처럼 보기 좋았다.
비사인은 자각하지 못했다. 흉측한 얼굴을 드러내기 싫어 제대로 웃어본 적이 없던 그가, 지금 그의 인생에서 가장 환하게 웃고 있다는 것을.
춤 삼매경에 빠진 검무극이 소리쳤다.
“더 신나는 곡으로!”
완연한 봄기운을 품고 불어온 바람이 그들의 땀을 식혀 주었기 때문일까?
세 춤꾼은 지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