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21)
절대회귀-421화(421/424)
제421회 추위는 나도 잘 견디는데.
양석의 입에서 ‘어이쿠’하는 외침이 절로 튀어나왔다.
정말 너무 놀라서 욕설을 내뱉을 뻔했다. 마차 안에 검무극이 있을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주 잠깐 침묵이 흘렀다.
“왜 연락 안 했냐니까?”
검무극의 물음에 양석이 뒤늦게 변명했다.
“그게… 저도 갑자기 알아낸 것이라서. 연락드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제가 찾아낸 후, 바로 연락드리려고 했었지요.”
얼마나 당황했으면, 양석은 목소리가 떨렸고 말까지 더듬었다.
“한데 소교주께서는 어떻게 알고 이곳에 오신 겁니까?”
“어떻게 알았을까?”
문제를 내듯 되묻는 검무극을 보며 양석은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알긴. 내 뒤를 밟았겠지. 젠장! 날 믿지 못해서 감시한 것이 틀림없다.’
검무극을 극한지체로 안내한 것은 바로 자신이었던 거다.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이동 경로를 알아냈다는 기쁨에 너무 흥분한 탓이다.
검무극의 등장에 놀란 건 양석만이 아니었다.
뒤쪽에 서 있던 하결은 양석보다 더 놀랐다. 검무극이 마차 안에 있어서가 아니다.
‘극한지체를 지닌 사람을 빼돌렸다.’
정말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앞서 취기가 깔렸을 때 취마가 빼돌린 것이 틀림없다. 지금 당장 취마의 뒤를 쫓아야 한다.
‘이쪽으론 오지 않았으니까. 저 마차 뒤쪽. 반대쪽이다.’
그가 마차를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양석을 향해 다가가는 척하다가 단숨에 마차를 넘어 취마를 뒤쫓을 생각이었다.
사람을 안고 빠져나가고 있을 테니, 잘하면 잡을 수도 있다.
소교주고 양석이고, 지금 하결의 머릿속에는 오직 극한지체뿐이었다.
검무극은 그런 그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았다.
“어차피 못 간다. 시도도 하지 마라.”
검무극의 경고가 떨어지는 순간, 오히려 하결은 몸을 날렸다.
파앗!
가볍게 땅을 박차고 도약한 하결의 경공은 검무극의 경고를 무시해도 될 만큼 훌륭했다.
순식간에 마차를 뛰어넘어 날아가려던 그때.
파앙!
허공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고, 하결은 원래 있던 자리로 추락하듯 떨어져 내렸다.
공간을 순간적으로 이동하듯 순식간에 자신 앞을 막아선 검무극이 일장을 날린 것이다.
공격을 막은 하결의 왼팔이 욱신거렸다.
‘강하다.’
이번에는 당한 하결보다 양석이 더 놀랐다. 마차 지붕을 뚫고 올라가서 막았다면 이렇게까지 놀라진 않았을 거다.
한데 검무극은 눈 깜짝하는 사이에 사라졌고, 어느새 마차 위 허공에서 하결을 막은 것이다. 언제 마차에서 내려서 위로 날아올랐단 말인가?
여기 세 사람 중 가장 무공이 떨어진다고 해도, 그래도 자신은 북혈문의 후계자가 아닌가? 검무극의 움직임을 두 눈 뜨고 놓쳤다. 그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었을 거란 의미다.
하결을 원래 자리로 보낸 검무극은 마차 지붕에 걸터앉아 있었다.
“호위란 자가 모시는 사람 머리 위를 넘어가면 되겠나?”
자신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라 마차 옆에 서 있던 양석을 의미했다.
양석이 일러바치듯 소리쳤다.
“저자가 저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는 드디어 차도살인을 실행할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비록 자신이 빼돌리려던 극한지체는 사라졌지만, 저 하결을 죽일 기회가 온 것이다.
“소교주님! 부디 바라옵건대 놈에게 이 무림에는 지엄한 상하(上下)가 존재한다는 엄중한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하결은 차갑게 조소했다. 자멸공에 죽을 걸 살려줬는데, 저렇게 뻔뻔하게 나오는 것이다.
“처음 볼 때부터 내가 피 냄새가 난다고 했지.”
검무극의 여유에 하결은 고민에 휩싸였다.
‘이미 늦었다.’
극한지체를 데려간 사람이 일반 무인이라면 모를까, 취마가 데려간 것이라면 이미 추적할 수 없을 만큼 멀리 가버렸을 것이다.
정말이지 이런 변수가 발생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검무극과 취마가 원주의 죽음에만 신경 쓴다고 방심한 탓이다.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소교주와 담판을 지어서 극한지체를 되찾아야 한다.’
그 방법은 두 가지였다. 일단, 한발 물러나서 천천히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다. 안전하고 현명한 방법이지만 극한지체를 찾을 가능성은 시간이 갈수록 희박해질 것이다.
문제는 사부다.
‘과연 사부께서 기다려 주실까?’
수조 속에서 인내의 한계에 다다른 사부였다. 극한지체를 검무극에게 빼앗겼다고 보고하면, 당장 수조 속을 나오고 말 것이다.
‘결국 이 자리에서 담판을 지어야 한다.’
과연 이 소교주를 이길 수 있을까?
조금 전 보여준 한 수는 정말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이 마교 소교주를 함부로 죽여선 안 된다는 점이다. 그랬다간 극한지체를 구하지 못한 것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고수가 되면 될수록 죽이는 것보다 제압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인데.
그가 이 골치 아픈 상황에서 갈등하는 사이 검무극은 마차 지붕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간은 자신의 편이다. 칼자루도 이쪽에서 쥐었고. 먼저 몰아붙일 게 아니라 그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보면서 대응하면 된다.
유리한 국면임에도 일을 망치는 가장 큰 이유는 조급한 마음을 이겨내지 못해서다. 유리하기에 이길 것 같고, 더 잘 될 것 같고. 그래서 더 빨리 좋은 결과를 보고 싶은 그 단순한 욕망.
단순하기에 강력한 그 욕망을 참아야 한다.
유리한 상황에서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으니까. 유리했기에 더 급해지고, 더 아쉽고, 더 화나고. 게다가 상대는 역전의 기세까지 올릴 테고. 결국 다 망쳐버리는 거다.
이럴 때 보라고 하늘이 있는 거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검무극의 모습을 보며 양석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날 보지 말고 하늘을 보시오.”
“아, 네!”
검무극의 말에 양석은 놀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하늘이 눈에 들어올 리 없는 그였다.
‘제발 죽여주시오!’
일단 하결부터 없애고 생각하는 거다. 차도살인지계를 펼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지금 검무극을 혈왕에게 데려다주는 안내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때 주위 공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하결이 감춰두었던 기도를 드러냈다.
앞서 양석에게는 반의반 정도 드러낸 기도를 완전히 다 개방한 것이다.
뜨거우면서도 무거운 그의 기도가 주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가 본모습을 드러내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정말 그의 기도에서는 피 냄새가 났다.
이 섬뜩한 기도에 양석은 토할 것 같은 공포심을 느꼈다. 그가 고수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고수일 줄이야.
‘이거 혹시 소교주가 지는 것 아닌가?’
사실 그의 안목으론 누가 더 강한지를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다만 자신을 드러낸 하결의 존재감이 그만큼 대단했던 거였다.
양석을 두렵게 만든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하결의 뒤편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던 혈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숫자는 모두 일곱. 눈빛과 서 있는 자세만 봐도 고수임을 알 수 있는 그들은 모두 자멸공을 쓸 수 있었다.
하결이 검무극에게 물었다. 예를 갖췄던 말투도 바뀌었다.
“마차에 타고 있던 사람 어디에 있나?”
그는 이곳에서 소교주를 압박해서 극한지체를 찾겠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검무극은 그의 선택으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상대는 자신의 진면목을 전부 드러내야 할 만큼 극한지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추위는 나도 잘 견디는데, 날 데려가는 건 어때?”
이 상황에서 장난을 쳐? 검무극을 향한 하결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
“마교 소교주라고 내가 못 죽일 것 같지?”
“아니. 너희는 혈육도 죽이는 자들이잖아? 죽일 수만 있다면 우리 아버지도 죽이려 들겠지.”
그 말에 옆에 서 있던 양석이 내심 움찔했다. 검무극이 말한 혈육도 죽이는 자가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하결이 검무극에게 물었다.
“원하는 것이 뭐냐?”
마차에 남아 있었다는 건, 원하는 게 있다는 의미. 과연 검무극에게는 목적이 있었다.
“네가 모시는 사람 만나게 해줘.”
하결은 겉으로 표를 내진 않았지만 내심 동요했다.
‘사부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양석은 순간 그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오해했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이제 그는 해서는 안 될 생각을 서슴없이 했다. 이곳에 하결이 나타나는 순간, 아버지는 완전히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느 쪽에 붙어야 하나?’
하결이 이렇게 대단한 고수라는 사실을 알자 그는 고민에 빠졌다.
하결에게 붙는 것도 최악의 선택은 아니었다. 맨 처음 수하까지 죽이면서 자신을 구한 걸 보면 자신을 죽일 것 같지 않았으니까.
‘지금이라도 하결에게 붙어야 하나? 아니야. 그러다 놈이 소교주에게 당하면?’
자신은 소교주를 배신한 셈이 된다.
하지만 이내 양석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 싸우지는 않겠지?’
생각해 보라. 마교 소교주라는 귀한 신분인데, 굳이 함부로 목숨을 걸겠는가? 마교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일도 아닌데.
하지만 상황은 그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거절한다면?”
사부를 만나게 해줄 리 없는 하결이었다.
그러자 검무극은 담담히 말했다.
“그럼 널 살려둘 유일한 이유가 사라지겠지.”
하결은 검무극의 말이 단순한 협박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나를 죽일 작정이다.’
그렇다면 죽일 자신이 있다는 의미인데?
하결이 기를 끌어올려 주위를 살폈다. 혹시 취마가 돌아온 것이 아닌지 살펴본 것이다. 하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검무극 혼자서 자신을 죽이려는 거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마음만은 검무극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천마의 아들이라도, 아직 너무 젊은 그였으니까. 천마의 무공을 이어받고 나이보다 많은 내공이 있더라도, 경험만은 어쩌지 못할 터.
더구나 자신이 익힌 혈공을 경험한 적은 한 번도 없었을 테니.
‘해보자.’
마교 소교주가 극한지체에 자신의 목숨을 바치지는 않을 것이다.
‘소교주를 제압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극한지체를 내놓을 거다.
만에 하나라도 그 과정에서 검무극이 죽으면? 그땐 어쩔 수 없이 그 책임을 북혈문주에게 뒤집어씌워야겠지. 극한지체를 찾을 수만 있다면 해볼 만하다.
“우리 소교주께서 피 맛을 좀 보셔야겠소.”
일곱 명의 혈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이 일제히 뽑아 든 검에서 붉은 기운이 흘렀다. 혈기를 검기처럼 사용할 수 있는 고수들.
하결은 그들의 합공이라면 검무극을 죽이진 못해도 적어도 상처는 입힐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운이 좋으면 그 과정에서 자신이 검무극을 제압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고.
정말 그렇게 생각했는데.
번쩍하는 순간, 검무극이 점멸보로 왼쪽에 있는 혈인에게 쇄도했다.
쉬익! 서걱!
한 줄기 바람 소리와 목뼈가 잘리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막을 수 없었다.
번쩍하고 눈앞에 나타난 검무극의 공격을 본능과 머리에 전하기도 전에 검은 이미 목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속도였다.
그와 가장 가까운 혈인이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지만, 검은 허공만 갈랐다. 하지만 그 빗나감에 크나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심장이 찔린 두 번째 혈인이 바닥에 쓰러지기도 전에, 검무극은 이미 암영보를 발휘하고 있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검무극은 가운데 서 있던 두 혈인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푹! 푹! 푹! 푹!
검무극은 좌우에 있는 두 혈인의 목과 심장을 연속해서 찔렀다. 좌측 심장에 한 번, 우측 목에 한 번, 좌측 목 한 번, 우측 심장 한 번.
그 네 번의 공격은 어찌나 빠른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두 혈인이 그대로 쓰러졌고, 다섯 번째 혈인이 자멸공을 쓰기 위해 얼굴과 몸이 붉어지던 바로 그 순간.
퍼어어어엉!
혈기에 쓰러진 사람은 또 다른 혈인이었다.
검무극이 자멸공을 쓰는 혈인을 순식간에 제압하며 인형처럼 돌려서 그의 몸이 다른 혈인을 향하게 한 것이다.
여섯 번째 혈인은 자멸공에 당한 채 쓰러졌다. 자멸공으로 내뿜어지는 혈기는 그들 자신도 피하거나 막을 수 없는 위력이었다.
일곱 번째 혈인도 자멸공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검무극이 한 발 더 빨랐다.
푹푹푹푹푹!
흑마검이 그의 전신을 연이어 찔렀다. 순식간에 온몸의 주요 혈맥이 모두 끊어지자, 붉어진 얼굴이 다시 원래 색을 되찾았다. 자멸공을 쓰는 속도보다 검무극의 검이 더 빨랐던 것이다.
그렇게 눈 깜박할 사이에 일곱 모두 시체가 되어 쓰러졌다.
양석은 두 눈을 부릅뜬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지금껏 실전도 여러 번 경험해봤고, 남들 싸움도 여러 차례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했던 싸움은 싸움도 아니었다고.
검무극이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촤아아악. 바닥에 일직선으로 피가 뿌려졌다.
“피 맛이 별로인데?”
하결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 있었다. 마교 소교주니 강할 줄은 알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강하다고?
피 맛을 보여주겠다고 자신했지만, 검무극의 피 맛을 자신이 본 셈이었다.
“역시 구화마공이군.”
당연히 천마의 무공이라 생각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
“구화마공 아닌데? 너희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닌가? 고작 네 수하들을 상대하는데 구화마공까지 사용할 줄 알았나?”
“독문무공을 쓰지 않은 실력이 이 정도라고?”
하결의 충격은 당연했다. 그냥 수하들이 아니었으니까. 저들 일곱을 키워내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공을 들였는지 모른다. 저들은 이렇게 죽을 이들이 아니었다.
“구화마공을 보고 싶으면 네 수장에게 안내하라니까.”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검무극을 이길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허풍일 수도 있다. 겁을 먹게 해서 싸움에서 우위에 서려는 수작.
어쨌든 사부에 대해 말해 주지 않는 한, 자신을 그냥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죽는 한이 있어도 사부에 대해 말할 생각은 없다.
하결이 검을 뽑았다. 그의 검에서 한 줄기 붉은 기운이 날을 따라 흘렀다. 앞서 수하들의 검에 흐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이 느껴졌다.
“구화마공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내가 확인하면 되겠지.”
자신을 향한 차가운 눈빛과 주위를 휘감는 뜨거운 혈기로 검무극은 알 수 있었다. 그가 죽음을 각오했음을.
“그럼 살짝 맛만 보여주지.”
검무극의 입에서 하결이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이 흘러나왔다.
“동서남북 중 어느 방향을 좋아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