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18)
절대회귀-418화(418/424)
제418회 취마는 반드시 죽는다.
빙궁주는 말없이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마음이 심란한 것을 보면 서낙의 마지막 개수작은 성공했다.
그곳으로 한설이 들어섰다.
“궁주님.”
“왔느냐?”
빙궁주가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소교주와 북혈문에 다녀오려고 합니다.”
딸의 말에 빙궁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상 위험한 일임을 알았지만, 검무극을 믿고 보내기로 이미 마음먹은 그녀였다. 딸도 이런 경험을 통해서 진정한 무인으로 성장할 테니까.
사실 한설이 찾아온 건 북혈문에 간다는 보고를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어머니가 걱정되었다. 혹여라도 서 장로 때문에 상처받았을까 봐.
―꼭 말로 표현하시오.
어머니에게 보고하고 오겠다는 자신에게 검무극이 했던 말이었다. 눈치가 어찌나 빠른지 그는 자신이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말로 표현하기.
자신에게는 생사관의 관문처럼 느껴지는 말이다.
예전이라면 ‘그래, 잘 다녀오너라’라는 어머니의 대답으로 이 만남은 끝이 났으리라. 시선 한 번 제대로 마주치지 않고서.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한설은 똑바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보느냐?”
잠시 사이를 두고 한설이 말했다.
“괜찮으신가 해서요.”
빙궁주는 느꼈다. 딸이 저 말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도 감정은 서로에게 잘 전달되고 있었다.
“차 한잔하자.”
“오늘은 제가 할게요.”
한설이 직접 차를 우렸다. 빙궁주는 다탁에 앉아 말없이 그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딸이 우려주는 차는 처음이었다. 그 덕분에 우울했던 마음이 한결 가셨다.
“다 컸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차를 우리던 한설의 손이 잠시 멈췄다. 또다시 검무극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나이쯤 키워주셨으면, 이렇게나 컸구나, 그런 말씀 한 번쯤 나오게 하는 것도 자식 된 도리 아니겠소?
잠시 후, 한설이 차를 가져와 내려놓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차를 마셨다. 처음 마셨을 때보다는 덜 어색했다.
“나는 괜찮다.”
정말 괜찮았다. 서 장로의 배신이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미 그를 의심했기에 마인들을 궁에 받아들였던 거였고.
일부러 상처를 숨기는 기색이 아니기에 한설은 안도했다.
“다행입니다. 그럼 다녀올게요.”
괜히 어색해지기 전에 일어나려 했는데.
“잠깐만 기다려라.”
빙궁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준비해둔 것을 가져왔다. 그것은 한 벌의 호신갑이었다.
“천궁호갑(天宮護鉀)이다. 입고 가도록 해라.”
천궁호갑은 북해빙궁의 보물로 내려오는 호신갑이었다.
생각지 못한 호신갑에 놀란 한설에게 더 큰 감동이 전해졌다.
“만약 피할 사이도 없이 눈앞에서 자멸공을 쓰면 천궁호갑을 믿고 삭풍빙막(朔風氷膜) 초식으로 얼굴만 보호해라. 그럼 중상은 피할 수 있을 거다.”
딸을 걱정하는 마음이 한설에게 전해졌다. 그랬기에 인사하는 한설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말씀하신 대로 대처하겠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한설은 천궁호갑을 들고 궁주전을 내려왔다. 제대로 고마움을 전하고 왔어야 했는데. 너무 당황하고 놀라고 감격해서 제대로 감사 인사도 못 하고 내려왔다.
관계의 변화가 기쁘면서도 동시에 걱정도 되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봐온 서 장로도 어머니를 배신했다. 앉을 때 마음과 일어설 때 마음이 다른 게 인간인데.
어머니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 봐 두려웠다. 상처받게 될까도. 너무 오랫동안 상대의 마음을 생각지 않고 살아온 탓이었다.
* * *
하결이 수조가 있는 밀실로 들어섰다.
오직 이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계산된 한기가 오늘도 느껴졌다.
혈왕은 여전히 수조의 핏물 속에 잠겨 있었다. 극한지체를 지닌 이만 도착하면 대법을 마무리 짓고 저곳을 나오게 될 것이다. 이제 불과 이틀 남았는데 이런 소식을 전해야 한다니.
“서 장로가 죽었습니다.”
하결의 보고에 수조 속에 있던 혈왕이 눈을 번쩍 떴다.
“취마에게 당했습니다.”
그러자 핏물 속에서 들려오는 나직하고 깊은 울림.
“취마는?”
자멸공을 쓰는 혈인들이 지키고 있었으니, 취마 역시 무사하지 못할 거라 여겼겠지만.
“취마는 무사합니다. 그 자리에 마교 소교주와 빙궁주가 함께 있었습니다. 추측건대 세 사람의 합공으로 자멸공을 막은 듯 보입니다.”
핏물 속에 잠긴 혈왕의 표정이 무섭게 굳어졌다.
자멸공을 쓸 수 있는 혈인 한 명을 키우는데 막대한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
게다가 서낙은 빙궁을 온전하게 접수하기 위해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인물이었다. 그랬으니 혈왕의 분노는 당연했다.
수조의 핏물이 더욱 차갑게 식는 것이 느껴지더니.
잠겨 있던 혈왕이 천천히 수면으로 떠 오르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아악.
그가 핏물 속에서 몸을 드러냈다.
길게 뻗은 팔과 몸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그의 두 눈에서 흘러나오는 혈기는 감히 마주 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취마를 살려두지 않겠다.”
그가 당장 밖으로 나오려던 그 순간.
하결이 수조 앞에 절을 하듯 엎드렸다.
“참으십시오, 사부님!”
혈왕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그의 차가운 시선이 하결을 향했다.
“대업을 바로 앞에 두고 계십니다. 이제 이틀만 참으시면 됩니다.”
혈왕의 몸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하결은 안다. 이틀이 아니라 한 시진이 남더라도 그는 참지 않을 사람이다. 사부는 피 같은 사람이었다. 그 피는 용암처럼 끓고, 빙하처럼 얼어붙는 피였다.
“부디 이틀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들은 아직 우릴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서낙이 죽은 건 놈들이 백주설원의 원주를 죽인 흉수를 찾는 과정에서 발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부디 응징은 이틀 후로 미뤄주십시오.”
하결이 간절히 사부를 말렸다.
혈왕은 하결을 말없이 내려다보더니.
촤아아아아아아.
다시 핏물 속으로 잠겨 들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이틀 후면 오늘 참았던 분노까지 쌓여서 나올 것이기에, 취마는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하결이 두 눈에 힘을 주며 각오를 드러냈다.
“북혈문의 모두를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틀을 버텨내겠습니다.”
* * *
밀실에서 나온 하결은 곧장 양석의 거처로 돌아왔다.
건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에서 양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또 어딜 다녀왔나?”
“죄송합니다. 문주님을 뵙고 왔습니다.”
자리를 비울 때면 언제나 문주 핑계를 댔다.
양석은 그런 그가 못마땅했다. 비단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자주 자리를 비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하결을 대하는 게 어딘지 모르게 조심스러웠고 두 사람은 뭔지 모르게 은밀했다. 그래서 그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괜찮네. 난 자네 이해하네.”
이제 양석은 작전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자, 이건 그간의 노고를 생각해서 주는 거니 받게.”
양석이 봉투를 건넸다. 하결이 받아서 열어보니 백 냥짜리 전표가 세 장이나 들어있었다. 고생을 한다고 주는 돈치고는 큰돈이었다.
“받을 수 없습니다.”
“내 성의니까 받게.”
양석이 억지로 권했고 결국 하결은 못 이기는 척 전표를 받았다.
양석은 하결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서 역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내는 역할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진작 이랬어야 했는데.’
돈 싫어하는 놈이 어딨다고. 양석은 후회했다. 자신을 감시하는 아버지에게 화가 나는 바람에, 이성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 아버지가 천 냥을 주면 자신은 이천 냥을 줄 거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충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그때 수하가 와서 손님이 왔음을 보고했다.
“빙궁의 소궁주께서 오셨습니다.”
“벌써 왔다고?”
다시 오겠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혹시 동행한 사람이 있나?”
“네, 젊은 남자와 같이 왔습니다.”
양석은 그 젊은 남자가 마교 소교주임을 직감했다. 다시 올 때는 마교 소교주를 데려오겠다고 했으니까. 소교주가 안하무인으로 군다더니, 정말 그와의 갈등을 하루라도 빨리 해결하고 싶은 모양이다.
“가세.”
양석이 앞장서 걸었다. 마교 소교주가 어떤 자인지 어서 가서 보고 싶었다.
그를 뒤따르는 하결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마교에서 벌써 왔다?’
생각보다 마교의 움직임이 빨랐다. 서 장로를 죽인지 얼마나 되었다고.
‘게다가 양 공자를 공략하겠다?’
제대로 짚었다. 자신이라도 그리했을 테니까.
하결 역시 이렇게 발 빠르게 움직이는 마교 소교주가 궁금했기에 양석을 따르는 걸음에 속도가 붙었다.
* * *
한설은 검무극과 함께 객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전에 왔을 때와는 달리 오늘은 확실한 계획과 작전이 세워져 있었다.
원래 어지간한 일에도 잘 긴장하지 않는 한설이었는데, 오늘은 떨렸다.
그녀가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그는 전혀 긴장한 기색이 아니었다.
“당신은 안 떨려요?”
검무극이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왜 그렇게 떨리는지 아시오?”
“왜죠?”
“너무 잘하려고 해서요.”
그 말이 맞았다. 완벽한 연기로 계획을 성사시키고 싶은 마음이 분명 있었다.
“좀 못하면 어때. 내가 실수해도 저기 소교주가 알아서 하겠지. 이런 마음을 먹어 보시오. 그럼 하나도 안 떨릴 거요.”
그런 마음을 굳이 먹지 않더라도, 검무극의 말만 들어도 한설은 마음이 좀 편해졌다.
“이 무인이 그러더군요. 당신이 절대 죽으라는 명령은 내리지 않을 거라고요. 만약 그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당신이 죽어요. 그래도 내리지 않을 건가요? 마교가 망해도?”
검무극이 웃으며 그녀를 응시했다.
“맞소. 그래도 안 내릴 거요. 날 그렇게 좋아하는 수하를 죽여야 사는 인생이라면 살아서 뭐 하겠소? 본교도 마찬가지요. 여인 한 명의 생사에 존망이 오간다면, 차라리 망하는 게 낫소.”
한설은 검무극을 쳐다보다가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외면했다.
“허풍 아니오!”
알아요. 그래서 더 기분 나빠요.
그때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섰다.
하결은 입구 쪽을 지키고 섰고, 양석이 두 사람에게 걸어오며 밝게 인사했다.
“소궁주, 잘 오셨소.”
“소개해 드릴 귀한 분이 있어서 이렇게 또 찾아뵈었어요.”
그녀가 검무극을 소개했다.
“신교의 소교주이십니다.”
양석이 정중히 예를 갖춰 인사했다.
“북혈문의 양석입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반갑소, 검무극이오.”
양석은 조심스럽게 검무극을 살폈다.
그는 길 가다 부딪칠 뻔한 시비를 사정없이 두들겨 패는 성격이었지만,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는 예의 바르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뭐야, 이놈?’
검무극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젊고 잘생겼다. 우락부락 험악하게 생겼을 줄 알았는데.
“소교주께서 직접 백주설원 원주가 돌아가신 사건을 조사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사건은 조사가 다 끝났소.”
“끝났다고요?”
아직 양석은 그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한 상태였다.
“흉수는 서 장로였소.”
“설마 서낙 장로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요?”
“왜 아니겠소?”
양석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검무극은 그 반응으로 알 수 있었다. 그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음을. 북혈문주가 모든 정보를 아들과 공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서 장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죽었소.”
양석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랬다면 북해가 발칵 뒤집혔을 텐데.”
근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우린 소문내면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검무극의 말을 믿을 수 없기에 양석은 한설을 쳐다보았다. 눈빛으로 이 말이 사실이냐고 묻자, 그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주었다.
서낙의 죽음을 알리는 것을 시작으로 검무극이 슬슬 분위기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동생분이 극한지체를 찾았는데, 왜 찾았는지 아시오?”
검무극이 이렇게 대놓고 물어볼 줄 몰랐기에 양석은 당황했다.
“저는 그 일에 대해 모릅니다.”
“당신은 운이 참 좋은 사람 같소. 후계 다툼을 하던 동생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는데, 후계자가 된 걸 보니.”
비꼬는 말임을 알았기에 양석은 인상을 굳혔지만, 검무극은 계속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
“하긴. 당신은 우리 덕분에 후계자가 되었지.”
양석은 애써 분노를 억누르며 나직이 말했다.
“이유가 어쨌든 귀교의 마인 때문에 동생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내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정중했지만 뼈가 있는 말이었다. 사람 죽여놓고 이래도 되는 거냐고.
“우리 때문에 죽은 것 맞소?”
검무극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를 풀어줄 때, 그는 전혀 죽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소. 삶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지. 그런데 고작 납치당한 일로 자결했다? 당신이 생각해도 좀 이상하지 않소?”
검무극이 그를 빤히 쳐다보다 덧붙여 물었다.
“혹시 당신이 죽인 거 아니오?”
자연 분위기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한설이 검무극을 말렸다.
“증거가 없는 말입니다.”
“원래 흉수를 찾을 때는 그 죽음으로 누가 가장 큰 이득을 보았는가부터 살피는 것 아니겠소?”
“그렇다고 심증만으로 처리할 일은 아니지요.”
이 상황에서 한설이 자기 편을 들어 주자 그녀에 대한 양석의 호감이 자연스럽게 커졌다.
이 모든 건 검무극이 미리 계획한 일이었다. 자신은 몰아붙이고, 한설은 그를 두둔하고.
검무극이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객청 입구에 서 있는 하결을 향해 걸어간 것이다.
검무극은 하결이 시비에게 혈공을 쓰는 모습을 목격했기에, 그가 혈왕과 직접적인 관계에 있는 인물임을 알고 있었다.
갑자기 검무극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하결은 은밀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먼발치에서 검무극을 살폈지만,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느낌이 오지 않았다. 자신을 압도하는 실력일 리는 없고. 그렇기에 묘한 느낌만 받고 있었다.
검무극이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물었다.
“이름이 뭔가?”
“하결입니다.”
검무극이 하결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피 냄새가 짙군.”
내 정체를 알아차린 건가? 하결은 긴장하며 언제라도 출수할 준비를 했다.
“호위 무인 전에 낭인 생활을 했지?”
그 물음에 하결은 안도했다. 피 냄새가 난다는 말은 혈공을 익힌 것을 알아차린 게 아니라 호위 무인 같지 않다는 말이었다.
“나는 여러 무인 중에서 호위 무인과 낭인을 정말 좋아한다네. 자넨 그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검무극이 하결을 맡은 사이, 한설은 오늘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녀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양석에게 전음을 보냈다.
―죄송해요, 저 사람을 괜히 데려왔군요.
그 말은 마치 네가 저 마교 소교주를 잘 다룰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너도 어쩔 수 없구나. 하는 말로 들렸다.
양석은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교 소교주에게 욕을 할 수도, 한판 붙자고 할 수도 없었다.
그의 감정이 복잡해졌을 때, 한설이 조심스럽게 전음을 보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몇 번이나 고민했는데…….
―무슨 말이신데 그러시오?
―마교 소교주가 취마와 하는 말을 우연히 들었어요.
앞서 자신을 두둔해준 덕분에 지금 양석의 무의식에는 한설과 한편이란 생각이 있었다.
―말해보시오.
하지만 한설은 계속 망설였다.
―괜찮으니 어서 말해 주시오.
마지막까지 고민하는 듯하더니 한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하지만 양석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말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저들에게서 알아낸 정보로는 북혈문주가 후계자를 양 공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어요.
아버지가 후계자로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고?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극한지체를 구하는 목적도 새로운 후계자와 관련이 있다고 했죠.
사실과 거짓이 뒤섞이자 양석은 혼란스러웠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지 못했다. 자신은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동생을 죽였다. 그걸 아버지는 말리지 않고 보고 있었다. 자신의 집안은 그런 집안이었으니까.
―그게 누군지도 말했소?
그러자 한설의 시선이 천천히 객청 입구를 향했다. 검무극에게 붙잡혀 온갖 이야기를 듣고 있는 저 사람.
―하결이라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