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23)
절대회귀-423화(423/424)
제423회이젠 더 독한 술이 필요하겠군.
양석은 바닥을 구르는 하결의 머리통을 멍하게 보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대단한 고수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 대단한 고수를 연습 상대 취급하며 죽여 버린 검무극의 실력은 놀라움을 넘어 경외심이 들 정도였다.
사실 양석은 두 사람이 펼쳤던 격돌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야말로 번쩍번쩍, 콰콰쾅, 하다 보니 싸움이 끝나 있었다.
그가 유일하게 제대로 본 것은 검무극이 마지막에 보여준 그 한 수였다.
‘대체 그 악귀는 뭐지?’
마교의 무공이 무서운 줄은 알았지만 정말 악귀가 현신할 줄은 몰랐다. 그것이 나왔을 때 너무 놀라고 무서워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양석이 조심스럽게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같이 밤새 술 마시자던 그와 조금 전의 싸우던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또 지금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검무극 역시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을 죽일까 말까를 고민하는 것만 같아서 양석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무릎을 꿇고 싹싹 비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살고 봐야 한다.’
검무극에게 연락하지 않고 혼자 극한지체를 빼돌리려 한 일은 분명 죽어 마땅한 일이다.
‘성공했다면 극한지체가 비장의 무기가 되었을 텐데.’
양석은 너무 아쉬웠다. 아버지와도, 검무극과도 협상할 수 있는 비장의 한 수를 잃어버렸으니까. 여분의 목숨이 날아갔다.
“양 공자.”
“네, 소교주님.”
대답하는 양석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미안하지만 너도 죽어야겠다는 말만 나오지 않기를!
“이제 배후를 찾는 일은 양 공자에게 달렸소.”
양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살았다고 생각하자 오히려 더 몸이 떨렸다.
“배후에 대해 아는 바가 있소?”
“아뇨, 없습니다.”
아니다. 지금 거짓말을 할 때가 아니다.
“사실 본문의 문주님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란 말 대신 문주란 표현을 썼다.
“저도 이번에 알았습니다.”
검무극은 그가 그렇게 오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다른 것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한다는 걸. 그랬기에 저 말이 서슴없이 나오는 거다.
“저자의 배후는 당신 아버지가 아니오.”
“아니라고요?”
검무극이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은 후 말했다.
“대신 당신 아버지는 하결이 모시는 사람에 대해 알고 있을 거요.”
하긴. 생각해 보면 앞서 하결이 보여준 그 무서운 혈공은 아버지보다 강하면 강했지 약할 것 같지 않았다.
이제야 양석은 아버지와 하결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하결을 어려워했는지. 하결의 무공이 고강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의 뒤에 더 대단한 고수가 있었던 거다.
‘그래서 하결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던 거구나. 놈들의 협박에 못 이겨서.’
양석은 이 상황을 그렇게 곡해했다.
그럼 아버지도 어쩔 수 없었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그는 아버지를 원망했다.
‘외압에 굴복해 자식들을 쳐내다니!’
이미 검무극이란 칼을 이용해서 모두 처리하고, 자신이 문주가 되겠다고 결심한 그였다. 그는 모든 상황을 천륜을 거역하려는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쪽으로 해석했다.
게다가 아까 하결의 손짓에 혈맥이 부풀어 올라 금방이라도 터지려 했다. 자신의 몸에 빌어먹을 뭔가가 심어진 걸 오늘에서야 알았다.
양석은 분노가 치밀었다. 그건 이번 일에 관계된 자들을 남김없이 다 죽이고 싶은 강렬한 살의였다.
검무극은 그런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기에 그들 부자의 갈등을 더 부추겼다.
“당신 때문에 하결이 죽었다는 게 곧 당신 아버지에게 알려질 거요. 그럼 당신 아버지가 당신을 용서하겠소?”
살아남고자 하는 양석의 열망이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 낼 것이기에.
“용서하지 않으실 겁니다.”
양석은 ‘왜 나 때문이오?’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감히 그러지 못했다. 지금은 따질 때가 아니라 검무극에게 잘 보여야 할 때였으니까.
“어떻게든 배후를 빨리 알아내야겠군요.”
“아까 말했듯 그걸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양 공자뿐이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양석은 망설이지 않았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버지를 만나서 하결의 배후에 있는 인물을 알아내시오.”
“제게 말해주지 않을 겁니다.”
“평소라면 그럴 거요. 한데 하결이 죽으면서 상황이 바뀌었소. 당신이 제대로 된 방법으로 접근한다면 분명 우리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 거요.”
“그게 어떤 방법입니까?”
그러자 생각지 못한 대답이 나왔다.
“솔직하게 다가가 보시오.”
솔직함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그였기에, 검무극의 말이 너무 낯설게 들렸다.
“당신이 얼마나 솔직하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거요.”
양석은 반신반의했다. 아니, 통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자신은 솔직해져 본 적이 없고, 아버지는 상대의 거짓말을 누구보다 잘 알아차리는 사람이었으니까. 솔직하게 다가서는 것 자체가 거짓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양석은 그런 속마음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그는 솔직함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지금 양석의 바람은 이것뿐이었다.
‘그래, 내가 어떻게 해서든 알아낼 테니 아버지도, 그 배후란 놈도 다 해치우고 떠나라! 제발 나의 북해에서 꺼져라!’
* * *
검무극이 빙궁의 거처로 돌아왔을 때, 취마는 창가 탁자에 앉아 홀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검무극이 돌아올 거로 예상했는지 앞에 놓인 잔은 두 개였다.
미리 준비해둔 그 잔을 보자 검무극은 기분이 좋아졌다. 이 잔은 자신에 대한 취마의 믿음이다.
그 믿음에 취마가 따라준 술이 가득 찼다.
“배후는 알아냈어?”
“아니.”
자멸공을 서슴없이 쓰는 자들이었다. 비밀만큼은 철저히 지키는 자들이다.
물론, 한 가지 강하게 드는 예감은 있었다.
“놈이 북혈문에 있는 것 같아.”
극한지체를 구한다는 것은 대법을 하려는 목적일 터.
이런 상황에서 수족인 하결이 북혈문에 있었다면, 혈왕 역시 북혈문 어딘가에 숨어 있지 않겠는가?
“놈이 있든 없든 어차피 북혈문도 정리하겠지만.”
그들은 약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체질 조사를 하고 큰돈을 주겠다는 말로 사람들을 유혹했다.
사람들 대부분 극한지체가 아니기에 모두 죽음을 맞았다. 이것만으로도 북혈문주와 양석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저지른 것이다.
“참, 우리가 구한 분은?”
취마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솜씨로 마차에 있던 사람을 구해냈다.
“우선 본교 안가에 숨겨두었다.”
“어떤 분이었어?”
“자식 치료비를 구하려고 자원한 아버지.”
취마는 검무극이 할 일을 이미 다 처리한 후였다.
“그 사람이 사는 쪽 지단에 기별했다. 늦기 전에 애 치료부터 해주라고.”
“멋지다, 우리 형.”
“멋지긴.”
솔직히 고백하자면 검무극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랬다.
취마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누군가를 구하고, 그 구한 사람의 자식을 위해 연락하고.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남이야 죽든 말든, 내 알 바 아닌 사람이다. 평생 홀로 술이나 마시며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던 인생이었는데.
그랬던 자신이 이제 남을 위하고 있다. 검무극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처음 후계자 싸움에 끼어들었을 때만 해도 검무극과 이런 관계가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는데.
“너 아니었다면 기별은커녕 그 사람 구하기나 했겠어?”
“마찬가지야. 이안이 물 얻어 마신 아낙의 남편 구하러 오지 않았다면 나도 극한지체에 관심이나 있었겠어?”
취마는 ‘그 이안이 무림에 나와 그 일을 한 것은 누구 때문인데?’라고 물으려다 말았다. 검무극이 의외로 생색내고 칭찬받는 걸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제 어떻게 하려고?”
“놈은 극한지체도, 수족도 잃었어.”
“복수하러 나오겠군. 아니면 영원히 숨어들거나.”
혈왕이 두 가지 길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혈왕은 당하면 반드시 갚는 인물이었다.
“반드시 피를 보려 할 거야.”
자신의 술잔을 내려다보는 취마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이젠 더 독한 술이 필요하겠군.”
* * *
북혈문주는 약간 들떠 있었다.
‘드디어 오늘이군.’
극한지체가 도착하는 날이다. 극한지체를 이용해서 대법을 완성하면 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예전에 하결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극한지체만 찾아 대법을 마치면 북해빙궁은 끝장이다. 빙궁주의 무공은 무력화되고, 너무 추워서 오직 빙궁주만이 들어갈 수 있는 빙궁보고(氷宮寶庫)에도 들어갈 수 있겠지.
이 북해 무림에서 빙궁이 사라진다는 건, 북혈문이 북해제일문이 된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것이 그의 숙원이었다.
‘계집에게 눌려 평생 이렇게 지고 살 수는 없지.’
놀랍게도 젊은 시절부터 그런 마음을 지니고 살아온 그였다. 그는 빙궁주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어쩌면 그래서 더 쉽게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 드디어 뱀 대가리에서 용 꼬리가 되는구나.’
꼬리라도 상관없다. 언제까지 꼬리로 살지는 않을 테니까. 언젠가 꼬리처럼 보였던 그것이 입을 쩍 벌려서 대가리부터 몸통까지 다 잡아먹어 버릴 테니까.
어쨌든 지금은 저들을 이용해서 북해빙궁을 쳐내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고. 두 사람 모두 차도살인을 꿈꾸는 중이었다.
그때 그곳으로 양석이 들어왔다.
“문주님을 뵙습니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냐?”
“종일 하결이 보이지 않아서 찾아뵈었습니다. 혹 이곳에 있지 않나 해서요.”
당연히 북혈문주는 하결이 어디에 갔는지 알고 었다. 극한지체를 인수하러 갔을 거다.
“내가 잠시 어디 보냈다.”
양석은 표정 관리를 위해 애썼다. 한 번 신뢰가 깨어지니 한마디 한마디가 다 거슬렸다.
‘내겐 단 한 번도 솔직히 말해주지 않는구나.’
이런 사이인데 솔직함을 발휘하라고?
‘놈이 죽은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군.’
하결의 죽음이 전해지면 자신이 의심받을 수 있다. 그와 사이가 좋지 못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자신을 의심하진 않을 것이다. 하결의 무공 실력이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났으니까. 그 정도는 알고 계시잖아요? 문주님.
“한 가지 여쭐 게 있습니다.”
“뭐냐?”
“극한지체는 왜 찾으시는 겁니까?”
생각지 못한 질문이기에 북혈문주는 의외란 눈빛으로 아들에게 되물었다.
“갑자기 그건 왜 묻느냐?”
“이제 저도 알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본문에서 오랜 시간과 많은 돈을 들인 일이잖습니까?”
북혈문주는 말없이 아들을 응시했다. 어딘지 모르게 평소와 다르다는 걸 느꼈다.
“나중에 때가 되면 알려주마.”
그때 수하가 황급히 들어와서 소식을 전했다.
“급보입니다.”
“무슨 일이냐?”
수하는 양석을 한 번 쳐다보더니 이내 빠르게 보고했다.
“소문주님의 호위인 하결이 죽었습니다.”
북혈문주가 두 눈을 부릅떴다.
양석은 아버지가 이렇게 놀라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동생이 죽었을 때도 저런 표정은 짓지 않았는데.
반대로 양석은 놀라는 연기를 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
혼신의 연기를 해야 한다. 여기서 잘못 처신했다간 자신이 그 일에 개입한 사실이 들킬 테니까.
“자세히 보고하라니까!”
펄펄 날뛰는 양석과 달리 북혈문주는 아무 말이 없었다.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에는 상반된 두 감정이 격렬히 충돌하고 있었다.
우선은 기뻤다. 혈맥을 부풀려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자가 죽었으니까.
그와 동시에 걱정이 밀려들었다. 하결은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고수다.
‘대체 누가 그를 죽였단 말인가?’
그의 죽음은 곧 그와 손잡은 자신의 위기 아니겠는가?
‘빙궁주인가?’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빙궁주였다.
“어디서 어떻게 죽었느냐?”
“본문으로 오는 길목에서 목이 잘려서 죽었습니다. 주위에 마차와 다른 십여 구의 시체도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마차가 발견되었다는 말에 북혈문주는 알 수 있었다.
‘호송이 털렸구나!’
누군가에게 극한지체를 빼앗겼음을 직감했다.
‘누군지 몰라도 극한지체가 오늘 우리 쪽에 호송되는 걸 알고 있는 자다.’
북혈문주가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극한지체를 얻고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과 공을 들였는데. 낭패였다.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양석은 수하에게 명령했다.
“흉수를 추적해라! 죽은 자들을 조사해서 빨리 사인을 찾아내고.”
“네, 알겠습니다.”
수하가 물러가자 양석이 물었다.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을 시키신 겁니까?”
북혈문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우선 밀실 속에 있는 그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거다. 밀실 속 밀실에 하결이 모시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문제는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하결도 감당하기 어려웠는데. 극한지체를 빼앗긴 상황에서 그를 만난다? 그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다.
두 번째 방법은 자신이 극한지체를 찾아내는 거다. 하결은 죽었지만, 극한지체만 있으면 밀실에 있는 인물은 만족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하결의 역할까지 대신하면서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양석은 양석대로 이때다 싶어 승부수를 던졌다.
“아버지.”
지금껏 문주님이라 칭하던 그가 아버지라 말했다.
북혈문주는 물끄러미 양석을 쳐다보았다.
“아버지께서 저 모르게 하결과 모종의 일을 계획하셨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양석은 검무극의 조언을 받아들여 솔직함으로 접근했다. 아니, 정확히는 허심탄회한 척이었지만.
“그게 무슨 일인지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아버지를 돕게 해주십시오.”
북혈문주가 뭐라 대답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그르르릉.
태사의 뒤쪽 벽에 있던 비밀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결과 밀담을 나누던 바로 그 밀실의 문이었다. 거기에 또 다른 밀실을 품고 있던 바로 그 방의 문이었다.
북혈문주는 하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 더 경악한 눈빛으로 열리는 문을 쳐다보았다. 먼저 열려서는 안 될 문이 열리고 있었다.
“흐읍!”
양석이 인상을 쓰며 손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지독한 피 냄새가 문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