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07)
절대회귀-407화(407/424)
제407회 너희들이 대비한다면 나도 대비하겠다.
난 다루에서 차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눈 덮인 길을 사람들은 미끄러지지도 않고 잘만 걸어갔다. 새외의 모래바람 아래에서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처럼, 이곳 북해의 사람들은 눈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은 오늘 처음 만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지나가던 이들 중 누가 불쑥 다루로 들어와서 내 앞에 앉을지 몰랐다.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죽립을 눌러 쓴 이유는 나를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만나려는 상대 때문이었다. 그는 은밀함이 생명인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한 중년 남자가 내 앞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어이구, 춥다.”
후덕한 인상의 평범한 남자는 바로 은월의 북해지부 책임자였다.
통천각과 은월의 모든 정보력이 지금 북혈문과 북해빙궁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은월에서 급히 보고할 일이 있다고 연락을 해온 것이다. 멀리서 전음으로 전해도 될 일이었지만, 책임자를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따스한 차부터 한잔하시오. 고생 많으시오.”
그의 찻잔에 차를 부어 주었다. 고생하는 수하에게 술은 못 주더라도 따스한 차라도 한 잔 주고 싶어서였다.
술이면 더 좋았겠지만, 약속 장소를 객잔이 아닌 다루로 잡은 이유는 취마 때문이었다. 한설에게는 다음에 술 마시자고 말했지만, 취마가 술을 마실 때까진 나도 술을 마시지 않을 작정이다.
내가 차를 따르는 동안 남자는 재빨리 전음을 보냈다.
―북혈문 이공자 양중이 죽었습니다.
생각지 못한 소식이었다. 이번 일로 양중이 후계자에서 밀려날 것은 예상했지만.
한데 죽었다고? 날 초대하겠다던 북혈문주의 정중한 모습이 떠올랐다.
‘보기보다 훨씬 비정한 자였군.’
대체 자식까지 죽여가면서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가?
죽은 이유야 얼마든지 붙일 수 있을 거다. 북혈문주 아들의 죽음이니 사인을 나서서 조사할 사람도 없을 테고.
이 보고로 한 가지 사실을 확실히 짐작할 수 있었다.
북혈문이 혈왕과 연결되어 있음을.
그렇지 않았다면 자식까지 죽여가면서 이번 일을 이렇게 급히 처리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이제는 북혈문 장남의 움직임에 주목하시오.
―특별한 움직임이 포착되는 대로 기별하겠습니다.
―고맙소.
남자가 먼저 그곳을 떠났다.
나는 잠시 남아서 남은 차를 마신 후 다루를 나섰다.
다루 문을 열고 나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북혈문이란 이름이 운명적으로 지어졌구나.
혈왕에게 날 안내해 줄 문.
아, 혈왕아. 그거 아느냐? 북쪽 문은 저승으로 가는 문이다.
* * *
검무극이 돌아왔을 때, 취마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그 사람을 왜 죽였는지 알아냈다.”
검무극이 돌아오면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말하려고 이안과 한설에게는 알려주지 않은 상태였다.
“우리 마존께서 알아내실 줄 알았습니다.”
검무극은 한설 앞에서는 취마를 형이 아닌 마존으로 대했다.
이제 모두가 모이자 취마가 어떻게 알아냈는지를 밝혔다.
“우선 술과 관련한 내용이 확실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최근에 그녀와 주고받은 서찰을 살폈네. 나눈 대화들 대부분이 술과 관련한 이야기들이었지.”
원주가 모아둔 서찰이니 당연히 읽은 것은 자신이 보낸 서찰이었다. 그래서 단서를 찾기가 너무 어려웠는데.
“그러다 이런 대목을 발견했지.”
취마가 한 구절을 보여주었다.
―나도 향설빙주(香雪氷酒)를 마셔보고 싶소.
향설빙주는 검무극과 이안은 처음 듣는 술이었다. 반면 한설은 향설빙주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
“향설빙주는 그냥 평범한 술이 아니라 특별한 효과를 지닌 술이에요.”
“무슨 효과요?”
“추위를 견디게 해주는 술이지요. 원래도 술을 마시면 몸이 뜨거워져서 추위를 덜 느끼지만, 이 향설빙주는 그 효과가 대단하죠.”
취마 역시 향설빙주의 효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향설빙주란 말을 보는 순간 떠오른 한 가지 사실.
“이번에 놈들이 찾으려고 한 체질이 극한지체였잖아?”
극한지체와 향설빙주. 둘 다 추위를 버티는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공교롭지 않나?”
검무극과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설은 의문을 제기했다.
“그 이유만으로 원주께서 죽었다고 하기에는 이유가 부족하지 않나요?”
“맞아, 그렇지.”
순순히 인정한 취마는 다른 결정적 이유를 보탰다.
“내가 알기로 향설빙주는 빙궁의 허가를 받아야 만들 수 있는 술로 알고 있네.”
“맞아요. 특별한 효능이 들어간 술은 궁의 허가를 받아야 하죠.”
“한데 아까 백주설원에서 지난 술 제조에 대해 살폈을 때, 향설빙주에 대한 것은 없었네.”
“없었다고요? 그럴 리가 없는데?”
그렇다면 확실히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은밀히 만들어 준 거로군요.”
검무극의 추측에 취마도 동의했다.
“그 사실을 내게 알렸다는 것은 그 술이 나쁜 곳에 쓰일 거란 생각을 전혀 안 했다는 거지. 아마 그녀가 잘 아는 사람이 부탁했을 거야. 믿을 만한 사람이었겠지.”
그녀를 잘 알기에 할 수 있는 추측이었다.
“누가 만들어달라고 했는지 그분이 말했습니까?”
취마는 고개를 내저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거기까진 말해주지 않았네. 향설빙주를 처음으로 만들어봤는데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고 했고, 나는 마셔보고 싶다고 답을 했었지.”
“그 구절만으로 답을 찾아내다니. 대단하십니다.”
검무극이 취마를 칭찬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칭찬했다. 확실히 취마는 생각했던 것보다 똑똑한 사람이었다.
“술을 안 마시니 머리가 쌩쌩 돌아가고 있는 모양이야!”
취마의 농담에 미소 지으며 검무극은 한설을 바라보았다.
한설은 검무극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알아보죠, 누가 향설빙주를 만들어 달라고 했는지.”
대답은 했지만 과연 알아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궁의 허락도 없이 만들었다면, 그 과정을 철저히 숨겼을 텐데.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읽었을까?
“이안과 함께 움직이시오.”
검무극의 제안을 한설은 거절했다.
“혼자 조사하는 게 더 편해요.”
함께 한방에서 자는 것도 충분히 부담스러운데. 낮에도 함께 돌아다니라고? 싫은 일이다.
“알고 있소.”
“한데 왜 이러시죠?”
“그대가 위험할까 그렇소.”
한설은 물론이고 이안과 취마에게도 뜻밖의 이유였다.
“빙궁에서 소궁주인 제 안위를 걱정하는 건가요?”
그러자 검무극이 조금 전에 알아 온 소식을 전했다.
“양중이 죽었소.”
가장 놀란 사람은 이안이었다.
“그가 죽었다고요? 왜요?”
“북혈문주에겐 그도 꼬리였나 보지.”
그 말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어차피 그 많은 사람을 속여서 데려온 후 실험으로 죽인 자니 죽어 마땅한 자였다. 하지만 그를 죽인 사람이 아버지란 사실은 놀라웠다.
한설도 놀랐지만, 그녀의 놀람은 양중의 죽음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죽음을 자신보다 먼저 검무극이 알고 있다는 점 때문에 놀랐다.
‘우리보다 정보력이 더 좋다고? 다른 곳도 아니고 이곳 북해에서? 어머니는 이 소식을 알고 계실까?’
검무극이 잠시 딴생각을 하는 한설에게 경고했다.
“절대 방심해선 안 되오. 북혈문주의 자제가 북혈문 내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 이게 이번 싸움의 본질이니까.”
확대해서 말하면 북해빙궁 내에서 빙궁주의 혈육이 죽을 수도 있는 싸움이란 뜻이었다.
“그러니 이안과 함께 움직이시오.”
자신을 바라보는 검무극의 눈빛에서 한설은 거역할 수 없는 권위를 느꼈다. 고압적인 태도가 아니었다. 진심으로 자신을 위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강제였다.
“그러죠.”
한설은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빙궁주의 딸로 살아오면서 이런 긴장감을 느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검무극이 이안을 쳐다보았다. 말도, 전음도, 고개를 끄덕일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알아서 잘할 테니까. 눈빛 한 번 마주치는 것으로 충분했다.
두 여인이 방을 나서자 이제 검무극과 취마만 남았다.
“놈들은 극한의 한기를 버틸 방법을 찾고 있어. 왜일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공이라도 익히려는 걸까? 아니면 북해빙궁과 관련된 음모를 꾸미려는 걸까?”
취마의 물음에 검무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녀올 곳이 있어. 형은 은밀히 이안과 소궁주를 지켜줘.”
“갑자기 어딜 가려고?”
검무극이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추위에 대비하려고.”
“무슨 말이야?”
궁금해하는 취마를 남겨두고 검무극도 방을 나섰다.
“대답해 주고 가! 어서! 나 술 안 마셔서 예민하다고 했지?”
* * *
대답해 주고 싶어도 절대 알려줄 수 없는 일이었다. 회귀 전 인생과 관련된 일을 처리하러 온 것이니까.
쾌속보로 순식간에 날아온 곳은 설산이었다.
그 넓은 설산 중에서도 가장 춥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곳, 대풍곡(大風谷)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바람이 분다는 이곳.
휘이이이이이이이잉.
골짜기 사이로 무시무시하게 강한 바람이 불었다. 무공을 익힌 고수조차 통과할 수 없다고 알려진 바람 계곡이었다. 인간의 뼈와 살을 찢어발기는 바람이 부는 곳이었다. 거기에 바람에 눈까지 휘몰아쳐서 시야까지 잘 보이지 않았다.
북해 사람들은 이곳의 바람을 광살풍(狂殺風)이라고도 불렀다. 말 그대로 정말 미친 바람이었고 죽음의 바람이었다. 어찌나 차갑고 매서운지 내공을 일으켜서 몸을 보호하더라도, 계곡을 통과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야말로 자연이 만들어낸 신비.
놈들이 한기에 대비할 방법을 찾는다는 추리를 듣고 나자 나는 비로소 이곳에 와야 할 순간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회귀 전, 대법 재료를 찾아 헤맬 때 온갖 곳을 다 돌아다녔다. 이런 곳을 만나면 오히려 더 악착같이 들어갔다.
이곳까지도 왔었으니까.
어휴, 정말 그 인생은 다시 살 자신은 없다.
휘이이이이잉.
바람을 뚫고 계곡 안으로 계속 걸어 들어갔다.
들어가면 갈수록 바람은 점점 강해졌다.
바람은 호신강기조차 찢어발겨 버릴 것처럼 매섭게 불었고, 날아가지 않기 위해서도 내력을 사용해야 했기에 안으로 들어가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여기쯤이었는데.’
그렇게 들어가다 오른쪽 벽에 난 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바깥의 바람을 피해 아주 잠깐 몸을 숨길 수 있을 공간이었다.
그때의 자신도 이렇게 몸을 숨겼다.
아마 운명이었을 거다. 이 틈의 끝 모서리에 다른 곳으로 향하는 통로가 있다는 걸 발견한 것은. 워낙 구석구석 살피고 다니던 시절이었으니까.
눈으로 봐선 전혀 알 수 없는 곳에 또 다른 틈이 있었다. 굵은 넝쿨로 막힌 곳 뒤에 있는 좁은 틈이었다.
전혀 들어가고 싶지 않게 생겼다. 들어가다 끼여서 딱 죽기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으니까.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한 사람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그곳을 계속 들어갔다.
그곳을 모두 통과하자 조금 널따란 공간이 나왔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그곳은 햇살이 들어오고 풀과 나무가 자라는 곳이었다. 바깥은 칼바람이 불고 있는데 이곳은 시냇물이 졸졸 흘렀다. 태고의 신비를 느낄 수 있는 곳.
“오랜만이구나.”
그 가운데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에 열려있는 하얀 열매. 마치 얼음덩어리가 매달린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바로 전설처럼 내려오는 영약.
만년설과(萬年雪果).
만년설삼보다 훨씬 더 많은 내공을 얻을 수 있으면서, 거기에 기가 막힌 효과가 하나 더 있었다.
추위에 강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차가운 속성의 어떤 기운이라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극도로 차가운 내공이 실린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한빙장(寒氷掌)에 적중당하더라도, 그 한기에 혈맥이 상하는 일이 없다는 의미였다. 반대로 한빙장을 익히는 것도 누구보다 쉽게 익힐 수 있었다.
예전 독왕에게서 얻은 천기단으로 한서불침(寒暑不侵)의 신체가 되었는데, 이 만년설과는 추위를 막는 데 있어서 특화된 영약이었다. 만약 두 영약이 중첩된다면 한계를 넘는 극한의 추위조차 이겨낼 수 있게 될 것이다.
회귀 전 삶에서는 만년설과를 복용하지 못했다.
만년설과에 담긴 한기가 워낙 강했기에 그냥은 복용할 수 없었다. 욕심을 부려 복용하는 즉시 혈맥이 얼어붙을 것이다. 아마 빙한신공(氷寒神功)을 대성한 빙궁주나 복용할 수 있는 영약이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만년설과를 두고 가면서 했던 말을.
다음에 인연이 되면 또 만나자.
그땐 회귀해서 이곳을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이제 시도해 볼 수 있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내공을 얻었고, 혈맥은 튼튼해졌으며, 무엇보다 천마호신공의 대성을 이뤘기 때문이다. 대성을 이룬 천마호신공이 이 만년설과가 내뿜는 한기로부터 몸을 보호해줄 거라 믿었다.
이 믿음이 조금이라도 모자란다면 만년설과를 복용하면 안 된다. 큰 내상을 입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게 운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회귀 전에 이곳을 발견했고, 천마호신공의 대성을 이루었고, 적은 극한지체를 찾아내서 이용하려 하고 있고.
운명이 내게 말하고 있다.
이제 만년설과를 복용할 때가 되었다고. 아니, 반드시 그걸 복용해야 한다고.
운명과 함께 본능도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극한의 한기에 대비한다면, 나 역시 대비하겠다.
‘천마호신공아, 너만 믿는다.’
만년설과를 손에 잡는 순간, 온몸이 얼어버릴 것처럼 차가움이 전해져왔다. 만지는 것만으로도 만년설과는 그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먹으면 죽는다고.
난 망설이지 않고 만년설과를 복용했다. 그것이 입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난생처음 느껴보는 한기를 느꼈다. 딱딱해서 쉽게 녹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입 안에 들어가는 순간, 순식간에 녹으며 극한의 한기가 몸속으로 퍼져나갔다.
이미 천마호신공은 발동해서 차가운 한기에 대항하고 있었다.
스스스스스스스슷.
비명이 절로 나올 차가움이었다. 정말 이렇게 차가운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천마호신공이 발동했음에도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당장에라도 이 기운을 몸 밖으로 배출해 버리고 싶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심이 들었다.
‘참자, 참아야 한다.’
만년설과의 기운을 녹이는 내내 나는 구화마공의 구결을 외우며 악귀들을 떠올렸다. 동서남북을 떠올렸고, 환상에서 보았던 천마혼들을 떠올렸다.
구화마공, 천마호신공과 관련된 모든 것을 떠올렸다. 그것으로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아버지를 떠올렸다. 나를 보며 비웃는 그 모습을 떠올렸다.
효과는 있었다. 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놀랍게도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으니까.
참고, 또 참고.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만년설과의 기운을 모두 녹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많은 양의 내공이 단전에 보태졌고, 무엇보다 내가 원한 바를 이루었다. 만년설과의 차가운 기운이 혈맥 곳곳에 영구적으로 서렸다.
이제 만년설과보다 더 차가운 기운이 내 몸에 침입한다면 모를까, 그 어떤 차가운 기운도 나를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놈들에게 대항할 또 하나의 무기가 생겼다는 생각에 나는 기뻤다. 이렇게 점점 더 강해지는 거다.
“이 힘은 반드시 좋은 곳에 쓰겠습니다.”
만년설과 나무에게 두 손을 모아 인사한 후 그곳을 나왔다.
좁은 통로를 지나 광풍이 푸는 계곡으로 다시 나왔다.
휘이이이이이이잉.
엄청난 바람이 나를 엄습했다.
내력을 일으켜 몸을 보호하지 않았음에도 살을 에는 바람이 전혀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광살풍은 이제 내게 춘풍이자 훈풍이 되었다.
회귀 전에는 이대로 왔던 길을 돌아갔다. 더는 계곡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의 나는 궁금했다. 저 끝에 무엇이 있을지.
그렇게 난 바람의 근원을 향해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