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02)
절대회귀-402화(402/424)
제402회 어떤 놈이 대낮부터 술을.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한설은 물론이고 검무극도 이안의 대답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그녀가 나서는 것은 사전에 계획된 일이 아니었으니까.
이안은 차분하게 진심을 전했다.
“우리 소교주님 한번 믿어보시라고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한설의 얼굴에 놀람이 스쳤다. 소교주의 수하가 저런 말을 할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
“서로 믿음을 가지기 어려운 상황이란 건 알고 있어요.”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했나?”
한설의 차가운 물음에 이안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이 세상에는 그 모든 걸 초월하는 뭔가도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한설의 예상을 벗어난 대답이었다.
한설의 시선이 검무극을 향했다.
“그 초월적인 존재가 소교주란 말인가?”
“그래요. 소궁주님께는 미친년 말처럼 들리시겠지만요.”
이안을 쳐다보던 한설이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자, 이 미친년에 대해 당신이 설명해 봐, 이런 눈빛이었다.
물론, 순순히 그 의도대로 따라 줄 검무극이 아니었다.
“내가 수하들의 존경을 이렇게 받고 있소.”
한설이 검무극을 꿰뚫듯 노려보았다.
원래도 검무극의 소문 속 신화에 대해 믿지 못했던 그녀였다. 한데 이안의 말을 들으니까 이젠 그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어쩌면 정말 조작된 것일지도.’
그렇지 않다면 수하가 자신의 수장은 ‘초월적인 존재’이니 믿으라는 말을 할 리가 없다. 세뇌당했거나, 명령을 받았거나, 아니면 정말 미친년이거나. 그게 무엇이든 무림의 판도를 바꿔가고 있는 일대 영웅과는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시작이 어렵지, 익숙해지면 어떤 일도 쉬워지지 않소? 그러니 소궁주도 그냥 확 저질러 버리시오!”
검무극의 시선이 이안을 향했다.
“지금 저 아이처럼요.”
이안이 고개를 푹 숙였다. 어떤 일을 저질러도 저렇게 말해주는 사람이기에, 그래서 이런 사고도 칠 수 있겠지.
이안이 용기를 내서 한 번 더 말했다.
“소교주님을 믿으세요.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한설은 차갑게 코웃음을 친 후 검무극에게 작별을 고하며 돌아섰다.
“다시 연락하죠.”
그녀가 떠나자, 이안이 탄식했다.
“제가 다 망쳤죠?”
“초월은 좀 과했지.”
“저도 모르게 그 말이 나와버렸어요. 저 쌀쌀맞은 사람을 왜 도와주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물 한잔 얻어 마시고 여기까지 온 너 아니냐?
검무극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는데.
이안은 주위 경치에서 답을 찾았다.
북혈문 일을 처리하는 동안 주위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는데, 검무극을 만난 이후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는 설경이 아름다워서 그랬나 봐요.”
* * *
“소교주가 새로운 제안을 해왔습니다.”
한설은 검무극에게 했던 말과는 다른 행동을 보였다.
“북혈문의 자제를 내주는 대신 본궁에 잠시 머물기를 청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검무극에게는 빙궁주와 의논하겠다고 했지만, 어머니에게 받아들였다고 통보하듯 말한 것이다. 검무극을 믿어보란 이안의 말 때문에 이러는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의 반응이 궁금했다. 자신이 독단으로 결정을 내렸을 때 과연 어떻게 나오실지.
화를 내거나 차갑게 반응할 거라 예상했는데, 뜻밖에 빙궁주은 차분했다.
그 이유를 묻는 빙궁주의 눈빛에 한설이 대답했다.
“북혈문의 자제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니까요.”
“아니, 네가 받아들인 진짜 이유를 말해 보아라. 그건 첫 번째 이유가 아니지 않느냐?”
맞는 말이다. 북혈문주와 밀약을 맺은 건 어머니였으니까. 잡혀간 이들의 생사보다 앞서는 이유가 있었다.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제 독단에 어머니가 어떻게 반응하실지를요.
하지만 그녀는 다른 이유를 댔다.
“제 눈에 비친 소교주는 소문과는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서 보고 정말 그런 대단한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거짓 소문은 안 통해, 하는 이유 외에도 다른 이유도 있었다.
“정말 그들의 생각처럼 원주가 살해당한 거라면, 궁금하지 않으세요? 누가 그 사람을 죽였는지?”
빙궁주는 말없이 딸을 쳐다보았다. 평소와 달라진 모습에 한마디 할 법도 했는데.
“이번 일은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감사합니다, 궁주님.”
한설이 정중히 인사하고 궁주전을 내려갔다.
빙궁주가 창가로 걸어가 바깥을 쳐다보았다. 눈 덮인 빙궁의 정경은 어제와 똑같은 풍경이지만 오늘은 다른 마음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 * *
철문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양일(楊一)은 한숨을 내쉬었다.
앞방에 있던 사람이 끌려간 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자신과 함께 있던 임씨 역시 끌려 나간 지 며칠이 지났는데, 돌아오지 않았다. 또한 그들이 깨끗하고 안락한 곳에서 쉬고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애초에 이 음습한 뇌옥 같은 곳에 갇혀 있지도 않았을 테니까.
“현아, 민아.”
양일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평생 눈물이라고는 흘려본 적이 없는 그였는데.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함께 있을 때는 몰랐는데, 영영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계속 아이들 모습만 떠올랐다.
안 그래도 걱정 많은 아내는 지금쯤 밤잠도 못 자고 있을 거다.
데려올 때는 웃으며 데려온 그들이었는데 잘 왔다는 서찰 한 통 보내는 것도 허용해주지 않았다.
이곳에 오게 된 계기는 명의가 새로 개발한 약을 시험한다고 해서였다. 마을의 가장 큰 의원에서 사람들을 모아두고 여러 검사를 했다. 검사를 받아보는 것만 해도 며칠 일당이 되는 돈을 줬기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그리고 마을에서 자신과 임씨 두 사람만이 그들이 원하는 체질이었다.
두세 달만 실험에 응하면 큰돈을 준다고 했다. 지금 벌이로는 몇 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액수였다.
아내는 위험하다고 말렸다. 몸이 상할 수도 있었고, 너무 큰돈을 준다는 것도 수상했다. 게다가 외지인들이었다.
하지만 고민 끝에 양일은 가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가고 싶어도 체질이 안 맞아서 못 가는 이들도 있는데.
게다가 몸을 검사한 이들은 너무 예의가 바르고 점잖았다. 경우에 따라선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솔직히 말해주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신뢰가 갔다.
자신과 아내가 열심히 일해도 돈이 잘 모이지 않았다. 좀 모았다 싶으면 쓸 일이 생기고, 악착같이 모았다 싶으면 또 쓸 일이 생기고.
목돈을 받으면 작은 가게라도 하나 차릴 작정이었다. 자신은 온갖 궂은일을 다하며 살아온 인생이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런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신이 하는 고생을 견뎌낼 수나 있을까? 아내는 아이들을 믿으라고 하지만, 양일은 그러지 못했다. 아니, 이런 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네 식구 먹고살 작은 가게 하나만! 제발!
하지만 고향을 떠난 후에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의원에서 나온 사람들이 자신들을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검을 찬 무인들이 자신들을 호송했다.
원래 가야 할 곳이 아니라 북해까지 왔고, 의방이 아니라 은밀한 산장에 갇혔다. 외출은 물론이고, 문밖출입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에 옮겨진 이곳은 아예 뇌옥처럼 꾸며진 곳이었다.
‘마누라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그때, 무인이 철문을 열고 들어왔다.
“가자.”
양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드디어 자기 차례가 된 것이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제 죽는 건가? 이렇게 죽을 수는 없는데.’
눈앞의 이 무인을 기습해서 달아날까? 박치기라도 해서?
하지만 일반인이라도 쉽지 않은 일인데 상대는 무인이었다. 아무리 공사 일로 다져진 몸이라지만, 무인을 상대할 수는 없는 일.
양일이 끌려 나왔다.
복도를 걸어가는데 아무런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다. 원래라면 앞방에도 사람이 있었고, 옆방에도, 그 옆방에도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끌려간 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마지막이구나!’
그렇게 끌려간 곳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물건이 가득한 곳이었다. 평생 맡아본 적이 없는 괴이한 약 냄새가 났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 옥으로 만들어진 침상이 있었다.
데려온 무인이 양일에게 말했다.
“옷을 벗고 침상에 누워라. 남김없이 싹 다 벗어.”
양일이 망설이자, 무인은 두 번 말 안 한다는 듯, 차갑게 그를 노려보았다.
서슬 퍼런 기세에 양일이 옷을 벗었다. 지금이라도 달려들어서 놈을 제압하고 달아 하나! 본능은 그렇게 소리쳤지만, 평생 누군가와 싸워본 적 없는 몸은 본능에 충실하지 못했다.
집 짓고, 길 내고, 둑 쌓고. 평생 거칠고 힘든 일을 하고 살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사람을 때려본 적이 없는 온순한 성격이었다.
양일이 침상에 누웠다. 예상했던 것보다 침상은 훨씬 차가웠다. 무인이 양일의 팔과 다리를 침상에 연결된 가죽 줄로 움직이지 못하게 묶었다.
그가 준비되자 문이 열리고 네 사람이 들어왔다.
푸른 장삼을 입은 중년 남자와 그를 호위하는 세 무인이었다. 무인 중 한 사람은 복면을 쓰고 있었는데, 그의 눈빛은 푸른 장삼의 중년인보다 더 강렬했다.
중년인이 다가와서 양일을 내려다보았다. 등에서 느껴지는 침상의 한기보다 더 차가운 눈빛이었다.
양일은 간절히 빌었다. 이들이 어떤 시험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제발 자신이 부합하는 사람이기를.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이제 돈도 필요 없었다. 살아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래서 아내와 아이들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중년인이 본격적으로 시험을 시작했다.
그가 침상 아래를 조작하자 침상이 더욱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으으으으으!”
너무 차가워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대로라면 얼어 죽을 것 같았다.
“살려주세요!”
양일의 애원에 남자는 차갑게 말했다.
“빙한지체(氷寒之體)를 타고난 이들 천 명 중에서 한 명꼴로 있다는, 네가 만약 극한지체(極寒之體)라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양일은 절망했다. 그 말인즉, 천 명 중 한 명이 아니라면 자신은 죽게 된다는 의미가 아닌가?
바로 그때였다. 방에 있던 중년인이 코를 벌름거렸다.
“한데 이게 무슨 냄새지?”
철문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냄새가 들어오고 있었다.
“술 냄새입니다.”
중년인의 표정이 대번에 굳어졌다.
“대체 어떤 놈이 대낮부터 술을 처마신단 말이냐?”
서 있던 세 무인 중 하나가 밖으로 나갔다.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무인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복도를 확인한 그는 깜짝 놀랐다. 복도 저 앞쪽은 마치 안개가 낀 것 같았다.
‘뭐지?’
실내에 이런 안개가 낄 리가 없지 않은가?
뭔지 모를 위험을 감지한 무인이 검을 뽑아 들었다.
순식간에 안개가 밀려들었다. 술 냄새는 이 안개에서 풍기고 있었다.
‘안개에 술 냄새가? 그렇다면 이건!’
주기(酒氣)였다.
술이 약한 사람은 아니, 술에 강한 사람조차 이 기운에 취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다. 술을 모아둔 둑이 무너져서 무릎까지 흘러넘치면 이런 느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강렬한 주기였다.
그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사이도 없이 안개 속에서 주먹을 쥔 팔이 쑥 튀어나왔다.
주먹은 가볍게 툭 쳤는데, 무인은 날아가 벽에 처박힌 후 정신을 잃었다.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바로 취마였다.
주기는 마치 호신강기처럼 그의 몸 주위를 휘감고 있었다. 지금은 평범한 안개였지만, 사실 어떤 모습으로도 변하는 취마의 주기였다.
그는 무인이 나온 곳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쉬이이익.
바깥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또 다른 무인이 취마를 향해 검을 날렸다.
취마는 날아든 검을 가볍게 피하더니, 이번에는 손날로 무인의 목을 가볍게 쳤다. 툭 쳤는데 쓰러진 무인은 일어나지 못했다.
휘류류류류.
바깥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던 안개 같은 주기는 취마에게로 모두 모여들더니 몸 주위를 감싸며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렸다.
청의 장삼의 중년인은 놀란 얼굴로 취마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두 수하는 이렇게 쉽게 당할 실력이 아니었다. 그렇다는 말은 상대의 무공이 정말 강하다는 의미.
하지만 그는 아직 절망하지 않았다. 세 무인 중 진짜 실력자는 복면인이었다.
취마가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침상에 누워있는 양일을 살폈다. 차갑게 얼어붙은 그는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그에게 신경 쓰다가 복면인이 기습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취마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취마가 양일을 보느라 등을 돌렸음에도 복면인은 감히 공격하지 못했다. 몸 주위에서 일렁이는 취마의 주기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취마가 양일을 묶은 가죽을 풀어준 후, 그의 팔목을 잡았다. 뜨거운 기운이 흘러 들어가자, 양일은 평온한 숨을 내쉬며 정신을 차렸다.
상대의 실력을 확인했음에도 중년인은 나직이 경고했다.
“우리가 누군지 알고 이러시오? 이대로 물러가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거요.”
그러자 취마는 순순히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어차피 이번 일에 천마신교가 개입한 것을 북해빙궁이 알고 있기에,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다.
“나 취마다.”
“!”
중년인은 얼어붙은 채, 사색이 되었다. 복면인의 표정 역시 딱딱하게 굳어졌다.
“당신이 왜?”
방금 수하에게 보였던 한 수가 아니었다면, 등을 돌려도 빈틈을 찾을 수 없는 경지가 아니었다면 절대 믿지 못했을 말이다.
하지만 취마가 확실했다. 은은히 풍기는 이 깊은 주기와 주향은 취마가 아니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기운일 테니까.
아니, 그 모든 것을 다 떠나서. 눈앞의 이 사내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양일도 그들만큼 놀랐다.
이 사람이 그 유명한 마교 팔마존의 취마라고? 세상에 그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아이들이 울면 마존이 와서 잡아간다, 이런 말이 있을 정도인데.
“혹 끌려온 사람 중에 양일이란 사람이 있나?”
취마가 자신을 찾자 양일은 깜짝 놀랐다.
“제가 양일입니다. 접니다.”
평생 삼류 무인과도 개인적으로 얽힌 적이 없던 그였는데, 마존이 자신을 찾고 있었다.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을까?
“다행이군. 자넬 구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양일은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존이 나를 구하러 왔다고?’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그가 침상을 내려다보았다.
‘아, 죽기 직전에 꿈을 꾸는 건가?’
진짜 자신은 침상에서 얼어 죽어가고 있고, 마지막 순간 이런 꿈을 꾸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꿈이나 환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했다. 지금도 앉아 있는 침상은 엉덩이가 시릴 정도로 차갑다.
“저를 구하러 오신 거라고요? 존귀하신 분이 왜 저를?”
양일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다른 일로 왔다가 마침 자신을 구하는 상황인 줄 알았는데.
그러자 취마의 입에서 놀랄만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아마 양일이 태어나서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그를 놀라게 한 말이었으리라.
“자네 처가 부탁했네. 남편을 집으로 데려와 달라고.”
“!”
너무 놀란 나머지 양일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내가 어떻게 마존에게 이런 부탁을 할 수 있겠는가?
“제 처가요? 우리 마누라는 저와 혼인한 후에 마을 밖도 나간 적이 없는 사람인데…….”
이내 양일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런 일이 벌어질 리 없으니.
‘아, 난 이미 죽었구나. 마누라, 꿈에서라도 날 구해줘서 고맙네. 애들 잘 키우고, 잘 사시게. 끝까지 함께 못 해줘서 미안해.’
그 와중에도 꿈 같은 현실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술을 안 마셔서 신경이 좀 예민하다.”
취마는 원주가 담은 빙주를 혈루에 넣은 후 아직 마시지 않고 있었다. 그녀를 죽인 자를 죽일 때, 그 빙주를 마시고 죽일 작정이었다. 그녀가 복수의 순간을 함께할 수 있도록.
“내가 술을 마셨을 때가 위험할까? 마시지 않았을 때가 위험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