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7)
절대회귀-47화(47/424)
제47회 공백은 네가 메워라.
잠시 후 능휴가 그곳으로 들어왔다.
“속하, 마존의 부르심을 받고 달려왔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그의 허리춤을 향했다. 과연 그곳에는 귀술사들이 차고 다니는 귀선이 없었다.
“귀선은 어디에 있느냐?”
“어제 잃어버렸습니다.”
그러자 섭혼마가 들고 있던 귀선을 그에게 던졌다.
“제 것입니다. 이것이 어디서 났습니까?”
그는 감히 섭혼마존에게 묻지 못하고 내게 질문했다.
“어제 여러 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이 함께 발견되었네.”
내 대답을 들은 능휴는 흠칫 놀랐다. 자기 소지품이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었다는 일반적인 놀람과는 다른 형태의 놀람이었다.
그리고 능휴 역시 시체가 어디에서 발견되었는지 또 사인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아, 이 능휴가 시체 처리를 맡은 자구나!’
섭혼마존이 심혼대법을 펼치고 있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같이 가서 조사를 받아야겠네.”
능휴는 나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사람을 쳐다보며 처분을 바랐다.
섭혼마존은 말없이 그를 쳐다보기만 했는데, 그가 특이한 방식으로 전음을 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곧이어 능휴가 내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함께 가시죠.”
그는 무죄를 항변하거나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체포되었다.
나는 섭혼마존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뵙지요.”
섭혼마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은 더없이 평온했기에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 * *
돌아오자마자 능휴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
특별조사관들이 돌아가며 조사했지만, 그는 부채를 잃어버렸다는 말만 할 뿐, 일체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입을 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서대룡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섭혼마존에 대한 충성심과 공포심이 너무 강해, 어떤 회유나 심문도 통하지 않을 상대였다.
“그들을 살해했다는 증거가 없어서, 오래 잡아둘 수 없을 겁니다.”
“어차피 놈은 하수인에 불과해. 잡으려면 섭혼마존을 잡아야지.”
내 눈빛에 담긴 기세를 읽었는지, 서대룡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상대는 섭혼마존입니다.”
“혹시 내가 처음 부임해 왔을 때 자네들에게 했던 말 기억나나? 아버지가 잘못해도 잡으러 간다고.”
“네.”
“그럼 조심은 그자가 해야지. 가서 전해라. 조심하라고.”
“제게 그럴 용기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날 내 집무실로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놀란 얼굴로 들어온 서대룡은 말까지 더듬었다.
“교, 교주님이 방문하셨습니다.”
나도 깜짝 놀랐다. 아버지가 이곳을 찾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어서 모셔라.”
서대룡이 나가고 곧이어 아버지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아버지? 이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지나가다 들렀다.”
그럴 리가. 아버지는 내게 하실 말씀이 있으셔서 오신 것이다.
“차도 있고, 술도 있습니다.”
“대낮부터 무슨 술이냐. 차나 한잔하자.”
내가 직접 차를 타서 내왔다. 그동안 아버지는 내 자리 뒤쪽 창가에 서서 밖을 쳐다보고 계셨다.
“차 드십시오.”
아버지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직 섭혼마존은 건드리면 안 된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말씀을 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내가 서환진에 가서 능휴를 체포해 온 사실을 알고 계신 것이다. 그리고 시체가 발견된 이상 내가 섭혼마존을 그냥 두지 않으려 한다는 것까지도.
“왜 안 됩니까?”
“네 무공으론 죽일 수 없으니까.”
“방심하고 있을 때 베어버리면 되죠. 안 되면 등을 찔러서라도 죽일 겁니다.”
“죽이는 것보다 그이의 등 뒤에 서는 것이 더 어려울 거다.”
“섭혼마존이 그렇게나 강합니까?”
“가장 약하기도 하고, 가장 강하기도 하지.”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그의 섭혼술을 넘어선다면, 그러니까 그의 사술이 통하지 않는 무공을 익히거나, 사술이 통하지 않는 무학의 경지에 이르면 그는 가장 쉬운 상대가 된다는 의미였다. 사술을 빼면 섭혼마존의 무공은 별것 아닐 테니까.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아버지에게 가장 약한 마존은 섭혼마존일 것이다. 섭혼마의 사술은 아버지에게 전혀 통하지 않을 테니까.
“제가 넘어서게 도와주시겠습니까?”
“단시일에는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보셨다시피 제가 생각보다 배움이 빠르지 않습니까?”
“그걸로는 어림없다. 섭혼마의 섭혼술을 막을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구화마공을 익히는 것이다. 익힌 자의 자질에 따라 막아낼 수 있는 정도가 다르겠지만, 너라면 오 성에만 도달해도 섭혼의 사술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첫 번째로 막게 해주십시오.”
후계자로 삼아달라는 내 부탁을 아버지는 못 들은 척 두 번째 방법을 말씀하셨다.
“아니면 천마호신공의 대성을 이루는 것이다. 둘 다 지금은 불가능하니 물러서라는 거다.”
그때 내 마음에 떠오른 한 가지 해결책. 내가 회귀를 했기에 알고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아버지, 사실 세 번째 방법도 있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보다 백 배는 더 쉬운 방법이죠.
문제는 사실 다른 데 있었다.
“섭혼마존이 본교에 꼭 필요한 존재입니까?”
아버지는 느끼셨을 거다. 내 차분한 질문에 담긴 살의(殺意)를.
“팔마존 중 정파인들이 가장 까다롭게 여기는 이가 섭혼이다.”
돌려 말했지만, 꼭 필요하다는 말씀이었다.
“대법을 위해 살아 있는 채로 사람의 심장을 뽑고 있는데도요?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이번에 알았다.”
과연 아버지는 어떻게 처리하실까?
아버지라고 어디 산 채로 심장을 꺼내는 놈을 좋아하시겠는가?
다만 교를 이끄는 처지에서 무림맹을 상대할 때 본교에서 가장 강한 전력이 될 사람을 함부로 없앨 수도 없으실 거다. 이건 아버지에게 맡겨야 할 일이 아니라 내가 풀어야 할 문제다.
“마존을 죽이기 전에 미리 말씀드리라고 하셨죠?”
이안에게 비천검법 전수를 허락하면서 아버지가 걸었던 약속이었다.
“지금 말씀드립니다. 전 섭혼마존을 죽일 겁니다. 팔마존 중 제일 먼저 죽는 마존은 그자입니다.”
회귀 전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산 마존이 섭혼마존이었다. 그는 이제 정반대의 운명을 살게 될 것이다.
“이건 마음에 안 든다고 홧김에 사람을 죽이는 것과 다릅니다. 미친놈이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도 더 나쁩니다. 멀쩡한 정신으로 체계적이고 규칙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니까요. 목적이나 거창하면 이해라도 하죠. 고작 저 조금 강해지려고 그 지랄 아닙니까? 이거 인간 아닙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팔마존들과의 입장이 있으니, 제게 맡겨주십시오. 칼자루 제게 쥐여 주셨으니, 끝까지 휘두르게 해주십시오.”
내가 한 말을 아버지가 얼마나 공감할지 모르겠다. 아버지와는 같은 길을 가고 싶지만, 이번 일만큼은 이렇게 생각하려 한다.
긴 여행에서 이 길에서 저쪽 길까지, 때론 일행과 잠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야 하는 경우도 있는 법이라고.
아버지는 한참 동안 말없이 나를 응시하더니 생각지도 못한 말을 남긴 후 방을 나갔다.
“네가 그 정도 실력이 된다면…… 그이의 공백은 네가 메우게 될 테니, 큰 문제는 없겠지.”
“!”
죽여도 좋다는 허락이었다. 실력이 되면 나서라는 충고와 그 공백을 내가 채우라는 압박까지 한 번에 다 하셨다.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미 가버리셨기에 감사 인사는 마음속에서 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역시 아버지는 아버지십니다. 그래, 이런 일로 헤어질 여정은 아니었다. 아버지와 난 아직 같은 길을 가고 있다.
그럴 리는 없지만, 내가 이번 생에 아버지가 된다면…… 조금 전 아버지가 느끼게 해준 그런 짜릿함을, 나도 아들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다.
물론 이번 생에도 혼자 살겠지만 말이다.
* * *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아이들이 있어요. 제가 죽으면 제 아이들은…….”
남자는 애원하는 여인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여인은 공포에 질려 남자를 쳐다보았다.
이 평범하게 생긴 남자의 눈빛은 너무나 무서웠다.
하지만 아이를 생각해서 용기를 냈다.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그녀였다. 자신이 돌보지 않으면 어린 자식들은 겨울을 나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다.
“제발 보내주세요.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제발 보내만 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여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때 여인은 남자의 눈동자가 검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 검은 그림자 속에서 자식들의 모습을 보았다.
순간 반가움에 환하게 웃었지만 이내 그녀의 얼굴은 고통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배고픔에 시달렸고, 다른 거지들에게 두들겨 맞았으며, 미친놈에게 끌려가 고통을 겪었다.
“안 돼! 제발! 안 돼!”
남자의 눈동자는 잔인했다. 그녀의 모든 슬픔을 다 뽑아내겠다는 듯, 아이들의 마지막 순간까지 연출했다.
아이들은 추운 겨울 길바닥에 쓰러져 숨을 거두고 있었다. 아이들의 입에서 ‘엄마, 배고파’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아아아! 안돼!”
슬픔과 절망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자신의 마음까지 빼앗겼다.
남자의 손에서 그녀의 마음이 뛰고 있었다.
자신의 생명을 잃은 슬픔보다 자식을 더는 볼 수 없다는 슬픔이 피눈물이 되어 사방으로 튀었다.
그녀의 숨이 끊어졌고, 평범하게 생긴 남자의 내공은 아주 조금 늘어났다.
* * *
다음날 나는 조사실에 있던 능휴를 데리고 서환진으로 갔다.
난 섭혼마존을 죽이기 위해서 세 번째 방법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대략 두 달여의 시간이 필요하다. 정해진 날짜에 어딘가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벌 필요가 있다. 딱 두 달만.
이번에는 서대룡만 데리고 갔다. 무섭다고 안 가겠다는 것을 억지로 끌고 왔다. 데리고 다녀야 한다. 차기 황천각주에겐 여러 경험이 필요했으니까.
우리를 맞이하는 섭혼마존의 검은 눈자위는 기괴할 정도로 커져 있었다.
“능휴는 무죄로 판결 내렸습니다. 그들을 죽였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죠.”
“그럼 능휴만 풀어주면 되지, 그대는 왜 온 건가?”
“드릴 말씀이 있어서입니다.”
“말하게.”
“주위를 물려주십시오.”
나는 서대룡을 밖에 나가 있게 했다. 이제부터 하려는 말은 상대가 살인멸구로 반응할 수도 있는 중요한 말이었다.
둘만 남자 그에게 말했다.
“마존께서 심혼대법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심혼대법이 뭔가? 금시초문이네.”
그는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일로 마존의 자리까지 오른 그였으니, 감정동요는 일절 없었다.
“대법을 중단하십시오.”
“이공자,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그의 말이 사방에서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만약 제 제안을 거부하면 죽습니다.”
섭혼마존이 가소롭다는 듯 웃자 내가 한 말이 날 조롱하듯 메아리쳤다.
―거부하면 죽습니다, 거부하면 죽습니다…….
죽는다는 말은 내가 아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들렸다.
나는 천마호신공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단호히 말했다.
“마존을 죽이는 것은 제가 아닙니다.”
―제가 아닙니다, 제가 아닙니다…….
다시 내 말이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반복되면서 나를 조롱했다.
“아버지를 설득할 겁니다.”
아버지가 언급되자 메아리가 뚝 끊어졌다.
방안을 찾아온 정적.
그가 두려워하는 유일한 한 사람.
당분간이라도 그를 제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아버지밖에 없었다.
“아침마다 문안 인사 가서 부탁드릴 겁니다. 섭혼마존을 죽여주십시오. 다음날 가서 또 말씀드릴 겁니다. 산 사람의 심장을 빼는 자는 본교의 위상을 깎아내리는 자일 뿐입니다. 또 다음날 가서 말씀드릴 겁니다. 후계자 포기할 테니 죽여주십시오. 다음날에도 또 다음날에도 온갖 말로 설득할 겁니다. 그러다 마존께서 아버지께 큰 실수를 한 어느 날, 그러자 하실지도 모르겠지요.”
내 말이 끝난 순간 섭혼마존의 검은 눈동자가 점처럼 작아졌다. 마치 눈동자가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며 점만 남는 것 같은 기괴한 모습이었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강력한 귀기가 발출되었다.
키히히히히.
귀신 소리가 나면서 주위가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
어느새 주변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